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100화
100. 두 혼인
나는 열심히 박수를 쳤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배수현이 보였다. 박수를 치다가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눈 주위를 매만졌다.
오늘 드디어 배수현이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윤비인 내가 이 자리에 와서 미미하게나마 수현이에게 도움을 줬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결혼식을 지켜봤다. 신랑인 박제안도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키가 커서 잘 어울렸다.
‘박술희는 실제 역사에서 끝까지 왕무를 따랐던 장수! 내 가장 친한 친구인 수현이가 박술희의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되다니 다행이야.’
나와 왕무를 중심으로 한 파벌은 이 결혼을 통해서 더욱 결속력이 강해질 것이다.
내 곁에서 왕무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군부에서 왕무와 제일 친한 사람이 박술희였다. 왕무는 당연히 시간을 내서 달려왔다.
혼인식이 끝나고 새로 탄생한 부부를 축복하기 위한 연회가 열렸다.
“오늘 제가 며느리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참 기쁜 일입니다. 자 모두 연회를 즐기십시오.”
박술희는 술잔을 들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웃으면서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순간 연회장에 동요가 일었다.
“어어어.”
여기저기서 경악한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박술희가 뭔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곤충을 먹는 모습을 본 것이다.
‘아니, 아들 결혼식에도 저러다니. 오늘은 그냥 보통 음식을 먹지.’
학관에 다니던 나야 박술희가 간식으로 기묘한 곤충튀김을 먹는 것을 자주 봤다. 하지만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 중에는 이 모습을 처음 본 사람도 있는 것이다.
‘수현이가 결혼을 잘한 걸까?’
나는 문득 그런 걱정이 들었다. 며느리가 되어 시아버지인 박술희의 밥상을 차리는 배수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님,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개미를 섞어 밥을 짓고 두꺼비 국을 끓여왔습니다.
-개미 맛이 텁텁하구나. 좋은 개미를 잡아 왔어야지! 이 맛이 아니야. 너는 맛도 보지 않고 밥을 짓는 게냐?
-아버님. 제가 어찌 맛을 보겠습니까? 그런 음식을…….
-개미 맛을 보는 게 어때서? 어쨌든 다시 맛 좋은 개미를 잡아 오너라. 이 개미는 먹을 수가 없어.
그리고 배수현이 눈물을 흘리면서 마당에 나와 호미로 땅을 파며 개미집을 찾는 모습이 떠올랐다.
“헉.”
나는 놀라서 고개를 휘저으며 망상을 떨쳐냈다.
‘설마 그러겠어? 하인들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 으, 그래도 겸상을 할 때 눈앞에서 저런 음식을 먹으면 힘들지도. 왕건은 그래도 식성은 정상인데.’
-새아가. 이 곤충이 진짜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나만 먹을 수가 없구나. 한 번만 먹어보렴. 너도 먹어보면 내가 왜 먹는지 알게다.
그러면서 박술희가 젓가락으로 꿈틀거리는 곤충을 들어 배수현의 밥그릇에 얹어주는 광경이 떠올랐다.
한 번 이런 상상을 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왕무가 문득 내 쪽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국선. 왜 그러십니까?”
“별일 아닙니다.”
“나는 이 혼인식을 보니 부럽습니다.”
왕무가 약간 씁쓸하게 말했다.
“예?”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되물었다.
“우리 혼인식은 너무 경황없이 급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초대해서 정식으로 연회를 열지도 못했습니다. 국선도 나와 같은 심정 아닙니까?”
왕무가 또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연등회 때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실상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게 연회나 다름없습니다. 정윤 전하도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는 그렇게 왕무를 달래주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해도 왕무는 연회 내내 약간은 씁쓸한 표정이었다. 나도 그런 왕무를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 * *
배수현의 결혼식 다음 날에도 나는 꾸역꾸역 한림원에 출근했다. 한번 잘릴 위기를 겪은 이후에 나는 휴가 같은 것은 안 내리라 다짐했다.
“아 연우야. 그래서 최 선생은 언제 우리 고려국의 태사 자리를 받을 것 같니?”
그런데 내가 한림원에 들어오자마자 대뜸 왕건이 입을 열었다.
“예? 그것은 폐하께서 최 선생의 뜻을 존중하신다고 하셨는데.”
“아 그거야 사람들이 보니까 그리 말한 거고. 최 선생이 원하면 어전에 나와서 앉아만 있어도 돼. 제발 어떻게 조정에 나오게 힘을 써봐라.”
왕건이 나를 보며 외쳤다.
‘아니 최치원이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 고려에 이득인데 왜 이리 사람이 욕심이 많아? 지금 상산저에 붙들어 둔 것도 내가 힘을 많이 써서 된 거야.’
나는 얼마 전에 최치원에게 내가 외우고 있는 이규보의 시 2편을 알려줬다. 더 이상 간을 보면 최치원이 화를 낼 거 같아서 넘겨줬다.
“자유분방하면서도 훌륭합니다.”
최치원은 내가 건넨 시를 보고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시를 분석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최치원을 보며 나는 조마조마했다.
‘이제 내가 외우고 있는 이규보의 시도 달랑 1편 남았다. 나는 사학과라서 시를 많이 외우고 있지 않아.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 시도 알려줘야 하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도 안 돼. 최치원은 문학 쪽에 감각이 예민하다. 다른 사람 시를 보여주면 그게 이규보의 시가 아닌 걸 눈치챌걸. 그럼 최치원이 분명히 수상함을 느낄 거야. 하 그런데 내가 더 이상 제공할 수 있는 시가 없다는 것을 알면 최치원이 또 훌쩍 은거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 아닐까?’
나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림원에 와서 보니 왕건이 이런 턱도 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최 선생의 의지가 워낙 굳어서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 출사를 요구하며 최 선생을 압박하면 아예 떠나버리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왕건에게 그런 현실을 알려줬다. 다행히 곁에서 최언위도 나를 거들었다.
“고운 사형은 신라에 대한 충의가 굳습니다. 폐하께서 사형의 충의를 지켜주십시오.”
“흐음. 그래도 최 선생이 조정에 나오는 게 좋은데. 뭐 한동안은 두고 보지.”
그제서야 왕건은 더 이상 떼를 안 쓰고 입을 다물었다.
“휴우.”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박술희가 시아버지인 게 낫겠어. 박술희는 식사만 해결해 주면 되잖아.’
왕건에게 시달리고 나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왕건은 한림원에서 일은 안 하고 거울 하나를 꺼내 얼굴을 보더니 또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왜 아직도 살이 안 빠지고 얼굴이 이 모양인지. 큰일이다. 큰일! 혼인이 머지않았는데. 어허.”
고창 전투 이후 왕건은 호족들의 사신을 접대하느라 하도 술을 먹어서 살이 쪘다. 그런데 그 살이 안 빠지는 것이다.
혼인 이야기를 듣자 나는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눈가를 매만졌다.
‘정혜 아가씨!’
선필의 딸 정혜와 왕건이 조만간 정식으로 혼인을 올리게 되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아가씨가 궁에 와서 얼마나 고생을 할지. 거기다가 남편이 왕건.’
그 생각을 하니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아직까지는 왕건의 얼굴이 그럭저럭 괜찮긴 했다.
그래도 점점 늙어가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왕건을 처음 본 공산전투 직후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노화의 흔적이 보였다.
그런 왕건의 얼굴을 보다가 정혜에 대해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불쑥 왕건이 말했다.
“연우 네가 재암성 시어머니를 잘 도와주거라.”
“예?”
나는 그걸 왜 나한테 떠미는지 황당해져서 되물었다.
“그럼 너 말고 누가 그 아가씨를 돕겠니? 생각해 보렴. 상보 어르신이야 내 부탁 때문에 지금 서라벌에 공작을 하느라 못 올라오고 있어. 네가 재암성 시어머니와 친분이 있지 않니? 지금 그 아가씨가 머물 처소를 짓고 있는데 네가 좀 현장에 나가봐라. 그 아가씨 취향에 맞춰야지. 내가 속 편하게 부탁을 할 사람이 연우 너밖에 없구나.”
왕건이 그리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확실히 선필은 지금 재암성에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 정혜 혼자서 개경에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이 흉험한 궁에서 아무 도움도 못 받고 정혜가 홀로 지낼 거란 생각을 하니 나는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선필은 왕위계승경쟁에 끼어들 정도로 세력이 큰 사람은 아니야. 오히려 나와 인연이 깊으니 우리 쪽으로 포섭이 가능할지도.’
“알겠습니다.”
계산을 끝낸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부인을 맞이하기 위해 고려 왕궁 한쪽은 공사판이 되어 있었다. 선필이 보낸 재물에 왕건이 보탠 돈으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규모의 처소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쪽에 작은 동물들이 살 수 있는 축사를 만들어라. 그리고 토끼 같은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으면서 밖에는 못 나가게 정원을 설계하도록.”
나는 공사 현장에 나가서 공사책임자에게 명을 내렸다. 정혜가 작은 동물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그런 지시를 내렸다.
“명을 받듭니다.”
공사 책임자는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흐음. 내일 다시 와 보겠다.”
“예, 정윤비 마마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공사 책임자는 그리 말했다.
나는 공사현장을 보고 왜 왕건이 나더러 와보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여러모로 공사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인부들도 공사판만 벌여놓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와서 이런저런 명을 내리니 일이 그나마 좀 진행되기 시작됐다.
나는 예전에 은 제련소를 지을 때 공사과정에 대해 한번 경험을 해봤다. 그 경험 덕에 나는 적절한 지시를 내려줄 수 있었다.
“이젠 나주원으로 돌아가자.”
나는 나를 따라온 상산 출신 시녀들을 보며 말했다. 그나마 나도 궁 안에 살아서 다행이었다. 빨리 돌아가서 쉴 수 있는 것이다.
“예, 정윤비 마마. 땀을 좀 닦으십시오.”
시녀들이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공사판을 둘러보며 지시를 내리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래, 고맙다.”
나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열심히 나주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나는 점점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고려 궁궐은 언덕을 깎아 만든 부지에 세웠다. 궁 안을 오가려면 계단을 엄청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그냥 다른 나라처럼 좀 평지에다 궁을 지을 것이지.’
나는 부득불 풍수 때문에 자기가 살던 집에 궁을 짓겠다고 고집을 부린 왕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왕무가 왕이 되면 평지에 살자고 해야지.’
나는 그런 각오를 다지다가 멀리 동양원의 모습을 보고 반색을 했다.
“동양원에서 좀 쉬었다 가자. 물도 좀 마시고.”
그러고 보니 한동안 동양원 부인을 만나지 못했다. 쉬면서 동양원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녀가 동양원에 달려가 먼저 소식을 전했다.
그 덕에 나는 동양원에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물도 마시고 정자에 앉아 좀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동양원 부인도 정자에 나와 나를 맞이했다.
“정윤비 마마께서 요사이 일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힘드신가 보군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동양원이 부인이 말했다.
“맞습니다. 부인. 여러모로 까다로운 일이 많습니다. 방금 전에도 공사현장을 둘러보다 왔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동양원 부인이 고마웠다. 왕건이 나를 부려먹기도 하고 왕무를 위해 계책을 짜느라 심신이 좀 피로했다.
“그래요. 우리 정윤비 마마께서도 어리고 예쁜 시어머니가 오니 기쁘신가 봐요. 말도 더 잘 통하겠죠.”
그런데 동양원 부인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런 말을 했다.
“예? 그게 무슨?”
나는 당황해서 손을 휘저었다.
“새 시어머니를 위해서 정윤비 마마가 요새 열성적으로 뛰고 있다는 소식은 저도 들었어요. 방금 전까지 그 사람을 위한 공사장에 있다가 왔죠.”
동양원 부인은 계속 그런 말을 했다.
“그건 그렇지만.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정혜 아가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혼인을 한 것이라.”
나는 동양원 부인을 달래보기 위해서 애를 썼다.
“듣기 싫어요. 어떻게 그 공사를 지휘하다가 목이 마르다고 여기 올 수 있어요?”
“부인! 죄송합니다.”
나는 놀라서 동양원 부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공사가 지지부진 했던 것도 인부들이 여러 왕후와 부인들의 눈치를 봐서 그런 거였어. 왕건도 단순히 내가 정혜와 친해서 일을 떠넘긴 게 아니야. 하긴 당연히 새 부인이 들어오는데 왕후와 부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