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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18화 (298/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18화

호젓하게 지나는 사람도 없는 관도 위를 마차 한 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풍백이 타고 있는 마차였다.

따로 마부를 데리고 오지 않았던지라 마부석에는 고우길이 고삐를 쥐고 마차를 모는 중이었다.

풍백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흘러가는 주변 경관을 지켜보는 중이다. 지루할 만도 할 법한데, 풍백은 눈까지 반짝이며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풍백이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

“참…… 세상은 아름다운 것 같아.”

마부석에 앉아 있던 고우길은 풍백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도련님 상태가 좀……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약속했던 개화현에서 만난 이후로 풍백이 보이는 모습은 고우길에게 조금 충격이었다.

평소 몸이 무겁지 않도록 식사를 많이 하지 않던 풍백이었다. 그런데 다시 만난 풍백은 매번 식사를 할 때마다 거의 식탁에 음식을 가득 쌓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음식은 거의 다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보면 한 십 년 이상 밥을 먹지 못한 사람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이상한 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마차를 탈 때는 주변 경치에 얼마나 푹 빠지는지 온갖 감탄사를 터뜨렸고,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날 때는 흐뭇한 얼굴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한 번은 지나가는 노인에게 인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고우길은 이런 풍백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풍백의 행세를 했던 것처럼 혹시 누가 다른 사람이 면구를 쓰고 나타난 것은 아닌가 의심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밤에 난파칠식을 수련하는 것을 보고 이전처럼 무공을 봐주는 것을 보니 풍백 본인이 맞기는 한 것 같았다.

‘사람이 이렇게 한 번에 홱 바뀌면 죽을 때가 다 됐다는…….’

이런 생각을 하던 고우길이 얼른 그 생각을 털어 버렸다.

앞으로 적가상방에 뼈를 묻고, 풍백에게 충성을 다하려는 고우길이었다. 그런데 풍백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니, 부정 타지 않을까 싶어 마차 밖으로 침까지 뱉었다.

‘그래, 마검쟁탈을 한다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어? 화홍을 챙기지 못하고 돌아오신 것만 보더라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고우길은 조금 더 열심히 풍백을 보좌할 생각을 가졌다.

마부석에서 고우길을 자신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모르는 풍백의 눈에 상산현이 들어왔다.

‘드디어 집이구나!’

아마도 앞으로 한 시진 정도만 이동하면 적가상방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아버지와 숙부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후우…… 후우…….”

풍백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다스렸다.

자신에게는 대단히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만나는 것이지만, 정작 적호경과 진덕양은 불과 한 달 정도 만에 만나는 것이다.

물론 한 달도 충분히 긴 시간이지만, 적호경과 진덕양의 앞에서 지금처럼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라도 보인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진정하자, 진정!’

풍백이 이렇게 감정을 다스리는 사이, 마차는 적가상방에 아무런 문제없이 도착하게 되었다.

* * *

적호경이 진덕양을 슬쩍 바라봤다. 마침 진덕양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서로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백아가 왜 저러냐?’

‘난들 알겠습니까. 애초에 형님 아들 아닙니까? 저한테 물어봤자…….’

‘내가 백아 속마음을 읽을 정도였으면, 이 녀석이 망나니짓을 하고 다닐 때 다잡아 줬겠지.’

‘그것도 그렇네요.’

두 사람이 이런 신호를 주고받게 만든 풍백은 그들의 앞에서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아련한 시선으로 아무런 말도 없이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벌써 일다경에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진덕양이 먼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험! 그래, 화오염장에는 문제가 없었고?”

“네,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행수가 진두지휘하며 일꾼들을 잘 부리고 있었고, 일꾼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월봉을 받으면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해서 행수가 말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풍백이 없었기에 고우길이 직접 확인하고 다녔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풍백에게 전해 줬고 말이다. 듣자 하니 은밀히 암행까지 하면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했다고 한다.

이전에 동해상방이 화오염장을 관리할 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월봉을 받고 있는 일꾼들이었다.

일꾼들은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한다.

화오염장에서 일하고 있는 일꾼들이 받는 월봉은 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비교하더라도 가장 최상위급 월봉은 받는 중이었다.

이전까지는 동해상방에게 착취당하는 그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중이란다.

일꾼들은 이제 자신들이 적가상방의 소속으로 화오염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중이었다. 오죽하면 자식들에게 아비처럼 화오염장에서 일을 하라고 말을 하고 있겠는가.

풍백의 이야기를 들은 적호경과 진덕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적가상방은 그들의 전부였다. 이런 적가상방이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다는 말은 그들에게 가장 큰 찬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꾸준히 신경을 쓰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것은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 어련히 잘하겠지.”

적호경의 말이 끝나자 진덕양이 다시 나서며 물었다.

“지현대인은 왜 너를 찾았다고 하더냐?”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를 통해서 포정사나 도지휘사 같은 고위직과 연결점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 혹시 돈을 챙겨 달라고 했다거나…….”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뒷돈을 찔러 주려고 해서 거절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이것 역시 고우길이 직접 경험했다고 한다.

풍백으로 역용하고 화오염장에 나타났더니,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지현대인이 곧바로 고우길을 만나길 청했고, 그렇게 만난 자리에서 은밀히 뒷돈을 찔러 줬다.

고우길은 꽤 탐이 났었지만, 어렵게 거절했다. 이걸 받으면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이 처할 테니까 말이다.

풍백은 이야기를 마치며 물었다.

“제가 없는 동안 적가상방에는 다른 일이 없었습니까?”

“상방이야 별문제가 있을 리가 있겠느냐.”

그러자 진덕양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 강호에서 마검인지 신검인지 가지고 난리가 나서 표국에서 아주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고 하더구나.”

“저희 상행에 문제가 생긴 건가요?”

“다행히 아직까지 문제는 없는데, 듣자 하니 상행을 하는 상방 중에는 피해를 입은 곳도 꽤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라고 언제까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

이번에는 적호경이 끼어들었다.

“청송표국과 다른 표국을 비교하면 되나? 아무리 강호의 무인들이 극성이라고 하지만, 청송표국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할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요즘 대문파라고 불리는 문파들까지 검 한 자루 손에 넣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뛰어다니는 판국인데.”

애써 낙관론을 펼친 적호경이었지만, 이어진 진덕양의 말에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말이다.

이미 절강성 북부에서도 화홍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중이었다. 덕분에 서문세가가 꽤 곤욕을 치르는 중이라는 소문도 들었고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풍백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직접 청송표국으로 가서 표행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또한 적가상방에서 하루에 나가는 상행만 하더라도 이제는 대여섯 번은 된다. 이전처럼 상산현 인근만 상행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절강성 남부와 강서성 서부에 있는 거의 모든 현에 분점이나 점포를 만든 상황이었으니까.

‘역시 최대한 빨리 적가상방의 무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니 문득 당가에 생각이 미쳤다.

“당가는 어떻습니까? 제가 화호염장으로 떠나기 전만 하더라도 슬슬 당가에서도 청송표국에 표사로 사람을 보낼 준비를 하던 것 같던데요.”

“아! 그렇구나. 그게 있었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당가의 당세기 소협이 청송표국에 표사로 고용이 되었다.”

“그렇습니까? 잘됐군요.”

풍백은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속마음은 묘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원래 당세기는 팔이 잘린 상태로 망해 가는 당가타에 있다가, 당가타가 완전히 없어진 이후로는 군부로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몸도 건강하고, 당가를 이곳 상산현으로 옮겨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일이지만, 점점 변해 가는 모습에 대해서 들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많이 변한 것 같구나.’

이전에 자신이라면 당세기의 삶이 변했다는 것에 이 정도 감흥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진덕양이 계속 말했다.

“아마도 며칠 전에 강서성으로 가는 표행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벌써요?”

“당 소협이 표사 업무에 대해서 엄청 열심히 배웠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경험을 쌓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판단하고 표행에 참여를 시켰다고 들었다. 그런데…….”

진덕양이 말을 조금 끌다가 잠시 풍백의 눈치를 보고는 이내 말했다.

“듣자 하니 당 소협이 표국 내에서 사람들에게 별로 좋지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모양이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월봉을 적게 받는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게 아니라, 표국에 있던 기존 표두나 표사들이 당 소협을 좀…… 경원시하는 것 같더구나.”

풍백은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도 당가타는 강호에서 그리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잘 봐주면 과거에 명성을 날렸던 문파나 세가 정도로 불렀고, 대부분은 이제 망하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보이는 문파 정도로 봤다.

이러다 보니 당가타 출신은 강호에서 꽤 무시를 당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군웅회에 소속된 세가들은 노골적으로 무시하거나 모욕을 주는 일도 많았고 말이다.

표국은 강호와 상계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표두와 표사들은 자신들이 강호의 무인이라 생각한다. 또한 자신들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강한 편이다.

이런 표두와 표사들이 봤을 때는 당세기가 적가상방의 입김에 의해 돈을 벌려고 기어 들어온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절대로 아니었다.

애초에 청송표국주이자 청송무관의 관주인 우검학은 그런 입김이 통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아마 잘 버텨 내겠지.’

여기서부터는 풍백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풍백이 청송표국으로 쫓아가서 표두와 표사들이 더 이상 당세기를 괴롭히지 않도록 만든다면 그게 더 문제다.

당가의 무인들이 청송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적가상방의 입김 때문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굳어지게 될 것이고, 당가는 그저 적가상방의 가신으로 취급되어 스스로 일어설 기회조차 사라질 테니까.

풍백이 과거부터 봐 왔던 당세기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조금 가벼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충분히 버텨 낼 거라고 믿었다.

“아! 그리고 얼마 전에 네 손님도 찾아왔다.”

진덕양이 대수롭지 않게 덧붙였다.

“제 손님이요?”

“저번에 적가상방이 잔치를 할 때 왔었던 사람이 있었지 않더냐. 이름이 뭐더라…….”

진덕양이 순간적으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진덕양의 모습에 적호경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면 그 사람의 특징적인 걸 알려 주면 될 것 아니냐.”

“아! 그렇지! 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이 빨간 사람이 너를 찾아왔다.”

진덕양이 말하기 전에 적호경이 먼저 풍백에게 말했다.

풍백은 대번에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금성이 나보다 먼저 돌아왔군.’

아무래도 적호경과 진덕양은 유금성이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았다.

유금성이 적발마도란 별호를 얻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요 근래에 얻은 별호고, 적발마도라는 별호는 제법 알려졌어도 그의 이름까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에 짐작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마도 유금성이 적발마도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렇게 태연히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절정고수를 대수롭지 않게 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

풍백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만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먼 길을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푹 쉬도록 해라.”

“멀리 나가진 않으마.”

인사를 마친 풍백이 적호경의 집무실을 나와 곧장 유설화가 있는 거처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제 새롭게 고용하게 될 적가상방의 호위대장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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