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213 - 일격
본영에서 고려군을 지휘하던 왕무의 눈에도 하늘 높이 떠오른 고려의 이름이 보였다.
“연우야!”
왕무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연우가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왕무는 실감했다.
“폐하!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거란군은 어느 순간 공세를 늦추더니 지금은 크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왕무 곁에서 박술희가 흥분해서 외쳤다.
“지금 총공격한다! 우리도 간다. 모든 전력을 지금 쏟아붓는다.”
그런 명을 내리며 왕무는 직접 창을 쥐고 말 위에 올랐다. 박술희와 본영을 경비하던 병력들도 그런 왕무를 호위할 태세를 갖추었다.
둥둥둥-
총공격을 알리는 고려군의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그리고 여진 기병들도 기세를 타고 거란군의 측면을 찌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거란군이 조직적으로 반격을 가하면 여진 기병들은 흩어져서 물러나기 바빴다.
하지만 이번 공세는 달랐다. 거란군의 반격을 받으면서도 여진 기병들은 똘똘 뭉쳐 밀고 들어갔다. 지금 공세를 가하면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여진 기병들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이 자식들. 진작 저러지!”
전면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황보제공은 신이 나서 외쳤다. 그런 황보제공 곁에서 황보금산이 외쳤다.
“형님! 우리도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 가자!”
황보제공이 창을 들며 외쳤다. 그와 함께 황보 형제, 박씨 형제들이 이끄는 패서 군사들이 거란군을 향해 부딪쳤다.
그 뒤를 발해 태자 대광현, 정안국왕 열만화가 따랐다. 발해 출신 군사들도 이제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밀어붙여야 한다. 거란의 퇴로가 끊겼다. 그들을 강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대광현은 그런 고함을 지르며 검을 뽑아들고 앞장서서 말을 달렸다.
* * *
거란승상 술률노속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황자 저하께서는 무얼 하고 계시는 거냐? 아니 후방에서 무슨 일이? 저걸 빨리 수습해야지.”
술률노속은 거란군 후방에 떠오른 기구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게 대체 뭔지 술률노속조차 감이 안 잡혔다. 그러니 거란의 보통 군졸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지금 바위가 떠내려와서 도하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상황을 보고 온 거란군 장수 하나가 악을 썼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어쨌든 후방을 빨리 수습해야 하는데. 일부 병력을 더 빼서…….”
술률노속이 그런 고민을 하는데 주변의 장수들이 외쳤다.
“지금 정면에서 달려드는 고려군의 기세가 범상치 않습니다. 여기서 부대를 더 빼면 전면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 이런!”
술률노속은 혀를 찼다.
* * *
끝까지 강 서편에서 저항하던 거란 태후 술률평의 군사들이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강 건너편에서 원군이 올 것을 믿고 결사항전하던 군사들이었다.
그러나 부석이 떠내려와서 원군이 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침내 사기가 꺾인 것이다.
“서둘러! 저들을 격멸하라! 그리고 거란 태후는 반드시 사로잡아라!”
상황을 살피던 나는 그런 명을 내렸다. 거란 태후 술률평은 지금 거란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죽이는 것보다 포로로 잡아 거란과의 협상 때 이용해야 한다. 거란으로부터 구 발해령을 확실히 받아내야지. 어쨌든 끼고 있으면 우리에게 유리해. 원래 역사를 보면 지금 거란 황제 야율덕광은 곧 병에 걸려 죽는다. 그런 만큼 거란 태후를 우리가 쥐고 있으면’
내가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사이 마침내 강 서편의 거란군은 도주하기 시작했다. 강 서편은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았다.
대신 거란 태후라도 탈출시키기 위해 거란군은 똘똘 뭉쳐 고려군의 포위망을 뚫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무서웠다.
“막아라. 막아.”
권행, 장길, 손긍훈 같은 장수들이 외쳤다. 그러나 몇몇 거란 기병들이 결사적으로 그런 고려군을 방해했다.
그 사이 거란 태후 술률평이 50여 기쯤 되는 기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그 뒤를 고려의 여러 장수들이 뒤쫓고 있었으나 점점 거리가 벌어졌다.
여진기병들은 기마술에 능했으나 선봉에 서서 여태까지 힘든 전투를 치러서 그런지 힘이 빠진 것 같았다. 속도를 못 내고 있었다.
“화살을 쏴서 거란 태후를 차라리 죽여야 하나?”
나는 그 광경을 보고 결단을 못 내리고 망설이고 있었다.
손긍훈이 열심히 말을 달려 거란 태후를 쫓고 있었다. 그때 그 곁에 있던 손긍훈의 손자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앗 손긍훈의 손자다! 얼굴은 아는데 이름을 몰라. 격구를 잘해서 황보제공이 데려가려고 했던 사람인데! 이름을 모르겠네.’
손긍훈의 손자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내 눈에도 낯이 익었다. 격구 경기 때 쓰는 나무공이었다.
자세히 보니 손긍훈의 손자가 쥐고 있는 창도 창대 부분은 격구채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저명한 격구선수라 그런지 무기도 그런 것을 쓰는 것 같았다.
‘설마!’
내가 입을 벌리며 지켜보는데 손긍훈의 손자가 창대로 나무공을 때렸다. 그리고 나무공이 시원하게 날아갔다.
교묘하게 휘어져서 거란군사들 사이를 뚫고 간 나무공이 거란 태후가 탄 말의 옆구리를 때렸다.
히히힝-
거란 태후가 탄 말이 날뛰며 소란을 피웠다. 거란 군사들은 태후를 버리고 갈 수도 없고 해서 그 말을 진정시키려 하는데 그사이 고려군이 달려와 그들을 포위했다.
“거란 태후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고려 군사들 사이에서 그런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 이름이 아마 손서당이었어! 기억해 내서 다행이다. 또 몰랐으면 욕먹을 뻔했어.’
나는 이마의 땀을 흘리며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동안 고려군사들은 마침내 강 서편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떠내려오는 부석들을 정리한 강 동편의 거란군사들이 강을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땀을 흘렸다.
‘잠깐의 시간차가 고려군을 살렸다. 왕규와 최지몽이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저들이 바로 강을 건너와서 거란 태후의 군사들과 합류했을 거고. 그러면 아무것도 안 되지.’
그러나 지금은 고려군사들이 강 서편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라 아무 걱정이 없었다.
“강변에 군사들을 길게 늘어세워라! 그리고 강을 건너오는 거란군에게 화살과 납탄을 쏴라!”
내 명대로 강변에 긴 진형을 펼친 고려군은 강을 건너는 거란군에게 공격을 펼쳤다. 거란군이 아무리 정예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강을 건너오던 거란 군사들이 집중사격을 당해 속속 쓰러졌다. 결국 거란군사들은 강을 건널 엄두도 못 내고 도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우리 고려군이 거란군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또한 고려의 이름이 하늘 높이 치솟았으니 강 동쪽에서 싸우는 우리 군사들도 왕후 마마께서 오셨음을 알고 사기가 올랐을 것입니다.”
내 주위에 집결한 장수들이 기뻐하며 외쳤다.
“흐음.”
그러나 나는 고민에 잠겼다.
‘뭔가를 더 하고 싶은데. 그런데 지금 후군의 실력으로는 강을 건너서 거란군 후미를 공격하기가 어려우니.’
* * *
한편 후방에서 벌어진 참사는 즉시 거란 승상 술률노속에게 전해졌다.
“승상, 태후 마마께서 고려 도적들에게 사로잡히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퇴로는 완전히 끊겼습니다. 저들이 강변을 완전히 장악해서 지금 우리 군사들이 도하를 할 수가 없습니다.”
후방의 사정을 살피고 온 거란 장수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술률노속에게 말했다.
“황자 저하께 강 서편의 고려군이 동편으로 건너와 우리 후미를 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전하라.”
술률노속이 침통한 어조로 그런 명을 내렸다. 그리고 술률노속은 자기 주변의 거란 장수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이제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고려국왕과 그 졸개들을 섬멸하고 앞쪽으로 뚫고 나가야 우리가 산다. 제장들은 군사들을 다잡고 총공격을 감행하라! 나 역시 직접 나서겠다.”
술률노속이 그렇게 공격준비를 하고 있을 때 후방에서 전령들이 속속 달려와 외쳤다.
“지. 지금 우리 후방에서 고려 대군의 함성소리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고려군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후미의 군사들에게 모두 들릴 정도라 우리 군사들이 사기를 잃고 달아나고 있습니다.”
* * *
나는 강변에서 군사들을 독려했다.
“모두 입을 모아 외쳐라!”
그리고 고려군사들은 일제히 호흡을 맞춰서 외쳤다.
“거란군의 퇴로가 끊겼다. 거란 태후 술률평도 우리 고려에 사로잡혔다.”
내가 이끄는 후군의 군사들은 거란말로 이를 외치고 있었다. 당연히 거란과 전쟁을 하는 만큼 후군에 배속된 역관들이 있었다.
그 역관들로 하여금 간단한 거란어 문장을 군사들에게 가르치게 했다. 그리고 몇 번 연습을 한 뒤 바로 이렇게 외치게 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귀를 막았다.
‘확성기를 쓰니 과연 효과가 대단하군. 거란군사들에게도 들리겠지?’
나는 손긍훈을 구할 때 썼던 확성기를 모두 가지고 왔다. 거기에 거란군의 진영에는 군영에서 쓰는 문서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 문서들도 깔때기처럼 말아서 군사들에게 지급했다.
그래서 4천 명의 후군 군사들이 확성기를 이용해 함성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바로 강 건너편에서 고려 군사들이 내지르는 함성소리를 듣는 야율이호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렸다.
“이, 이런 함성소리라니! 지금 강 서안에 집결한 고려 도적들의 수가 얼마나 된다는 거냐? 고려 도적들의 수가 수만 명은 되는 것 같다. 그러면 내가 이끄는 3천 군사로 저들을 막을 수가 없는데. 승상에게 원군을 보내 달라고 전령을 보내라! 여기가 돌파당하면 끝장이야!”
야율이호가 그런 지시를 내리는데 부장들이 달려와 다급하게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우리 군사들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놈들이! 당장 군령으로 그들을 다스려라! 도주라니!”
야율이호가 명을 내리는데 이미 고려군의 함성을 들은 거란군 후방은 전면 붕괴하고 있었다.
애초에 거란군 후방에 고려의 이름이 적힌 기구가 떠올랐을 때부터 거란군은 술렁이고 있었다. 그래도 거란군사들이 정예해서 그런 변고가 일어나도 꿋꿋하게 고려군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후방에서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은 고려군이 함성을 질러 정확한 상황을 알려주니 거란군이 도무지 버틸 수가 없었다.
거란군사들은 정예들인 만큼 상황 판단이 빨랐다. 퇴로가 차단당한 순간 거란군은 전멸당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퇴로가 완벽하게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방의 거란군사들이 정면에서 달려드는 왕무와 고려군사들을 막는 사이 후방에 있는 거란군사들은 송화강을 따라서 북쪽으로 달아나면 달아날 수 있었다.
이길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후방의 거란군사들은 기민하게 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군사들이 한꺼번에 달아나기 시작하니 야율이호도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부장들도 야율이호에게 달려와서 외쳤다.
“차라리 후방에 있는 군사들이라도 후퇴시켜야 합니다. 황자 저하! 저하께서 군사들을 수습하십시오.”
“무슨 소리냐? 지금 승상과 여러 장수들이 고려 도적들을 맞아 싸우는데 도망치다니!”
“어차피 강 서편의 고려 대군이 도하를 시작하면 포위당한 우리 거란군이 이길 수 없습니다. 저하. 지금 태후 마마는 포로가 되셨고 상경임황부는 텅텅 비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 거란군이 궤멸당하면 임황부를 지킬 군사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다 죽으면 고려군은 아무 방해도 안 받고 임황부에 입성할 것입니다. 수천 명의 군사들이라도 살려서 임황부를 수비해야 합니다. 중원에 들어가 계신 황제 폐하께서 회군할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부장들이 야율이호에게 입을 모아 외쳤다.
“이, 이런!”
야율이호가 혀를 차며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