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21화 (21/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21화

21. 대결

“음, 연우 너도 오늘 학관에 갔었으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알 것이다.”

임희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예, 학관 수업이 갑자기 중단되고 우선 내일 나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럼 내일모레는 학관에 나가도 되는 것입니까?”

“그 문제도 오늘 결판이 안 났다. 내일까지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임희는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기에?”

내가 묻자 임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백제 예부령 최승우가 사신으로 고려에 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학관도 한번 둘러보고 싶고 거기에서 한림원령과 만나고 싶다고 미리 전갈을 보내왔다. 거기에다가 이 국서를 사방의 고승들과 명사들에게 뿌리면서 오고 있지. 너도 한번 읽어보거라.”

임희는 그러면서 소매에서 글이 가득 적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흐음.”

찬찬히 임희가 건넨 글을 읽어보면서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최승우의 유명한 글이 이때 쓰여진 것이군. 명문은 명문이다. 최승우의 학문이 깊긴 깊군. 다만 내용은 고려를 모욕하고 백제를 칭송하고 있어.’

그리고 최승우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왜 조정과 학관에 난리가 난지 알 수 있었다.

‘최승우라면 지금 백제국왕 견훤 휘하의 최고의 모사라 할 만하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 시점에 오는 이유는 뻔하지. 고려에 와서 여론전을 펼치려는 거다. 여론전을 벌일 장소로는 확실히 학관이 제일 낫긴 해.’

이 후삼국 시대의 전쟁에서 무장들만 열심히 군사들을 거느리고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문관들도 온 힘을 다해 삼한통일을 위해 뛰고 있었다.

원래 9주를 통치하고 있었던 신라가 쇠약해지며 각 주를 점거하며 고려, 백제가 일어났다.

‘이 후삼국 시대의 전쟁은 일종의 내전인 만큼 여론전도 상당히 중요하다.’

전쟁 중이긴 하지만 고려나 백제 측은 모두 명성 높은 고승들이나 지식인들이 서로 국경을 넘어가며 교류하는 것을 허가하고 있었다.

내전인 만큼 신망 있는 고승이나 지식인들의 지지를 획득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 시대 고승들이나 지식인들은 실질적인 힘은 없어도 매우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이들 사이의 여론이 조성되면 실질적인 힘을 지닌 호족들이 움직이게 된다.

‘최승우가 개경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신이 가져오는 국서를 여러 부 베껴서 사방에 뿌리고 다니는 것만 봐도 그 의도가 빤히 보이지.’

백제가 보낸 서신은 말이 국서지 의도는 자신들의 위세를 자랑해서 고려의 기를 꺾어놓으려는 것이었다.

지금 백제는 공산 전투 이후 연전연승해서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이 틈에 최승우가 사신으로 개경에 방문하며 이 시대의 여론주도층에게 국서를 뿌려 선전선동을 하려는 의도였다.

“최승우 그 나쁜 놈이 확실히 당나라 물을 먹긴 먹어서 글 잘 쓰긴 하나 글의 내용이 너무 흉악하다. 거기다가 학관에서 한번 보자는 전갈도 그 검은 속내를 너무 드러내는 것 아니냐? 최승우 그자가 못된 꾀를 내서 여러 호족 자제들 앞에서 뭔가 깽판을 치겠다는 의도가 너무 적나라하게 보인다.”

임희는 격분한 듯 씩씩거리며 외쳤다.

고려의 중신인 임희가 격분할 만했다. 최승우가 작성한 국서의 내용에는 고려 측의 죽은 장수들 이름까지 거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은근히 조롱하고 있었다.

공산 전투에서 신숭겸, 김락 같은 고려의 대장이 죽은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거기에 그 이후로도 고려는 사벌주 지방의 전투에서 패배해서 고려 장수 색상마저 전사했다.

죽은 고려 장수들은 다 고려 중신들의 동료들이었는데 이들의 이름이 거론되니 열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학관에서 최승우가 고려 중신들을 만나겠다고 청한 것도 의도가 너무 훤히 보였다.

고려 학관에는 유력 호족들의 자제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앞에서 백제의 위세를 자랑해서 고려를 동요시키려는 목적이 명백히 보였다.

“최승우의 의도가 뻔한데 그럼 그냥 국서만 받고 백제로 돌려보내면 그만 아닙니까?”

나는 그리 권했다. 물론 백제의 거물인 최승우가 개경에 온 기회를 틈타 그냥 죽여 버리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여론이 악화되니 그냥 돌려보내는 게 낫지.’

내 말을 듣고 임희는 신중한 기색으로 말했다.

“연우 너처럼 주장하는 중신들도 많다. 그러나 무조건 최승우를 돌려보내기엔 찜찜한 면이 있다. 최승우가 백제 예부령이니만큼 백제의 교육도 관장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고려의 학관도 둘러보고 싶다고 청하면 그걸 거절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 또한 최승우가 개경에 와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도전할 것이 뻔하다. 한림원령과 만나고 싶다고 언급한 것은 사실 도전의 표시다. 그런 만큼 최승우가 어떤 도전을 하든 우리가 회피한다는 인상을 주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임희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지금 공산 전투에서 패배하고 고려군이 연전연패하는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고려 조정이 단신으로 개경에 온 최승우의 도전마저 회피하면 전국의 여론이 좋지 않을 것도 뻔했다.

“아버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나는 임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최승우 그놈이 개경으로 오면서 한림원령과 학관에서 만날 거라고 소문을 마구 퍼뜨리며 오고 있다. 각지의 호사가들이 신라삼최 중 2명이 격돌하게 되었다고 너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흥미를 느낀 고승들과 학자들이 개경으로 모이고 있는 형국이다. 내 생각에는 이번에 최승우의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소위 삼최라고 불리는 3명의 학자들이 엄청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최치원은 실종된 상태나 거의 죽었다고 봐야 하고 남은 2명 중 최언위는 왕건을 섬기고 최승우는 견훤을 따르고 있다. 확실히 최언위, 최승우가 격돌한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어. 결국 이번에 학관에서 최언위, 최승우가 붙겠군.’

나는 임희의 말을 듣고 이번 대결이 성사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내 아버지인 임희는 매우 신중한 성향이었다.

‘그래서 정윤과의 혼사를 피하려는 나를 지지해 주시기도 하고. 그런데 신중파인 아버님이 이번만큼은 최승우의 도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면. 조정의 논의가 어찌 흘러갈지는 뻔하다. 결국 최승우와 대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나는 그런 판단을 내렸다.

“한림원령 각하께서는 자신이 있다고 하십니까?”

그래서 나는 임희에게 그 점을 물었다.

“최승우가 와서 아마 서예나 시짓기 같은 것으로 우리에게 도전할 텐데 한림원령도 지금 확신이 없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한림원령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냐?”

임희의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확실히 이 대결은 미래 지식이 있는 나로서도 손 쓸 도리가 없다. 내가 대학자들 사이의 대결에 껴서 뭘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 최언위가 최승우를 꺾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젠장 무엇보다 이 대결에 대해서는 사서에 안 적혀 있어서 나도 결말이 짐작도 안 가는군.’

* * *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일은 내가 예상한 방향대로 흘러갔다. 학관에서 직접 하인들을 보내 학생들의 집안에 직접 연통을 보냈다.

-백제 예부령 최승우가 학관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날 한림원의 관리들뿐 아니라 우리 고려 조정의 중신들, 그리고 외부에서 여러 명사들도 모두 모일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은 복장에 각별히 유의하시고 그날만큼 예법과 품행에 어긋나는 것이 없도록 주의하여 주십시오. 이는 나라의 중대사니 결코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알려드립니다.

그 서신을 읽어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조정에서 결국 최승우의 도전을 받기로 마음먹었군. 한림원령 각하의 고민이 크긴 크겠군.”

최언위에게 많이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 스승이긴 스승이었다. 이리 부담이 큰일에 직면하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만에 하나라도 패한다면 최언위가 받을 타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흥분이 되기도 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두 대학자의 대결을 직접 이 두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 대결에 대해 내가 상세한 기록을 남겨야지. 자세히 적어놓고 여러 부 복사해서 조선왕조실록처럼 여기저기 숨겨두면 현대까지 전해지지 않을까?’

나는 나름 비장한 각오를 세웠다.

다만 이 역사적 대결 탓에 나도 약간의 고난을 겪게 되긴 했다. 이날 아버지인 임희와 오라버니인 임연객 모두 일찍 퇴청해서는 부랴부랴 내 처소로 들이닥쳤다.

“이 정도로 적당히 입고 가면 되지 않을까요?”

나는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임희와 임연객은 수십 벌의 옷을 싸매 들고 와서는 학관에 가게 될 나에게 다 입어보라고 권했다.

학관에서 보낸 연통에 복장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구절이 있는 것이 탈이었다.

“흐음. 이런 일에는 부인이 있어야 든든한데 상산에 있으니. 좀 전의 옷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임희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오라버니인 임연객도 난리였다.

“누이. 이번 일에 적당히란 없어. 요새 분위기가 얼마나 안 좋은데. 이번에 학관에서 있는 대결이라도 이겨야 하니 모든 일에 만전을 기해야지.”

병부에서 일하는 임연객이 민감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래 연우야. 폐하께서도 이번 대결에 관심이 크시다. 물론 폐하께서 직접 학관에 행차하시면 최승우와의 대결에 임하게 된 한림원령과 문관들이 너무 큰 부담을 갖게 되니 오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신 가까운 관청에 머무르시며 대결이 어찌 되는지 내관을 통해 전해들으실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임희 역시 긴장된 낯빛으로 말했다.

“예, 예.”

나도 그들의 그런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이것저것 옷을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

* * *

그리고 임희와 임연객이 고민 끝에 골라준 옷을 입고 나는 학관에 나갔다. 학관도 야단법석이었다.

황색 관복을 입은 하급 관원들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학관 곳곳을 청소하고 약간이라도 마땅치 않은 부분은 수선하고 있었다.

‘현대에서 군단장 방문 전에 군부대에서 청소하는 수준을 능가하는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교실에 들어섰다. 교실의 분위기도 놀라웠다. 옷차림에 공을 들인 것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고려의 유력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자녀들에게 고르고 고른 옷을 입혀 보냈으니 확실히 화려하긴 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평소와 달리 수다조차 떨지 않고 단정히 앉아서 책을 읽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학관에서 몸가짐에 주의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받은 모양이다.

나야 갑자기 얌전한 척하는 위선적인 다른 학생들과 달리 원래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인만큼 책을 펼쳐 읽고 있었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자 한림원 학사 한 명이 교실로 들어왔다. 평소 수업을 봐주던 학사였다.

꼼꼼하게 학생들의 복장을 살피던 학사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옷차림은 모두 괜찮습니다. 모두 들으셨겠지만 3일 뒤 최승우는 개경에 도착해 우리 학관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한림원령 각하께서는 최승우와의 대결을 준비해야 하는 만큼 여러분들의 수업을 봐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3일간 또 여러분들도 최승우 그놈의 기를 꺾기 위해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모두 삼국사는 준비해 오셨습니까?”

“예!”

학생들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신신당부를 받아서 그런지 재빨리 대답하며 삼국사를 꺼냈다.

“자 그럼 모두 고구려 장수왕께서 백제 개로왕을 사로잡아 참수하는 부분을 펼치십시오. 앞으로 3일 동안 우리는 이 부분을 낭랑하게 읽는 연습을 할 겁니다. 아마 최승우가 학관에 오면 교실도 둘러볼 텐데 그때 최승우가 개로왕이 참수당하는 삼국사의 구절을 듣게 만들어야 합니다! 최승우가 교실에 당도하기 전에 제가 신호를 주면 그때 이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 됩니다. 자 연습을 해봅시다.”

학사가 주먹을 꽉 쥐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아니 이렇게 유치하게 나와야 해?’

나는 혀를 찼다.

지금 고려는 옛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었고 견훤의 후백제는 옛 백제의 후예라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니 딱 장수왕이 개로왕을 참수하는 삼국사의 구절을 읽어서 기를 죽이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