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220화
따각! 따각! 따각!
관도를 따라 수레를 끄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강서성 남부로 향하는 관도 위를 몇 대의 수레가 이동하는 중이었다. 수레 주위에는 일꾼으로 보이는 쟁자수(爭子手) 십여 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또한 수레 선두에는 말을 타고 있는 다부진 몸의 중년 사내가 있었고, 무인으로 보이는 사내들 대여섯 명도 있었다.
이렇게 움직이는 수레에는 깃발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깃발에는 선명하게 청송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적가상방의 물품을 가지고 표행을 하고 있는 청송표국이었다.
표사로 보이는 무인들은 저들끼리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진짜? 그러면 이제 청송파가 되는 건가?”
“청송파가 될지, 청송문이 될지, 청송장이 될지는 모르겠고, 확실한 건 이제 개파식이 두어 달만 지나면 열린다는 거지.”
“크으…… 그러면 이제 우리도 청송파의 무사들이 되는 건가?”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그렇다고 표사들이 전부 청송파로 가 버리면 표국은 어떻게 되겠어?”
“그러면 너는 표국에 남으려고?”
“나는 그냥 표국에 있으련다. 한곳에 진득하게 있는 건 지겨워서 버틸 수 없다고.”
“그러면 너는?”
“나야…… 알다시피 슬슬 정착을 해야 할 상황이니까.”
“어! 너 이 새끼! 산산이하고 뭐 있는 거구나!”
“어흐흠! 산산이가 뭐냐, 산산이가. 형수님이라고 불러라.”
“지랄한다. 내가 산산이를 몇 살부터 봐 왔는지 알아? 그리고 애초에 네가 나보다 나이도 적잖아.”
“원래 혼인한 사람이 더 어른이라는 말 모르냐?”
저희들끼리 키득거리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꽤나 돈독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런 표사들과 제법 거리를 두고 있는 녹색 경장의 사내가 있었으니, 바로 당세기였다.
조금 머뭇거리고 있던 당세기가 결심한 듯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표사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번에 혼인을 하시나 봐요?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표사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당세기를 바라봤다. 살짝 인상을 쓰고 있는 그들은 당세기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저들끼리 말했다.
“이제 노을도 다 사라지려는 중인데 언제 쉬려나?”
“왜? 이제 슬슬 지쳤나?”
“내가 지치기는 왜 지쳐? 배가 고파서 그렇지.”
“그래봤자 어차피 돼지죽일 텐데, 그걸 먹고 싶어서 배가 고프냐?”
“그러면 너는 안 먹으려고?”
“흐흐! 나는 이걸 챙겨 왔지.”
“어? 그거 뭐야? 닭다리 아니야? 어디서 났어!”
당세기가 옆에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듯이 저들끼리 웃고 떠드는 표사들의 모습에 당세기는 머쓱한 표정으로 슬쩍 뒤로 물러섰다.
‘아직도 멀었나……?’
청송표국의 표사들이 당세기를 무시하는 것은 비단 오늘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당세기가 청송표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당세기가 뒤로 물러서자 표사들이 그에게 들리지 않도록 저들끼리 말했다.
“저 새끼는 왜 끼어들고 지랄이래?”
“혼자 입 닫고 있으려다 보니 심심했나 보지.”
“심심하면 뒤에 있는 쟁자수들하고 얘기할 것이지 왜 우리한테 가까이 오는 거냐고.”
“쟁자수도 받아 주지 않아서 그런 것 아냐?”
“낄낄낄! 그것 말이 되네. 쟁자수 중에서도 표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도 당가타 놈이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고.”
“누가 안 그러겠냐? 보니까 눈치도 없어. 눈치가 있었으면 하다못해 쟁자수로 시작을 했을 텐데 말이야.”
“눈치가 있으면 방금 전에도 다가와서 말 붙이지 않았겠지.”
“그것도 그러네.”
표사들은 노골적으로 당세기를 향해 무시하는 시선을 드러냈다.
처음 당가타 사람이 표사로 온다는 말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현재 청송표국은 상산현은 물론이고, 절강성 남부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를 가진 표국이었기에 대우 역시 최고였고 표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곳이었다.
실제로 다른 표국에 일하고 있던 표사들은 언제라도 기회만 생기면 청송표국으로 자리를 옮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탐내는 청송표국의 표사 자리에 느닷없이 당가타의 무인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청송표국에 소속된 표두, 표사는 물론이고 쟁자수까지 이 소문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저 와전된 헛소문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건 헛소문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전에는 당가타라 불렀던 당가의 당세기가 표사로 들어온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태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당가타가 강호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뻔히 아는데, 그런 당가타 사람이 쟁자수도 아니고 표사로 온다니 말이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직접 수뇌부를 찾아가 당가타 출신 무인을 표사로 발탁한 것에 대해 문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자 청송표국의 수뇌부는 당세기를 표사로 수용한 것에 대해 능력을 보고 뽑았다며 반발을 일축했다.
이것을 계기로 오히려 당세기가 실력이 아닌 그 외적인 이유, 예를 들자면 적가상방의 압력으로 채용된 거라는 헛소문이 퍼져 나가고 말았다.
그러자 이후로 당세기는 청송표국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고,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당세기 역시 어떤 소문이 돌고 있는지 알았다. 그래서 자신을 무시하는 표사들의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건 당세기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맞았다.
그를 무시하는 표사들의 행동은 첫 표행을 나오는 오늘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중이었으니까.
당세기가 이러고 있는 사이, 표행을 이끌고 있는 강대위 표두가 말을 멈추며 소리쳤다.
“오늘은 여기서 야숙(野宿)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수레를 관도 밖으로 끌고 가고, 쟁자수들은 숙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에고! 삭신이야…….”
“흐흐흐! 뼈마디가 시린가?”
“이제 새신랑이 될 몸이잖아. 매일 밤이 즐겁다 보니 뼈가 좀 삭았나 보지.”
“하여간 노총각들이라 그런지 너무 부러워하는구만.”
“오냐! 부럽다, 부러워!”
표사들은 저마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당세기 역시 그들과 거리를 두고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고 했다. 매일 장거리를 이동하는 중이니 쉴 때 쉬어 두지 않으면 몸이 버티지 못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당세기가 자리에 앉기 전, 표행을 이끌고 있는 강대위 표두가 그를 불렀다.
“당 표사.”
“네, 표두님!”
당세기가 재빨리 달려오자 강대위 표두는 무표정한 얼굴로 수레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놀러 왔나? 쉬기 전에 표물을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제가요?”
당세기가 되묻자 강대위 표두는 인상을 쓰며 반문했다.
“그러면? 자네는 표사가 아닌가?”
“그게 아니라…… 표행을 시작한 이후로 매일 제가 표물을 확인하고 있는데…….”
표물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히 표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식사를 하기 위해 멈추거나, 야숙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표사가 할 일은 표물을 확인하는 일이다.
당연히 오랜 시간 걷고 나서 표물을 확인하는 것이 귀찮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보통은 표사들이 돌아가면서 표물을 확인하고는 한다.
그러나 당세기는 청송표국에서 출발한 이후로 지금까지 매일 표물 확인하는 일은 도맡아서 하는 중이었다.
이건 매우 부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강대위 표두는 삐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물었다.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표물을 확인하라고 시키는 것이 부당하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표물 확인을 저만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그냥 내 직권으로 자네를 시키는 것뿐이네. 그게 불만이라면 당장 입고 있는 표사복을 벗어 던지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강대위 표두의 모습에 당세기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대위 표두의 말처럼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걸고 있는 당가의 기대도 있었고, 이렇게 돌아가면 당가에 새로운 힘을 주고 있는 풍백을 볼 면목이 없었다.
“……아닙니다. 지금 바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세기는 대답과 함께 표물을 확인하기 위해 수레로 향했다. 계속해서 반박을 해 봤자 표두에게 항명한 표사라는 이명만 붙을 뿐이다.
어차피 이 정도 면박은 견딜 만했다.
당가타 지원을 위해 온갖 모욕을 다 겪으며 여기까지 왔던 당세기였다. 그러니 이 정도 부조리는 견딜 수 있었다.
표물을 확인하는 당세기의 뒷모습을 보면서 강대위 표두는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꽤나 버티는군. 이 정도 모욕은 익숙하다는 말인가?’
강대위 표두는 당세기가 싫었다.
누군가의 배경만으로 자신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표국에 들어온 것도 싫었고,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이런 모욕을 감수하면서 버티는 모습도 꼴 보기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청송표국에서 꺼지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원래 다른 표국에서 표두를 하던 강대위 표두는 청송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표행을 다녔고, 손톱만큼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황을 파악하며 일했다.
그 결과, 청송표국에서 표두로 데려가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도 이날은 강대위 표두가 표국 업계에 몸을 담은 이후로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이렇게 들어온 표국에 당세기는 너무나 손쉽게 들어왔으니, 그가 세상에서 가장 꼴도 보기 싫을 수밖에 없었다.
‘고작 당가타 주제에…….’
강대위는 고개를 홱 돌렸다. 더 이상 당세기를 보고 있다가는 아무래도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세기가 한참 동안 표물을 확인하는 동안, 다른 표사와 쟁자수들은 흔히 돼지죽이라 부르는 잡탕밥을 만들어서 먹고 있었다.
무려 네 대의 수레에 온갖 물품이 실려 있었다. 그러니 이걸 혼자 확인하고 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반 시진에 걸쳐서 확인을 마친 당세기가 지친 몸으로 식사를 하려고 돼지죽을 끓인 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당세기를 반긴 것은 텅 빈 솥이었다.
어이가 없어진 당세기가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둘러보니 표사 중 하나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히 아까 밥을 다 먹었던 것을 봤었던 표사였다.
그 표사는 당세기를 보더니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서 말이야.”
“…….”
“왜? 기분 나쁜가? 겨우 저녁밥 가지고 매정하게 왜 그래?”
마치 시비를 거는 것처럼 이죽거리는 표사의 모습에 당세기는 하늘을 올려다보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 들이받아 버릴까?’
하지만 당세기는 결국 참기로 했다.
원래 강호에서는 온갖 사소한 이유로 싸우기도 하지만, 같은 표국 소속인 다른 표사와 겨우 잡탕밥을 가지고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당세기가 뒤돌아서 걸어가자 표사가 툭 내뱉었다.
“아쉽네, 아쉬워.”
당세기가 돌아보자 표사는 히죽 웃고는 밥그릇을 들고 가 버렸다.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내쉰 당세기는 쟁자수가 만들어 놓은 취침 자리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지어 자신의 자리가 없었다.
당세기가 쟁자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자, 쟁자수 몇이 그와 눈을 마주쳤음에도 실실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쟁자수는 진짜 일꾼으로 취업한 사람도 있지만, 표사가 되기 전에 경험을 쌓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당세기를 보고 실실 웃는 이들도 그들이었다.
‘어지간히…… 무시를 받는구나.’
하지만 이 정도로 당세기를 화가 나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말했듯이 이미 이보다 더한 모욕도 받았던 당세기였으니, 지금 같은 일들은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준이었다.
당세기는 자신의 취침 자리를 정돈하고 취침에 들었다.
새벽같이 출발한 표행은 임고산(林姑山)을 지나 소관도로 들어섰다. 이 관도를 따라가기만 하면 목적지인 의황현(宜黃縣)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표행은 대략 사나흘 정도면 끝난다는 말이다. 물론 다시 절강성 상산현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당세기는 더 이상 표사들이나 쟁자수와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럴수록 자신만 비참해지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저들이 자신을 절대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철저히 혼자서 지냈다.
그래서인지 소관도로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보다 빨리 당세기가 그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정지!”
당세기의 외침에 표행이 멈췄다.
표사들과 쟁자수가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당세기는 방금 전 느꼈던 살기가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런 당세기는 곧 다가온 강대위 표두 때문에 귀 기울이던 것을 방해받기 시작했다.
“당 표사! 왜 표행을 멈춘 건가!”
“방금 전 기척과 함께 살기를 느꼈습니다. 인근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들이 있는 것이 분명…….”
“헛소리! 나도 아무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네가 기척을 느꼈다고?”
강대위는 당세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애초에 당세기가 아무런 능력도 없이 적가상방을 배경 삼아 표사로 발탁되었다고 믿는 강대위였다. 그러니 당세기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부렁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표행을 멈추는 것은 표두의 권한이다! 아무리 표사라고 하더라도 허위로 표행을 멈춘 것은 큰 죄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강대위 표두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당세기가 무언가를 느끼고, 기척이 느껴진 곳을 향해 발밑에 있던 조약돌을 발끝으로 차서 날렸다.
쐐애액!
제법 매서운 소리를 내고 날아간 조약돌을 누군가가 덥석 잡았다.
“이것 봐라? 어떻게 눈치챈 거지?”
그러면서 수풀에서 한 사내가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강대위 표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표사들이 다급히 병장기를 뽑으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경계하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은 상태였다.
강대위 표두는 사내를 바라보며 버럭 소리쳤다.
“청송표국의 표행이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것인지 말하라!”
그러나 사내는 그런 강대위 표두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음을 지었다.
“내가 숨어 있었는지, 아니면 낮잠을 자고 있었는지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하나?”
“지금 숨어 있었다는 걸 부정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너는 내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잖아. 그런 주제에 내가 숨어 있었는지, 뭐하고 있었는지 네가 어떻게 아냐고.”
이죽거리는 말에 강대위 표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사내는 대놓고 강대위 표두가 자신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조롱하는 중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당장 네가 누군지! 무슨 용무로 이곳에 숨어 있었는지 밝히지 않으면 청송표국의 손속이 맵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강대위 표두의 말에 표사들이 병장기를 앞세우며 사내를 포위하듯 자리를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내는 여유가 있었다.
여전히 비웃음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섭대명이라고 한다. 어때? 이제 만족하나?”
사내, 섭대명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강대위 표두는 흠칫 놀랐다.
소면살(笑面殺) 섭대명.
강소성 사파 중 제법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고수였다. 특히 그의 별호처럼 웃는 얼굴로 사람을 쉽게 죽인다고 하여 강소성에서는 악명이 자자한 사람이기도 했다.
섭대명과 같은 사람이 숨어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절대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무슨 용무로 숨어 있었던 거지?”
“그런 쓸데없는 질문이 있나?”
“어서 대답해라!”
“당연히 너희가 운송하고 있는 표물에 관심이 있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던 것 아니겠나.”
강대위 표두는 빈정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하의 소면살 섭대명이 표물을 탐하다니, 언제부터 녹림도가 되기로 한 건지 모르겠군.”
“저런, 착각하고 있군. 우리가 너희 표물을 노리는 건 재물을 탐내서가 아니야.”
“그러면 무엇 때문이라는…….”
말을 하던 강대위 표두가 말을 멈췄다. 무언가 섭대명의 말에서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강대위 표두가 다시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우리…… 라고?”
섭대명은 별호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그러자 청송표국의 수레를 중심으로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대략 삼십여 장 거리를 두고 수풀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강대위 표두는 자신들이 함정에 빠진 거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표사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채고 수레를 중심으로 포진했다. 지금부터는 섭대명 하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니, 무엇보다 표물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강대위 표두는 이를 악물고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몇몇은 낯이 익었다.
당연히 모두 강서성에서 제법 유명한 사파의 고수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은 모두 각자 따로 활동하던 사파 고수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함께 나타나서 청송표국의 표물을 노리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함께 움직이는 것이오? 설마 함께 문파라도 세운 것이오?”
강대위 표두의 말에 섭대명은 피식 웃었다.
“뻔뻔하네. 방금 전까지는 말을 놓더니,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자마자 바로 존대하는 건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니 강대위 표두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원래 강호가 이런 곳이니까.
“궁금해하니 대답은 해 줘야지. 딱히 문파를 만든 건 아니야. 그냥 서로 노리는 것이 같다 보니, 물건을 손에 넣을 때까지는 서로 손을 잡기로 했을 뿐이지.”
“노리는 물건이라니, 왜 청송표국의 표물을 노리는 것이오? 우리 표물은 적가상방에서 점포에 보내는 물품일 뿐이오.”
“글쎄, 우리가 들은 정보는 그게 아니던데?”
“그게 무슨…… 이건 그저 사람들이 사용하는 생필품일…….”
“나도 그렇게 알았는데, 듣자 하니 청송표국 표물에 화홍이 숨겨져 있다고 하더라고.”
“화, 화홍?”
강대위 표두는 상상도 못 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너무나 당황하고 말았다. 여기서 왜 갑자기 마검쟁탈의 화홍이 튀어나온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강대위 표두는 빠르게 가늠을 해 봤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는다!’
아무리 가늠을 해 봐도 답은 같았다.
섭대명만 하더라도 강대위 표두가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를 제외하고도 이곳에는 강대위 표두와 비슷한 수준의 무공을 가진 사람이 적어도 세 명은 보였다. 나머지는 얼굴을 몰라서 가늠도 못하는 상태였고 말이다.
그에 비하여 자신들은 비교하기도 민망했다.
자신은 간신히 일류고수에 걸쳐 있었고, 표사들은 잘 쳐줘도 이류무인 수준이었다.
심지어 수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비록 쟁자수들도 어느 정도 칼질을 할 줄 알지만, 이들까지 다 해 봐야 숫자가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 싸우게 된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강대위 표두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표물을 포기하고 물러나겠소.”
“으하하하! 표사가 표물을 포기하다니, 어지간히 살고 싶은 모양이구나!”
조롱하는 듯한 섭대명의 말에 강대위 표두는 물론이고, 표사들까지 수치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나마 쟁자수들은 잘하면 살아남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눈동자를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강대위 표두는 섭대명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표물을 손에 넣을 수 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섭대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달랐다.
“그건 곤란한데. 미안하지만 그냥 보내 줄 수는 없지.”
“이익! 우리와 사생결단(死生決斷)을 내겠다는 말이오?”
“너희들 품에 화홍을 숨기고 있는 것일 수 있잖아.”
“그렇다면 몸수색을…….”
“그리고 너희를 그냥 보내면,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우리가 곤란해질 것 같거든. 그러니까 너무 발악하지 말고 여기서 죽어 줘.”
이제야 강대위 표두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놈들…… 처음부터 우릴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구나!”
그러자 섭대명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걸 이제야 알았어? 우리가 왜 너희를 살려 보낼 거라 생각하는 건데?”
강대위 표두가 소리쳤다.
“모두 표물을 중심으로 진을 쳐라!”
어차피 싸워야 하고, 죽어야 한다면 한 놈이라도 데리고 가겠다는 마음이었다.
쟁자수들이 표물을 중심으로 둥글게 서며 병장기를 앞세웠고, 그들의 앞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사들 다섯 명이 섰다.
평소라면 표물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포진을 하는 것이겠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가 아니다. 후방에서 기습을 당하는 걸 막기 위해 수레와 쟁자수가 자리를 잡아 주는 것이다.
당세기 역시 다섯 명 중 하나로 서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를 얼마나 믿지 못하는 건지, 그의 뒤에는 후방을 지켜줄 쟁자수가 단 한 명도 서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당세기가 그저 능력도 없는 표사라 생각하여 그와 함께 있으면 더 빨리 죽을 거라 생각하고 가까이 오지 않은 것이다.
그런 당세기의 눈에 섭대명을 향해 맹렬히 달려드는 강대위 표두가 보였다.
두 사람이 부딪치기 시작하자, 이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사파의 무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쟁자수들 대부분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버렸다.
‘뒤졌다! 뒤졌다고!’
‘이렇게 가는구나…….’
‘난 죽을 수 없어! 내, 내가 죽으면 내 딸은 어쩌고!’
목숨을 걸고 싸우기 위해서 쟁자수를 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표국이라고 하더라도 매번 표행마다 싸우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녹림과 적당한 통행료를 지불하고 지나갈 뿐이고, 간혹 근본도 없는 산적이나 노략꾼들이 나타나면 표두와 표사가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표행을 나섰다가 목숨을 잃는 쟁자수의 수는 오히려 표사보다 적었다.
표사들은 얼굴에 전의(戰意)를 보이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자신들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중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단순히 옥쇄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싸움이 시작되면 포위망을 뚫고 도주할 계획을 머릿속에 모두 갖고 있었다.
물론 자신들보다 더욱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는 사파의 고수들의 포위를 뚫는 것이 먼저지만 말이다.
당세기는 잔뜩 긴장한 눈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사파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이제 드디어 실전이다!’
지금까지 당세기가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지금 당세기의 마음은 긴장과 두근거림이 섞여서 기분을 고양시키고 있었다.
이런 당세기의 뇌리에 당한수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 강호에 나가서 싸우게 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강호초출은 싸움이 일어나면 긴장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모두 발휘하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렇기에 문파에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법에 대해서 따로 교육할 정도였다.
당세기는 숨을 길게 내쉬며 만류귀원신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내기가 혈도를 따라 움직이며 급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안정시켜 줬다.
당세기의 흥분해 있던 눈빛이 점차 차분하게 변해 갔다.
이런 당세기를 향해 사파의 무인 네 명이 달려왔다.
“크흐흐! 목을 내놔라!”
“죽여! 죽여 버려!”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사파의 무인들을 본 당세기는 소매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빠르게 무언가를 던졌다.
쐐애액!
소매에 감춰진 당세기의 손에서 튀어나간 것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추혼전(追魂箭)이라는 작은 화살 모양의 암기였다. 당연히 사천당가에서 복원한 암기 중 하나였다.
두 개의 검은 화살이 비쾌하게 허공을 가르며 달려오는 사파의 무사 두 명에게 날아갔다.
“암기다!”
추혼전이 자신을 노리는 것을 본 사파의 무인들이 병장기로 막아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병장기가 추혼전을 막기 전에 추혼전이 기이하게 비틀리더니 궤도가 바뀌는 것이 아닌가.
사천당가의 성명절기 중 하나인 구환살이었다.
“으헉!”
“컥!”
사파의 무인들이 대응하기도 전에 추혼전은 그들의 머리와 심장을 파고 들어 목숨을 앗아 갔다.
동료 두 명이 죽는 사이에 거리를 좁힌 사파의 무인 두 명이 겨우 사 장 정도 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달려오느라 동료가 죽은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당세기가 허리에 두르고 있던 채찍을 풀어 힘껏 휘둘렀다.
촤악!
채찍이 지면을 가르고 지나가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연이어 채찍은 앞에서 달려오는 사내를 향해 꿈틀거리며 움직여 갔다.
잊혔던 사천당가의 금룡편법이 다시 강호에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보기만 하더라도 심상치 않은 채찍의 움직임에 사파의 무인은 바짝 긴장하며 당세기를 향해 달려가던 것을 멈췄다.
그러나 다른 사파의 무인이 그를 추월해서 당세기를 향해 달렸다.
당세기의 채찍은 지체하지 않고 요란하게 채찍을 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채찍이 마치 난동을 부리는 용처럼 꿈틀거리며 사파의 무인의 하체를 휩쓸어 갔다.
“흥! 이런 것쯤이야!”
사파의 무인은 손에 들고 있던 검에 경력을 잔뜩 담아 자신의 발목에 뱀처럼 똬리를 트려고 하는 채찍을 베어 갔다.
자신이 있었다.
그는 강서성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파의 무인이었고, 그에 비하여 상대는 고작 이십대로 보이는 표국의 이름 없는 표사일 뿐이니까.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탱!
채찍을 베어 가던 검이 채찍의 탄성에 의하여 퉁겨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허무하게 퉁겨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기세가 얼마나 강했는지, 검이 손아귀를 찢고 나갈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헉!”
무인이 당황하여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순간, 채찍이 그의 전신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짜자자자작!
순식간에 옷이 걸레가 되고 온몸이 채찍에 걸레처럼 찢겨져 나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그의 몸에는 온통 그물처럼 생긴 상처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뒈져라!”
그사이에 지척까지 도착한 사내가 당세기를 향해 그의 덩치처럼 커다란 대감도를 휘둘러 왔다.
쿠아악!
위압적인 바람이 그의 대감도를 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채찍은 장병기다. 그러니 근거리에서는 단병기보다 운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금룡편법은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근거리용 초식이 준비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거리를 벌렸을 상황에 비하면 불편한 건 사실이다.
당세기 역시 이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채찍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당세기는 자신을 일도양단의 기세로 가르려고 하는 대감도의 옆면을 정확하게 후려쳤다.
따앙!
쾅!
가벼운 소리와 함께 대감도의 궤적이 바뀌며 지면에 박혔다.
당세기는 경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을 느끼며, 훤하게 드러난 사내의 늑골을 향해 사천당가의 비전무공인 삼양수의 초식을 때려 박았다.
퍼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오공에서 피를 뿜으며 허공을 훨훨 날아가다가 지면을 굴렀다. 지면에 떨어진 이후에도 꼼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이미 절명한 것이 분명했다.
“후우, 후우, 후우.”
당세기는 숨을 고르며 자신이 만든 결과를 바라봤다.
제법 명성이 높은 네 명의 사파 무인이 모두 숨이 끊어진 채로 죽어 있었다.
그제야 당세기는 자신이 가진 무공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강하다!’
이런 당세기의 귀에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사파의 무인들을 상대로 힘겹게 대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 막아! 뚫리잖아!”
“크악!”
“나 좀…… 나 칼에 찔렸어…….”
“막지 않으면 다 죽는다!”
온갖 고성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꾹 다물은 당세기가 몸을 날렸다.
자신은 정파였다. 그리고 정파라는 것에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아무리 인정하지 않고 괴롭혔던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죽어 가는 걸 볼 수는 없으니까.
* * *
“크하압!”
강대위 표두는 거친 기합과 함께 검을 맹렬히 흔들며 평생 수련해 온 비류검법(飛流劍法)의 절초를 펼쳤다.
그러나 평소와 달랐다.
분명 언제나 자신이 위기에 빠지면 한 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해 줬던 비류검법의 절초였지만, 이번에는 불길한 느낌만이 들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섭대명이 자신의 절초를 너무나 쉽게 막아 낼 것이라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는 섭대명이 손에 들린 검으로 강대위 표두가 펼친 초식을 마치 핥듯이 어루만지더니 이내 너무나 손쉽게 옆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부드러움으로 힘을 제압한다는 유능제강(柔能克强)의 원리가 들어간 화경(化勁)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쉽게 밀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야지만 가능한 수라는 말이다.
강대위 표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
자신이 포기하면 혼자만 죽는 것이 아니다. 그를 믿고 있는 표사와 쟁자수들도 모두 목숨을 잃는 거라 생각했다.
이를 악문 강대위 표두가 힘겹게 비류검법의 초식을 풀어놨다. 그러나 섭대명은 약 올리기라도 하듯이 그런 강대위 표두의 초식을 하나하나 해체하듯이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것이다.
지금 섭대명은 강대위 표두를 조롱하는 중인 것이다.
‘흐흐흐! 어디 계속 발악해 보라고.’
소면살이라 불리는 섭대명은 언제나 이렇게 약자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는 걸 즐겼다. 사파다운 악취미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상황이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크악!”
“이, 이놈은 뭐냐!”
“암기 조심해! 암기를 던진…… 끄륵…….”
“거리를 두지 마! 암기를 던지잖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당연히 청송표국의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죽어 나가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 봐도 이 비명 소리는 자신의 한시적인 동료들의 것인 듯했다.
섭대명은 슬쩍 시선을 돌려봤다.
그러자 표사로 보이는 한 사내가 사나운 호랑이처럼 자신의 동료들 사이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는 채찍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장법을 펼치고 있는 표사는 거리가 떨어져 있는 적을 향해서는 화살처럼 생긴 암기를 연신 던지고 있었다.
그의 암기가 기묘하게 궤도를 바꿔 가며 날아갈 때마다 자신의 동료들은 그것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암기를 몸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암기를 피하는 동료도 있었지만, 암기는 간혹 그것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궤적을 바꿔 쫓아가기도 했다.
이런 표사를 상대하기 위해 몰려가면 채찍이 사납게 움직이며 차근차근 그들의 수를 줄여 갔고, 간혹 채찍이 움직이기 힘들게 접근하는 자들에게는 매서운 장법이 날아들었다.
섭대명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저놈은 뭐야!’
아무래도 이대로 놔두면 저 표사의 손에 자신의 동료들이 모두 죽어 나갈 것 같았다.
실제로 표사가 날뛰며 시선을 끌어모으자 손에 여유가 생긴 표사와 쟁자수들이 오히려 동료들의 배후를 노리는 중이었다.
강대위 표두는 섭대명이 계속 힐끔거리는 것을 보고 그 역시 시선을 돌려봤다. 그러자 그의 눈에 당세기가 어마어마한 무위를 바탕으로 오히려 사파의 무인들을 압도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세, 세상에…… 저게 당 표사가 가지고 있던 무공이라는 말인가?’
잘해 봐야 이류무인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던 당세기는 누구나 확실히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일류고수의 무위를 뽐내는 중이었다.
당연히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당세기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저 정도 무위라면 청송표국 내에서도 그를 상대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잘 지내 보라고 한 것이구나!’
강대위 표두는 대표두가 자신에게 당세기와 잘 지내면 크게 득이 될 것이라 말한 걸 떠올렸다. 그때는 그저 당세기 뒤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적가상방이 적당히 돈을 찔러 줄 거라는 말로 알아들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차라리 대놓고 말을 해 줄 것이지…….’
저런 고수를 매일같이 표물을 확인하라고 시키고 온갖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걸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섭대명의 표정이 들어왔다.
얼굴에 있던 웃음기는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그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다급함도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저것은 모두 당세기 때문일 것이다.
‘붙잡아 둬야 한다!’
섭대명은 이곳에 있는 사파의 무인들 중 가장 강력한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당세기라 하더라도 섭대명까지 가세한다면 쉽지 않을 터였다.
강대위 표두는 섭대명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모든 내공을 검에 담아 아끼고 있던 비류검법의 구명절초를 펼쳤다.
무공 이름처럼 비쾌하게 움직이는 강대위 표두의 검이 여러 개의 검영을 만들어 내며 섭대명의 요혈을 향해 밀고 들어갔다.
시간을 끌려고 하는 강대위 표두의 의도를 읽었는지, 섭대명은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난폭하게 검을 휘둘러 강대위 표두의 검영과 정면으로 부딪쳐 갔다.
차라리 힘으로 부숴 버리고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섭대명의 의지였다.
쾅! 쾅! 쾅! 쾅! 쾅!
섭대명의 검이 강대위 표두가 만들어 낸 검영을 압도적인 힘으로 부숴 버렸다. 검영이 하나씩 부서질 때마다 강대위 표두는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뿌드득!
이를 부서져라 갈은 섭대명이 검에 내공을 잔뜩 집어넣었다.
웅웅웅!
얼마나 내공을 쏟아부었는지, 그의 검에서는 심상치 않은 검명(劍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한 강대위 표두를 향해 섭대명이 크게 고함치며 검을 휘둘렀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방해하지 마라!”
변화보다는 힘을 담고 있는 섭대명의 검은 강대위 표두가 감히 피할 수 없도록 움직이며 흉흉한 기세를 드러냈다.
목숨을 버릴 것이 아니라면, 강대위 표두는 그 검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방법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대위 표두 역시 혼신의 내공을 담은 검으로 섭대명의 검과 부딪쳐 갔다.
꽈앙!
귀에 통증이 올 정도로 강렬한 폭음이 울리고, 강대위 표두는 결국 비척거리며 몇 걸음 물러서서 피를 토하며 풀썩 주저앉았다.
힘 대 힘의 대결이었기에 결국 꽤 중한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강대위 표두가 주저앉는 것을 보지도 않고 섭대명이 땅을 박차며 뛰어올라 당세기를 향해 쇄도하며 소리쳤다.
“너는 대체 누구냐!”
당세기의 무공을 봐서는 절대 일반 표사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지금 당세기가 보여 주는 무공은 표두인 강대위보다 더 대단했으니까.
사파 무인 하나의 목을 채찍으로 휘감고 있던 당세기는 섭대명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서둘러 채찍을 잡아당겼다.
우드득!
채찍에 감겨 있던 사파 무인의 목이 부러져 나가는 소리와 감촉이 채찍을 통해 전해졌다.
당세기는 섭대명을 향해 추혼전을 연이어 날렸다. 그러자 당세기의 손을 떠난 추혼전이 각각 다른 궤적을 그리며 섭대명을 향해 날아갔다.
“어림없다!”
팅! 팅! 팅! 팅!
섭대명이 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날아오는 추혼전을 모두 쳐 냈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당세기의 채찍이 교룡처럼 움직이며 섭대명에게 다가왔다.
“헙!”
설마 바로 채찍이 자신을 노릴 거라 생각지 못했던 섭대명이 헛바람을 들이켜며 황급히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러자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당세기의 채찍이 난자하며 지나갔다.
그러나 당세기의 공세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당세기가 손목을 살짝 움직이자 채찍이 지면을 한 번 내리쳤다가 허공에 몸을 띄우고 있는 섭대명을 향해 치솟아 오른 것이다.
섭대명이 이를 악물며 검에 잔뜩 내공을 담아 채찍을 향해 휘둘렀다. 채찍을 잘라 버리려는 것이다.
이걸 짐작하고 있었는지, 당세기가 다시 손목을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섭대명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던 채찍이 힘이 풀리는 것처럼 낭창낭창하게 변하더니 섭대명의 검을 피했다.
그리고 연이어 섭대명을 돌돌 감아 버릴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기겁한 섭대명이 자신을 묶으려는 것처럼 다가오는 채찍을 향해 장력을 쏘아 냈다.
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채찍이 출렁이며 잠시 움직임이 멈췄다. 그 짧은 찰나에 섭대명은 다급히 천근추(千斤墜)를 쓰며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지면에 내려선 섭대명은 숨을 고를 틈도 없었다. 그를 환영하고 있는 당세기의 추혼전이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놈! 절대로 나보다 약한 놈이 아니다!’
이대로 있으면 결국 자신이 당할 거라 생각한 섭대명이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멍하니 자신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는 동료들이 보였다.
‘이 미련한 새끼들이…….’
섭대명이 버럭 소리를 쳤다.
“보고만 있을 거냐! 이 새끼 뒤를 치라고, 이 병신 새끼들아!”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사파의 무인들이 당세기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니 청송표국의 표사들 역시 서둘러 그들이 당세기를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막아라!”
“당 표사를 보호해! 그래야 살아!”
“당 표사를 노리려면 나를 먼저 죽여야 할 것이다!”
당세기는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표사들의 목소리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시비를 걸던 그들이 이렇게 말하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섭대명은 당세기의 채찍을 상대하면서 동료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지만, 보다시피 표사들에게 막혀 당세기를 공격할 수 있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진지하게 섭대명은 도주하는 것을 떠올렸다.
어차피 사파인 섭대명이기에 도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솔직히 당세기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무리하지 말고 도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죽으면 그냥 개죽음일 뿐이니까.
그런데 섭대명이 이렇게 생각을 한 순간, 당세기가 채찍을 거둬들이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섭대명이 당세기를 바라봤다.
그러나 당세기는 아무런 말도 없이 완전히 섭대명에게서 등을 돌리고 다른 사파의 무인들을 향해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이런 당세기의 모습에 섭대명이 뭐라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목소리가 아니라 목을 타고 올라온 무언가와 함께 기침이 먼저 터져 나왔다.
“쿨럭, 쿨럭, 쿨럭.”
섭대명은 자신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검게 죽은피를 보며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도, 독?”
그제야 방금 전 당세기가 채찍을 휘두르는 도중에 다른 손이 쓸데없이 부채질하는 것처럼 움직였던 것이 떠올랐다.
‘그게…… 하독하던 것이었나?’
당세기는 풍백처럼 흔적도 없이 하독하는 수법까지는 아직 익히지 못했다. 그러나 섭대명을 상대하면서 그 정도로 고절한 하독술은 보다시피 필요도 없었다.
섭대명은 연신 검게 죽은피를 토하고는 이내 풀썩 쓰러졌다.
직후, 당세기는 청송표국의 표사들과 대치 중인 사파의 무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당세기가 싸움에 가세하자 사파의 무인들은 빠르게 항복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도 죽어 가고 있는 섭대명이 보였기에 죽고 싶지 않으면 항복밖에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게 싸움은 곧 끝났다.
싸움이 끝난 이후, 항복한 사파를 제압하여 묶은 다음에야 한시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비록 당세기의 활약으로 인하여 사망자는 없어도 부상자는 꽤 많았다. 그들을 수습하는 것이 첫 번째였고, 몇몇 표사들은 표물이 안전한지 확인을 해야 했다.
어차피 적가상방의 물품들은 약간의 호초를 제외하고 모두 생필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약간 손상이 간 정도로 상품으로 가치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당세기 역시 표물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강대위 표두가 그를 부르며 다가왔다.
“당 표사.”
“네, 표두님.”
강대위 표두는 당세기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붙잡으며 힘겹게 말했다.
“내가…… 그동안 잘못했네.”
“네? 아니, 갑자기 무슨…….”
“내가 잘못 생각했어……. 나는 자네가 아무런 능력도 없이 모종의 이유로 적가상방의 덕을 보며 들어왔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건 내 편협한 생각이었네. 그동안 내가 저질렀던 불평등한 명령을 용서해 주게…….”
당세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강대위 표두가 사과하는 것을 본 표사들과 쟁자수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저희도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는데…… 제가 선을 넘었습니다.”
“잠자리를 가지고 장난쳐서 죄송합니다.”
“그런데도 구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족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과를 하자 당세기는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언제나 무시와 경멸을 당하는 삶을 살아왔었기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과를 받는 것은 처음이고 어색했다.
하지만 곧 마주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인사를 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전까지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이제부터는 서로 아는 사이니 잘 지내 보자는 당세기의 완곡한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