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67화 (67/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67화

67. 눈물

“연우 너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어쩜 이리 태연하니? 나는 너를 돕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데도 이리 떨리는데. 넌 안 떨리니?”

배수현이 나를 보고 감탄하며 물었다.

“어? 나도 떨려.”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배수현이 하도 감탄해서 민망해서 떨린다고 하는 것이지 사실 지금은 떨리지 않았다.

이제 내가 나서야 하는 국선선발전의 무대도 코앞이었다. 국선선발 공연의 순서는 추첨으로 정했다.

그 결과 나는 7번째로 공연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은 국선선발에 나선 2번째 사람이 무대를 펼치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사람이 많은 구정에서 어떻게 공연을 할까 걱정했는데. 다른 걱정거리 때문에…….’

내 뇌리에서는 계속 어제 법왕사에서 왕무와 함께 한 일이 떠오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인 상태에서 빠져나가려다가 나와 왕무는 바짝 붙은 채로 함께 탑을 한 바퀴 돌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어찌저찌 애를 써서 그 틈바구니에서 나온 뒤에 왕무는 나를 품속에서 놓아주었다. 그리고 왕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내일은 국선 선발도 있고 그대가 바쁘니 이만 상산저로 가는 것이 좋겠군. 병부낭중은 알아서 집에 찾아갈 테고.”

왕무는 뭐랄까 다시 평소대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예, 전하.”

나는 그렇게 대답했고 왕무는 그대로 나를 상산저까지 데려다줬다.

‘내가 기억력이 이렇게 좋았나?’

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왕무와 법왕사에서 있었던 별것 아닌 일, 아니, 한번 껴안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일이 머릿속에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왕무를 비롯해서 그날의 모든 것이 세세하게 나에게 남아버렸다. 법왕사에서 서로 껴안는 우리를 시큰둥한 눈으로 바라보던 한 스님의 모습까지 떠올랐다.

어제는 상산저에 돌아와 침상에 누워서도 밤새도록 그 일들이 계속 떠올랐다.

‘어쩌지?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막연히 계속 그런 물음이 내 마음속에서 반복되었다.

이 괴로움 때문에 나는 전날만 해도 느끼고 있던 국선선발 공연에 대한 근심까지 다 잊어버렸다.

‘그거야 어찌저찌 연습한 대로 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법왕사에서의 기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시간이 또 훅 지나간 모양이었다.

“연우 언니. 이제 바로 다음이에요.”

오지수가 내 곁에 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지수 역시 이번에 나를 돕기 위해 무대에 오를 작정이었다.

무대의 주역이 아니라 해도 많이 긴장한 모양이었다.

“벌써 그렇게 됐니?”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 옷매무새를 살폈다. 각별히 신경 써서 구한 하얀 옷이었다. 어느덧 나를 돕기 위해 온 배수현, 임연객과 학관 친구들 25명이 모두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내 동생이지만 정말 배짱 하나는 대단하다. 전장에 나가본 나도 이 상황이 되니 긴장되는데.”

임연객이 그런 말을 꺼냈다. 다른 아이들도 맞장구를 쳤다.

“정말 나도 무대 나갈 때가 되니 가슴이 진정이 안 됐는데 당사자인 연우가 저러니.”

“맞아 우리 준비 엄청 했잖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내가 딱히 대담해서 이러는 것은 아닌데?’

임연객과 친구들의 착각에 나는 당황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내 모습에 사람들이 힘을 얻은 모양이다.

어느덧 우리 차례였다.

“그럼 가자!”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힘차게 외쳤다.

나는 무대에 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정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쪽에 무대가 잘 내려다보이는 누각에 왕건을 비롯한 왕족들과 고위 호족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대에서도 누각이 잘 보였다.

여기까지 오니 나는 살짝 왕무와 있었던 일을 잠시 잊고 긴장 때문에 가슴이 떨릴락 말락 했다.

“아아아.”

나를 돕기 위해 무대에 함께 올라온 학관 아이들이 입을 맞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그리고 확실히 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구정의 사람들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이 고대에 다성음악을 도입한 것이 효과가 있었군.’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배수현의 소개로 나는 법왕사의 유명한 스님에게 향가를 배우며 느낀 것이 있었다.

‘고대라서 그런지 음악도 엄청 발전한 것은 아니다. 화음을 넣지도 않고 성부를 나눠서 다성음악을 하지도 않아.’

이 시대의 노래란 말 그대로 단조롭게 노래만 부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미래인의 치트키로 어쩌면 고려에서 처음으로 다성음악을 도입했다.

‘그래도 현대에 있을 때 나는 기타를 약간 배워놔서 다행이야.’

또 음악에 조예가 있는 법왕사 스님의 도움도 컸다. 내 아이디어를 듣고 감탄하며 즉시 그 요체를 파악하고 학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아아아.”

성부를 나누어 학관 아이들이 소리를 내자 이 시대 사람들이 처음 느껴보는 울림을 주는 것 같았다. 놀라서 웅성거리던 구정의 사람들이 한순간 잠잠해졌다.

나는 백의를 걸친 채 한가운데 서서 우선 이즈음 유행하던 향가를 불렀다.

법왕사의 스님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이 시대 고려 사람들도 익히 아는 향가였지만 다성 합창으로 들으니 느낌이 색다른 것 같았다.

다만 내 입장에서는 우선 시간을 채우기 위해 기존에 있던 향가를 부른 것이다.

어느 정도 사람들의 기분이 고조된 순간 학관 아이들은 미리 준비한 종이 연꽃을 소매에서 꺼내서 펼쳤다.

나는 한순간 흰옷을 입은 채 연꽃에 둘러싸였다.

그 순간 임연객은 철사로 된 채를 비눗물이 든 양동이에 넣었다. 그리고 비눗방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나는 비눗물을 만들면서 비눗방울이 오래 가라고 물엿까지 섞었다. 이 시대에도 물엿은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어? 저게 뭐야?”

현대 지식으로 간단하게 구현한 특수효과지만 반응이 좋았다. 비눗방울이 가벼운 바람을 타고 무대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아마 이 시대 사람들은 처음 듣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淚從心底出

豈與眼相謨

不似寒泉水

無情亦自流

눈물이 어디에서 오겠는가?

눈물이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지

눈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네

땅속의 차가운 샘물처럼

아무 느낌 없이 홀로 새어 나오지 않는구나.

아! 눈물은 따뜻하지 않은가?

이 시는 고려 중기의 유명한 문학가인 이규보의 작품 ‘규정’이었다.

‘미래의 뛰어난 문인의 작품을 빌려와야 하지만 조선 것은 제외하고 될 수 있으면 고려 시대 걸 가져와야겠다.’

나는 무대를 준비하면서 그런 결심을 했다. 조선시대는 지금 시대로부터 멀고 또 왕조가 변했기에 감성이 많이 다를 수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고려시대 문인을 떠올리다가 마침내 나는 이규보의 시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은 고려시대 인물이고 무엇보다 작품 수가 많으니까 하나 빌려도 죄책감이 덜하고.’

거기에 내가 특수효과로 비눗방울을 택했기에 눈물에 대해서 논한 이규보의 시가 잘 어울리기도 했다.

눈물이나 비눗방울이 내가 보기엔 묘하게 이어지는 특성이 있었다.

그래서 이규보의 한시에 군더더기를 좀 붙여서 향가로 개사해서 부른 것이다.

이규보의 시가 향가로 부르기엔 약간 짧은 면이 있어서 살을 좀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규보의 시를 빌려왔으니 그 내용에 모두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학관 아이들 중 몇 명은 재빨리 이규보의 한시가 적힌 커다란 종이 깃발을 세웠다.

한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한문으로 이 시를 감상하라고 준비한 장치였다.

‘이 시대에 한시를 감상할 수 있는 사람들은 뛰어난 문인들이고 이규보의 시를 한문으로 보면 더 큰 감명을 받겠지.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면 백성들의 여론을 움직이기도 더 용이하다.’

나는 그런 계산을 하며 예산을 탈탈 털어 이 깃발까지 준비했다.

내가 준비한 이 수법은 확실히 통한 거 같았다.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구정의 관객들이나 누각 위의 호족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이규보의 시가 적힌 종이 깃발이 펼쳐지는 순간 누각 위에서 붓을 들고 있던 대내학사 김악이 입을 쩍 벌리더니 손에 든 붓을 떨어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 김악의 반응을 보고 나는 내 노림수가 통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사이에도 학관 아이들은 종이 연꽃을 들고 나를 중심으로 모였다가 흩어졌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노래를 멈추고 서 있었다. 나는 무대에 올라와서는 수없이 연습한 대로 기계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노래는 끝났다.

“와아아아!”

구정에 운집한 수많은 관객들이 일어나서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와 학관 친구들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그대로 물러났다.

“우리 어땠을까?”

“정말 무대에 서보니 사람들 반응이 그냥 예의상 그런 건지 진짜 감탄한 건지 모르겠다.”

학관 아이들은 무대 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대해 확신이 없었다.

‘이규보의 시는 반드시 통했을 거고. 설사 내 노래가 부족하더라도 워낙 내용이 좋으니 어느 정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긴 했을 거야.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는 유긍달과 황보제공 등이 알아서 해주겠지.’

무대 뒤에서 지쳐서 기다리는데 어느덧 모든 공연이 끝났다. 한동안 시간이 지체되다가 팔관도감의 관리가 무대에 올라와 외쳤다.

“올해의 국선으로 뽑힌 4인을 발표합니다. 먼저 상산의 임연우!”

“와아아아.”

내 이름이 호명된 순간 학관 아이들은 고함을 지르며 뛸 듯이 기뻐했다. 다만 나는 그 기쁨에 동참할 수 없었다.

‘유긍달 등이 나를 밀어주기로 약속했으니 내가 국선으로 뽑힐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고. 이거 참 내정이 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군.’

이제 나는 내 무대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줬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런데 이미 내정이 된 상태라 국선으로 뽑혔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는 보장은 아니었다.

어쨌든 여전히 알쏭달쏭한 상황에서 나는 국선으로 뽑힌 4인 가운데 껴서 왕건을 향해 나아갔다.

국선으로 뽑힌 만큼 국왕인 왕건에게 직접 칭찬을 받고 하사품을 받은 뒤 국선 4인이 함께 춤을 추며 이 국선선발전은 끝나게 되는 것이다.

왕건은 국선 4인에게 직접 미리 준비한 비단이며 찻잎을 하사하며 덕담을 건넸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연우 너의 시가는 참 대단하긴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시를 듣고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말이다.”

왕건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나는 하사받은 비단을 껴안으며 대답했다.

“아니 길거리를 걷다가 바람 때문에 흙먼지가 눈에 좀 들어가도 눈물이 좀 나고 눈에 너무 힘주고 뭘 보다가 눈이 시려서 눈물이 날 때도 있지 않니? 시가 감동적이긴 했는데 그런 경우도 있으니…….”

왕건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야 이규보에게 물어봐야. 덕담인 줄 알았더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답을 못 하는데 곁에 시립하고 있던 김악이 나대신 외쳤다.

“폐하!”

김악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느냐는 표정으로 왕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대답은 됐고. 어쨌든 고려의 국선이 된 것은 축하한다. 앞으로 난리가 나겠구나.”

왕건은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그리고 국선선발전을 끝으로 올해의 팔관회도 거의 마무리된 셈이었다. 이제 저녁 행사만 마치면 팔관회도 끝이었다.

‘내일은 상산저에서 하루 종일 쉴 수 있는 건가?’

그 생각을 하니 나는 너무 반가웠다. 내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팔관회는 확실히 즐거웠지만 힘들기도 했다.

* * *

그러나 다음 날 나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큰일 났습니다. 영공 각하. 지금 새벽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저택 앞에 몰려오고 있습니다.”

임희, 상산부인, 임연객과 함께 아침을 먹고 있는데 하인이 다급하게 달려와 외쳤다.

“사람들이 왜? 오늘은 좀 쉬어야 하는 날인데.”

임희도 약간 피로한 기색으로 물었다.

“연우 아가씨를 보고 싶다고 진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뭐?”

한쪽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놀라서 외쳤다.

“아니 한번 나가보자꾸나.”

임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산저 대문 쪽으로 나갔다. 나를 포함한 다른 가족들도 그 뒤를 따랐다.

“국선을 한번 보게 해주시오. 국선으로 뽑히지 않았소?”

“국선! 국선!”

대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벌써부터 그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임희가 상황을 살피려고 대문을 약간 열어 그 틈새로 밖을 보려 할 때였다.

“어! 문 뒤에 국선이 있다!”

그러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영공 각하. 피하십시오.”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던 하인들과 경호 군졸들이 그렇게 외치면서 달려와 사람들을 몸으로 저지하고 다시 문을 닫았다.

“아니 내 집 대문인데?”

자기 집문도 못 열게 된 임희가 황당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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