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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198화 (198/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198 - 단결

내가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대광현이 문득 왕무에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조만간 북벌을 하실 요량이십니까?”

나와 왕무는 대광현에게 명시적으로 북벌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진나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북벌을 감행한다는 것은 고려 내에서 아직 기밀이었다.

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왕규와 말라 스님 등 몇몇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광현은 나와 왕무가 진행하는 군사훈련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발해 유민들을 조직적으로 훈련시키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왕무가 거란군과의 야전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니 대광현이 눈치챌 수밖에 없지.’

“흐음. 하하하.”

왕무는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 어전에서 고려 중신들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 대광현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에 한쪽에 앉아 있던 박술희는 대광현이 뜬금없이 북벌에 대해 이야기하자 놀란 기색이었다.

박술희는 입을 쩍 벌렸는데 그 안에 부스러진 곤충 튀김의 잔해가 보였다. 나는 경악해서 시선을 돌렸다.

‘아니 왜 저런 걸 먹다가 입을 벌려? 어쨌든 대광현이 이리 스스로 북벌에 대해 눈치 챈 일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와 왕무가 명확하게 말은 하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낌새를 흘려서 분위기를 조성해야지. 갑자기 북벌을 한다고 외치면 사람들이 너무 놀라잖아. 서서히 분위기는 흘려야지.’

내가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사이 박술희가 나를 향해 물었다.

“왕후 마마. 정녕 거란을 상대로 북벌을 하실 작정이십니까? 소장은 그저 방어 훈련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쎄? 허허허.”

나는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아니 왜 곤충튀김 찌꺼기를 튀기면서 나한테 물어? 어쨌든 애매한 대답을 해서 분위기나 만들어야지.’

그런데 대광현은 나와 왕무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북벌을 안 한다는 말씀은 없으시니 언젠가는 한다고 생각하고 간언을 올리려 합니다.”

“태자는 내 형제와 같다. 간언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

왕무가 흔쾌히 대광현의 청을 받아들였다.

“폐하께서 거병하셔서 옛 발해땅으로 진출하신다면 많은 발해인들이 여기에 호응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반기지 않는 발해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거란에 부역하는 사람들은 내가 익히 알고 있다.”

왕무의 말을 듣고 대광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부역자들뿐만 아니라 거란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 중에서도 저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안국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장군 열만화가 이미 스스로 정안국이란 나라를 세우고 왕을 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자라고 제가 고려군과 함께 발해령에 진입하면 그들이 과연 기쁘겠습니까? 그들이 과연 우리에게 호응할 지 의문입니다.”

“흐음.”

대광현의 말을 듣고 왕무는 민망한 기색이었다. 대광현이 이야기 한 것은 상당히 민감한 정치적 문제였다.

‘사실 나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 다만 대광현에게 불편한 주제라서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진 못했는데.’

지금 옛 발해령 안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물론 왕건은 생전에 항상 거란의 폭정 아래 발해유민들이 고통 받고 있으며 발해의 독립을 위해 유민들이 똘똘 뭉쳐서 싸우는 것처럼 묘사했다.

그리고 고려가 그들을 구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거야 왕건의 정치적 구호고.’

거란은 발해의 주요 거점들만 통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지역에선 발해의 유력한 장군들이나 대신들이 스스로 작은 나라를 세우거나 자기 근거지에서 할거하고 있었다.

호족들이 난립하던 고려와 흡사한 상황이었다.

고려군이 구 발해령에 진출하면 이 발해의 장군, 대신들의 협조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자기 땅에서 왕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고려군에 선뜻 협력을 할지 의문이긴 했다.

“정안국이나 발해의 여러 장군들도 거란을 몰아내자는 대의에는 동의할 것이다.”

왕무가 원론적인 말을 했다. 발해 태자인 대광현 앞에서 발해 사람들에 대해 나쁜 말을 하기 어려워서였다.

“그들은 이미 옛 발해 왕족들을 왕으로 세우지 않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욕심을 이미 드러낸 무리들인데. 과연 대의에 따르겠습니까? 이 문제를 정리해 놔야 합니다.”

대광현의 어조에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뭐 발해 태자 입장에서는 덜컥 정안국을 세워 버린 열만화나 할거하는 발해 장군들이 역적처럼 보이겠지. 이거 참. 대광현도 잘 달래 놔야겠어. 북벌과정에서 이런 감정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참 처리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니.’

나는 대광현을 진정시킬 겸 나섰다.

“만약 우리가 북벌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들 문제는 나에게 비책이 있으니 태자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비책이라면?”

대광현이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그건 그때 가보면 압니다. 하하하.”

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내가 백두산 대폭발을 기다리는 거야. 백두산이 폭발하면 대광현이 걱정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여진족 문제도 마찬가지로 묶어서 해결할 수 있어.’

기실 백두산이 폭발하면 구 발해령의 동부가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런데 발해령 동부에 주둔하는 거란 세력은 미미했다. 결국 백두산 폭발은 발해 유민들이나 여진족들에게 큰 타격을 끼친다.

그럼에도 내가 백두산 폭발이 고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은 대광현이 거론한 문제 때문이었다.

‘백두산 대폭발급 재해가 터지면 정안국이나 여진 부족들이 자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막대한 물자와 군사력을 보유한 고려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어. 즉 고려 대군을 구심점으로 구 발해 세력과 여진족들이 뭉치는 구도가 된다. 이러면 거란과 한판 승부를 벌일 조건이 마련된다.’

물론 백두산이 폭발하면 발해 유민들과 여진족들의 세력이 깎였다. 그러나 세력이 깎이는 것을 감안해도, 지금처럼 소규모 자립세력들이 할거하는 것보다 고려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나았다.

‘다만 이런 내 계산을 지금 밝힐 수는 없지. 왕건과 왕무한테는 지동의를 핑계 삼아 지진을 예상했다고 둘러댔지만 다른 사람들은 과연 믿을지?’

그래서 나는 대광현 앞에서는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왕후 마마께서 여기에 대한 생각을 하고 계셨다니 다행입니다.”

대광현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곁에서 박술희는 다시 나를 향해 물었다.

“왕후 마마. 그래서 북벌을 확실히 하시는 것입니까? 이런 말까지 하시는 것을 보니.”

“글쎄.”

나는 또 고개를 갸웃거리며 같은 대답을 했다. 박술희는 갑갑한 지 이번에는 왕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폐하. 그래서 북벌을 하는 것입니까?”

“그야 언젠가 하긴 해야겠지. 태조 대왕의 뜻이기도 하니.”

왕무가 또 원론적인 대답을 했다. 이런 식으로 분위기만 흘리자고 왕무와 이야기를 해놨다.

“그래서 조만간 하는 것입니까?”

박술희가 초조한 듯 말했다.

“하하하.”

박술희의 말을 듣고 왕무는 그냥 웃기만 했다. 박술희는 만족스러운 답을 듣지 못하자 한숨만 쉬었다.

어쨌든 왕무의 말이 맞았다. 한림원에 앉아 있는 것보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군영에서 군사들의 훈련도 감독하고 대광현, 박술희와의 대화도 마친 우리 부부는 그대로 처소에 돌아왔다.

처소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탁자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짚으며 왕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군사를 일으킬 때 동쪽으로 두만강을 건너는 게 좋겠어. 요동은 중원에서 싸우는 거란 주력과 너무 가까우니.”

“나도 딱 그 생각을 했어. 대광현이 거란 기병들의 기동력을 거론할 때.”

왕무가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무. 너도 그때? 나도 딱 그때 동쪽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나는 왕무와 마음이 이렇게 정확히 맞았다는 게 신기했다.

“응. 또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큰 지도자들은 항상 동쪽을 먼저 평정하고 그 이후 힘을 모아 요동까지 차지했어. 옛 고려도 그랬고 발해 고왕 대조영도 먼저 동쪽에서 기반을 만들었지.”

왕무가 옛 역사를 거론하며 말했다.

“맞아. 맞아.”

나는 왕무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다가 왕무는 내 취향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역사학도인만큼 이런 식으로 옛 역사를 거론하며 근거를 대는 걸 좋아하거든.’

오늘 또 새삼 왕무에게 반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와중에 왕무가 나를 번쩍 들더니 침상으로 향했다.

‘아, 오늘 또. 이, 이것도 확실히 마음이 맞긴 맞네. 딱 내가 왕무에게 다시 반했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이래주니.’

나는 다른 모든 일을 잊고 왕무의 목을 끌어안았다.

* * *

고려의 북벌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우리의 지시를 받은 박술희, 대광현 등은 군사 훈련에 더욱 열중했다.

“전국의 군적을 정리해야겠다. 한림원이 이젠 이에 관한 준비가 얼추 끝났다고 보고를 올렸다.”

왕무는 어전에서 그리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마침 안정된 시기니 신속하게 이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애초에 태조 대왕께서 삼한을 통일하시고 나서 준비한 사업입니다.”

박수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중신들도 여기에 대해선 토를 안 달고 동의했다.

‘고려가 건국 초라 여러모로 어수선하긴 하지만 내전을 거친 덕에 군사관련 행정만큼은 정교하게 체제를 갖춰놨어. 거란과의 결전을 준비하는 우리 입장에선 다행이지.’

군적 정리 사업도 필요한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여태 끈 것이다. 중신들의 의견이 엇갈릴 일은 아니었다.

‘오늘은 별 탈 없이 어전 회의가 끝나나.’

그런데 그 순간 어전 밖에서 시위가 다급한 어조로 외쳤다.

“폐하. 급한 소식이 밖에서 왔습니다.”

“전하라!”

“요양 중이던 한림원령 최언위의 병세가 위중하다고 합니다. 병이 커진 것 같아 그 집안사람들이 마침내 이를 알려왔습니다.”

시위가 그리 외쳤다.

“한림원령이?”

왕무는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이럴 수가? 큰병이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해서 쉬는 거라 들었는데?”

“아이들이 놀라겠군.”

어전 내의 중신들도 동요해서 웅성거렸다. 최언위는 오랫동안 한림원에서 고려 호족들의 자제를 가르쳐 왔다. 중신들 입장에서 최언위는 자식, 손자들의 스승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최언위가 위중하다는 이야기에 더 놀라는 것 같았다.

“폐하. 어의를 한림원령에게 보내십시오.”

중신들이 입을 모아 그리 말했다. 그리고 왕무도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그 곁에서 나는 두 눈을 감고 한숨만 내쉬었다. 미래에서 온 나는 어의가 달려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언위의 나이가 너무 많기도 하고.’

최언위와의 추억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 기인으로서 개경 한림원에 와서 최언위의 수업을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최언위 밑에서 공부하면서 전생에서도 터득하지 못한 문리를 깨우쳤다. 이제 한문으로 된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됐어. 다 한림원령 덕이었는데. 그동안 그런 걸 잊고 지냈어. 최치원의 정체를 밝힐 때 함께 가준 것도 최언위였고. 그런데 어쩔 수 없네.’

나는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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