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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52화 (52/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52화

52. 선묘

내가 배에서부터 힘을 끌어모아 있는 힘껏 지른 고함이라서 장내의 시선이 한순간 내 쪽에 쏠렸다.

‘어제 잠을 못 자서 정신이 몽롱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 지켜보니 긴장했을 텐데.’

그러나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어서 평소와 달리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었다. 장내의 상황이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껄껄껄,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예부령이 당했던 일을 설욕할 수 있겠군. 그대가 속임수로 예부령을 이겨서 헛된 명성을 얻은 모양인데. 오늘은 그 속임수가 안 통할 것이다.”

이찬 능환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쪽을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역시나 내가 최승우를 이긴 것에 저쪽도 신경을 쓰고 있긴 했군.’

하긴 내가 오늘 이리 전면에 나서서 설칠 수 있는 것도 그때 최승우를 이긴 전적 덕이었다. 그 한판 승부로 나는 삼한 전체에 거론되는 명사가 됐다.

안 그랬으면 일개 소녀인 내가 이리 설쳐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무슨 속임수를 썼다는 것입니까?”

속임수를 썼다는 능환의 말이 맞긴 맞았으나 나는 뻔뻔스럽게 반문했다.

“무슨 속임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속임수를 썼겠지.”

능환이 역시 고함을 쳤으나 약간은 기가 죽은 표정이었다. 역시 내가 전생자라서 쓴 속임수를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아가씨께서는 왜 우리 화엄종 사람들이 종정을 뽑으려 하는데 이리 방해를 하십니까?”

남악파의 승려가 재빨리 끼어들어 나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종정을 뽑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화엄종이 온 삼한 땅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두 분의 뜻을 묻지 않고 종정을 선출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외쳤다.

“어느 두 분 말입니까?”

“의상 대사와 선묘 아가씨의 뜻도 물어야죠? 의상 대사의 지팡이가 조사당에 남아 있고 선묘 아가씨도 이 부석사를 지키고 계십니다.”

나는 조사당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장내에 소란이 일었다.

“아가씨께서는 아가씨의 이익을 위해 그 두 분을 함부로 거론해서는 안 됩니다. 관혜 사형이 종정으로 뽑히는 것이 싫겠지만 어찌 그 두 분을. 무슨 수로 그 두 분의 뜻을 묻는다는 말씀입니까?”

남악파의 승려는 화엄종 사람들이 존경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입 밖에 꺼낸 나에게 약간은 엄격하게 말했다.

장내의 분위기도 안 좋았다. 부석사의 전설과 관련 있는 두 사람을 끌어들인 나를 보며 화엄종의 신도들은 격분한 기색이었다.

“아가씨.”

한쪽에 앉아 있던 희랑도 놀라서 내쪽으로 달려왔다. 나를 말리려는 기색이었다. 나는 잘 됐다고 생각하며 아예 희랑 앞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대사님!”

희랑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합장을 하며 나를 일으키려 했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대사님께서 불법을 깊이 익혔음을 일찍이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힘을 제게 빌려주십시오. 대사께서 한 손을 제 머리 위에 올려주십시오.”

나는 희랑에게 속삭였다.

“내가 무슨 힘을 빌려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신도들 앞에서 함부로 그 두 분을 거론해서는 안 됩니다.”

희랑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내말에 고개를 저으며 나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나이도 많고 수행만 하느라 여윈 희랑은 내가 억지로 버티자 나를 일으키지 못했다.

약간 어안이 벙벙한 채로 희랑은 내 말대로 자신의 오른손을 내 머리에 얹었다.

그리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희랑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우선 진정을 하시고 이쪽으로 오십시오.”

희랑이 내 소매를 잡아끄는데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대 아래 운집해 있는 군중들을 내려다봤다.

갑자기 원맨쇼를 벌이는 내 모습에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 성공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 위에서 두 손을 활짝 펼치고 하늘을 바라보며 부르짖었다.

“의상 대사님, 선묘 아가씨! 오늘 이처럼 관혜가 얼렁뚱땅 화엄종의 종정이 되는 것이 진정 두 분의 뜻이란 말입니까? 오늘 제가 두 분의 뜻을 묻고 싶습니다. 두 분의 신력을 저에게 빌려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부석사에 모인 사람들이 두 분의 뜻을 알게 해주십시오.”

계속 의상, 선묘를 거론하는 내 모습에 남악파의 승려는 또 뭐라 입을 열 기색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전에 대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부석사의 조사당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사람들은 거침없는 내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내가 가는 대로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나는 대웅전과 조사당 사이에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를 향해 다가갔다.

딱 대웅전에 모여 있는 군중들이 보기 좋은 위치에 놓여 있는 바위였다.

“휴우.”

그 앞에서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바위가 크긴 컸다. 거의 내 키만한 높이였다. 그 바위 위에 손을 올린 나는 힘을 짜내 그 바위를 밀기 시작했다.

주르륵.

그리고 그 바위는 내가 미는 대로 밀리기 시작했다. 물론 손쉽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오뚜기처럼 요동치며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온 힘을 다 짜내고 있어서 발을 질질 끌며 겨우 한걸음, 한걸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 큰 바위가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 체격의 한 소녀에 불과한 내가 육중한 바위를 미는 것이다.

“아니 어찌 저런 일이? 장정 여럿이 붙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을 바위가?”

놀란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을 질질 끌며 그 바위를 10자쯤 움직였다. 오늘날로 치면 한 3m쯤 되는 거리였다.

“선묘 아가씨의 신력을 빌렸다! 헉헉.”

그리고 나는 숨을 몰아쉬며 있는 힘껏 그리 외쳤다. 그리고 바위에서 손을 뗐다. 좀 쉬어야 했다.

“이게 대체 뭐야?”

내 주변에 있던 화엄종의 신도들은 내가 바위에서 물러나자 자신들이 바위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바위를 만지고 두드려보았다.

“다들 물러나 보시오. 내가 한번 힘을 써보겠소.”

신도들 사이에서 덩치가 큰 장정 하나가 손을 들더니 외쳤다. 화엄종의 신도들이 물러서며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덩치 큰 장정은 내가 섰던 위치에 서서 힘껏 바위를 밀어보았으나 바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 혼자서는 안 되는데? 몇 사람이 힘을 모아야 해.”

덩치 큰 장정이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화엄종의 신도들은 일제히 나를 보며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찬 능환, 술사 종훈 같은 백제 사람들이 대 위에서 뛰어내렸다. 선두에 선 능환이 고함을 쳤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이냐?”

그리고 내가 민 바위 앞에 가까이 온 능환이 외쳤다.

“어디서 사람들을 매수해서 헛수작을! 종이로 만든 게 아니냐?”

그러면서 능환은 있는 힘껏 바위를 걷어찼다.

악!

그러나 진짜 바위였기에 바위를 걷어찬 능환은 비명을 지르며 발을 움켜쥐었다. 술사 종훈은 3명의 백제인들과 있는 힘껏 바위를 밀어보았다.

그러자 바위가 3치 정도 약간 움직이긴 했다. 하지만 종훈과 백제인들은 있는 힘을 다 짜내야 했기 때문에 지쳐 버렸다.

“진짜 바위인데. 어찌 이런 일이? 무슨 투명한 밧줄이 있나?”

종훈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위 주변을 더듬거렸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하하하, 모두 물러나시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뒷걸음질 치며 공간을 터주었다.

다시 바위 앞에 손을 얹은 나는 있는 힘껏 밀었다. 그리고 아까 전처럼 바위는 느릿느릿 밀리기 시작했다.

콰르릉.

나는 계속 바위를 밀어서 아예 산비탈 아래로 굴려버렸다. 굉음과 함께 바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

대 위의 승려들이나 대 아래 신도들이나 모두 아무 말 없이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문득 한쪽에 앉아 있는 희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 아쉽구나. 희랑이 법조 의상 대사에 미치지 못해 돌을 띄우지(浮石)는 못하고 그저 밀기만 하는구나!”

내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희랑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깔고 외쳤다. 그러자 대 위에 역시 앉아 있던 임연객이 갑자기 실감 나는 목소리로 부르짖기 시작했다.

“선묘 아가씨다! 선묘룡이다! 선묘룡의 꼬리가 보인다.”

빈 허공을 가리키며 임연객이 외치는데 연기력이 엄청났다. 서경에서 닭 문제 때 백성들을 선동하던 그 솜씨로 외쳤다.

“선묘룡은 대체 어디에? 아 저건가?”

“나무관세음보살.”

장내에 모여 있던 화엄종의 신도들은 임연객의 그 목소리에 동요해서 외치기 시작했다.

“저기 있다. 선묘룡의 꼬리다.”

허공에서 없는 용의 꼬리를 찾아낸 사람도 있었다.

“어디야 어디?”

부석사에 모여 있는 화엄종 신도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대 위에 있던 북악파의 승려들은 희랑을 바라보며 일제히 말했다.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마 희랑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뭔가를 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희랑 사형!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사형이 무엇을 한 것입니까?”

“나는 모른다.”

희랑 역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때 곁에 서 있던 최지몽이 있는 힘껏 외쳤다.

“불립문자 염화미소(不立文字 拈華微笑).”

이즈음 해서는 선종도 삼한 땅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화엄종이 교종에 속한 종파였지만 요즘 유행하는 선종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지몽의 의미 없는 외침을 들으면 모른다고 하는 희랑의 모습이 언뜻 선종의 느낌을 주었다.

“사형!”

희랑의 말에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북악파의 승려들이 일제히 외쳤다.

“정말 모른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오해를 눈치챈 희랑이 손사래까지 치며 외쳤으나 사람들의 오해를 풀 수 없었다.

정윤 왕무는 아예 희랑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화엄종의 일이 어찌 되든 폐하께 말씀드려 대사를 왕사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의상 대사와 선묘 아가씨의 뜻을 고려 왕실도 받들겠습니다.”

“정윤 전하! 이 대체 무슨?”

희랑은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경악하며 말도 제대로 못 잇고 있었다. 나는 한쪽에서 흐뭇하게 난리가 난 장내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하하하. 이렇게 깽판을 쳐놨으니 관혜가 세력을 바탕으로 억지로 종정이 되더라도 반쪽짜리 종정이 될 뿐이다. 일을 이리 만들어두면 북악파 쪽 사람들은 대세고 뭐고 절대 관혜를 인정하지 않고 희랑을 따를 것이다.’

당연히 지금 일어난 사태는 내가 왕무 일행과 다 짜고 벌인 일이었다. 핵심이 되는 내가 바위를 미는 일도 현대 과학상식에 의지한 것이었다.

‘가끔 산에 가면 흔들바위란 것이 존재한다. 무거운 바위인데 사람이 밀면 흔들리지. 바람과 물에 의해 바위 아랫부분이 침식해서 균형이 무너져서 흔들리는 거다.’

거기에 착안해 나와 일행은 바위 하나를 골라 아랫부분을 많이 깎아내 흔들리는 것을 넘어 움직이는 상태로 만들었다. 그러면 사람이 적은 힘만 가해도 좌우로 흔들리며 이동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유금필과 함께 탕정군에 주둔하며 성을 쌓을 때 알게 된 석공들을 불러 이 작업을 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적은 힘으로도 움직이는 바위를 만들려고 수십 개의 바위를 깎아야 했다. 왕충의 군영에서 수십 일 동안 머물며 작업을 해서 이 일을 해냈다.

그리고 이 바위를 소와 말에 싣고 샛길까지 넘어서 부석사까지 왔다.

‘거기에 내가 손을 떼고 바위를 세울 때는 발을 질질 끄는 시늉을 하며 쐐기돌을 그 아랫부분에 괴어놨다.’

작은 쐐기돌이라도 바위 아래 받쳐지면 균형이 맞아 바위가 안 움직이게 된다. 다행히 이 속임수가 통해 지금 장내는 난리가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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