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224화
개파식에 딱 정해진 수순이 있는 건 아니다.
공통적으로 똑같은 부분은 친분이 있는 사람을 손님과 증인으로 부른다는 점이고, 나머지는 모두 조금씩 달랐다.
보통 군소 방파가 개파식을 할 때는 손님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벌이는 형식으로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잔치 도중에 장문인이 될 사람이 호기로운 선언을 하는 것은 당연했고 말이다.
군소 방파가 아니라 조금 더 규모가 있는 문파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딱히 어떤 양식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새로 개파하는 문파가 불교나 도교 계열 문파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청송무관주였던, 이제는 청송장주인 우검학은 무당파의 제자다.
무당파는 중원에 있는 도교 문파 중 가장 유명한 곳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청송장의 개파식은 도교 형식으로 치러지는 중이었다.
도교 형식이라는 말은 간단히 말하자면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치르고, 앞으로 청송장을 지켜 주십사 하는 행사와 같았다.
풍백은 정숙한 분위기에 치러지는 청송장의 개파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무장 위에는 으리으리하게 상제를 위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고, 장주인 우검학은 한 도사(道士)가 진행하는 법도에 따르고 있었다.
청송장의 개파식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연무장 주위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저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당연히 적가방상주인 적호경과 진덕양도 함께 있었다.
풍백은 그저 멀리서 개파식을 하는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빠르구나.’
원래라면 청송장이 개파식을 벌이는 건 몇 년이 더 지난 이후였어야 했지만 풍백을 통해 적가상방과 손을 잡으면서 몇 년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우검학은 모를 것이다. 풍백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큰 도움을 받은 것인지 말이다.
물론 그때 도와준 것만으로도 적가상방에게 무한정 호의를 보내는 우검학이지만, 원래 자신이 걸었어야 할 삶을 알았다면 풍백에게 절을 하며 감사를 표했을 일이다.
어차피 풍백은 그런 인사를 받고 싶은 생각도 없기는 했다. 그저 앞으로도 계속 청성장과 적가상방이 동반자라는 위치로 함께할 수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러면서 풍백의 시선은 제사를 주관하는 노도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대략 환갑은 넘은 듯한 모습의 노도사는 강직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모습과 달리, 그에게서는 다른 어떤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풍백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몇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이 무당파에서 오신 도사님이라는 거지?”
“그렇다고 하더라.”
“관주님…… 아니지, 장주님은 무당파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무당파 도사님이 오셔서 직접 개파식을 주관해 주시고…….”
“몰랐어? 장주님이 무당파 일대제자라고 하더라고.”
“오! 그랬어? 어쩐지 청송표국이 이렇게 단시간에 두각을 드러낸 이유가 있었네.”
“처음에 표국을 만들기 전에는 엄청 힘들었던 모양이더라고. 듣자 하니 적가상방 소상방주가 장주님을 도와서 표국을 만들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 적가상방에서 나오는 모든 상행을 청송표국에 밀어주는 중이고.”
사람들은 한동안 청송표국과 적가상방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눴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점차 연무대 위에 있는 노도사를 향해 갔다.
“저 무당파 도사님은 뭐하는 분이래? 강호에서 유명한 분이래?”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 저 도사님의 도호를 들어도 아는 사람이 없던데?”
“도호가 뭔데?”
“뭐라고 했더라. 현…… 현…… 아! 현호자였을 거야.”
“현 자 항렬이면 아마도 현 장문인과 같은 항렬일 텐데…….”
“원래 무당파 같은 곳에서도 무공을 익히는 도사가 있고, 도법에 대해서 공부하는 도사가 있다고 하더라. 아마도 도법을 공부하시는 분 아닐까?”
“그래? 옆에 보니까 장주님이 현호자라는 도사님에게 사부님이라 부르면서 엄청 극진하게 대하던데…….”
“당연히 극진해야지. 항렬이 현 자 항렬이잖아. 그리고 장주님이 무당파에서 무공만 배웠겠어? 저 도사님에게 도법에 대해서도 배웠나 보지.”
“그런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풍백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저들이 오늘 했던 얘기를 기억하고 있다면 기절초풍하겠군.’
현 강호에서 무당파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있는 절대고수가 현호자였다.
심지어 그냥 벽을 넘은 절대고수가 아니다. 강호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사파십대고수 중 하나를 찍어 누르며 나중에 칠대무신 중 하나로 추대를 받는 절대고수가 바로 현호자다.
현호자를 바라보는 풍백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새외에서 암향거를 통해 소문과 정보로만 들었던 현호자였다. 특히 그가 강호에 등장하며 사파십대고수 중 하나를 꺾었다는 정보를 봤을 때는 눈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런 현호자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제례를 주관하고 있다니, 이 기분은 마치 동경하던 누군가를 직접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풍백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송장의 개파식이 서서히 끝나 갔다.
“으하하하! 이런 좋은 날에 술이 빠지면 쓰나!”
“어이쿠!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수창현(遂昌縣)에서 상방을 운영하는…….”
“당연하지요. 제가 이래 봬도 적가상방과 직거래를 튼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사람들과 친분을 나눴다.
청송장 개파식이 끝나고 연회를 위해 구주현에서 가장 큰 주점과 반점을 통째로 예약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고, 새로운 누군가와 안면을 트며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있었다.
이건 적가상방이라고 하더라도 다를 것이 없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반면, 적호경과 진덕양은 한 번이라도 말을 붙이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을 하나하나 인사하느라 바쁘다는 정도일 것이다.
“상방주님! 유가상방의 유금전이 인사를 드립니…… 꾸엑!”
“비켜! 접니다, 상방주님! 저 기억하시죠? 이 년 전쯤에 저희 강산현에서…… 꽥!”
“순서를 지켜라! 순서를!”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정말 감격입니다…… 한 번 꼭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청송장 개파식에 직접 참석을 하실 줄은…….”
온갖 사람들이 적호경과 진덕양에게 몰려들었다. 오죽하면 서로 먼저 인사를 하려다가 드잡이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드잡이를 하는 사람은 오히려 제일 뒤로 강제로 밀려나서 다시 저들끼리 싸우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들면 당연히 크게 당황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마도 얼마 전의 적호경과 진덕양이라면 똑같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상방으로 거듭나고 있는 적가상방의 상방주와 총관이었다. 이 정도 사람이 몰려드는 일은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적가상방에서 데려온 호위무사들이 사람들이 너무 적호경과 진덕양에게 달라붙는 것을 막아 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풍백은 한쪽 구석에서 차를 마시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혼자 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마도 혼자 왔었다면 지금 적호경과 진덕양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이 모두 먹잇감을 본 늑대처럼 풍백에게 달려들고 있을 것이다.
간혹 적호경과 진덕양을 만나고 싶지만,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풍백에게 다가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고우길 때문에 다가오다가 슬쩍 되돌아가고는 했다.
덕분에 풍백은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적호경과 진덕양이 이곳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아니었다. 이 자리가 청송장의 개파식이니만큼 당연히 우검학에게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 온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적가상방은 아무래도 상계의 인물들이 주를 이루지만, 청송장은 강호에 속하기에 절강성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문파와 무인들, 청송표국과 친분을 다지고 싶은 상인들까지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인사는 당연히 풍백도 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개파식이 벌어지기 전에 이야기를 했기에 굳이 저 사람들 틈바구니에 낄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한 사람이 무사 두 명을 대동하고 나타나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 저 사람이 여길 어떻게…….”
“우와아! 어…… 마어마한 미인이다…….”
“누구야? 저 사람이 누군데? 누군데 그래?”
“절강제일미잖아, 절강제일미! 서문세가주의 금지옥엽 서문세령!”
“헉! 저 여자가 절강제일미 서문세령이야?”
그랬다.
천상의 선녀와 같은 미모를 가지고 고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은 서문세가의 서문세령이었다.
풍백은 서문세령의 예기치 못한 등장에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현재 서문세가의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지금 다른 문파의 개파식에 참석할 그런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니지, 그래서 더욱 참석한 걸지도 모르지.’
아직 서문세가가 건재하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 개파식에 참석한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강호의 문파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리 보기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리고 애초에 상황이 괜찮았다면 강호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서문세령이 아니라, 서문세가의 차기 가주가 될 소가주 서문표가 나타났어야 했다.
풍백의 귀에 주변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아니, 서문세가가 지금 다른 문파 개파식에 참석할 정신이 있다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지금 서문세가가 무너지냐 마냐 말이 많은데.”
“잠깐, 설마…… 지원을 요청하려고 온 건 아닐까?”
그 말에 풍백은 그건 좀 참신하다는 듯이 입술에 힘을 주며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이전까지 정식 강호 문파라고 하기는 조금 부족한 무관이었지만, 청송무관은 청송표국을 거느리고 있기에 그 힘이 적지 않았다. 절강성 남부에 있는 문파 중에서 청송무관을 쉽게 적으로 돌릴 곳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 청랑파에 밀리고 있는 서문세가라면 이제 개파식을 올린 청송장의 힘을 빌리고 싶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검학 장주가 쉽게 도와줄 리가 없을 거야.’
현재 청랑파에는 전대의 거마인 고죽마군이 있었다. 적어도 고죽마군을 상대할 고수가 있지 않은 이상, 서문세가를 지원하다가는 함께 휩쓸려 나갈 수 있었다.
강호의 정의를 부르짖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자리를 기어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문세가와 적가상방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청송장은 대단한 유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에이…… 그건 너무 갔다. 아무리 지금 힘들다고 하더라도 서문세가라고, 서문세가.”
“그것도 옛날 날이지. 너도 알잖아. 요즘 서문세가가 청랑파에 밀려서 휘청거리는 거.”
“그거야 아직 광풍패도가 안 나와서 그런 거잖아. 어차피 서문세가주가 나타나면 한 방에 정리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오려면 벌써 나왔겠지. 모습을 안 보이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니까.”
“무슨 문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광풍패도한테 무슨 문제가 있겠어?”
“모르지. 어쩌면 나이가 있으니 노환으로 쓰러져 있을지도.”
서문세가주 서문자건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었다. 지금 절강성의 최대 의문 중 하나가 바로 서문자건이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이냐는 것이었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일 가지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고. 그나저나 서문세가가 정말 도움을 요청하러 온 거라면…….”
“이제 서문세가도 끝이지. 아무리 청송장이 무관일 때부터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제 개파식을 올린 청송장에게 도와 달라는 건 선 넘는 거야.”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풍백은 서문세령이 우검학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봤다.
서문세령을 보고 백옥같이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다 말하지만, 풍백의 눈에는 오히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으로 보이고 있었다.
‘서문자건이 진짜 일선에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상태…… 라는 건가?’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가와 멋대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상하게도 고우길이 제지를 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린 풍백은 자리에 앉아서 술병을 기울이는 사람을 보고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풍 대협!”
개방 특유의 오의를 입고 빨갛게 주독이 오른 코가 인상적인 사내는 개방의 차기 방주인 후개 풍진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