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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21화 (313/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21화

북경의 모처.

모든 사람이 잠들었을 시간이었지만, 넓은 대전에 있는 십여 명의 사람들은 허리를 세우고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이들이 서 있는 상석에는 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두툼한 서책을 읽는 중이었다.

이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는데, 이 사내에 대해 말하려면 이것부터 말해야 했다.

사내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대단히 잘생겼다.

눈부시게 흰 피부에 맑고 큰 눈망울은 심금을 울렸고, 가파른 콧대와 날렵한 턱선은 날카롭게 보일 지경이었다. 아마도 이곳에 여인이 있었다면 사내에게서 절대로 눈을 돌리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 미남을 논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반안(潘安)이 실제로 살아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사람인 이상 어떻게 흠이 없겠는가?

사내는 대단한 미모를 가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선이 너무 여려 남자다움이 조금 부족하기는 했다.

그러나 세상천지에 어떤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내에게 외모로 지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책을 읽고 있던 사내가 말을 툭 내뱉었다.

“광동에 나타났다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까?”

말투가 딱딱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외모만큼 목소리도 대단한 미성이었다.

사내의 말에 서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써는 사이비 교단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사내가 고개를 들어 대답한 사람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언제부터 암향거가 추정을 하게 됐습니까?”

그 말에 사내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건…….”

“확실하게 밝혀내기 전까지 추정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 가져야 될 마음가짐이라 들었는데, 그냥 듣기 좋으라고 했던 말인 겁니까?”

“……아닙니다.”

“추정 같은 말을 붙이지 말고, 광동성과 광서성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람들이 누군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내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사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누군지 알아내라는 명령을 직접 내렸다. 그러니 그들에 대해서 알아내지 못한다면, 이제 자신의 자리는 더 이상 이곳에 없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권력의 중추에 있고 싶다면 어떻게든 사내가 내린 명령을 수행해야 했다.

사내는 다시 서책을 읽어 나갔고, 간혹 한 번씩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시립해 있던 사람들 중 해당 내용에 대해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나서서 대답을 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서책을 읽어 나가던 사내가 문득 눈을 예리하게 빛냈다.

“호남성에서 암향거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 질문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여기 내용을 보니 그 사람이 심지어 뇌화분까지 사용 요청을 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사내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답은 아주 잘하시는군요. 호남성의 암향거를 무단으로 이용하고, 전략 물자인 뇌화분까지 사용하도록 해 놓고 말이지요.”

그 말에 대답을 했던 사람이 움찔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이 사람이 암향거를 무단으로 이용했는지 확인했습니까?”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암호를 모두 사용했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사내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암향거의 암호가 밖으로 유출되었을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러면 이건 간단하게 끝날 일이 절대로 아니었다.

“다른 지역에서 암향거를 무단으로 이용한 내역은 있습니까?”

“그게…… 조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용을 했다면 찾아내는 일이 매우 힘듭니다.”

당연했다.

암향거는 사용자의 신원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었고, 사용자의 뒷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마 호남성 암향거도 뇌화분이라는 전략 물자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무단으로 암향거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고 있는 사내 역시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차마 질책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암향거를 무단으로 이용한 사람의 인적 사항은 지금 적혀 있는 이것이 전부인가요?”

“인적 사항은 그렇고, 정보 몇 가지는 빠져 있습니다.”

사내는 서책을 읽어갔다.

‘이름 불명, 별호는 암군. 절정고수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 있고, 인상착의는…….’

서책을 읽으며 점점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 내용이 모두 사실입니까?”

“전부 확인이 끝난 사실만 보고로 올렸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암향거를 통해 도망칠 준비를 했다는 말이 되는데…… 모두 계획을 하고 움직였다는 말이 되는 건가?’

암군이 벌였던 일들에 대해서 정리된 내용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것은 암군이 녹림십팔채와 장강수로십팔채의 싸움을 의도적으로 조종하여 사사천문과 부딪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이 말은 자신을 쫓아오는 무인들을 산적과 수적의 싸움에 내던질 계획을 처음부터 짰다는 말이 되는 거네.’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서 보란 듯이 성공시킨 암군의 능력은 대단했다. 사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암군과 같이 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뇌화분으로 초절정고수로 유명한 탈혼수사 능광을 죽인 것은 멋진 그림에 방점을 찍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괘씸하기는 하지만…… 재주가 좋구나.’

사내는 다시 물었다.

“암군에 대해서 보고하지 않은 사항은 무엇입니까?”

“일단 그가 절강성 상산현에 소재하고 있는 금호상방의 여식인 조유하와 친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객잔에서 만나서 서로 합석을 하고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걸 많은 사람이 목격했습니다. 무엇보다 암군과 금정문이 싸우는 상황에서 암군을 도와준 것도 확인했습니다.”

“흐음…… 조유하라는 여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까지 조사에 따르면 강호의 신비문파 중 하나인 보타암의 속가제자 정도로 보입니다. 특이 사항으로는 이번 마검쟁탈에 잠깐 끼어들었다가 장한마녀라는 별호가…….”

사내는 그 말에 멈칫하며 물었다.

“보타암은 정파 계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암군을 도와주기 위해 정파인 금정문과 싸우면서 사파로 오인을 받으며 그런 별호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명문정파가 사파의 별호를 얻었다…….”

조금 어이가 없기는 했다.

“다른 정보도 있습니까?”

“청성파의 운광자와도 접촉했다는 걸 확인했지만, 초면이었던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후에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될지는 아직 불명인 상태입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일단 암군에 대해서는 최우선 사안으로 처리를 하도록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인가를 받은 사람은 아닌지, 행여나 금의위(錦衣衛)나 동창(東廠)에서 파견 나간 사람은 아닌지 모두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혹시 폐하께서 은밀하게 강호로 내보낸 어사는 아닌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충!”

“충!”

일제히 절도 있게 사람들이 대답했다.

사내는 그것을 보면서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흥미롭네. 어쩌면 재미있는 자산이 될지도 모르겠어.’

* * *

시간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나 빨리 스쳐 지나갔다.

‘벌써 세 달…….’

고우길은 풍백과 함께 적가상방으로 돌아온 이후로 세 달이나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시간이 빨리 흘러갔기 때문이 아니었다.

겨우 세 달이라는 시간 만에 그의 앞을 막고 있던 새로운 벽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물론 넘었다는 벽이 절정의 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 고우길은 주천금단을 복용하고 풍백에게 새로운 내공심법과 함께 온전한 난파칠식을 배운 이후로 빠르게 일류고수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류고수의 문턱을 넘은 것이 아니라, 완연하게 일류고수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이건 대단한 것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고우길의 성취에 대해서 들었다면, 아마도 고우길이 무공 천재가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우길은 이것이 자신이 혼자 만들어 낸 성취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저기 보이는,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차향을 맡으며 미소를 짓고 있는 풍백이 있기에 가능했던 성취였다.

‘과연 도련님은 어느 정도 수준의 고수인 걸까?’

이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직접 봤었던 풍백의 무공 수준과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아마도 절정고수일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풍백에게 무공에 대한 조언을 받으면서 그가 마치 자신의 몸 상태와 무공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면, 풍백은 그가 말하기도 전에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수련을 해야 그 벽을 넘을 수 있는지 상세히 설명해 줬다.

아무리 절정고수라고 하더라도 일류 수준의 무인을 완전히 파악한 것처럼 조언을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설마 벌써 초절정에 올랐다고 봐야 하는 건가?’

생각을 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아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 거라고, 그저 무공을 잘 가르칠 뿐일 거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초절정고수라면 명문정파 장문인 수준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인데, 겨우 이십대 초반의 풍백이 어떻게 그 수준까지 올랐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풍백이 요즘은 여러 가지로 많이 변했다.

식탐이 늘었다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근래에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저 모습이다.

“아, 날씨 좋다…….”

의자에 몸을 푹 묻은 상태로 하늘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한량과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손에 차가 아니라 술병이 들려 있었다면, 예전 상산현 개망나니가 다시 나타났다고 생각했으리라.

마검쟁탈에 참전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풍백은 하루를 매우 알차게 보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무공을 수련하고, 일정 시간을 상방 일에 대한 공부도 하면서 거의 눈코 뜰 새도 없이 하루를 보내던 것이 풍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저런 모습이다.

고우길은 풍백이 적가상방으로 돌아온 이후로 그가 무공을 수련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이제는 더 이상 무공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미 이룬 성취를 보면 조금 쉰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가 있지는 않겠다만…….’

이런 생각을 하던 고우길에게 풍백이 시선을 돌렸다.

“고 무사님.”

“네, 도련님!”

풍백이 부르자 고우길은 순식간에 그에게 다가가 시립했다.

그런 고우길에게 풍백이 말했다.

“오늘 보고할 내용이 있나요? 없으면 그만 수련을 마치고 댁으로 돌아가셔도 되고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뭔데요?”

“일단 첫 번째는 청송표국에서 두 번째로 당가 사람을 표사로 고용했다는 것입니다.”

나쁘지 않은 소식에 풍백은 슬쩍 웃었다.

먼저 청송표국에 몸을 담은 당세기는 현재 빠르게 표사를 마치고 얼마 전부터 표두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미 가진 무력에 대해서는 세 달 전 표행에서 사파의 고수들을 거의 홀로 막아 내며 증명을 마친 당세기였다.

적가상방이란 배경으로 청송표국에 들어왔다는 오해가 풀리면서 빠르게 인정을 받게 된 당세기는, 표두라는 자리에 오르는 것에 대해서 청송표국 내부에서도 딱히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때 뛰어난 무공을 보여 준 당세기였기에 이곳 절강성과 강서성에서는 그를 독수신편(毒手神鞭)이라 부르기도 하고 있었다.

별호가 조금 사파 같은 느낌도 들지만, 과거에도 사천당가 사람들의 별호는 애매하게 독한 느낌이 있기는 했다. 아무래도 독과 암기를 사용한다는 것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튼 당세기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이번에 새로 배정된 당가의 무인 역시도 당세기가 잘 도와줄 거라 생각했다.

‘당가가 스스로 일어나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네.’

얼마 전에는 문호를 열고 기본 무공을 비롯하여 몇몇 무공을 전수하기로 결정하며 사람을 받아들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은 새로 당가에 들어온 사람에게 전수할 무공이 많지 않지만, 풍백이 꾸준히 당가의 무공과 독, 암기 제조법 등을 넘기고 있으니 이런 문제도 곧 사라질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풍백에게 고우길이 말했다.

“두 번째는 청송무관의 개파식이 앞으로 보름이 남았다는 겁니다.”

“벌써 그렇게 됐군요.”

청송무관은 개파식을 하며 청송장으로 바뀔 예정이었다.

개피식을 마치면 이제는 청송장이 적어도 절강성 남서쪽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청송장 산하의 청송표국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군소 문파 하나는 충분히 찍어 누를 정도의 무력이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아무리 청송무관이 이렇게 잘나가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적가상방과 관계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적가상방과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였고, 청송무관주인 우검학은 적가상방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 중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개최하는 개파식에는 풍백은 물론이고, 적가상방주인 적호경 역시 직접 참석할 예정이었다.

보고를 마친 고우길이 잠시 시간을 끌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문세가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풍백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가볍게 혀를 찼다. 그의 모습은 안타깝다는 감정을 여실히 느끼게 만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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