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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203화 (203/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203 - 귀부

“우리, 우리는 어찌해야 해? 산이! 산이 쇳물을 뿜고 있다.”

“살려줘!”

“해가 사라졌다.”

필제특부 사람들은 백두산이 폭발하며 대혼란에 휩싸였다. 여진족들은 백두산과 근접한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어르신!”

필제특부 사람들은 여러 차례 산에 대해 경고했던 무당의 집 앞에 몰려갔다. 부족장인 필제특아공도 마찬가지였다.

‘경고가 있었을 때 조치를 취했어야 했나? 그런데 무슨 수로? 산이 이리될 줄은.’

그리고 무당을 시중드는 젊은이가 집 안에서 나와서 말했다.

“족장님! 어르신이 찾으십니다.”

“알겠다.”

필제특아공은 공손히 옷자락을 여미며 무당의 처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필제특아공이 말했다.

“과연 어르신의 예언대로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부족민들을 산에 들여보내지 않아서 화를 피했습니다. 저 산에 사람이 들어갔다면…….”

필제특아공은 말을 못 잇고 고개를 저었다. 산에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산이 폭발하는 순간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족장께서는 어찌하실 요량이오? 그게 궁금해서 족장을 모셨습니다.”

무당이 다급하게 물었다.

“저도 그걸 어르신께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필제특아공이 울상을 지었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다른 부족은 어찌하는지 살펴볼까요? 각랍라 부에 사람을 보내면?”

필제특아공이 말했다.

“그쪽도 뾰족한 수는 없을 것이오.”

무당이 고개를 저었다.

“우선은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서 사람들에게 짐을 꾸려두라고 해두긴 했습니다. 떠나야 할지? 버텨볼지? 터전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해가 나야 농사를 짓든 뭐든 할 텐데 말입니다. 해가 계속 안 나면 떠나야겠죠.”

필제특아공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백두산이 터지긴 했으나 여러 여진부족들은 이도 저도 못하고 우선 머무르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백두산이 폭발했다고 해도 그 근처에 살던 부족만 우선 전멸했다. 두만강 인근에 광범위하게 퍼져 사는 여진 부족들은 폭발에 동요하긴 했으나 아직 직접적 피해는 없었다.

“어쨌든 한번 크게 제사를 지내볼 작정이오. 그래야 사람들이 뭐라도 할 텐데.”

“그게 좋겠습니다. 정성 들여 제사를 준비하면.”

필제특아공은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데 처소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무당의 처소 문을 열고 사람들이 뛰어들어 왔다.

“무슨 일이냐? 산이 또 터졌느냐? 굉음은 안 났는데?”

필제특아공이 묻는데 사람들이 부르짖었다.

“강이! 강이 넘칩니다. 산에서 회색 물이 쏟아져 강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강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달려왔습니다.”

“이, 이런!”

필제특아공은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나왔다. 그리고 부락의 보호를 위해 세워둔 망대로 뛰어 올라갔다.

필제특아공이 망대 위에서 멀리 내다보니 과연 두만강이 범람하고 있었다. 그 속도가 엄청났다.

백두산은 원래 지하수가 풍부한 산이었다. 두만강, 압록강, 송화강이 모두 백두산에서 시작했다.

이런 백두산에서 대폭발이 일어났으니 강들이 평소처럼 흐를 수가 없었다.

거기에 겨울이라 산에 쌓여 있던 눈들도 폭발로 녹아 한순간에 흘러내렸다.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물이 유입되면서 대범람이 시작된 것이다.

“도망쳐야 한다. 서둘러!”

필제특아공이 망대에서 내려오며 악을 썼다. 홍수에 대해서는 필제특아공도 경험이 있었다. 홍수가 나면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마을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말등에 짐을 싣고 마을을 버리는 필제특부 사람들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고려인들이 만들어주고 떠난 배!”

모두가 그리 외치며 허겁지겁 배들이 있는 언덕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필제특부는 배들을 잘 관리해 왔다.

배 안에 얼추 다 탄 필제특부 사람들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마을은 벌써 사라졌구나!”

배 위에서 마을 쪽을 바라보며 필제특아공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고려, 고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인가?”

필제특부의 누군가가 그리 한탄했다. 그 말을 듣고 필제특아공도 놀라서 고민에 잠겼다.

‘대체 무슨 수로?’

그사이 범람한 물은 배들이 있는 언덕까지 몰려왔다. 그리고 필제특부 사람들이 탄 배는 물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필제특부에는 고기잡이를 해서 배를 몰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키를 잡고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제특아공! 괜찮소?”

멀리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필제특아공은 고개를 돌렸다. 배에 탄 각랍라영신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각랍라부도 다행히 배를 타서 무사한 것 같았다.

“배를 가까이 대라! 각랍라부 사람들과 합류하자.”

필제특아공이 그런 명을 내렸다. 어려운 상황인 만큼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가 가까워지자 각랍라영신이 어두운 표정으로 외쳤다.

“포탈부 쪽으로 가봐야 하지 않겠소? 그쪽은…….”

고려인들이 만들어주고 떠난 배를 해체하던 포탈철림의 모습이 필제특아공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포탈부 사람들은 거의 전멸했겠지. 만약 내가 부족민들의 불만을 억누르지 못했다면 우리도…….’

그런 상상을 하며 필제특아공은 몸을 떨었다. 어쨌든 포탈부 사람들이 거의 전멸했다고 해도 소수의 사람들은 살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필제특아공과 각랍라영신은 포탈부 쪽으로 배를 몰았다.

과연 멀리서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가죽으로 만든 작은 고기잡이배에 탄 사람들도 있었고 나무로 된 가재도구를 붙들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필제특부와 각랍라부의 배를 보고 그 사람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을 구하자!”

두 부족 사람들이 배를 모는데 또 어디선가 회색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 회색물결이 작은 고기잡이배를 휩쓸고 지나갔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두 부족 사람들은 몸을 떨었다.

“돌이 됐다!”

회색물결에 휩쓸리자 고기잡이배와 그 위의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물살에 휩쓸려 사라지는 모습을 모두가 목격했다.

“고, 고려인들이 준 선물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돌이 됐구나! 으으으.”

여기저기서 그런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두 부족 사람들은 가재도구를 붙들고 버티던 포탈부 사람 3명은 구할 수가 있었다.

“더는 포탈부 사람이 없는 것 같소. 거기다가 더 들어가면 우리도 위험하고.”

필제특아공이 각랍라영신을 보며 말했다.

“그렇소. 이제는 우리도 안전한 곳으로…….”

각랍라영신은 말을 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어디가 안전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고려로. 고려로 가는 수밖에. 고려의 왕후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을…….”

필제특아공이 저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렸다. 그 외에 딱히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럽시다.”

각랍라영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부족 사람들은 남쪽으로 배를 돌렸다.

* * *

한편 두만강 하류와 그 인근 동해 해안에는 말 그대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강의 범람으로 마을들이 침수될 뿐만 아니라 화산재의 피해도 컸다.

서풍을 타고 날아온 화산재가 동해의 상공을 메우고 있었다. 강 중상류 마냥 어두컴컴한 수준을 넘어서 말 그대로 암흑천지였다.

여진족들은 횃불에 의지해서 동해안으로 몰려왔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빠져나갈 배의 숫자가 부족했다. 두만강 하류와 동해안은 사람들이 살기 좋았다. 그래서 여진족들의 인구도 엄청났다.

평소 여진족들이 가지고 있는 배로 모두가 탈출하기는 불가능했다. 배에 탄 여진족들은 차마 해안에 몰려와 있는 동족들을 버리지 못하고 해안가에 어물쩡 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해안에 모여 있는 여진족들 사이에서 절망적인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횃불을 만들 나무가 없다.”

화산재가 떨어지며 인근의 나무도 다 죽어버렸다.

“천막을 태워라!”

빛이 없으면 큰일이라 여진족들은 가재도구까지 태워가며 불을 피웠다. 그러나 그 불들도 시간이 지나며 하나둘씩 꺼져갔다.

여진족들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장막 같은 화산재 때문에 햇빛도 달빛도 없었다.

“흐흐흑.”

암흑천지에서 범람하는 강물에 쫓기는 신세가 된 여진족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저기 빛이!”

그 외침을 듣고 해안의 여진족들이 고개를 들어 동해를 바라봤다. 과연 환한 빛덩이가 바다를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빛덩이가 가까워지며 그 정체가 드러났다. 다름 아닌 고려에서 온 배 10척이었다. 그 배들이 횃불을 가득 밝히고 다가온 것이다.

작은 배에 타고 있던 여진족들이 고려의 배에 다가와 외쳤다.

“우리들을 좀 구해주십시오.”

선단을 지휘해서 달려온 고려의 골암성주 윤선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더 많은 배가 올 것이다. 그때 한 번에 사람을 구하겠다. 너희들은 이 소식을 해안에 전해라! 질서를 지켜라! 노약자들부터 먼저 태우겠다. 그 준비를 하라!”

골암성은 고려 동해안 최북방에 있는 성 중 하나였다. 그래서 윤선이 가장 먼저 당도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여진족들은 환성을 지르며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해안가로 향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골암성주 윤선이 배에 탄 고려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여진족들이 배를 뺏으러 올 수 있으니 너희들은 철저히 경계하라.”

골암성주 윤선은 여진족들과 여러 차례 교전을 벌인 경험이 있었다. 밀명을 받아 여진족들을 구하러오긴 했으나 그들을 안 믿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고려 배들이 와서 고려의 세력이 커지고 여진족들을 제어할 수 있을 때 구조를 시작할 작정이었다.

골암성주 윤선이 기다리고 있으니 곧 굉장한 규모의 선단이 속속 횃불을 밝히며 당도했다. 명주도독 김순식이 이끌고 온 배였다.

명주 해안 10개 군현에서 만든 배들이 당도하니 위세가 대단했다.

“와아아아아!”

수많은 배들을 보고 해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진족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제는 구조를 시작해도 되겠군.”

골암성주 윤선은 흡족해져서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해안에 가까이 댔다. 그리고 물려오는 여진족들에게 줄사다리를 내려주었다.

골암성의 배들과 명주의 배들이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하는데 경주도독 윤신달이 이끄는 선단도 마침내 도착했다.

여진족들을 구출하는 작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 * *

개경의 어전에서는 도선국사의 노래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노래의 첫구절과 둘째 구절은 해석이 어려웠지만 세 번째 구절과 네 번째 구절은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세 번째 구절은 일찍이 우리 태조께서 이루신 업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림원령 김악이 어전에서 신이 나서 외쳤다.

“어찌 닭을 쥐고 오리를 때려서 배가 부르겠는가? 아아 까마귀가 떨어지고 흰 늑대도 발밑에 엎드리네.”

박수문이 도선비기의 마지막 장에 적혀 있다고 알려진 노래의 세 번째, 네 번째 구절을 읊조렸다.

“닭은 신라를 상징하고 오리는 압록강의 압(鴨)이 오리 압자를 씁니다. 그래서 압록강을 가리킵니다. 네 번째 구절도 그처럼 해석하면 되는 일입니다.”

김악이 말을 이었다.

“까마귀는 옛 고려의 오골성 아니겠습니까? 오골성의 오(烏)가 까마귀를 가리키니. 그리고 흰 늑대는 백랑수를 뜻합니다. 백랑 자체가 흰 늑대를 뜻하니. 백랑수는 요동에 흐르는 강입니다.”

유긍달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어전에서 기쁜 표정으로 중신들의 논의를 듣고 있었다.

‘내가 이 참요를 지었는데. 딱 내가 원하는 대로 해석을 해주네. 하긴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도록 내가 지어놨지. 하하하.’

그리고 노래 해석을 끝낸 중신들은 침묵에 잠겼다. 그 와중에 황보제공이 불쑥 내뱉었다.

“그럼 결국 북벌을 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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