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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17화 (296/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17화

노상객잔 문을 부서져라 열어젖히며 튀어나온 손정방은 곧장 관도를 따라 경공을 펼쳤다.

관도를 따라 번개처럼 달려가는 손정방의 모습을 보면 그가 왜 경공으로 명성이 높은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달려가는 것을 보니 결정을 내린 모양이지?’

풍백은 창밖으로 손정방이 경공을 펼쳐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객잔에서 나온 풍백은 마차를 타고 떠나는 것 같았지만, 마부에게 얘기를 해서 적당한 거리에 멈춰 선 상태였다.

손정방이 크게 당황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가족에게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풍백의 마차가 근처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크게 당황하고 경황이 없는 상태라 그런 것을 확인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풍백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손정방은 아마도 가족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든지, 아니면 어떤 대책이라도 세울 것이다.

‘이번에는 부디 가족에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기를…….’

손정방이 다시 가족을 잃고 군부에 비토라는 이름으로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곳에서 손정방이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목숨만 잃었을 뿐.

그리고 만약 손정방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줄 생각이 있었다.

손정방에게 배웠던 많은 지식은 풍백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 줬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풍백은 그렇게 오래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고, 구천마겁이 가지고 있던 부적도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며, 지금처럼 과거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손정방을 도와주는 것은 자신에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면 나도 이제 슬슬 가 볼까?’

손정방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끌었던 풍백이었다.

이제 손정방도 떠났으니, 자신을 완전히 숨기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마차에서 나온 풍백이 마부를 불렀다.

“약속했던 품삯이오.”

“이걸 왜 지금 주시는지……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합니다만…….”

마부는 과도하게 허리를 숙여 가며 풍백에게 물었다.

당연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풍백이 마차를 빌렸을 때는 그냥 강호의 흔한 무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전, 풍백은 객잔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보여 줬다. 순식간에 다섯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풍백이 마부에게는 사신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풍백은 마부의 손에 품삯을 건네주며 말했다.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소. 그러니 돌아가면 될 것이오.”

“그, 그러면 이렇게 많은 품삯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만…….”

“흐음……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이대로 그냥 가지 말고, 정강산(井崗山) 쪽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떻소? 가는 김에 정강산 구경도 좀 하고.”

정강산은 강서성 서남쪽, 호남성 경계 근처에 있는 산이었다. 아주 이름난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려한 경관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었다.

마부의 입장에서는 돈을 받고 정강산을 구경하는 일이니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당연한 소리. 아예 이렇게 합시다.”

풍백은 자신의 전낭에서 은자 몇 냥을 더 건네줬다.

“어이쿠! 이 돈은 왜…….”

“구경을 하려면 잠도 자고 먹을 것도 먹어야 할 것 아니오. 그러니 그것을 여비로 쓰시오.”

이렇게 돈을 받으니 마부는 어느새 풍백을 두려워하던 것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재신(財神)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며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서 가 보시오.”

“넵! 대협도 조심히 들어가 보십시오!”

마부는 곧 마차를 타고 떠났다.

‘이제 나도 사라져야겠지?’

무량파의 무인들을 포함하여 노상객잔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마부까지 정말 많은 사람이 자신을 봤다.

그러니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암군이 강서성에 나타났다며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이건 풍백이 의도한 소란이었다.

다른 의도가 아니라,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구천마겁과 사소주를 향해 자신의 생사를 알려 주는 것이다.

의미는 간단했다.

- 봐라. 나는 살아남았다.

구천마겁이 화홍을 왜 그렇게 노렸는지 이제는 알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화홍에 있는 부적을 노렸던 것이 분명했다.

이제 그들은 곧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화홍에 아무런 비밀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자신의 생사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수중에 넣지 못한 화홍의 검집에도 신경이 미칠 것이고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이 정도도 연결 지어서 생각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피식 웃은 풍백은 얼굴에 쓰고 있던 면구를 벗고 역용을 지웠다. 또한 옷도 모두 벗어서 땅에 묻어 버리고는 미리 준비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화홍을 훔쳤던 연유는 사라지고, 적가상방의 개망나니 소상방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풍백이 가볍게 땅을 박찼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표홀한 움직임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풍백은 지면이든 어느 곳이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있고 있었다. 이 정도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만약 그를 추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풍백의 얼굴에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기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어떻게 되었느냐?”

총관인 서문이석의 물음에 서문표는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늦었습니다. 이미 청랑파는 도주한 이후더군요.”

“그러면 지금 그곳에 있다는 무인들은 대체 누구냐는 말이더냐?”

“그게…… 마검 화홍을 손에 넣으려는 사파의 무인들이었습니다.”

“사파? 아니, 그놈들이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서문이석이 평소 냉철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청랑파가 출몰했다고 하여 서문세가의 무사들이 파견된 지역은 가흥현(嘉興縣)이었다. 이 정도면 강소성과 경계라 할 수도 없고, 이미 서문세가의 세력권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화홍을 차지하겠다고 사파의 무인들이 몰려다니다니, 서문세가 입장에서는 그들을 향한 도발처럼 보였다.

“그러면 청랑파는? 가흥현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냐는 말이다!”

“제가 듣기로는 아직 장흥현에 출몰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흥현이라면 가흥현하고 완전히 정반대에 있지 않느냐!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이가 없어진 서문이석이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는 것을 보고 서문표가 말했다.

“아무래도 개방에 정보 공유를 요청하는 것이 어떤지…….”

지금까지 서문세가는 세가 내부적으로 정보를 취합하여 움직이는 중이었다. 개방이 정보 쪽으로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들에게 정보를 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강호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규칙이 만연한 곳이다.

아무리 같은 정파라고 하지만 이권이 관여되고, 각자 문파의 사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서로를 향해 칼을 들이밀기도 했다.

그러니 개방이 주는 정보에 기대고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비단 서문세가만 이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세가가 모두 동일했다.

하지만 이것도 급하지 않은 상황에서나 통할 얘기였다.

청랑파가 절강성에서 분탕질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청랑파를 처리하거나 절강성에서 몰아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마치 서문세가의 머리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서문세가가 나타나는 기미가 생기면 어느새 사라지고, 능숙한 정보 조작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이상한 곳으로 흘리기도 했었다.

이러다 보니 서문세가는 매번 허탕을 치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고 물러나는 일이 반복되는 중이었다.

자존심만 내세울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고, 이 판국에 마검쟁탈인지 뭔지가 일어나서는…….’

마검쟁탈은 서문세가를 더욱 괴롭게 만드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호남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마검쟁탈이었지만, 온갖 복제품이 나오면서 마검쟁탈은 전 중원으로 퍼져 나갔다.

이렇게 나타난 화홍 중 하나가 바로 강소성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강소성에서 시작된 마검쟁탈은 점차 아래로 이동하더니, 지금은 절강성 북부를 완전히 헤집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청랑파 때문에 정신이 없던 서문세가로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온갖 대소사에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후우…… 어쩔 수가 없구나. 아무래도 청랑파에 대해서는 개방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하지만 알다시피 언제까지 개방에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서 다음에는 세가 내부의 힘으로 이겨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숙부님.”

“개방에 도움 요청은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마. 그보다 그 망할 놈의 마검쟁탈의 상황은 어떻다고 하더냐? 혹시 다시 강소성 쪽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보인다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남쪽으로 더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고…….”

“남쪽으로? 가흥현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오면 항주까지 온다는 말이 아니더냐!”

중간에 여항현(余杭縣)이 있기는 하지만, 여항현과 항주 사이의 거리는 빨리 달리면 하루가 지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인근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가흥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검쟁탈로 인하여 해녕현(海寧縣)까지 영향을 받아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문제가 심각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절강성 북부는 완전히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고, 그 혼란이 심지어 서문세가가 있는 항주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응해야 할 것 같았다.

“세가의 무사들을 보내서 화홍을 가져오든지, 아니면 저들을 강소성으로 밀어내야겠구나.”

“……괜찮겠습니까? 잘못하면 화홍을 노리는 무인들과 정면으로 부딪칠지 모르는 일인데…….”

“그렇다고 항주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걸 보는 것보다는 더 나은 판단이겠지.”

서문이석의 말에 서문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반박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골치 아픈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상황에 서문이석도 머리가 아플 것이다.

“일단 지금 말한 내용을 가주님께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 오도록 하거라.”

“제가 직접 말입니까?”

“휴우…… 나는 이제 총관 일을 하러 가야 하니까 시간이 없구나.”

말을 하는 서문이석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 가고 있었다.

서문세가와 같은 거대 세가는 온갖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세가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총관은 가장 바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가주 대행까지 하고 있는 중이라 미칠 지경이었다.

서문표 역시 서문이석이 어떤 상황인지 알기에 안타깝다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얼른 서문세가주인 서문자건의 거처로 향했다.

거처로 들어가자 침상에 누워 있던 서문자건이 일어났다.

“회의는 끝났느냐.”

“네, 끝났습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서문표의 말에 서문자건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겨우 고뿔에 걸린 것 가지고 몸이 어떻겠느냐. 별문제 없다.”

“그러면 다행입니다.”

“다행이긴, 이런 상황에 침상에 누워 있으려니 오히려 답답하다. 총관과 너희들이 난리를 피우지만 않았어도 굳이 이렇게 누워 있을 필요는 없을 텐데.”

“너무 대수롭지 않게 볼 일이 아닙니다. 지금 열이 조금 내려가서 다행이지, 처음 의원이 얼마나 놀랐는지 잊으셨습니까?”

사실 서문자건에게 열이 나기는 했지만,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의원이 놀란 이유는 열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무려 초절정고수인 서문자건이 고뿔에 걸렸다는 점이다.

물론 초절정고수라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다.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히 병에 걸릴 확률이 지극히 낮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절대고수가 되지 않는 이상 병에 걸리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 고뿔에 걸린 것이 얼마 만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서문자건이었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놀란 의원이 이상한 거다. 나가서 싸우다가 고뿔에 걸렸다고 그만하자고 할 거냐? 이럴 때도 피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해야…….”

“그런 얘기는 그만하시고, 일단 회의에서 나온 얘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가주님의 결재가 필요한 일입니다.”

서문자건의 얘기가 슬슬 다른 곳으로 빠지려고 하자 서문표가 능숙하게 말을 끊으며 얼른 회의 내용을 읊었다.

내용을 모두 들은 서문자건은 입을 열었다.

“흐음…… 어쩔 수 없지. 기왕 개방의 도움을 요청하려면 최대한 빨리 하도록 해라.”

“마검쟁탈에 몰려온 무인들을 밀어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도 총관의 생각도 같다. 항주는 우리 서문세가가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세가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것도 모두 승인을 하신 걸로 하겠습니다.”

“그래, 이상한 일이 일어나거나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을 하도록…….”

서문자건의 말에 서문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가주님은 최대한 정양을 해야지요. 급한 일이 아니면 일단 몸부터 신경을 쓰도록 하십시오.”

“끄응…….”

서문자건은 이런 서문표의 말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이런 모습에 서문표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그의 눈에 서문자건의 귀 뒤로 분홍빛 반점이 보였다.

‘아버지에게 저런 점도 있었나?’

나이를 들면서 몸에 점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에 서문표는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명심해라.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를 부르도록…….”

“그럼 쉬십시오.”

서문표는 얼른 서문자건의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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