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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04화 (279/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04화

호남성 남부에는 남령산맥(南嶺山脈)이 있다.

남령산맥은 호남성을 비롯하여 강서성, 광동성, 광서성을 거치는 거대한 산맥으로, 남령산맥을 기준으로 장강과 주강(珠江) 유역이 갈라진다.

호남성과 광서성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남령산맥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산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낭산(崀山)이다.

과거 순제(舜帝)가 이곳을 지나다 낭산을 보고 이름을 붙여 준 이후부터 낭산이라 부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사람들은 낭산의 정상에 올라 운해(雲海)와 운무(雲霧)가 파도치는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낭산(浪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런 것을 제외하고도 낭산이 강호에서 유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녹림십팔채 중 하나인 낭산채(崀山寨)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낭산채는 녹림십팔채에서도 중오채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그 규모가 상당하고 대문파 수준의 힘은 아니지만, 중견 문파보다는 훨씬 큰 힘을 지닌 곳이었다.

이런 낭산채이다 보니 광서성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낭산채의 산적들에게 반항하지 않았고, 강호의 무인 역시도 괜한 소란을 벌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낭산채를 향해 일단의 사람들이 은밀하게 몰려가는 중이었다.

“얼마나 남았지?”

해금파의 물음에 옆에 있던 참모가 서둘러 대답했다.

“이제 반 시진 정도만 올라가면 낭산채에 도착할 겁니다.”

“놈들의 동태는 어떻고?”

“척후병이 아무런 경고를 보내고 있지 않은 걸로 봐서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군, 좋아.”

만족스러운 얼굴로 해금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기를 흘리며 말했다.

“이걸로 산멧돼지 같은 부범악 놈이 기뻐 날뛰는 걸 볼 수 있겠군.”

“당연히 그럴 겁니다. 무려 중오채에 들어가는 낭산채 아닙니까. 아마도 이 소식을 들으면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도 총표파자님의 얼굴을 떠올리고 이를 갈게 분명합니다.”

장강수로십팔채의 총표파자 장강교룡(長江蛟龍) 해금파.

대략 오십 정도로 보이는 이 사내가 강호에서 불리는 이름이었다.

“흐흐흐! 너 이 자식 혓바닥이 제법이구나.”

“헤헤! 좋게 봐주시면 감사할 따름입죠.”

해금파는 녹림십팔채가 매우 싫었다.

사실 장강수로십팔채와 녹림십팔채 사이가 좋았던 적이 드물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금파는 이전에 그 누가 장강수로십팔채의 총표파자였든지, 자신보다 녹림십팔채를 더 많이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해금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장강수로십팔채는 녹림십팔채와 같은 위치였다. 실제로 어떤 위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두 세력을 함께 두고 봤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해금파가 총표파자가 되면서 두 세력의 위상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명백하게 녹림십팔채를 장강수로십팔채보다 더 위에 두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두 세력이 이렇게 인식이 바뀌게 될 일이 있었나?

그랬으면 억울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는데, 사람들은 녹림십팔채를 더 높이 두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사파가 명예보다는 돈이나 이익에 더 환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명예를 좇기 마련이다.

해금파는 현 상황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총표파자이지만, 별호부터가 뭔가 차이가 났다.

해금파는 장강교룡, 녹림십팔채의 총표파자인 부범악은 녹림사왕(綠林死王).

교룡은 뿔과 비늘이 없는 용을 말한다. 그리고 때를 못 만나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부범악의 별호는 왕이다.

부범악은 완성이 되어 저 높은 곳에 있고, 자신은 그와 같은 자리에 도착하지 못한 이무기라는 말이 아닌가.

항상 마음에 담아 왔었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기만 한다면, 그 망할 놈의 부범악의 콧대를 발로 밟아 주겠다고 맹세하면서.

그런데 마침 기회가 생겼다.

하팔채에 들어가는 무혈채의 채주를 비롯하여, 부채주와 몇몇 무사들이 암살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솔직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기는 했다.

장강수로십팔채나 녹림십팔채나 하팔채에 속하는 산채는 꽤 자주 바뀐다.

독하게 통행세를 받아 내다가 관부의 토벌 대상이 되기도 하고, 주제도 모르고 명문 정파를 건드렸다가 박살이 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또한 꽤 능력이 좋은 사파의 고수가 산채를 만들어서 하팔채의 자리를 빼앗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무혈채 하나가 무너진 것도 아니고, 채주와 부채주 등이 암살을 당한 것은 슬쩍 무시하고 지나가도 될 일이다.

하지만 해금파는 이번 일은 기회로 삼았다.

‘바로 우리 장강수로십팔채가 녹림십팔채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할 기회로 말이지.’

당장 해금파는 녹림십팔채가 무혈채주를 암살했다며 비난했다.

녹림십팔채는 펄쩍 뛰며 그런 적이 없다고 완강히 부정했으나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이번 일의 진위 따위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니까.

거의 반년에 걸쳐 설전을 벌이던 장강수로십팔채와 녹림십팔채는 결국 얼마 전부터 국지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녹림십팔채가 장강수로십팔채를 압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녹림십팔채가 장강수로십팔채는 서로 팽팽하게 싸우며 일진일퇴(一進一退)를 반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장강수로십팔채 역시 녹림십팔채만큼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만족할 만하기는 했다.

그러나 강호의 싸움이 만족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해금파 역시 단지 동수를 보였다는 것으로 만족하지도 못했고 말이다.

‘적어도 중오채 중 하나를 갈아 마셔야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해금파의 마음속에는 무의식중에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 이번 기회에 녹림십팔채를 장강수로십팔채의 밑으로 집어넣고 싶다!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단순히 장강교룡이라 불리던 자신의 별호 역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조소와 같은 미소를 띠고 있던 해금파에게 참모가 전했다.

“도착했습니다.”

제대로 된 길조차 없는 낭산의 깊은 곳에 거대한 목채(木寨)가 지어져 있었다. 목채 안으로는 삼 층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전각부터 큼직큼직한 크고 작은 전각들이 세워져 있었고 말이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대문파 수준의 크기였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산채라면, 이곳에 있을 녹림의 산적들 역시 만만치 않게 많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해금파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낭산채의 규모가 이렇게 크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기에 거의 천 명이 넘어가는 수적들을 이끌고 온 것이 아니겠는가.

해금파가 거느리고 온 수적들은 미리 작전을 세웠던 대로 낭산채를 포위하는 형세를 취하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해금파가 앞으로 나섰다.

이제 낭산채에 악몽이 될 자신이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야 할 시간이었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해금파가 숨을 들이켰다.

육합전성(六合傳聲)을 사용해도 되지만, 해금파는 지금처럼 직접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치는 걸 좋아했다. 마치 굳이 내공을 드러내지 않아도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으니까.

그러나 그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구나.”

밝게 웃고 있던 해금파의 얼굴에 균열이 가며 산산이 부서지듯이 표정이 바뀌어 갔다.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녹림십팔채의 총표파자인 녹림사왕 부범악이다.

목채 위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릿속으로 산적의 모습을 그리면 딱 이 사람과 같을 것이다.

상체의 대부분을 드러내고 우락부락한 몸을 과시하듯이 서서 광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털북숭이 사내.

해금파가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러게 말이다. 원래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듣자 하니 강에 사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주제도 모르고 육지로 기어 올라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말이지.”

“어떻게 알았느냐! 누가 불었어! 무영각이냐?”

해금파의 말에 부범악의 눈이 빛났다.

“무영각이라…… 왜 하필 무영각이지? 이런 상황이라면 하오문을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흥! 대답이나 해라!”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해금파의 얼굴에서 실언을 했다는 듯한 표정을 읽었다.

부범악은 겉모습만 봐서는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생각보다 머리를 잘 썼다.

‘하오문하고 계약을 했었구나.’

하긴 그럴 만하다.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하지만, 무려 천 명이 넘어가는 수적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면서 삼대 정보 단체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하오문에게 자신들의 이동 경로를 녹림십팔채에 팔지 말아 달라고 고액의 계약을 했을 것이다.

개방은 정파이기에 장강수로십팔채의 움직임을 녹림십팔채에 알려 줄 리가 없다. 오히려 박수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에 비하여 무영각은 자신들이 필요한 상대에게만 은밀히 찾아가서 정보를 팔아치우는 자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정보를 팔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래도 나중에 하오문에 책임을 물어야겠군.’

하오문의 특성상 그들을 멸문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실리를 택해서 그들이 그렇게 죽고 못 사는 돈이나 왕창 뜯어낼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녹림십팔채에 정보를 팔아치운 것은 무영각이 아니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장강수로십팔채의 움직임을 몇 차례에 걸쳐서 알려 왔다.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기에 무영각이라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쉽게 믿지 못했었는데, 그냥 무시하기에는 그들이 전해 준 정보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너무 정확했다. 이런 높은 정확도의 정보는 하오문에서도 쉽게 받을 수 없었다.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부범악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해금파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그런 해금파를 보며 부범악은 조소를 지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그보다 중요한 것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상황 아닌가?”

“이놈이 대답을 하지 않고…….”

해금파의 말을 듣지도 않고 부범악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목채 위로 빼곡히 많은 산적들이 나타났고, 산채에 있는 전각 지붕에서도 산적들이 지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사사사삭!

수풀과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낭산채를 포위한 수적들 너머로 산적들이 다시 그들을 포위하며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나타난 산적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수적들의 두 배는 될 것 같았다.

“이, 이놈들이 대체 어디서…….”

“포위당했다!”

“모두 당장 싸울 준비를 해! 당장!”

수적들은 대번에 당황하고 말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자신들이 지나쳐 왔던 길인데, 그 어디에서도 산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낭산에는 산적들이 숨어 있거나 몰래 이동할 수 있는 땅굴이라도 파여 있는 모양이었다.

“함정을 팠구나!”

해금파가 얼굴이 시뻘게지며 소리쳤다.

“어차피 네놈도 기습을 하려고 왔으면서 뭘 그리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웃기는 놈이군.”

“네 이놈……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다!”

“그래, 이 질긴 인연을 이 기회에 완전히 끊어 내는 것도 좋겠구나.”

어차피 길게 이야기 나눌 것도 없었다. 이 자리에서 종지부를 찍으면 그 이후로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대신 그 이야기는 일방적으로 흘러갈 테지만.

부범악이 손짓을 하자 기세등등하게 바라보고 있던 산적들이 일제히 수적들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죽어라!”

“수적들이 왜 산에서 설쳐!”

“뒈져! 뒈져!”

“너무 들어가지 마! 진형을 갖춰! 들어가면 포위당한…… 컥!”

수적을 포위하고 있던 산적들은 적당히 치고 들어가면서 수적들의 시선을 끌었고, 목채에 있는 산적들은 그런 수적들을 향해 활이나 암기 등을 쏘아 대며 재미를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수가 움직여야 했다.

포위를 하고 있는 산적들을 뚫고 길을 내든지, 상대의 지휘관의 숨통을 손에 쥐고 물러나라고 하든지.

그러나 이미 장강수로십팔채가 온다는 걸 알고 있던 녹림십팔채였기에 데리고 온 고수들의 숫자조차 이들이 더 많았다.

장강수로십팔채는 동정호채(洞庭湖寨)의 채주와 부채주를 비롯하여 인근에 있는 두 개의 수채를 동원한 것이지만, 녹림십팔채는 무려 다섯 개의 수채를 동원한 상태였다.

‘제기랄…… 차라리 전력을 다할 수 있게 고수들만 추려서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어차피 중오채 수준의 낭산채 하나만 불태울 거라 생각해서 적당히 전력을 끌고 온 것이 문제였다.

그에 비하면 녹림십팔채는 총표파자의 직속 무력부대까지 동원한 것 같았다.

이 싸움은 시작하자마자 패배가 그려지는 싸움이었다.

해금파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도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포위가 있다고 하지만, 자신이 직접 길을 내면 수하들이 그 길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아니, 자신만이라도 도주하려면 어차피 포위를 뚫어야 했다.

그러나 부범악은 해금파의 이런 생각을 알았고,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릴 생각이 없었다.

해금파가 포위망을 향해 몸을 날리려고 하자, 부범악이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경쾌하게 날아와 거대한 장검을 휘둘렀다.

“나를 만나러 왔으면서 어딜 가려고?”

“이 개자식이!”

“그냥 가면 섭섭하지. 그러지 말고 어깨 위에 있는 물건을 내놓고 가도록 해.”

“네놈의 머리통을 잘라서 장신구로 써 주마!”

두 사람이 경천동지할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익!

삐이이익!

하지만 생사대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산적과 수적들이 그쪽으로 신경을 쓸 틈은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피리 소리와 함께 흑연이 그들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흑연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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