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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13화 (29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13화

“대장님, 저거 죽은 거 아닙니까?”

우금은 수하의 말에 혀를 찼다.

“쓸데없는 소릴…….”

“아니, 그렇잖습니까. 벌써 선실에 틀어박힌 지 칠 일이 지났는데 어떻게 한 번을 안 나올 수 있습니까? 밥이야 그렇다고 치고, 똥오줌도 안 싸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

“그리고 그날 대장님도 보셨잖습니까.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가지고 곧 죽을 사람처럼 생겼던 거요. 그거 내장이 아작 날 정도로 내상을 입었을 때만 그런다는 걸 대장님도 아시잖아요.”

수하의 말에 우금은 딱히 뭐라 말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금도 그것을 알았기에 첫날 의원에 들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던 것 아닌가.

실제로 중한 부상을 입은 상태로 도주를 하다가 죽어 나가는 의뢰인은 심심찮게 볼 수 있기도 했다. 당장 뒤에서 누가 쫓아오고 있으니 감히 의원을 찾아가지 못하고 도주를 선택했다가 치료할 때를 놓쳐서 죽는 경우 말이다.

풍백의 경우가 딱 그런 경우와 완전히 똑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번 확인을 해 보시죠?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강서성으로 들어갈 것 같은데, 핑계를 대기도 좋잖습니까.”

“음…….”

이미 죽은 시신을 데리고 굳이 강서성까지 간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말에 동의는 하는 입장이었다.

“알았다. 한번 확인을 해 보지.”

“역시 대장님! 좋은 선택입니다!”

우금이 선실로 걸어가자 사내 역시 그를 따라 졸래졸래 걸어왔다. 빨리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 꽤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선실에 도착한 우금이 헛기침을 하며 문을 두드렸다.

“어흐흠! 안에 계시오?”

그러나 우금의 말에도 선실 내부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우금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이번에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할 얘기가 좀 있어서 그러니 안에 있으면 대답 좀 해 주시오!”

그러나 이번에도 여전히 정적이었다.

한 발짝 멀리 떨어졌던 사내가 얼른 다가와 반색하며 말했다.

“이거 보십시오! 분명 죽었다니까요! 내가 이럴 줄 알고 확인을 하자고 했던 겁니다!”

이쯤 되니 사내의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만 더 두드려 보자.’

이번에도 대답이 없으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진짜로 풍백이 죽어 있다면, 수하가 말했던 것처럼 풍백의 시신을 수습하고 다시 해우 호남지부로 돌아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풍백에게 돈이 있다면 조금 챙길 수도 있고.

쿵! 쿵! 쿵! 쿵!

“대답을 해 보시오! 대답이 없으면 문을 부수고…….”

철컥!

우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풍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당황한 사람은 우금이었다.

“어? 괘, 괜찮았던 거요?”

풍백은 가만히 우금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엄청나게 복잡한 눈으로 우금을 바라보던 풍백이 나지막이 물었다.

“내가…… 내가 배에 탄 지 며칠이나…… 되었나?”

이상했다.

마치 말하는 모습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어색해하는 것 같지 않은가.

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대답은 했다.

“칠 일이나 지났소. 그렇지 않아도 이제 슬슬 강서성으로 진입하려고 하는데, 도통 식사를 하러 나오지도 않으니 혹시나 싶어서 확인을 해 본 참이오. 몸은 괜찮소?”

우금의 말에 풍백은 잠시 가만히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뭔가 대단히 사연이 많은 것 같아 보였다.

풍백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다행이구려. 그러면 식사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계속 이렇게 선실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을 생각인 거요?”

그 말에 풍백은 잠시 아무런 대답도 없이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본 우금이 대체 풍백이 뭐를 보고 저러고 있나 싶어서 풍백이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곳은 그저 배가 움직이는 것에 맞춰 풍경이 천천히 흘러가는 모습만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왜 이러는 거야?’

우금이 다시 풍백을 불렀다.

“이보시오? 내가 한 말을 들었소?”

그러자 풍백이 정신을 차린 것처럼 다시 우금을 바라보며 물었다.

“식사 준비…… 지금 되나?”

“당장 말이오?”

풍백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끄응…… 원래는 안 되는데, 그동안 제대로 먹은 것도 없을 테니 이번만 준비를 해 드리겠소.”

안색을 보면 이제 내상은 모두 해결한 것 같지만, 혹시나 싶어 준비를 해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였다.

“갑자기 준비하는 것이니 대단한 음식을 바라면 안 될 것이오.”

“상관없다.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된다. 갑판에서 음식이 준비되는 걸 기다리지.”

그러곤 풍백이 먼저 갑판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풍백이 갑판으로 가는 걸 보던 우금이 한숨을 푹 내쉬고 있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내가 빨리 돌아갈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자리를 피하려는 소리가 들렸다.

“멈춰, 이 새끼야.”

“다행히 의뢰인이 아무런 문제가 없네요. 참 다행이지 않습니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사내의 목소리에서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났다.

“다행이지. 그러니까 너는 지금부터 저 사람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도록 해.”

“제가요? 왜 제가 준비합니까?”

“그럼 내가 할까? 네가 확인을 해 보자고 했잖아. 그러니까 식사 준비도 네가 해야지.”

“이런 제기랄!”

사내는 욕을 내뱉으며 쿵쾅거리는 걸음으로 주방을 향했다.

풍백은 우금과 그 수하가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갑판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갑판에 나오자 자신의 두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우측에는 이름도 모르는 산이 우뚝 솟아 있었고, 좌측으로는 농부가 열심히 심어 놓은 농작물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름답다…….’

풍백은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멍하니 있었다.

그러나 사실 풍백이 보는 풍경은 중원을 돌아다니면서 수도 없이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었다. 이렇게 감동을 받을 그런 풍경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동안 주변을 멍하니 바라보던 풍백이 신음성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칠 일이 지났을 뿐이라고?”

허탈한 듯한 풍백의 목소리가 그가 현재 얼마나 황당한지 알려 주는 듯했다.

우금은 겨우 칠 일이 지났다고 말했지만, 풍백이 보낸 시간은 칠 일이 아니었다.

황금불상에서 나온 옥으로 만들어진 얇은 판을 만지고 기절하듯이 정신을 잃은 그날, 풍백은 알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아주 오랜 세월을 보냈다.

정확하게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한다. 처음에는 날짜를 세었지만, 그 공간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더 이상 날짜를 세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서는 겨우 칠 일이 흘렀다니.

“내가…… 미친 건 아니겠지?”

더럭 겁이 났다.

행여나 자신이 미쳐서 이런 헛것을 보는 것은 아닌가 싶은 그런 걱정이었다.

풍백이 있던 공간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어두운 검은색인 무한한 공간이었다. 하늘도 검은색이었고, 자신이 밟고 있던 지면도 검은색이었다.

그곳에서 풍백은 한 사람을 만났다.

지금까지도 이름조차 모르는 봉두난발(蓬頭亂髮)의 사내였다.

그곳에서는 자는 시간도, 식사를 하는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았고, 배가 고프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풍백은 눈을 뜰 수 있었다.

풍백은 자신이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 때가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금이 문을 두드렸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우금에게 방해하지 말라고 하지 말고, 적어도 식사 때는 깨우라고 했으면 더 빨리 깨어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흐읍!”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켜자 온갖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배에서 나는 냄새부터 강에서 나는 냄새와 바람을 타고 풍겨 오는 냄새까지 아주 다양했다.

그제야 풍백은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감동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풍백은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우금이 선실에서 나와 풍백을 불렀다.

“식사 준비가 되었소.”

너무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굳이 선실로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먹겠소.”

“마음대로 하시구려.”

우금이 눈짓을 하자 불퉁한 얼굴의 사내가 소반(小盤)을 들고 갑판으로 나왔다.

사내가 준비한 식사는 우금이 미리 얘기를 했듯이 아주아주 단출했다.

식은 밥에 소채 서너 종류가 있을 뿐이었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단출한 식사에 다른 사람이라면 한숨부터 내쉬었겠지만, 소반 위에 있는 식사를 보는 풍백은 눈을 매우 반짝이고 있었다.

원래 풍백은 그리 식탐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과하게 배를 채우는 걸 기피하는 쪽에 더 가깝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식사를 못했던 풍백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에 식도락(食道樂)은 항상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배가 고프지 않고 먹지 않아도 사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한들, 먹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포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강제로 오랜 세월 동안 식사를 하지 못한 풍백은 단출하기 그지없는 식사를 보고도 입에 침이 가득 고일 정도였다.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집어 든 풍백이 서둘러 밥과 소채를 입에 집어넣었다.

식은 밥에 떫을 정도로 손맛이 없는 소채였다.

그러나 입에서 무언가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몰랐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곳에 풍백이 혼자였으면 눈물이라도 흘렸을 것이다.

풍백은 쌀 한 톨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꼭꼭 씹어먹었다. 분명히 소채를 밥보다 넉넉하게 준비했었지만, 풍백은 소채도 하나 남기지 않았다.

이렇게 풍백이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금이 슬쩍 인상을 썼다.

‘저거 더럽게 맛도 없는데 뭘 저렇게 맛있게 먹는지…….’

배에서 만들어진 소채가 얼마나 맛없는지 충분히 알고 있는데도 풍백이 워낙 맛있게 먹으니 우금마저 입맛이 돌 정도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풍백은 아쉽다는 눈으로 소반 위에 빈 그릇을 바라봤다.

마침 사내가 가져온 차를 받은 풍백이 싸구려 차의 향을 맡으며 우금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강서성에 들어가고 있다고 했었나?”

“그렇소.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는 건 아는데, 워낙 선실에서 나오질 않아 확인을 해 본 것이오.”

배를 채운 풍백은 이제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추적자들은 없었고?”

“킁! 빨리도 묻는구려. 선실에서 나오질 않으니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다는 말인가?”

“어디서 나온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몇몇 놈들이 있었소.”

“따돌리는 걸 성공했다는 말인가?”

“우리 해우를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이오? 우리가 대단한 무공을 가진 고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강호에서 우리보다 더 도주를 잘하는 곳이 있는 줄 아시오? 당연히 따돌렸지.”

풍백은 이채를 발하며 우금을 바라봤다.

어쩌면 배를 쫓아온 자들 중에는 구천마겁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해우의 도주 능력에 대해 다시 평가를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풍백이 가만히 흘러가는 경관을 바라보다가 우금에게 말했다.

“가다가 포구나 나룻터가 나오면 배를 세워라.”

“배를 말이오? 갑자기 왜 세우려는 거요?”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계약은 분명 강서성에 있는 수수현까지 가는 것까지였는데.”

“생각이 바뀌었으니 그냥 세우면 된다. 약속했던 추가금은 줄 테니.”

풍백은 품에서 금자 닷 냥을 꺼내 우금에게 넘겼다.

우금 입장에서는 당연히 빨리 풍백을 내려 주고 돌아가는 것이 이득이다. 심지어 추가금도 이렇게 넘겨주지 않았나.

“알겠소. 포구가 나오면 금방 내려 드리리다.”

“고맙군.”

사실 이대로 배를 타고 약속했던 곳까지 이동해도 상관없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걷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풍백이었다. 그렇기에 직접 땅을 밟고 싶었고, 풍경을 보고 싶었으며,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었다.

이렇게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고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만인지 알 수 없었다.

풍백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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