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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03화 (268/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03화

“함정?”

청수한 인상에 문사가 입는 학사의(學士衣)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복장과 어울리지 않게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 냈다.

그의 앞에서 보고를 올리던 참모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건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현재 다수의 함정으로 인하여 피해가 막심한 상황입니다. 함정에 당하거나 어수선한 틈을 타서 오히려 암군이 저희 무사들을 공격하고 다닌다는 보고입니다.”

“피해가 어떻게 되지?”

“아직 천라지망에 참여한 사파의 피해가 집계되지 않은 상황이라…….”

“내가 그런 놈들까지 신경 써야 되나? 우리 사사천문의 피해만 얘기하도록 해.”

“넵! 저희 피해만 국한하여 말씀을 드리자면…… 대략 백여 명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중년의 문사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다가 이내 혀를 찼다.

“쯧쯧…… 맹랑한 놈이군. 그러면 여기까지 사흘에 걸쳐서 달려온 이유가 준비되어 있던 함정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는 말인가?”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함정을 무시하고 그놈을 쫓는 건?”

“어렵습니다. 이미 발견된 함정이 너무 많았고, 앞으로 함정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돌격하라고 한다면 피해가 얼마나 발생하게 될 것인지 가늠도 할 수 없습니다.”

“피해를 좀 감수해도 괜찮을 텐데?”

사사천문에게 가장 많은 것은 바로 무사였다. 설령 수백에 피해가 발생한다고 한들 조금 아깝다 수준이지, 사사천문이 휘청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참모가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피해가 너무 많으면 천라지망을 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암군은 빈틈을 이용해서 빠져나갈 겁니다.”

“이것 참, 골치 아프게 생겼구만.”

중년 문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전령이 황급히 달려왔다. 참모가 전령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지금 하오문에서 나온 사람이 장로님을 만나 뵙길 청하고 있습니다.”

“하오문?”

뜬금없이 하오문이 찾아오다니 의문이었다.

하지만 굳이 하오문을 만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크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보 단체이니만큼 풍백의 위치를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잠시 후 하관이 좁은 사내 하나가 간신 같은 미소를 지으며 중년 문사가 있는 천막으로 들어왔다.

사내는 중년 문사를 보고 허리를 과도하게 굽히며 포권을 했다. 이건 거의 절을 하는 수준이었다.

“탈혼수사(奪魂秀士) 능광님을 뵙습니다.”

탈혼수사 능광.

사사천문의 장로이자 문주인 삼귀의 심복 중 하나라 불리는 자였다.

그 자신의 무공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명문정파 장문인과 싸운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동수를 낼 수 있을 거라는 평을 받는 극강의 고수.

평소에는 문사의 옷을 입고 살생을 벌이지 않지만, 그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면 사파 중에서도 악랄한 손속을 보이는 걸로 유명하기도 했다.

능광은 하오문에서 온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넌 누군가?”

“어이쿠! 제가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하오문의 부문주 직책을 맡고 있는 한관성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한관성의 소개에 능광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호오…… 네가 바로 소문으로만 들었던 하오문의 부문주였구만.”

하오문에는 문주가 없다.

원래부터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백여 년 전, 당시 하오문의 문주가 사라지면서 장문영부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그 이후로 하오문에는 문주가 없어졌다.

그 대신 부문주가 문주의 역할을 모두 담당했다.

그 말은 지금 눈앞에 있는 한관성이 바로 하오문의 문주라는 말과 같았다.

한관성에 대한 소문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어차피 하오문이라는 단체 자체가 정파든, 사파든 모두 경원시하는 존재였으니까.

단지 정보나 인력이 필요할 때만 하오문을 이용하지, 이들을 자신들과 같은 무인이라고 생각을 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해서 알려진 조금의 소문에 따른다면…….

한관성은 돈에 미친 자였다.

돈이 된다면 어떠한 정보도 팔아먹고, 돈을 많이 벌어들일 수 있다면 아무리 흠이 많은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하오문의 중요 요직에 앉혔다.

그 결과, 하오문은 지금처럼 돈에 미친 조직이 되고 말았다.

한관성은 능광의 말에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사사천문의 장로님께서 저처럼 비루한 자의 이름까지 알고 계시다니, 불초소생(不肖小生)에게는 무한한 영광입니다.”

능광은 한관성이 기분 나빴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낮추고 있는 이자의 별호는 소리장도(笑裏藏刀).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고 있는 한관성이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으니까.

‘쓸데없는 얘기를 늘어놓으면 이 자리에서 바로 죽여 버리는 것이 좋겠어.’

능광은 이런 속마음을 숨기며 물었다.

“하오문을 부른 적이 없는데, 언제부터 하오문이 무영각과 같은 거래를 하고 다녔나?”

“하하하! 당연히 무영각처럼 장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괜히 무영각이 자기들 상권에 침입했다고 달려들면 곤란한 건 우리니까요.”

“그런데?”

“이 정보는 무영각도 모르고 우리 하오문만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장로님만이 구입을 해 주실 수 있고 시간이 흐르면 쓸모가 없어지는 정보거든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직접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능광은 한관성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래서 하오문이 판매하려는 정보는 뭐지?”

“구매하시는 건가요?”

“상품이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구매하나? 적어도 내가 사려는 물건이 뭔지는 알아야지.”

“그것도 맞는 말이군요. 그러면 할 수 없이 말씀을 드려야지요.”

한 박자 말을 멈췄던 한관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에 펼쳐진 함정의 위치와 종류, 배치에 관련된 모든 내용입니다.”

“어!”

옆에서 듣고 있던 참모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그에 비해 능광은 슬쩍 미소를 짓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관성은 그런 능광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지금 사사천문에서는 엄청 필요한 정보일 텐데요.”

능광의 미소가 살벌하게 변해갔다.

“건방지구나. 감히 사사천문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고 한다?”

그의 몸에서 일어난 살기가 불꽃처럼 넘실거렸다. 살기가 어찌나 강한지, 그의 살기가 유형화되며 천막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뒤에 서 있던 참모조차 간접적으로 밀려오는 살기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어이쿠! 이것 참…… 거래를 원하지 않으셨던 모양이군요. 이걸 어쩌나…….”

이런 살벌한 살기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한관성은 여전히 똑같은 얼굴에 간사한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이것을 본 능광이 이채를 발하며 순식간에 살기가 거둬들였다. 그리곤 흥미롭다는 눈으로 한관성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재미있구나. 좋아, 네가 말한 정보는 모두 구입하도록 하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건 모르지. 그보다 이 정보를 너희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도 궁금한데.”

능광의 말에 한관성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설치한 함정이니 당연히 알고 있을 수밖에요.”

그 대답에 참모의 손이 빠르게 검파를 잡았다. 그러나 그의 검은 능광이 손을 들었기에 검집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하오문이 설치했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오해하시기 전에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는 이 함정들이 사사천문을 상대로 사용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의뢰가 들어왔기에 만들어 준 것뿐이지요.”

능광은 한관성을 빤히 바라봤다. 한관성은 그런 능광의 시선을 받으며 여전히 간신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좋아, 믿어 주지.”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대금은?”

한관성은 은밀히 능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한관성이 눈을 빛냈다.

“……좋아. 대가는 그 정도로 알고 있겠다.”

“흔쾌히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관성은 곧장 작은 족자를 꺼내서 바치고 천막을 나갔다.

족자를 펼쳐서 지도와 함정의 위치가 그려진 것을 확인한 참모가 밝아진 얼굴로 능광에게 말했다.

“이 지도가 맞다면 더 이상 피해는 없을 겁니다!”

“맞아야겠지. 하오문이 달빛 아래에서라도 일을 계속 하고 싶다면 말이야.”

능광은 한관성이 나간 곳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 *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한동안 멈췄던 피리 소리가 다시금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풍백은 지상에서 달리다가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를 뛰어다니며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들을 피하려고 했다.

“저기다!”

“나무 위다! 나무 위에 있어!”

“암기를 던져, 암기를!”

풍백은 굳이 암기를 받아 내거나 튕겨 내는 대신, 한 걸음이라도 빨리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바로 앞에 그가 준비했던 함정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풍백이 함정을 지나가자 뒤에서 쫓아오던 사파가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멈춰!”

“앞으로 가지 말라고, 이 병신아! 뒈지고 싶어?”

“여기 함정이 있다고!”

풍백은 잠시 나뭇가지에 멈춰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사파의 무인들이 쫓아오던 것을 멈추고, 기다란 창으로 수풀을 헤치거나 지면을 찌르면서 설치된 함정을 발동시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함정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함정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알고 있는 것이었다. 미리 누군가에게 함정이 이곳에 있다는 걸 전해 들은 것처럼.

풍백은 결론을 쉽게 내렸다.

언제나 말했듯이, 알 수 없는 일들은 최대한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진실인 경우가 많다.

‘하오문에서 함정을 만든 걸 사사천문에 넘겼구나.’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이곳에 함정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하오문은 그리 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돈을 준다고 한다면 한 번 팔아먹었던 정보를 다른 곳에 얼마든지, 양심에 가책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끼지 않고 넘겨 버리는 곳이 바로 하오문이다.

이런 하오문이 자신들이 만든 함정 위에서 사사천문이 천라지망을 펼쳤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정보 수집이야말로 그들의 본업이었으니까.

그러니 아마도 함정에 대한 정보를 사사천문에 팔아먹으면서 거금을 받아먹었을 것이다.

풍백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이럴 수도 있다고 예상은 했었다만, 어떻게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똑같이 행동하냐.’

호남성에서 여러 사람에게 많은 것을 의뢰했지만, 풍백은 그중에서 하오문을 가장 믿지 않았다.

‘이제 하오문을 통해 만들었던 함정은 사용하지 못하겠군.’

이런 상황에 하늘에서 맹금류가 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풍백은 한 마리의 매가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서응(傳書鷹)이었다.

아무래도 전서구는 비둘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보니,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다가 맹금류에게 잡아먹히거나 유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서응은 매를 이용하여 이런 위험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전서구보다 더 멀리, 더 빨리 날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전서응을 사용해서 서신을 보내는 곳은 여러 군데가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풍백에게 전서응을 보낼 곳은 오직 한 곳뿐이었다.

바로 암향거였다.

손을 내밀어 전서응이 내려설 수 있게 만들고는 다리에 매달린 전통에서 작은 서신을 꺼내서 읽어 봤다.

서신을 읽은 풍백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기다리고 있던 서신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적절한 순간에 보내 줬네.’

이때, 서신을 읽는 풍백을 발견한 사파의 무인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있다!”

“암기! 암기 던져!”

삐이익!

삐이이익!

풍백이 나뭇가지 위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파의 무인들이 풍백을 발견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서응을 다시 날려 보낸 풍백은 날아오는 암기를 금현탄주의 수법으로 튕겼다.

티티티팅!

그러자 날아왔던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돌아간 암기가 사파의 무사들을 덮쳤다.

“으악!”

“아, 암기를 튕겨 낸다!”

“계속 움직이면서 던져! 받아칠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마구 던지라고!”

나뭇가지에 멈춰 있던 풍백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풍백은 자신을 쫓아오는 사파의 무인들을 떨쳐 내는 것을 중점으로 달렸다면, 이번에는 도주하는 모습이 이전과 조금 달랐다.

마치 쫓아오라고 유혹이라도 하는 것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북동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 한번 쫓아와 봐라. 아주 개판을 만들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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