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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15화 (301/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15화

여명회는 풍백을 놓친 이후로 눈이 혈안이 되어 그를 찾아다녔다.

원래 화홍 때문에 풍백을 쫓았던 여명회지만, 이제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감히…… 날 그런 식으로 농락하고 도망쳐?’

매일 밤, 눈을 감으면 자신의 앞에서 활을 쏘며 도주하던 풍백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여명회였다.

그렇게 무력하게 상대의 의중에 놀아나는 일은 살면서 처음 당해 보는 일이었다.

덕분에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 여명회는 어떻게든 풍백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풍백의 뒤를 쫓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서 쫓아가 보면 이미 사라지고 없던 적이 몇 번인지 몰랐다.

그러는 와중에 꾸준히 들려오는 풍백에 대한 소문은 여명회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농락당한 사사천문이나 다른 사파의 모습에서 자신이 농락당하는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영초자 손정방을 찾아갔다.

무공은 그리 높지 않지만, 호남성에서 손정방보다 뛰어난 추적술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손정방이 나서고 며칠 지나지 않아 풍백을 찾았다는 전서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여명회는 손정방이 남긴 흔적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고 말이다.

풍백은 여명회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여전히 웃는 얼굴로 손정방에게 물었다.

“마지막에 뭐라고 했었지? 벼락을 맞는다고 했던가?”

손정방은 얼른 오해하지 말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무양파 문주인 여명회가 먼저 손정방을 보고 말했다.

“역시 무영초자라는 별호에 걸맞게 훌륭하군. 암군을 이렇게 빨리 찾아낼 줄이야. 어쩌다가 같이 앉아 있는지 모르지만, 살아서 남은 의뢰비 잔금을 받고 싶으면 뒤로 물러나지?”

손정방은 그 말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거짓말을 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의뢰를 받고 풍백을 추적했다는 것을 밝히는 여명회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이 병신 같은 놈이…….’

암군이라 불리는 풍백은 강호에 절정고수라 알려지고 있었다. 그에 비하여 자신은 이류무인에 불과했다.

그나마 경공은 일류고수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라 하지만, 이 정도 가지고 절정고수의 간극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여명회가 절정고수이기도 하고, 객잔에 들어온 그의 수하들만 하더라도 이십여 명이나 되었으니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풍백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어져야 했다.

풍백은 자신과 겨우 식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상황이었다. 그에 비하여 여명회와 무량파의 고수들은 거의 십여 장을 떨어져 있지 않은가.

만약 풍백이 자신부터 죽이고 보겠다는 심정으로 손을 쓰면 죽을 가능성이 너무나 높았다.

‘이러다가 여기서 진짜 죽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손정방의 모습에 풍백은 가볍게 웃었다.

어차피 손정방에게 죄를 물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과거에 손정방이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풍백은 신기한 것을 보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손정방은 이런 풍백의 눈에 더욱 심장이 떨려 가고 있었지만.

“음식이 나왔습니…….”

주방에서 양손에 음식을 들고 밝게 웃으며 나오던 점소이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무량파 무사들을 보고 굳어 갔다. 아니, 객잔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 역시도 모두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풍백은 그런 점소이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뭘 그러고 있어? 배고파 죽겠다. 빨리 가져와.”

객잔에 흐르는 삭막한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하는 풍백의 모습은 조금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점소이는 이미 받은 철전 때문인지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다가와 얼른 음식을 내려놓고 후다닥 도망갔다.

풍백은 여명회가 무량파의 고수들과 함께 객잔을 점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듯이 태연히 나무통에 꽂혀 있는 젓가락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넉넉하게 시켰으니 너도 먹어.”

손정방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여기에 그를 잡으러 와서 눈이 벌게진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태연히 밥을 먹다니, 지금 제정신인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손정방은 무량파가 어느 정도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호남성에서 최고의 문파를 다투는 정도는 아니지만, 무량파가 기침이라도 하면 그들이 있던 일대는 모두 납작 엎드리며 고개를 조아릴 정도는 됐다.

그런 무량파의 장문인이 직접 나타나서 풍백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무량파는 비록 정사지간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에 손속에 사정을 두는 곳이 아니었고 말이다.

손정방은 풍백이 곧 여명회의 손에 목이 달아날 거라고 예상했다.

풍백이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모습을 본 여명회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것 봐라? 밥을 먹어? 네놈은 목숨이 여벌로 몇 개씩은 있는 모양이지?”

여명회는 바로 손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객잔을 무량파의 무사들이 포위하고 있고, 객잔 내부는 자신과 고수들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풍백이 이전처럼 도주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중이었다.

풍백은 그런 여명회의 말에 대답은커녕 대꾸도 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오향장육을 집어 먹기만 했다.

여명회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풍백은 오향장육이 얼마나 맛있는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마저 띠고 있었으니까.

얼굴을 일그러뜨린 여명회의 손이 자신의 허리에 걸려 있는 도파를 향해 움직이려고 할 때, 풍백이 오향장육을 씹으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넌 누군데 나보고 도망쳤다느니, 네 손을 벗어날 수 없다느니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

“뭐, 뭐라고? 나보고 누구냐고?”

여명회는 어이가 없는 풍백의 말에 다시 한번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치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말이 아닌가.

하지만 여명회는 몰랐다.

그에게는 불과 얼마 전의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풍백에게는 너무나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풍백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겨우 한 번 부딪쳤던 사이인 여명회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풍백과 여명회가 부딪쳤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풍백과 얼굴을 맞댄 것도 아니었고 제법 먼 거리를 두고 있었지 않은가.

“그래, 말 잘했네. 그러니까 네가 누군데?”

풍백의 말과 표정을 본 여명회는 지금 묻는 것이 그를 화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 진짜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하! 나를 기억 못해? 네놈이 활을 쏘며 꽁지에 불붙은 것처럼 도망쳤었으면서?”

여명회의 말에 풍백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기억을 더듬어 봤다. 그러면서도 그의 젓가락은 음식을 꾸준히 입으로 가져가는 중이기는 했다.

잠시 후 풍백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네가 누구냐고. 이름이라도 말해야 기억할 수 있을 거 아냐.”

“이런 개 같은 놈이…… 무량파의 여명회다! 아직도 모른다고 해 보시지!”

“무량파? 여명회?”

미안하지만 문파명과 이름을 들어도 여전히 기억이 안 났다.

풍백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쩝…… 네가 누군지 중요한 건 아니지. 그래서 네가 날 찾아온 이유는 뭔데?”

어처구니가 없는 풍백의 말에 여명회는 귀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미 그의 손은 도파를 잡고 언제든지 뽑을 것처럼 움찔거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명회의 손은 굳은 듯이 멈추고 말았다. 풍백의 허리에 있어야 할 화홍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화홍은 어떻게 했지?”

“화홍? 아, 그거? 어떤 이상한 놈이 내게서 뺏어 갔다.”

풍백은 사소주는 기억했다.

사소주를 기억하지 못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이후로 처음으로 죽을 뻔했던 경험이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엄청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으니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굳이 사소주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듣는 귀가 많았으니까.

여명회는 버럭 소리를 쳤다.

“거짓말하지 마라! 네가 다른 누구에게 화홍을 빼앗겼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지금 들었잖아.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

“그래! 거짓말이다! 당장 화홍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면 네 팔다리를 몽땅 부러뜨려 놓고 강제로 말하도록 만들겠다!”

풍백은 피식 웃었다.

“나도 거짓말이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사실이야. 그리고 빼앗긴 나도 가만히 있는데 네가 왜 지랄이신지 모르겠군.”

“뭐 지랄?”

“그럼 뭐라고 말할까? 내 물건을 내가 빼앗겼는데, 전혀 상관도 없는 놈이 왜 빼앗겼냐고 묻고 거짓말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는데.”

“이놈이…….”

“함께 사는 세상 아니냐. 다른 사람들 식사하는 자리에서 교양 없이 그렇게 소리를 빽빽 지르면 되겠어, 안 되겠어?”

여명회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창!

가벼운 소리와 함께 여명회의 도가 도집에서 뽑혀 나왔다.

그것을 본 객잔 내 사람들의 표정이 핼쑥하게 변했다.

강호의 무인들이 싸우는 걸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눈먼 검이나 병장기를 맞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 쉽게 들을 수 있었으니까.

여명회가 도를 뽑는 걸 바라보던 풍백이 말했다.

“무량파인지 유랑파인지 모르겠다만, 어지간하면 객잔에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보내 주지?”

“닥쳐라! 보내도 네놈을 죽인 다음에 보낼 것이다!”

“무량파가 사파였어? 그러다가 너 무서운 정파 고수한테 처맞는 수가 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짜증났다. 자신을 도발하려고 이런 말만 골라서 나불거리는 것 같았다.

여명회는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곤 허공에서 한 바퀴 빙글 돌더니 그대로 풍백을 향해 일도양단의 기세로 도를 내리쳤다.

여명회는 강호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고수였다. 그러니 화가 났어도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있기도 했다.

이미 풍백이 절정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 던지는 한 수는 풍백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수였다.

풍백은 자신을 향해 도를 내리치는 여명회를 보며 혀를 찼다.

“쯧…… 사람이 밥을 먹고 있는데 귀찮게.”

그러고는 자신을 세로로 자를 듯이 위맹하게 내리치고 있는 도를 향해 손을 불쑥 내밀었다.

여명회는 어이가 없었다.

감히 자신의 도를 향해 손을 내밀다니, 팔을 잘라 달라는 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오냐, 네 팔 한 짝을 먼저 잘라 주마!’

여명회는 풍백의 손을 향해 도를 내지르며 더욱 내공을 쏟아부었다. 그의 도에서 절정고수를 상징하는 도기가 더욱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날카로운 도기를 품은 도를 보면서도 풍백은 내밀었던 거둬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여명회의 도와 풍백의 손이 부딪쳤다.

보통 고수의 병장기나 내공이 부딪치면 그 후폭풍은 주위를 요동치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덥석!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풍백의 손에 도기를 밝게 발하고 있는 여명회의 도가 붙잡혀 있을 뿐이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의 도기가 세상 모든 것을 가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도기를 품고 있는 도를 아무런 기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잡히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경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명회의 얼굴을 보면서 풍백은 자신의 손아귀에 잡힌 도를 비틀었다.

따앙!

맑은 소리와 함께 여명회가 술 취한 사람처럼 비척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니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피를 토했다.

“쿠웨엑!”

내공이 잔뜩 담겨 있는 도가 강제로 부러지며 엄청난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량파 고수들이 크게 당황했다. 절정고수인 자신들의 장문인이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여명회를 바라볼 시간이 아니었다.

풍백이 음식을 집어 먹고 있던 젓가락을 홱 던진 것이다.

두 개의 젓가락은 허공에서 몇 번에 걸쳐 궤적을 비틀며 날아왔다. 대충 던진 것으로 보이지만, 풍백이 던진 젓가락에는 사천당가의 구환살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허공에서 교룡처럼 움직이며 다가오는 구환살을 무량파의 고수들이 받아 내기는 무리였다.

“피, 피해…… 컥!”

“크헉!”

“흡!”

짧은 비명과 함께 무량파 고수 네 명이 급소가 뚫리며 그대로 절명해 쓰러졌다. 풍백이 던진 젓가락이 한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뚫고 뒤에 있던 사람까지 죽인 것이다.

쓰러진 무량파 고수들의 이마에는 동그랗게 젓가락이 뚫고 지나간 구멍이 있거나, 젓가락이 절반 이상 박혀 있었다.

그 모습은 사천당가의 구환살이 제대로 펼쳐지면 얼마나 끔찍한 위력을 보이는지 증명하는 것 같았다.

무량파의 고수들은 대응도 하지 못하는 암기술을 선보인 풍백의 모습에 입을 떡 벌리고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런 무량파를 바라보던 풍백이 객잔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막는 사람은 없을 테니 모두 객잔을 떠나시오.”

그러자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하나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느새 일제히 객잔 밖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피를 토하고 있던 여명회는 자신이 본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이, 이런 놈이…… 절정고수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절정고수가 보일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이런 것이 가능했다면, 자신은 아마 화홍을 찾으러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여명회를 보며 풍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너 같은 놈을 모른다고 했을 때 그냥 돌아갔어야지. 그러면 그 비루한 목숨을 조금 더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러고는 풍백이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여명회는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눈으로 풍백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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