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37화 (37/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37화

37. 출세욕

“아니 도대체 그때 왜 그랬어?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줄 작정이었다고.”

닭 문제를 해결하라는 왕건의 황당하고도 어려운 명령을 성공적으로 해결했지만 나는 불쾌한 기색으로 임연객을 추궁했다.

“아니 그 이후에 네가 닭들을 따뜻하게 돌보라고 설명을 했잖아.”

임연객이 변명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오라버니의 그런 말을 듣고 나서 그 설명을 들어봤자 사람들에게 감명을 줄 수 없다고. 내 말을 듣고도 모두가 시큰둥한 기색이었어.”

나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임연객 때문에 다 망쳤다.

‘닭을 따뜻하게 해주고 햇볕을 받게 해줘야 알을 잘 낳는다는 사실은 알면 별것 아니지만 모르면 진짜 수탉이 됐다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처럼 기이한 징조가 될 수 있어.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야 하는데.’

그런데 임연객이 선동을 해버리는 바람에 다 끝나버렸다.

“그런데 우리에게 어명을 내리신 폐하께서는 내 해법을 더 좋아하실걸? 고려 조정의 녹을 먹는 나로서는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임연객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그 말에는 나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우리를 보낸 왕건은 확실히 임연객이 한 일을 보면 더 기뻐할 것이다.

이걸 깨달은 순간 나는 뭐라 더 말싸움을 할 의욕을 잃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다가 나는 저쪽에서 말을 몰고 있는 왕무를 힐끗 보았다.

‘우리가 한 말싸움을 다 들은 건 아니겠지?’

어쩌면 정윤인 왕무 앞에서 나누기에는 민감한 대화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한 것 같기도 했다. 그 생각도 들어서 나는 계속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윽고 일행은 서경유수부에 당도했다.

* * *

서경유수부에 당도한 이후 나와 임연객의 입장은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이제 폐하가 내린 임무도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니 개경으로 돌아가야지. 오라버니도 개경에 돌아가면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을걸? 빨리 가자.”

나는 그렇게 임연객을 독촉했다. 학관에 돌아가고 싶기도 했고 왕무와 더 얽히기도 싫었다.

“아니 너는 정윤 전하께서 해주신 말씀도 못 들었니? 염상 장군과 유금필 장군이 곧 서경에 오신다고 하잖아. 그것도 네가 고안한 거중기에 관심이 있으셔서.”

임연객은 가슴을 치며 외쳤다.

“그래서 그 두 분이 오시는데 뭐 어쩌라고?”

내가 멀쩡한 얼굴로 그리 묻는데 임연객은 갑갑하다는 듯 말했다.

“염상 장군은 우리 고려에 7명 밖에 없는 개국의 2등 공신이셔. 참고로 1등 공신은 4명 밖에 없어. 즉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사람 중 11명 안에 드는 분이지. 거기에 유금필 장군은 대외적으로 얼마나 큰 명성을 지닌 분인데. 가히 우리 고려의 제일 장수라 할 만해.”

“그야 나도 알지. 그런데 그분들이 오는 거랑 우리가 서경을 떠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염상과 유금필의 이력에 대해서는 사학과 석사인 내가 더 잘 안다. 왕건이 발해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짜 불안해서 자기가 믿는 두 사람을 북방 변경에 보낸 것이라는 사실까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식자랑을 하는 임연객을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보며 당당하게 반문했다.

“아니 그럼 그런 거물 장수 두 분이 오는데 병부낭중인 내가 서경에 있다가 내 일이 끝났다고 얼굴도 안 비추고 그냥 싹 빠지라고? 변경에 계속 계셔서 얼굴 보기도 힘든 분들인데?”

임연객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건 절대 안 돼. 난 기필코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갈 거야.”

임연객은 그 자리에서 길길이 날뛰며 부르짖었다. 그런 임연객의 모습을 보며 나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야말로 어떻게든 권력 있고 명성 있는 거물 장수들에게 눈도장을 찍어서 출세하려는 속물 공무원의 전형이 아닌가? 이 나라가 어찌 될지?’

나는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저게 이 시대에는 내 오빠니 더 걱정이었다.

어쨌든 속물 임연객 때문에 나는 서경에 며칠 더 머물게 됐다. 다행히 왕무도 또 따로 나를 찾아온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염상과 유금필 두 사람도 매우 빨리 서경에 당도했다. 이때는 고려가 북쪽으로 영토를 엄청 넓힌 때가 아니라 서경이 거의 최전선이었다.

염상과 유금필이 변경에 주둔하고 있다고 해서 서경에서 엄청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염상과 유금필은 수많은 말갈 기병들이 호위를 받으며 서경에 당도했다.

그리고 정윤 왕무와 서경유수 왕식렴도 군사들을 거느리고 두 장수를 환영하러 나왔다.

“정윤 전하를 뵙습니다.”

염상과 유금필은 말에서 내려서 왕무에게 예를 갖추었다. 왕무와 왕식렴도 황급히 말에서 내려 그들에게 예를 표했다.

확실히 염상과 유금필이 거물은 거물이었다. 왕식렴을 따라온 서경의 고위 관리들도 한명씩 나서서 염상과 유금필에게 예를 갖추었다. 두 장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했다.

그 사이에 임연객이 끼어 있었다. 나는 저런 복잡한 허례허식을 싫어해서 뒷줄에 서 있는데 임연객은 부득불 우겨서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유금필이 지나가자 임연객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소인은 병부낭중 임연객입니다. 기실 어렸을 적에 장군을 뵙고 대화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내가 그랬나?”

자신에게 굳이 말을 거는 임연객을 무시하지 못하고 유금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저는 상산백의 아들입니다. 10년 전에 장군께서 상산에 잠시 주둔하셨을 때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임연객이 굽신거리며 말했다.

“상산백 각하께는 많은 은혜를 입었네. 자네 얼굴도 아마 보긴 봤을 거야. 그럼 이만.”

유금필은 짧게 그리 말하고 임연객을 스쳐 지나갔다.

화끈화끈.

임연객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 지경이었다. 임연객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한 10년 전에 유금필은 상산에 주둔한 적이 있었고 임희와 협력해서 작전을 펼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10년 전 일이고 유금필은 장수로서 그사이에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작전을 펼쳤는데 그때 일을 기억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때 일을 들먹이며 어떻게든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유금필이 가볍게 립서비스를 해줬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임연객의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그러면 몰라도 임연객이 저러니 나도 무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인사를 마친 염상과 유금필은 연회가 준비된 전각으로 들어서기 전 유수부의 마당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와 임연객이 닭 문제를 해결하러 떠난 사이 왕식렴은 왕무가 건네준 도면을 받아 거중기를 하나 시험용으로 만들어 놨다.

염상과 유금필은 거중기에 관심이 매우 많아 보였다.

서경유수부의 군졸들이 거중기를 이용해 육중한 돌을 들어 올리는 시범을 보였다.

“오오오.”

염상은 이 광경을 보고 감탄하는 기색이었다. 유금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확실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손을 한결 덜 것입니다.”

“두 분이 주둔하시고 있는 곳에 이 거중기의 도면과 자재들을 준비되는 대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왕식렴 역시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정윤 전하께서 이것을 고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재주이십니다.”

염상이 왕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곁에서 왕식렴이 재빨리 말했다.

“정윤 전하와 함께 움직이던 상산백의 따님이 이것을 고안했다고 합니다.”

멀리서 그걸 듣던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냥 좀 정윤이 고안한 거라고 하지 뭐하러 피곤하게 부연설명을.’

그런데 또 내 곁에 있던 임연객은 ‘상산’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반색을 하더니 내 손목을 잡고 함께 앞으로 나섰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서 있던 나는 임연객에게 끌려 덩달아 앞으로 나서게 됐다.

“병부낭중 임연객입니다. 이쪽은 제 누이 임연우라 합니다.”

어떻게든 염상과 유금필의 눈에 들겠다는 임연객의 몸부림이었다.

염상은 묘한 눈빛으로 정윤 왕무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뭐. 상산백의 따님이 고안하셨으면 정윤 전하가 고안하신 것과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콰직.

염상의 말은 나와 왕무 사이에 오가는 혼사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라 또 나는 열이 받았는데 이 상황에서 대놓고 그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만 끙끙 앓는데 그사이에 일행은 연회 준비가 된 전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자! 모두 듭시다.”

장내에 모인 사람들을 대표해서 정윤 왕무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세력이 미약하고 불안한 상태이긴 해도 역시나 정윤의 지위가 높긴 높았다.

수많은 거물들이 모여 있는 사이에서도 왕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예.”

연회에 참석한 장수와 관리들은 술잔을 들이켰다. 거중기의 고안자이자 정윤의 약혼자라는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석에 낀 나도 찻잔을 대신 들어 올리며 차를 마셨다.

술을 못 먹는 건 아닌데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술을 마시는 임연객에게 속삭였다.

“오늘 하루 종일 부끄럽게 무슨 짓이야?”

“부끄럽다니 나는 하나도 안 부끄럽다. 유금필 장군은 지금 군부의 1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나갔다 하면 승리하시는 분이고 지금은 말갈족들을 휘하에 거둬들이고 계시지. 유금필 장군이 없으면 우리 고려가 말갈기병들을 제어할 수 없어. 유금필 장군 덕에 우리가 별 힘을 안 들이고 기병들을 얻고 있다고.”

임연객은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유금필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나도 익히 알고 있다. 현대의 일반 대중들도 유금필의 이름 정도는 어렴풋하게 들어본 사람이 많다.

‘그래도 이 정도로 비굴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임연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헤헤헤, 이번에 내가 유금필 장군과 인연을 만들어 놨으니 개경에 있는 다른 녀석들보다 우위에 서게 된 셈이지. 그 녀석들 아마 내가 닭 문제를 수습한다고 서경으로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출세 못 할 줄 알고 비웃었을 게 틀림없어. 그런데 일이 이리되니 쌤통이다.”

그러면서 임연객은 통쾌하다는 듯이 술잔을 들이켰다.

연회장을 살피면 임연객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관리들이 염상, 유금필, 왕식렴 등을 감싸고 눈에 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지금 수많은 말갈족들을 규합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이 사람들이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 유금필이 신세 한탄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말갈어를 할 줄 아는 역관들을 더 보내드릴까요?”

그런 한탄에 왕식렴이 말했다.

“역관의 숫자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말갈 사람들의 근본적인 이해력이 문제입니다. 축성을 하든 작전을 하든 그 수많은 부족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였습니다.”

유금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하.”

주변에 있던 관리들이 입을 모아 유금필에게 반응했다.

그 한쪽에서 정윤 왕무는 몇몇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왕무 옆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음 확실히 왕무의 지위가 불안하다는 것을 관리들도 무의식적으로 알긴 아는군. 정윤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은 아니지만 유금필 등을 대할 때만큼 절실하지는 않아.’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약간은 안타깝기는 했다. 왕무와 어느 정도 친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나라도 살아야지. 왕무와 함께 갈 수는 없어. 잘 빠져나와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찻잔 속의 차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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