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121화 (121/216)

< 121 : 대비 >

나는 내 처소에서 왕무를 부둥켜안은 채 입을 맞추고 있었다.

'한번 허락하니 매일 하게 되네.'

하루라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입맞춤을 한동안 좀 쉬었다가 가끔씩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실감했다. 정무를 보고 돌아온 왕무는 이제 매일 자연스럽게 나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다.

나는 내 입 속에 들어온 왕무의 혀 때문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이상하게 왕무와 입을 맞추면 시간이 잘 가.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 좀 살펴야 하는데.'

진짜 입맞춤을 하다가 밤을 샌 적도 있었다. 나야 한림원에 나가지도 않으니 하루종일 나주원에서 쉬어도 됐다. 하지만 왕무같은 경우는 왕건이 없는 동안 어전에 나가 정무를 봐야 했다. 나 때문에 한숨도 못 자고 어전에 나간 적도 여러 차례였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나는 곁눈질로 창밖을 살폈다.

'궁에도 지금 시계가 없는 게 아쉽네. 진짜 물시계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건의해야지. 서라벌에는 시계 기술자들도 있을거야. 시계 같은 걸 왕무가 지금 도입하면 말이 많아지니, 왕건이 돌아오면……'

그런데 갑자기 내 목덜미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헉."

왕무의 입술이 내 목덜미로 내려온 것이다.

"연우야. 무슨 생각해?"

잠시 후 목덜미에서 입을 뗀 왕무가 웃으면서 물었다.

"저, 전하."

내가 뭐라 대답을 하려는데 왕무는 그대로 다시 입을 맞췄다.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항상 이런 식이야.'

입맞춤을 할 때마다 왕무는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싫은 것 같았다. 잠깐 딴 생각을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더 자극적인 행동을 했다.

'입맞춤이야 친교의 의미로 한다고 쳐도 목덜미는 안 되지. 목덜미는 좀 위험할 수도 있어.'

왕무가 다시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댈까봐 나는 열심히 입맞춤에 집중했다. 한참 입을 맞추던 나는 문득 배에 뭔가가 닿는 것을 느꼈다. 왕무의 일부가 커진 것이다.

갑자기 무서워진 나는 왕무의 어깨를 밀어냈다.

"국, 국선!"

정신을 차린 왕무가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정윤 전하. 계속 입맞춤을 하면 전하께서 너무 힘드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왕무가 저러는 건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야. 왕무를 탓할 것은 없어. 그런데 나는 왕무가 힘들까봐 입맞춤을 허락한 건데. 이게 오히려 왕무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는 왕무와 끝까지 갈 수가 없는데.'

나는 왠지 죄책감이 들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왕무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국선. 나는 괜찮습니다. 나는 참을 수 있습니다."

왕무는 자신의 하반신을 뒤로 엉거주춤 빼며 나를 끌어당겼다.

'진짜 괜찮은 걸까? 왕무 입장에선 참을 수 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을텐데. 에라 모르겠다.'

나는 우선 다시 왕무의 입맞춤에 호응했다.

'내가 입맞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시간이 잘 가는 게 장점이야. 하고 나면 잠도 잘 오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순간을 즐겼다.

나와 왕무도 입맞춤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여유가 생기긴 한 것 같았다. 새벽이 되기 전에 우리 두 사람은 입술을 떼어낼 수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 침상에 앉은 나는 왕무에게 물었다.

"요 근래 벽란도의 길을 정비하고 화재를 대비한 대피 훈련을 하는 것은 어찌 되어갑니까?"

"별 문제가 없습니다."

자려고 자기 침상에 가서 드러누운 왕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대피 훈련에 벽란도 상인들의 불만이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약간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벽란도 도로 정비 및 화재 대피 훈련은 내가 왕무에게 권한 정책이었다.

'백제 수군이 기습하면 벽란도가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배들은 구할 방법이 없지만 사람들이라도 살려야지. 통로를 정비해놓고 대피 훈련도 하면 좋아. 그런데 이게 사람들에겐 귀찮은 일이라.'

번거로운 일에 시달리는 벽란도 상인들이 불만을 토로한다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려오고 있었다. 왕무에 대한 여론도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런 것은 신경쓰지 마십시오. 국선! 그 정도야 이미 각오했습니다. 아 그리고 국선의 뜻대로 여러 섬 목장에도 태풍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땅굴을 파놨습니다."

왕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나는 나 때문에 왕무가 욕을 먹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괜찮습니다."

왕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순진하고 청순해보였다.

'저런 왕무를 지키려면 내가 더 잘 해야지. 그런데 일 얘기를 좀 더 길게 해야 하는데.'

입맞춤을 2~3시간은 한 것 같은데 중요한 일 얘기는 5분도 안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졸음에 나는 눈을 감았다.

시간은 정말 빨리 갔다.

'왕무랑 매일 밤마다 입을 맞춰서 그런가?'

나는 힐끗 내 곁에 서 있는 왕무의 얼굴을 훔쳐봤다. 왕무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무는 서경에서 돌아오는 왕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한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었어. 올해가 932년!'

왕건이 돌아온다니 내 마음이 무거웠다.

'왕건이 없는 동안에는 나주원에 앉아서도 다 내 마음대로 됐는데.'

처소에 들어오는 왕무에게 해야만 하는 일 몇 가지를 지적해주면 그게 다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또 한림원에 나가서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억지로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왕무가 한달만 정무를 보니 대호족들이 그나마 적당히 흔들다가 끝낸 거지. 왕무가 오랫동안 정무를 대행했으면 마구 날뛰었을 거다. 왕건이 한동안은 더 있어줘야 해.'

그리고 어느덧 왕건의 행렬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나와 왕무는 다가오는 왕건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정윤이 내가 없는 동안 정무를 잘 돌봤다고 들었다. 참 정윤은 사려깊고 조심성이 많다. 훌륭해."

말에서 뛰어내린 왕건이 왕무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왕무가 태풍 및 화재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취한 여러 조치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좋아.'

나는 그런 왕건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윤비는 내가 없어서 좋았겠지?"

왕건은 계속 왕무의 어깨를 두드려주다가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폐하. 폐하께서 안 계셔서 오히려 근심이 많았습니다."

나는 뜨끔해져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어쨌든 왕건이 돌아오고 나서 모든 일은 예전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한림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달 놀다가 다시 일을 하려니 너무 힘드네. 시간도 다시 안 가고. 왕무와의 입맞춤 시간이 줄어서 그런가?'

내가 한림원에 나가고 나서부터 왕무는 내가 잠 잘 시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입맞춤 시간을 줄였다. 한참 입맞춤을 하다가 왕무가 스스로 입술을 떼고 자야한다고 말했다.

'왠지 짜증이 나네. 이게 다 왕건 때문이야.'

나는 한림원 한쪽에 앉아있는 왕건을 바라봤다. 개경으로 돌아온 왕건은 호족들의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는 일을 요 근래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혼자 실실 웃기도 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왕건은 한림원 학사들을 둘러보며 뜬금없이 말하기도 했다.

'나는 왕건이 왜 좋아하는지 알지. 매곡성의 대호족 공직이 조만간 왕건에게 붙을테니. 왕건이 직접 편지를 쓰며 작업을 하는 것도 공직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지.'

참 이런 것을 보면 왕건의 공작 능력이 대단하긴 했다. 나는 내 계획을 가다듬을 겸 앞으로 일어날 일을 떠올렸다.

'6월에 공직이 왕건에게 온다. 왕건은 기뻐서 날뛰겠지. 그런데 그 이후 백제가 수군으로 개경을 기습공격한다. 왕건이 내 말을 안 듣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왕건은 공직의 귀순으로 삼한이 사실상 통일됐다고 믿을 수밖에 없으니. 어쨌든 나와 왕무는 백제 수군의 공격을 기회로 삼아 세력을 키워야 해. 시간이 진짜 얼마 안 남았어.'

내가 긴장해서 이를 악무는데 왕건이 나를 불렀다.

"연우야.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이리 와보렴."

나는 무슨 일인가 해서 다가갔다.

"이제 삼한이 거의 통일 된 상황에서 연우 네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구나. 지난날 내가 견훤에게 연전연패 하고 있을 때도 연우 너는 견훤과 신라왕이 나에게 항복할 거라 말했다. 물론 너의 말이 완벽하게 들어맞은 것은 아니지. 견훤이 나에게 항복할 일은 없으니. 하지만 내가 이길 거라고 예상한 너의 정세 판단이 대강 들어맞긴 했다. 그래서 내가 연우 너에게 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말씀을 내리십시오."

"내가 과연 살아생전에 북진해서 옛 고려의 땅을 모두 회복할 수 있겠느냐? 발해의 유민들은 거란에 맞서 아직도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이때 삼한을 통일한 내가 나아간다면 공을 이룰 수 있다. 연우 네 생각은 어떠냐?"

왕건은 매우 진지한 표정이었다. 옛 고려의 땅이란 고구려 땅을 의미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고구려를 대개 고려라고 불렀다.

'애초에 왕건이 서경에 자주 가는 이유가 북진을 위해서지. 이제 왕건은 삼한통일이 거의 다 됐다고 믿고 북진의 꿈을 꾸고 있구나. 왕건의 야심이 크긴 컸어.'

나는 왕건의 의중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뭐라 답을 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왕건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 애초에 삼한통일을 하는데도 시간이 몇 년 더 걸리고. 통일 후에는 왕건에게 시간이 별로 안 남아있으니.'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백제와 신라의 항복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관련된 책도 많이 읽은 덕분입니다. 거란에 대해서는 정보가 부족해 예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정확한 정세판단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네 직감을 듣고 싶은 건데. 감으로 말해봐라. 어떠냐? 내가 옛 고려 땅을 회복할 수 있지?"

그런데 왕건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나를 물고 늘어졌다.

'이건 그냥 북진에 성공한다고 말해달라는 거 아니야? 그냥 왕건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줄까?'

그러나 그런 내 뇌리에 임희가 했던 말이 스쳐지나갔다.

'왕무의 파벌은 내 정세판단과 명성에 많이 의지하고 있어. 그런 만큼 나는 허튼 말을 하면 안 돼.'

그래서 나는 꿋꿋하게 왕건의 압박을 버티며 애매하게 답했다. 왕건도 계속 나를 볶아대다가 지친 모양이었다.

"이렇게 소심해서야. 그래 그럼 대신 약속이나 하나 해라."

"약속이라면?"

나는 신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왕무가 왕위에 오르면 연우 너는 반드시 북진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력을 기울여 왕무를 돕고 힘을 아껴선 안 된다. 이걸 약속하렴."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굽신거리며 대답했다. 왕무가 왕이 된다고 왕건이 말해주자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왕건은 왕무에게 왕위를 물려줄 마음이 확고해보였다.

"그래 그럼 됐다."

왕건이 안도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다가 뭔가가 떠오른 듯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우 너의 격구단에서 새로 영입한 선수는 어떠냐? 연우 네가 워낙 큰소리를 쳐놔서 기대가 크다. 내가 슬슬 직접 한번 보러 가야겠다. 여름이 되면 바빠질 거 같아. 그 전에 좀 봐놔야지."

나는 왕건의 말을 듣고 후회했다.

'북진과 관련된 대화를 오래 끌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격구 얘기로 훅 들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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