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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12화 (286/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12화

하남성 개봉부(開封付).

중원 삼대 고도(古都) 중 하나라고도 불리는 개봉은 과거 여러 왕조의 도읍(都邑)이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렇기에 개봉에는 건국사(建國寺)라 불리다가 당조(唐趙)의 예종(睿宗)이 상국사(相國寺)라 개칭한 절부터 송조(宋趙)에 세워져 개봉사탑(開封寺塔)이라 불리기도 하는 철탑(鐵塔), 취대(吹臺)라 불리기도 하는 우왕대(禹王臺) 등과 같은 온갖 명승고적(名勝古跡)이 산재해 있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든 관광으로든 중원에서 알아주는 개봉이기에 온갖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런 개봉이 강호의 무인들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위와 같은 것들과 별개로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개방의 총타가 이곳 개봉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지들의 모임인 개방에 총타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개방의 총타가 으리으리한 규모의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방의 총타는 개봉 외곽으로 나가면 가까운 곳에 있는 넓은 공터에 있는 다 무너진 폐가에 있었다.

제법 거대한 규모의 이 폐가는 원래 이백여 년 전 엄청 유명했던 누군가가 살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하룻밤 사이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실종되고 나서 이렇게 폐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개방의 방주가 편하다는 이유로 눌러앉으면서 어느새 강호에는 개방의 총타라는 형식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개방의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이름뿐인 총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중원 각처에서 몰려드는 정보를 확인하고 가공하여 정말 중요한 정보로 재생산하는 집신당(輯信黨)이었다.

중원에는 속된 말로 개방의 거지들이 모래알처럼 뿌려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개방 소속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지들은 무언가 신기한 것을 보면 항상 개방의 거지를 찾는다.

그렇게 개방의 거지들이 모아 온 정보는 일차로 각 지역에 있는 분타에 모여 쓸 만한 정보를 구분해 총타로 보내게 된다.

이렇게 보내진 정보는 집신당에서 모이게 되고, 집신당에서는 천하 각지에서 모인 정보를 교차 대조 및 가공하여 진짜 중요한 정보로 탈바꿈을 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집신당은 당연히 개방에서도 최고로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개방에서 나오는 정보를 토대로 정파가 움직이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집신당에서 일하는 개방도 역시 아무나 선발하지 않는 것이고 말이다.

개봉부에는 고관대작들이 많이 사는 주도가 있다.

이곳에 있는 건물이나 장원은 하나같이 으리으리했는데, 그중에 유별나게 큼직한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 더러 있었다.

그중에 한 곳은 과거 황궁 내각(內閣)에서 대학사(大學士)까지 역임한 고관대작이 사는 곳이었는데, 그 규모가 어찌나 남다른지 주도에 들어서면 이 장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사람들은 대학사가 이 정도 돈이 어디 있겠냐며, 황궁에서 일하면서 온갖 뒷돈과 비리를 저질러 돈을 벌었을 거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곳이 실제로는 개방이 구입한 집이고, 이 집의 지하에는 비밀에 쌓인 개방의 집신당이 있다는 걸 몰랐다.

지금 시간은 늦은 밤이지만, 집신당 내부는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쁘게 서신과 서류를 확인하고 작성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감숙성(甘肅省)에서 온 정보는 어디에 있어?”

“일 그렇게 할래? 감숙성 어디? 감숙성이 너희 집 앞마당만 하냐?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

“이 시국에 물어보는 거면 당연히 돈황(敦煌)에서 온 정보를 말하는 거잖아!”

“나가보(羅家堡) 정보 누가 가지고 있어?”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곧 정리가 끝나면 올리겠습니다!”

“호남 정보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왜 아무도 안 올리는 건데? 정리하기 힘들다고 미뤄 두면 누가 뒷감당할 거냐고!”

소란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일하는 개방도의 모습은 피곤에 지쳐 짜증이 가득해 보였다.

가뜩이나 온 중원에서 온 정보를 취합하는 것이라 일이 바쁜데, 근래에 일어난 마검쟁탈로 인하여 평소보다 거의 세 배는 넘는 정보가 쏟아지는 판국이라 다들 피로도가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개목이라 불리는 이결제자인 상수만 역시 눈 밑이 시커멓게 죽어서 바쁘게 일을 하는 중이었다.

지금 상수만이 정리하고 있는 정보는 호남성의 정보였다.

워낙 많은 정보가 쏟아져서 다른 개방도는 기피하는 호남성 정보지만, 평소 성실한 걸로 인정받는 상수만은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맡겨진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다.

- 통천방주인 독심사검 두성원이 사망하여 혼란에 빠진 통천방을 복우파(伏牛派)가 급습. 중요도 병(丙)

- 장강수로십팔채 총표파자 장강교룡 해금파가 호남성을 벗어나 호북성으로 이동. 중요도 갑(甲)

- 무량문주 망월도 여명회, 호남성을 벗어나 강서성으로 진입. 중요도 정(丁)

- 호남성 남부에선 마검쟁탈과 별개로 정파연합과 사파연합의 분란이 시작. 중요도 을(乙)

- 암군의 행방은 아직 확인이 되지 않고 있으며…….

이렇게 쉬지도 않고 누구보다도 바쁘게 일을 하는 상수만의 모습은 집신당에 있는 대부분의 개방 제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윗분들에게 인정을 받는 걸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삼결제자가 될 거야.’

‘저 녀석이 삼결제자가 되면 우리가 더 힘들어지겠지. 엄청 많이 일을 해 주고 있었는데.’

‘삼결제자가 되더라도 기왕이면 집신당에 있어 주면 좋겠어.’

동료들에게도 이런 좋은 평을 받을 정도로 상수만의 능력을 탁월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쁘게 일을 하던 상수만이 어떤 정보를 보며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 신원불명의 검은 옷을 입은 집단이 형산에서 남쪽 안인현(安仁縣) 방면으로 이동 중. 중요도 을.

상수만은 예리한 눈으로 슬쩍 주변을 살펴보고는 붓을 들어 새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 교수문(巧手門) 무인들이 검은 옷을 입고 형산에서 동쪽 방면으로 이동 중. 중요도 무(戊).

작성을 마친 상수만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해당 정보를 위로 올렸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몇 개의 글자를 다른 것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개방에서 하루에 들어오는 정보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이 모든 정보를 모두 확인하고 대응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정보의 중요도를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도가 높은 정보를 먼저 처리하고,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정보는 다른 정보와 대조를 하면서 더 유용한 정보로 가공하는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써먹기도 힘든 정보는 지금처럼 무종 등급을 내린다. 그러면 이 정보는 자연스럽게 수없이 많은 무종 등급 정보와 함께 묻히게 된다.

이렇게 상수만의 손으로 묻어 버린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묻어 버리는 정보는 오직 한 가지 부류에 한정해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너무나 자연스럽게 정보 하나를 묻어 버리고 난 상수만은 다시 정보 분류에 전념했다.

언제나와 같은 하루였다.

하지만 상수만은 언제나 같은 오늘이 펼쳐지지 않을 거라는 걸 몰랐다

“이결제자 개목 상수만, 맞나?”

정신없이 정보를 처리하던 상수만은 옆에서 들려오는 위압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허리에 있는 여섯 개의 매듭이었다.

‘법개(法丐)…….’

다섯 개의 매듭을 묶고 다니는 당주보다도 하나 더 많은 매듭을 묶고 있는 사내는 개방의 법을 집행하는 법개였다.

법개를 제외하고도 그의 뒤로 십여 명의 이결제자들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들은 상수만을 잡으러 나온 것이 확실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상수만을 잡으러 온 거야? 대체 왜? 저 녀석 일 엄청 열심히 하는 녀석이잖아.”

집신당에서 일을 하던 개방 제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법개 때문에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법개는 강직한 얼굴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 오로지 상수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답을 해라. 네가 이결제자 개목 상수만 맞나?”

그 말에 상수만이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것인지…….”

“지금부터 이결제자 개목 상수만을 정보 조작, 내부 첩자의 혐의로 구금(拘禁)한다.”

나지막한 법개의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은 집신당 내부의 개방 제자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러갔다.

“저, 정보 조작?”

“내부 첩자라고? 상수만이 첩자라니 그게 무슨…….”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상수만인데 이게 무슨 소리야!”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도저히 상수만이 첩자라는 말을 믿을 수 없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언제나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늦게까지 일했으며, 누구보다 선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것이 바로 상수만이 아니던가.

이런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상수만이 억울한 표정으로 비통하게 소리쳤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제, 제가 정보 조작을 했다니요! 내부 첩자라니요! 저는 그저 열심히 제가 맡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개방을 위해서, 강호의 정의를 위해서 일을 했을 뿐인데 첩자라니…… 억울합니다!”

몇몇 집신당 간부직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수만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집신당에 소속된 개방 제자들의 웅성거림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웅성거림은 곧 한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잦아들었다.

“쯧쯧쯧…… 너희들이 이러니까 내부에서 정보가 줄줄 새고, 알았어야 할 정보를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러고도 집신당이 개방의 심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빨갛게 주독이 오른 코를 보이며 나타난 사람은 후개인 풍진개였다.

풍진개는 개방에서 대단히 높은 지지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의 의협심과 강호에서 수도 없이 행했던 협행은 개방도의 자부심 중 하나인 것이다.

상수만은 풍진개의 앞에 오체투지를 하듯이 무릎을 꿇으며 처절하게 소리쳤다.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진짜 정보 조작을 한 적도 없고, 첩자질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 상수만을 풍진개는 콧방귀를 뀌며 바라봤다.

“우리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냥 의심만 가지고 너를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

풍진개는 품에서 몇 장의 정보지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알고 있나?”

“그건…….”

“그래, 네가 방금 전에 올린 정보다. 이 정보지에는 교수문 무인들이 검은 옷을 입고 형상에서 동쪽 방면으로 이동 중이라도 써 있지. 중요도는 무급이고.”

“…….”

“그런데 원래 남악현 분타에서 올린 정보는 이게 아닐 텐데? 원래는 신원불명의 검은 옷을 입은 집단이 형산에서 남쪽 안인현 방면으로 이동 중이라고 올리지 않았나? 중요도 역시 을급이고.”

상수만은 몸을 가늘게 떨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풍진개는 계속해서 정보지를 읽었다.

“이전 며칠 전에 올라온 정보였는데, 신원불명의 검은 옷을 입은 집단이 형산 방면으로 이동한다는 정보였는데, 정파가 이동 중이라고 정보를 바꿨더군. 그리고 이전 한 달 전에 있었던 정보였고, 이건 그보다 보름 정도 더 이전의 정보였는데…….”

풍진개는 거침없이 계속해서 상수만이 지금까지 임의로 수정한 정보를 하나하나 읊어갔다. 그렇게 풍진개가 읽고 있는 정보만 하더라도 거의 반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모은 것이었다.

“다시 한번 말해 봐라. 납득할 수 없다고?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이라고? 강호의 정의를 위해서 힘썼을 뿐이라고?”

“그게…….”

“주둥이가 있다고 함부로 정의를 입에 담는구나, 역겨운 놈아.”

풍진개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말하며 상수만의 마혈을 점했다. 상수만은 더 이상 변명도 할 수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가늘게 몸을 떨기만 했다.

풍진개가 엄한 눈으로 집신당에 있는 개방 제자들을 훑어봤다.

“우리가 나서기 전에 너희가 먼저 알아차렸어야 했다. 쥐새끼가 섞여 있는 걸 확인하지 못한 너희가 법개의 행사에 의문을 표해? 부끄러운 줄 알도록 해!”

집신당에 있는 개방 제자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였다.

상수만의 태도만 보더라도 더 이상의 확인은 불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풍진개는 상수만의 뒤통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적제에게 단단히 빚을 지고 말았군.’

집신당 내사를 시작한 것은 백건상방의 멸문에 관련하여 풍백이 말해 줬던 것 때문이었다.

확인을 해 보니 백건상방이 멸문한 사건은 적어도 정급 이상을 받아야 할 정보였다. 그런데 확인을 해 보니 무종으로 분류되어 묻혀 버린 것을 발견했다.

이해할 수 없는 등급에 직접 상산현에 있는 개방 분타에서 확인을 해 봤고, 집신당에 올릴 때는 병급 정보로 올렸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풍진개는 법개와 함께 집신당을 감찰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누락하지 않는 이상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이렇게 상수만을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어디서 온 놈인지, 어떤 정보를 팔아먹었던 건지, 목적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 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다.”

풍진개가 준엄하게 말하자 법개가 상수만을 연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의 손이 닿기 전, 상수만이 심하게 기침을 하는 것이 아닌가.

“쿨럭! 쿨럭!”

그러고는 입에서 검붉은 선혈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자결한다! 막아라!”

풍진개가 황급히 다가가 상수만의 혈도를 점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미 상수만은 심맥이 끊어진 상태였기에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상수만은 죽어 가면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홉 개의 하늘을 날아…….”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겨우 이 말을 끝난 상수만은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죽은 상수만의 시신을 바라보던 풍진개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지금부터 집신당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다! 불복하는 자는 방규에 따라 처벌을 할 터이니, 누구도 감사를 진행하는 동안 허튼짓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불만을 토해 낼 수도 없었다.

직접 자신들의 두 눈으로 첩자인 상수만이 자결하는 것도 봤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은밀하게 눈을 빛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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