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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55화 (55/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55화

55. 귀환

“이제 말을 갈아타야 한다. 꽉 잡도록.”

말을 몰고 있는 왕무가 나에게 외쳤다. 두 사람이 함께 말을 타니 우리를 태운 말은 빨리 지쳤다. 어느덧 먼저 나아가고 있는 기병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었다.

“예.”

나는 왕무의 말을 듣고 그런 대답을 하며 몸을 더 왕무에게 밀착시켰다.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상당히 무서웠기 때문이다.

‘에휴. 이 고생 언제 끝나? 여러 번 한 거지만 적응이 안 돼.’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왕무는 나를 등에 붙인 채로 그대로 옆에서 따라오고 있는 빈말로 몸을 날렸다.

어느 순간 나는 왕무와 함께 다른 말에 올라타 있었다.

“우와.”

곁에서 다른 기병들이 탄성을 질렀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기마술이기는 했다. 다른 사람을 등에 지고 말을 갈아타는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싹 밀착시켰던 몸을 좀 떼었다.

‘그래도 편하긴 하네.’

내가 직접 말을 몰 때와는 달리 왕무의 허리만 끌어안고 있으면 되니 한결 부담이 없었다. 다만 왕무가 걱정되기는 했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며칠째 사람 하나를 등에 지고 이러고 있으니. 거기에 내 몸 상태도 그나마 나아졌고.’

확실히 내가 빙의한 임연우의 몸이 어려서 회복력도 빨랐다. 부석사에서 돌아올 때 너무 무리를 해서 골골거리던 몸이 또 며칠 주변의 보살핌을 받으니 나아지긴 했다.

나 스스로 말을 몰아도 될 것 같아서 그에 관해 말을 꺼낼까 말까 고민하던 차였다.

“모두 멈춰라!”

명지성주 왕충이 그런 명을 내렸다. 그리고 징소리가 울려 퍼지며 고려 기병들 전체가 멈춰 섰다.

꼼꼼하게 사방에서 온 척후들의 보고를 듣던 왕충은 왕무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관흔이 지금 죽령을 넘어 사벌주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속임수가 아닐까 싶어서 계속 살폈는데 죽령을 완전히 넘은 것이 확실합니다. 이제는 자기들도 좀 쉬겠다는 심산일 것입니다. 군량에도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내내 고려를 괴롭혔던 관흔이 이제 퇴각하고 있었다.

“잘됐군.”

왕무가 안도하는 어조로 말했다.

“이제는 정윤 전하께서 충주의 폐하와 합류하셔도 됩니다. 폐하께서도 정윤 전하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기병들을 인솔하고 충주까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왕충은 그렇게 말하고는 군례를 올리고 나서 군사들의 배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제는 충주 쪽으로 갈 작정이었다.

‘이제는 끝났다.’

나는 속으로 환성을 지르며 말에서 내렸다. 갑자기 등 뒤가 허전해져서 그런지 왕무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정윤 전하.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이제는 관흔도 물러났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나는 공손하게 왕무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나도 부석사에서 일을 성사시켜서 정윤 왕무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긴 했으니. 이번 일은 진짜 이전의 소소한 도움에 비하면 차원이 다른 일이야. 사실은 내가 더 큰 은혜를 베풀었다고.’

내가 그런 계산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 말을 들은 왕무는 훌쩍 자기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한쪽에서 다른 말을 한 필 내 앞으로 끌고 오며 말했다.

“이제는 그래야 되겠군. 그래도 조심하도록.”

* * *

그 이후로는 별일 없이 그대로 충주에 당도했다. 왕건은 많이 지쳐 보이는 기색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왕건 역시 충주에 주둔하며 청주 쪽으로 몰려오는 백제군을 막느라 고생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래도 왕건은 요란스럽게 우리를 맞이했다.

“잘했다. 잘했어. 결국 희랑 대사를 구했구나. 하하하. 내가 옳았어. 어떠냐? 일말의 변수를 만들 수도 있으니 연우를 보내자는 내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내 말대로 안 했으면 어찌 됐겠느냐?”

왕건은 우리를 잠깐 칭찬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좌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페하의 통찰력에 놀랄 뿐입니다.”

“만세.”

주변의 장수들이 눈치를 보다가 일제히 그리 외쳤다.

“그래도 직접 부석사까지 가서 일을 한 것은 정윤 등이다. 허허허. 개경에 가면 상을 내리마.”

“모두 폐하의 힘입니다.”

정윤 왕무가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잡찬의 공도 이번에 컸소. 잡찬이 정윤을 보내자고 권유했는데 과연 일이 잘됐소.”

왕건은 유긍달 쪽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건 뭐 사람을 멕이는 거야 뭐야? 젠장 바로 앞에서 봐도 모르겠네.’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머리를 갸우뚱했다. 이번에 유긍달이 왕무를 부석사로 가게 힘을 쓴 것은 누가 봐도 정윤의 위신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었다.

이런 유긍달의 계략이 내 활약에 파탄난 건데 왕건이 유긍달도 저리 칭찬하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왕건이 돌아가는 판을 모를 리는 없고. 유긍달을 조롱하는 건지 아니면 유긍달이 정윤을 견제하려 한 것을 무마시켜 주겠다고 저런 건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따지던 나는 그냥 계산을 포기해 버렸다. 왕건은 수다스럽고 말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속을 알기 힘들었다.

“그래. 그나저나 연우 너는 이번에 다녀오면서 정윤과 많이 친해졌느냐?”

그러다가 왕건이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졌다.

“예? 정윤 전하께 어찌 무엄하게 그런.”

갑자기 받은 질문에 나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왕건의 그 말을 들으니 문득 지난 며칠간 왕무와 함께 말을 타고 다닌 일이 떠오르긴 했다.

“허허허. 아무리 총명해도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큰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젊은 시절 삼한 땅을 돌아다니며 각지의 사람들과 빨리 친해졌다. 그래서 잠깐 만난 후에도 별 어색함 없이 함께 군사를 움직였다. 친해야 호흡도 잘 맞지.”

왕건이 흐뭇한 표정으로 그런 조언을 건넸다.

“예.”

나는 적지 않은 압박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이건 왕무와 나 사이의 혼사를 어떻게든 진행시켜 보겠다는 신호인데. 공산전투 이후 9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혼사를 2년간 연기시키긴 했는데.’

아직 시간 여유가 좀 남아 있긴 했지만 내 심정은 복잡했다. 나는 힐끗 유긍달 쪽을 바라보았다.

‘화엄종과 관련된 일은 유긍달 입장에서도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텐데. 유긍달이 이젠 슬슬 움직여주지 않을까? 그래야 내가 혼사에서 빠져 나가는데.’

그런데 유긍달의 표정은 평소처럼 매우 침착했다. 이 사람은 내가 처음 만난 이후 한 번도 이 표정에서 변하는 것이 없었다.

“어쨌거나 정윤이 부석사에서 거둔 성과도 있으니 이제는 개경으로 철군하겠다. 개경에 돌아가면 화엄종의 고승들을 초청해서 법회를 열겠다. 또한 정윤의 말대로 희랑 대사를 왕사로 봉하는 일을 논의하겠다.”

왕건은 짐짓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다만 말에 힘이 없었다.

‘막판에 부석사에서 고려가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 전쟁은 결국 고려의 패배다. 삼년산성을 함락시키는 데 실패하고 견훤은 부하들만 동원해서 왕건을 저지해냈으니.’

왕건이 충주에서 붙들려 있는 동안 견훤은 사벌주에서 또 성 여러 곳을 함락시켰다. 왕건의 근심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군사들이 지쳤으니 어쨌든 퇴각해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렇게 힘없이 철군하는 왕건을 따라 나도 개경으로 향했다. 왕건은 내 아버지인 임희도 이번에 함께 개경으로 올라오라고 명했다. 유긍달도 마찬가지로 개경으로 따라왔다.

왕건은 충청도 쪽에서 어떻게 공세를 가하려는 생각은 완전히 포기한 듯했다. 그래서 그냥 임희, 유긍달 등을 곁에 두고 여러 일을 논의하려고 함께 데려가는 듯했다.

나는 임희, 임연객과 함께 움직였다. 왕무는 왕건 곁을 수행하고 있어서 자연히 나와는 멀어졌다.

‘홀가분해졌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말을 몰았다.

* * *

그렇게 개경 상산저에 도착하자 나는 좀 살 것 같았다. 진짜 여기가 집 같은 느낌도 있었다.

거기에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임희, 상산부인, 임연객 같은 가족들이 다 모여 있는 셈이었다.

“학관은 아예 며칠 쉬고 싶습니다.”

나는 임희에게 말했다.

“네가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푹 쉬거라.”

임희가 그리 말했다.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전장에 함부로 나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가 임희에게 그런 하소연을 했다. 힘든 것을 넘어서 백제 군사들이 나를 찾는다고 들었을 때는 엄청난 위협을 느꼈다.

나는 임희가 앞으로 내가 전장에 차출되는 것을 막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을 꺼냈다.

“글쎄다. 그건 네 마음대로 될 거 같진 않구나. 결국 혹시 네 재주가 필요할지도 모르니 전장에 동행해야 한다는 유금필 장군의 예견에 이번에 맞아버렸다. 폐하의 결정도 옳았고. 나도 앞으로는 출전할 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너를 데려가야 할지도.”

그런데 임희는 내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멀쩡한 얼굴로 그런 말을 했다.

“아버님!”

나는 배신감을 느껴 그리 부르짖었다.

그렇게 말을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하인 하나가 와서 말했다.

“밖에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연우 아가씨를 한림원에서 급히 찾는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단순한 학관 학생을 넘어서 한림원 직원이었다. 학관이야 마음대로 쉴 수 있지만 한림원은 녹봉을 받는 곳이라 그게 안 됐다.

“나랏일이 있나 보구나. 어서 가보렴.”

임희도 그 소식을 듣고 나에게 말했다.

‘아 이젠 진짜 힘들다. 좀 놀고 싶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기적거리며 수레에 올랐다.

처음에 개경에 왔을 때는 역사적 인물들과 대화도 나누고 일도 좀 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 그게 부담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설쳤어. 그래도 이 개경에서는 수레를 타고 다니니 좋네.’

전장에서처럼 말을 몰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한림원 앞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거기에는 역시나 왕건이 있었다. 왕건은 뭔가 초조한 일이 있는지 앉아 있지 않고 아예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최언위를 비롯한 한림원 학사들도 전전긍긍하는 표정이었다.

“어 그래, 연우 네가 왔구나.”

“예, 페하.”

내가 그 앞에서 예를 올리는데 왕건이 다급하게 말했다.

“네가 명주 도독의 아들과 친분이 있었지. 그러니 나를 위해 서신 한 통만 써다오.”

“어떤 서신을 말씀하시는지?”

“김순식이 그 친구가 군사를 600명만 보내놓고 더 이상 안 보내는구나. 허어. 이거 참. 연우 네가 김순식의 아들에게 좀 편지를 보내서 사정을 물어봐라.”

왕건은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월에 왕건을 만나고 간 김순식은 세력이 큰 호족이었다. 휘하에 거느리는 군사력도 막강했다.

처음에 보낸 600명의 병력은 맛보기였고 순차적으로 명주에서 군사와 물자를 더 지원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순식이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야 이번에 고려가 졌으니 명주 쪽에서도 눈치를 보니 그렇지. 그러니 내 계획대로 오지수를 명주에 시집보내지 그랬어. 인척이 됐으면 안 그랬을 텐데.’

미래를 모르는 김순식 입장에서야 이번에 왕건이 대패한 것을 보고 견훤이 삼한을 통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편지를 보내봐야 소용이 없을 텐데. 왕건이 이걸 모를 리가 없지. 아니 하긴 그래도 편지를 보내 압박을 하면 조금은 더 보낼 테니 그걸 바라는 것 같네. 어쨌든 이번에 김순식이 이러는 것을 이용할 방법은 없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슬며시 운을 띄워봤다.

“오지수 공주 마마도 명주 도독의 아들과 상당히 친분이 있습니다. 오지수 공주 마마께서도 나서는 것이.”

“지수 그 아이는 어려서 안 된다. 자, 빨리 편지나 열심히 써라.”

그런데 왕건은 상당히 단호하게 말했다.

“아, 예.”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군사와 물자를 왜 안 보내느냐고 묻는 서신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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