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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00화 (271/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00화

그러나 흔들렸던 상초진의 눈동자는 이내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풍백은 그런 상초진을 바라보며 눈빛을 빛냈다.

분명히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상초진의 믿음을 얻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풍백은 상초진을 향해 수장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가 펼치는 초식은 이전과 달랐다.

거대한 나무와 같았던 풍백의 보리패엽수가 아니라, 살기가 흘러넘치는 풍백의 수장이 상초진의 목과 무릎을 동시에 공격한 것이다.

이것은 과거 풍백이 새외에서 이들을 만나면 자주 받아 봤던 수법이었다.

비록 정식으로 익힌 것이 아니라 내공도 제대로 담지 못하고 그저 형(形)을 따라한 것에 불과했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풍백의 초식을 목격한 상초진의 눈빛이 다시 한번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

그런 상초진에게 풍백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신과 인간은 마음속에서 만난다.]

전음을 보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 암호를 처음 들었던 것은 앞으로 삼 년 정도 후였다. 그러니 지금은 다른 암호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겠나?

이게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더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싸우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상초진에게서 전음이 날아왔다.

[마음속에 티 없는 순수함으로 응접하라.]

풍백의 눈이 반짝였다.

기다리던 암호였다. 아무래도 암호가 적어도 삼 년 후까지는 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때부터 상초진이 펼치는 초식은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

방금 전, 상초진은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집중한 살기가 가득한 검법으로 바꿔서 풍백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풍백의 전음을 듣고 다시 원래 펼치던 검법으로 돌아왔다. 또한 겉으로는 살벌하게 보여도, 풍백에게 휘두르는 검은 거의 약속 대련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걸 직접 싸우는 풍백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풍백이 처음 전음을 보냈을 때만 하더라도 상초진은 혼란스러웠다.

‘신교…… 사람이라고?’

본래 이런 식으로 신교의 제자를 만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풍백이 정말 신교 사람이 맞는지, 아니면 자신의 보법과 검법을 알아보고 확인하기 위해 대답을 유도한 건지 의문인 것이다.

하지만 곧 풍백이 두 번째로 보낸 전음을 듣고 마음이 달라졌다.

‘이건 절대로 알 수 없어.’

풍백이 전한 암호는 바로 얼마 전에 새로 만들어진 암호였다. 그리고 이 암호를 아는 사람은 오직 상초진처럼 특수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뿐이었다.

심지어 풍백이 펼친 초식 역시 신교에서 신도들이 배우는 무공의 초식이었지 않던가.

풍백의 전음이 다시 한번 상초진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신교의 교도는 소속을 밝혀라.]

마음을 정한 상초진은 빠르게 전음으로 대답했다.

[천마신교(天魔神敎) 암혼마대(暗魂魔隊) 소속 칠 조의 장이오.]

풍백은 한탄을 했다.

‘역시 마교(魔敎)였어!’

신강(新彊)의 서쪽 끝에는 천산(天山)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름만으로도 강호를 공포에 몰어넣을 수 있는 강대한 문파 하나가 있었으니, 그들은 스스로를 천마신교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을 경원시하는 강호의 문파나 사람들은 마교라 불렀고 말이다.

본래 마교는 중원에 있는 십만대산(十萬大山)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 성화신교(聖火神敎)라 불리던 이들은 곧 이름을 천마신교라 바꾸고, 강호를 지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강호는 천마신교를 마교라 부르며 정파, 사파를 가리지 않고 힘을 모아 그들을 간신히 중원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당시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흘린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는 이야기는 기록으로 남아 전해져 내려왔다.

이때부터 마교는 언제나 강호로 돌아오기 위해 중원을 침략했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수도 없이 죽어 갔다.

마교가 마지막으로 강호를 침략했던 것은 거의 이백여 년 전이었다.

이백여 년이 흐르는 동안, 마교는 단 한 번도 강호로 야욕을 보이지도 않았고 심지어 마교도가 강호에 등장하는 경우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백여 년 전에 마교가 워낙 큰 피해를 입어서 아직까지 강호를 노릴 만큼 힘을 축적시키지 못했을 거라고 믿었다. 몇몇 사람들은 마교가 스스로 무너졌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몇몇 강경론자들은 다시는 마교가 중원을 넘볼 수 없도록 직접 그들을 치자고 말했었지만, 과거에 마교가 얼마나 두려운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하고 있는 이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장 이백여 년 전에 마교가 사천성을 장악하며 그곳에 위치한 온갖 문파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당장 사천당가만 하더라도 마교로 인하여 이렇게까지 몰락하게 되었던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마교로 인하여 몰락한 문파를 직접 보면서 감히 선봉에 서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강호에서 이런 얘기가 있는 것과 달리, 풍백은 과거 새외에서 온갖 작전을 하는 와중에 마교도를 꽤 많이 만나 봤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교도가 점점 많아져서, 나중에는 마교도를 상대로 작전을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이렇게 마교를 많이 상대하다 보니, 이들의 무공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방금 전에도 형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지만 마교의 수법을 직접 펼칠 수 있었던 것이고.

상초진이 풍백에게 전음을 보냈다.

[당신은 신교 어디에 속한 사람이오?]

풍백은 마교와 자주 싸웠지만, 마교의 내부 조직도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마교의 조직은 생각보다 자주 바뀌기도 하고, 천산에 틀어박혀 있는 마교이기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전통을 가지고 내려오는 무력단체는 오직 하나뿐이었는데, 그 말은 이 무력단체의 위상이 마교에서 최고라는 말이다. 그러니 풍백이 이곳의 이름을 언급하면 아마 믿지도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나?’

풍백은 과거 새외에서 마교도를 잡아서 심문을 한 끝에 얻어 냈던 부대와 직위를 떠올리며 말했다.

[혼천혈랑대(混天血狼隊) 십삼 조장.]

“헉!”

상초진이 깜짝 놀라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전음으로 물었다.

[본산(本山)에서 오셨습니까?]

짧은 전음이었으나 풍백은 여기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마도 본산은 마교가 있는 천산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혼천혈랑대는 본산, 즉 마교의 직속 부대일 것이고, 존대를 한다는 말은 혼천혈랑대가 암천마대에 비하여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라 짐작했다.

풍백은 태연히 대답했다.

[본산에서 내려온 건 맞지만 원래 신강과 감숙성에서 활동했었다. 본산에서 화홍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고 급히 호남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전 과거에 풍백은 새외에서 마교를 상대했었다. 그러니 어쩌면 마교의 부대는 구역을 정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자면 신강과 감숙에서는 혼천혈랑대가, 강호에서는 신분을 숨긴 암혼마대가 침투해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과거에 만났던 마교도가 자신이 혼천혈랑대라 말했었으니, 그 정보를 기반으로 거짓말을 입에서 나오는 데로 쏟아 냈다.

어차피 손해 볼 것도 없었다.

만약에 통하지 않으면 하던 싸움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면 되는 일이고, 이것이 통한다면…….

‘나중에 이놈을 통해 마교가 왜 금정문에 침투해 있는 것인지, 중원에 들어온 다른 마교도는 없는지 확인을 할 수도 있겠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상초진을 잡아다가 땅에 패대기를 치고 당장 불라고 발로 지근지근 밟고 싶었지만, 지금 풍백을 노리는 건 금정문만이 아니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

풍백의 말에 상초진이 이제는 완전히 믿는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그랬던 거군요! 그렇지 않아도 혼천혈랑대는 신강에서 놈들을 상대로 바쁜 걸로 아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건지 의문이었습니다.]

‘놈들?’

풍백은 상초진이 말한 놈들이라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마교가 신강에서 누군가와 싸운다?

그 대상이 적어도 강호나 관부, 군부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말했듯이 강호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군부에서는 앞으로 몇 년 후에나 본격적으로 마교를 대상으로 작전을 실행하니까.

‘설마…… 마겁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풍백은 이런 의문을 가지면서 슬쩍 전음을 보냈다.

[몸에 겁(劫)을 그려 놓고 다니는 놈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 바쁘다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

만약 상초진이 알아듣지 못하면 실언을 한 거라 말하며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초진의 대답은…….

[역시 혼천혈랑대는 대단하군요. 구천마겁(九天魔劫)을 상대하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말입니다.]

풍백은 머릿속에서 묵직한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구천…… 마겁이라…….’

지금까지 단지 마겁이라 불렀던 놈들을 마교에서는 구천마겁이라 부르고 있었다.

구천마겁이라는 명칭이 진짜인지, 아니면 마교에서 붙인 이름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마교가 마겁인지 구천마겁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과 이미 꽤 오래전부터 그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풍백은 상초진에게 물어볼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무언가 더 캐내기가 어려운 판국이었다. 일단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먼저였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전음을 보냈다.

[시간이 없다. 화홍은 내가 직접 가지고 갈 테니, 적당히 도주할 수 있게 돕도록 해.]

[그러면 그냥 도주하시는 것보다 저에게 일장을 때려 주시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내상이 심할 텐데.]

[어렵게 들어온 금정문입니다. 문파 내에서 영향력이 조금 떨어지긴 하겠지만, 적당한 부상을 입어서라도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 더 오래 버티고 있어야 합니다.]

풍백이 같은 마교라 믿고 자신의 목숨까지 맡기고 있는 상초진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만약 여기서 풍백이 조금이라도 그를 죽일 생각이라면 아주 쉽게 목숨을 빼앗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풍백은 쉽게 승낙했다.

어차피 풍백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도주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서로 전음으로 합을 맞추는 사이, 풍백은 금정문의 무사를 상대로 바쁘게 싸우고 있는 조유하를 바라봤다.

같은 정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조유하는 아직까지 금정문의 무사를 죽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것이 몇 배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무려 수십 명의 사람을 상대로 싸우면서는 그 어려움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말이다.

그나마 절정고수인 조유하이기에 금정문의 무사들은 십여 명이나 점혈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풍백은 상초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여자도 굳이 잡지 않았으면 좋겠군.]

[설마 저 여자도 본산에서 오신 분입니까?]

[그건 아니고, 내가 중원에서 조금 이용하는 사람이라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일을 추진하는 데 곤란할 것 같아서 그래.]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무사히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할까?]

풍백의 말에 상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두 사람의 싸움은 그 어느 때보다 박진감이 넘쳤다. 간혹 고개를 돌린 금정문의 무사가 두 사람의 살벌한 초식 교환에 흠칫 놀랐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사실 두 사람 간의 싸움은 보이는 것과 달리 이전보다 훨씬 안전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서로 미리 의견 교환을 통해 어떤 초식을 펼칠 것인지 얘기가 끝난 상황이었고, 혹시라도 상대의 몸에 닿을 것 같으면 알아서 초식을 거두거나 피해서 움직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속했던 순간이 왔다.

상초진은 무리하게 풍백에게 초식을 펼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초진의 복부에 허점이 드러났다.

풍백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력을 뿜어냈다.

아마 나중에 상초진에게 정보를 얻어 낼 생각이 아니었다면, 그냥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죽였을 것이다.

‘아깝긴 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가볍게 혀를 찬 풍백이 상초진의 복부에 장력을 적중시켰다.

펑!

가죽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상초진이 부웅 날아갔다.

당연히 이것은 모두 연기였다.

풍백의 장력을 맞은 상초진이 적절한 순간에 지면을 구르고 몸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날아가는 상초진의 입에서 뿜어지는 선혈이 대미를 장식했다.

누가 보더라도 상초진이 풍백의 일장에 엄청난 내상을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금정문의 무사들이 크게 동요했다.

“다, 당주님께서!”

“당주님은 절정고수이신데…….”

동요하는 금정문의 무사들을 향해 조장이 고함을 쳤다.

“모두 정신 차려라!”

“우리는 금정문의 무사들이다! 사파 나부랭이처럼 울먹이다가 죽고 싶은 것이냐!”

조장들의 위압적인 고함에 무사들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런 무사들에게 조장이 소리쳤다.

“일단 이 사파의 마녀를 처리는 것에 집중한다!”

“저놈은 놔둬!”

“이 마녀를 꼭 죽여야 한다!”

원래 목적은 화홍을 손에 넣는 것이지만, 조유하는 자신들의 들키지 말았어야 할 모습을 보고 말았다. 목적의 우선순위가 풍백에게서 조유하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유하는 자신을 공격하는 금정문 무사들을 상대로 살수를 펼치지 않는 중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그녀 하나 정도는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풍백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상초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한번 찾아오도록 하지.]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풍백이 떠나기 위해 몸을 돌리자 갑자기 조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봐요! 그쪽 싸움이 끝났으면 손을 보태 주는 것이 어때요?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풍백은 자신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는 조유하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딱히 도와 달라고 한 적이 없다만.]

[뭐라고요!]

[모쪼록 계속 수고해 달라고.]

말을 마친 풍백이 바로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경공을 사용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 이렇게 풍백이 가 버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조유하는 잠시 멍하니 풍백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이, 이, 이 나쁜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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