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36화 (36/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36화

36. 탐구

“아니, 그냥 식량만 주면 다 끝날 일을 이리 크게 만드는 이유가 뭐냐? 마을사람들도 곡식을 받는 게 이득일걸.”

임연객이 나를 보고 또 투덜이가 돼서 외쳤다.

“어허! 이 닭문제에 관해서는 폐하께서 나에게 전권을 맡기셨어. 오라버니는 그저 나를 호위하고 보조만 하면 된다고.”

나는 내 권한을 내세웠다. 어느 정도 임연객이 말이 맞는 면도 있었다. 식량만 주고 가도 백성들은 기뻐할 것이고 왕건에 대해 좋은 소문을 퍼뜨려줄 것이다.

‘다만 이런 사소한 사실이라도 검증을 해봐야 학자로서 좋은 태도지.’

물론 나는 학자 지망생에 불과했지만 이런 기회가 생기자 반드시 검증을 해보고 싶었다.

‘거기다가 이걸 검증하는데 약간 귀찮기는 해도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잖아?’

나는 그런 생각으로 이 일을 밀어붙였다.

“그래, 그래. 어명을 받은 네 말대로 하마. 어서 창고를 준비해라. 닭 님이 따뜻하게 지내실 거처를 마련해야지. 바람이 안 통하게 판자며 짚으로 벽들을 보강하고. 닭 님들이 따뜻하게 지내시게 화로도 들여다 놓고. 등불도 안에 들여라.”

임연객이 우리를 따라온 군졸 2명에게 명을 내렸다. 내 부탁을 들어주기 싫어서 비꼬는 투가 역력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임연객에게 좀 감탄했다.

‘그래 창고에 횃불을 놓는 것보다는 화로나 등불을 놓는 게 안전하지. 역시 관리생활을 한 짬이 나오는군.’

군졸 2명으로는 이 일들을 다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까지 이 일을 거들어야 했다.

닭들이 머무를 창고 하나를 찾고 벽을 개조할 판자며 짚을 모으느라 마을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꽤 무거운 화로를 옮기느라고 낑낑대며 고생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래도 나는 이왕 일을 하는 김에 확실히 하기 위해 말했다.

“해가 잘 들어오는 양지바른 곳에 있는 창고에 닭들을 놔야 합니다.”

이 마을에서는 가장 여유 있는 편인 촌주의 집 창고가 가장 알맞아서 거기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여기까지 안내해 온 서경 관리는 떨떠름한 기색이 역력했다.

“참 열의가 넘치시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면 유수 각하도 감사하실 것입니다. 그럼 서경유수부에는 돌아오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예, 며칠은 이 마을에서 상황을 살필 것입니다.”

임연객이 뭐라 하기 전에 내가 끼어들어서 대답했다.

“그럼 유수 각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일을 다 보시면 유수부로 오십시오. 저는 일이 있어서 그만.”

서경관리는 떨떠름한 표정과는 달리 말은 정중하게 하고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났다.

임연객은 목을 쭉 내밀며 부럽다는 표정으로 서경관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걸 보니 나는 또 괜히 일을 벌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내가 원한 따뜻한 창고는 얼추 완성이 다 되어 있었다.

“이 마을에 알을 낳지 않게 된 닭들을 모두 이 창고에 넣어두십시오.”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왕건의 명을 받고 온 내 명을 거스르지 못했다.

“닭들을 무슨 상전 모시듯 화로도 놓아주고 돌봐주다니 해괴한 일이군.”

“이런다고 뭐가 바뀔지?”

마을 사람들이 귀찮아하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그런 소리는 못 들은 척하며 나는 축사로 개조된 창고 안을 살폈다.

내 지시대로 만들어진 창고는 매우 따뜻했다. 등불도 여기저기 환하게 밝혀져서 낮 같았다.

알을 못 낳게 된 닭 8마리가 창고 안에 있었지만 매우 조용했다. 닭들은 하나같이 축 늘어진 기색이었다.

시끄럽게 울지 않아서 좋았다.

“오늘은 내가 여기에서 자며 닭들을 살필게.”

나는 임연객에게 그렇게 말했다. 계속 창고 안이 밝게 등불도 갈아줘야 했고 닭들의 상태도 살펴야 했다.

“암 네가 양심이 있으면 그래야지. 나와 불쌍한 군졸들을 창고 안에서 자게 만들면 안 돼. 거기다가 난 밝은 데서는 잠을 못 잔다고.”

임연객이 냉큼 말했다.

“밥이나 먹자.”

그런 임연객과 뭐라 더 말다툼을 벌이기 싫어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아예 여기서 우리가 가져온 곡식으로 밥을 해먹자.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돼. 우리가 밥을 얻어먹으면 또 나쁜 소문이 퍼질 수 있으니. 뒤숭숭한 민심을 진정시키러 온 건데 이런 것도 다 신경 써야지.”

임연객은 그리 말하며 군졸들을 시켜서 밥을 짓게 했다. 그러나 반찬은 별것이 없었다.

“서경 유수부에 돌아갔으면 푸짐하게 얻어먹을 텐데. 쩝, 아쉬운 대로 저 닭을 한 마리를 잡는 게 어때? 어차피 알도 못 낳는데.”

임연객은 침을 꿀꺽 삼키며 창고 안의 닭을 노려보았다.

“절대 안 돼.”

나는 그런 경고를 했다. 임연객은 입맛을 다시며 그냥 초라한 식사를 했다. 잠깐 앉아 있던 임연객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집주인이 이 창고와 가까운 쪽 방을 내줬어.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리를 쳐. 그러면 나와 군졸들이 달려올 테니. 물론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겠지만.”

“알았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임연객과 군졸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창고를 떠났다. 나는 한쪽에 마련해 둔 닭 모이들을 퍼서 닭들에게 나눠주었다.

닭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꼼꼼히 등불을 살폈다. 새벽까지 타오르는 데 문제가 없었다.

확인을 마친 나는 짚을 가져와서 푹신하게 쌓아놓고 그 위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현대의 침대에 익숙하고 이 시대에 오고 나서도 귀족 생활을 했던 나한테 너무 불편한 자리였다.

“에구 허리야.”

나는 그런 신음을 흘리며 가져온 책 한 권을 펼쳤다. 다름 아닌 삼국사였다. 나름 이 책을 통독해서 문리를 트이게 하려고 가져왔다.

‘학관에서는 한창 이 책으로 공부를 하겠지?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거기가 그립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역시나 잠자리에서 이런 한문 역사책을 읽는 것은 무리였다.

* * *

으슬으슬.

나는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어느덧 새벽이었다. 등불들도 다 꺼져 있었고 화로도 식어가고 있었다.

“이런! 닭들을 위해서라도 따뜻해야 하는데.”

나는 내 몸 대신 닭을 먼저 생각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쪽에 마련해둔 숯을 화로에 쑤셔 넣었다.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화로는 다시 따뜻해졌다.

나는 등불에 다시 불을 붙일까 말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곧 해가 뜰 텐데 그 햇볕을 받게 해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화로에 숯을 더 집어넣어서 아주 뜨겁게 만들었다. 햇볕을 받으려면 창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창고 안 온도가 떨어졌다.

나는 닭들이 따뜻한 상태에서 햇볕을 받을 수 있게 화로를 관리했다. 그리고 아침을 먹으라고 닭들에게 모이를 줬다.

모이를 주며 살폈는데 닭들은 아직도 알을 안 낳았다.

내가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부산하게 움직일 때였다. 아침이 되자 한번 상태를 보기 위함인지 임연객이 창고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상산백의 딸이자 정윤의 약혼녀, 거기에 한림원 직원이 보살피는 닭들이라니 정말 대단하군. 대체 언제 서경유수부로 돌아가는 거니?”

“2~3일은 계속 닭들을 보살피면서 상황을 봐야지.”

내가 그리 말하자 임연객은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하루는 그럼 뭘 하고 지낼까?”

한숨을 쉬며 임연객은 어깨를 으쓱하고 떠나갔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짚단 위에 누워 책을 펼쳤다.

창고 안에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다. 식사를 하고 책을 읽다가 닭들을 보살피는 와중에 또 저녁이 됐다.

“제발 내일은 그냥 가자. 정 신경 쓰이면 마을 사람들더러 창고를 잘 지키라고 하면 되지 굳이 우리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어.”

임연객은 밥을 먹으면서 간곡하게 말했다. 진짜 오늘 하루 마을에서 할 일이 없어 심심한 것 같았다.

“알았어.”

더 기다리자고 하면 나를 내버려 두고 갈 기세라 나는 마지못해 그리 말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침 임연객과 군졸들이 나서자 나는 짚단 위에 누웠다.

짚단 위에서 나는 또 삼국사를 펼쳤는데 신기하긴 했다.

‘밥 먹고 삼국사만 펼치면 잠이 오네.’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 * *

똑똑똑.

그러다가 나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주변의 등불들이 타올라 창고 안은 환했다. 창밖을 살짝 보니 밤인지 새벽인지 애매했다.

“안에 있습니까?”

밖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도 나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마을 사람들이 감히 귀족인 내가 있는 이곳에 지금 시각에 올 리는 없고. 이 시대가 여행객이 많은 시대도 아니고. 거기에 왜 집도 아닌 창고에?’

그 생각에 나는 대뜸 기민하게 외쳤다.

“오빠! 빨리 와! 꺄아아악.”

뭔가 좋지 않은 의도를 품은 사람이 온 거라면 내가 뭘 하기 전에 제압당할 수 있기에 나는 일어나서 몸으로 문을 막으며 임연객을 불렀다.

“앗! 아가씨.”

내가 비명을 지르자마자 군졸들이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깐 소란이 일었다.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오갔다.

난리가 난 것 같아 심장이 뛰어서 꼼짝도 못 하고 있는데 문득 군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윤 전하!”

그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당황해서 창고 문을 열었다. 약간 동이 터오는 와중에 주저앉아 있는 2명의 군졸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쪽에 그들이 가져온 환도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난감한 기색으로 정윤 왕무가 서 있었다.

“나는 그대가…… 아니 임 낭중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돼서. 중간에 내가 도움을 받기도 했고. 아! 임 낭중에게 알려주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래 임 낭중은 어딨지? 난 임 낭중을 찾으러 온 거지 결코 다른 마음이 없었어.”

왕무는 약간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휘저으며 말했다.

“전 여기 있습니다.”

활을 들고 방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임연객이 말했다.

“어, 임 낭중.”

왕무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자 임연객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군졸들이 도성의 금군인데 이리 순식간에 제압당할 줄은.”

“임 낭중이 너무 안 와서 혹여 일 처리가 안 되나 해서 와 봤어. 알려줄 것도 있고 해서. 그러다가 오해가 생겼어.”

“다 연우의 고집 때문에 시간만 낭비했습니다. 자 방 안으로 드십시오. 연우 너도 오렴.”

정윤이 왔는데 혼자 창고에 있을 수도 없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방 안에 들어갔다.

* * *

그리고 방안에 들어오자 임연객이 나를 타박했다.

“아니 정윤 전하와 여행한 게 며칠인데 그 목소리도 못 알아듣고 소리를 질러! 정말 깜짝 놀랐다. 혹여 정윤 전하께서 다치기라도 했으면.”

“이봐요. 괜찮아요?”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얻어맞은 군졸들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군졸들이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침울한 기색으로 앉아 있던 왕무도 군졸들에게 말했다.

“이거 참 뭐라 말을.”

‘자기가 군졸들을 상처입혀서 확실히 미안하긴 한가 보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군졸들은 몸둘 바를 몰라 했다.

“황송합니다.”

이 난리가 나는 사이 어느덧 확실히 새벽이 오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알려주려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임연객이 왕무에게 물었다.

“염상, 유금필 두 분 장군이 서경에 잠시 오신다는군. 거중기에도 관심이 있고.”

왕무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 그 두 분이 말입니까? 이거 참. 그분들을 마저 뵙고 가야겠습니다. 응, 연우야. 진작 내 말대로 서경유수부로 돌아갔으면 좀 내가 마음 편하게 그분들을 만나 뵐 수 있을 텐데.”

임연객은 왕무의 말을 듣고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또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이 닭 문제를 해결하라고 명을 받아놓고선!”

계속 나만 볶아치는 임연객을 보고 내가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다시 임연객과 옥식각신 하는데 뭔가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임연객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닭이 소란을 피우고 있어.’

나는 그 생각에 벌떡 일어나서 창고를 향해 달려갔다. 창고 안에서 닭들이 앉아서 힘찬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긴장을 억누르며 닭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됐어.”

나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닭들은 알을 낳고 품고 있었다. 내 가설이 맞았던 것이다.

‘역시 너무 추워져서 닭들이 그런 거야.’

“어허, 오라버니랑 말을 하다가 이리 뛰쳐나가서는.”

근엄하게 말하며 왕무와 함께 창고 안에 들어오던 임연객에게 내가 대뜸 달걀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내 말이 맞지?”

“이, 이럴 수가. 닭들을 상전처럼 모시는 방법이 통하다니?”

임연객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른 닭들도 살폈다. 하나같이 알을 낳고 품고 있었다.

웅성웅성.

어느덧 창고 주변에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왕무가 찾아와서 소란을 일으키고 계속 시끌시끌하니 우리에게 창고를 빌려준 촌주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 온 것이다.

그리고 닭들이 다시 알을 낳았다는 것을 깨달은 마을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을 촌주가 대표로 다가와서 굽신거리며 말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이것은,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과학과 합리의 관점에서 이치를 설명해 주려고 나섰다. 그때였다. 곁에서 임연객이 두 손을 번쩍 들더니 외쳤다.

“옛 거울에서 예언한 성군, 도선 대사의 제자이시자 삼한의 주인, 조계박압의 영웅이신 대왕 폐하께서 우리들을 보내 신통력을 보이셨다. 거기에 여기 정윤 전하께서도 계시다. 대왕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임연객이 대뜸 그리 외치자 나는 기가 막혀서 입을 쩍 벌렸다.

“만세, 폐하 만세!”

그리고 흥분한 마을 사람들도 임연객을 따라서 부르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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