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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98화 (26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98화

“이런 빌어먹을 개자식아!”

풍백은 멀리서 들려오는 여명회의 분노에 찬 고함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살려 준 것에 감사하다고 해야지.’

마음 같아서는 두성원의 목을 자른 것처럼 여명회의 목도 잘라 주고 싶었다. 정사지간이라 불리는 무량파지만, 풍백이 봤을 때는 그냥 사파라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으니까.

이런 놈 하나만 없어도 주변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편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가 좋지 않았다.

풍백이 두성원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건 흑연에 시야가 막혔다는 사실과 스스로 마음껏 자신을 드러내는 두성원의 멍청함 덕분이었다.

그에 비하여 여명회는 밝은 곳에 나와 있었으니 한두 초식 만에 처리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래도 여명회와 손을 섞기 시작하면 기껏 도망쳐 나온 포위망 안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가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쉽지만 그냥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또 오겠지.’

당장 포위를 뚫고 도망치는 것에 성공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호남성 전역은 화홍을 바라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호남성을 벗어나기 전에는 절대로 안심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어쩌면 호남성을 벗어난 이후에도 계속 추적을 받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호남성 안에서 모든 추적을 떨쳐야겠지.’

그러면서 풍백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화홍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여기에 전대 천하제일고수의 무공이 있다고?’

직접 사용해 본 결과 화홍이 심상치 않은 검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화홍이 가지고 있는 예기만 하더라도 거의 전설적인 병기가 보여 주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전대 천하제일고수의 무공이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무공이 아니라 무공을 숨겨 둔 비고에 대한 지도가 있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가겠다만…….’

모르는 일이었다.

풍백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황금불상에도 무공이 숨겨져 있었기에 어쩌면 정말 무공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기는 했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화홍에 대해 조사를 해 볼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쩌면 여차한 순간에 화홍을 집어던져 버리고 도망칠지도 몰랐다. 겨우 검 한 자루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자, 그러면 이제 어디로 간다?’

미리 움직일 경로는 선정해 놨다.

그렇지만 그 경로가 하나는 아니었다.

과거부터 풍백은 원래 계획은 절대로 하나만 준비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온갖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이 일어나고는 한다.

그래서 그는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고려하여 암향거를 비롯해 하오문, 암상, 심지어 지역 흑도패까지 움직여 몇 개의 경로를 준비했다.

아마도 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빨리 유금성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풍백이 말을 타고 달리며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방금 전 얘기했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쐐애액!

심상치 않은 파공성에 고개를 돌려보니 주먹만 한 돌덩이가 날아와 말의 정강이를 부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쿠당탕!

다리가 부러진 말이 달리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면을 몇 바퀴 굴렀다.

풍백은 돌멩이를 막지는 못했지만, 말이 지면을 구르기 전에 미리 등자(鐙子)를 박차고 벗어날 수 있었다.

지면에 내려선 풍백이 미간을 찌푸리며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상초진이 금정문의 무사들을 이끌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나오고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로 이쪽으로 올 줄은 몰랐소.”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하는 상초진의 모습에 풍백이 고개를 까딱였다.

“금정문의 상초진이라고 했나?”

“나를 알고 있는 것이오?”

“아까 소개를 들었으니까.”

“아하! 아까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형장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서 미처 기억하지 못했소.”

“내가 이쪽으로 올 거라고 어떻게 예상했던 거지?”

풍백의 물음에 상초진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그냥 운이 좋았소.”

“그럴 리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정확하게 이쪽 길목을 막고 있었잖아.”

“물론 그냥 무작정 이곳에서 기다린 건 아니었소. 흑연이 터지던 것을 보니, 아마도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고 도주하려는 생각이라고 예상했소.”

풍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뒤로 물러서서 어떤 방향으로 도주를 하는지 멀리서 감시했소. 그랬더니 남쪽으로 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소. 그리고 생각했지. 과연 어떻게 도주하려는 생각일까? 경공으로?”

상초진은 고개를 저었다.

“흑연까지 그렇게 대량으로 매설해 놨던 사람이 경공으로 도주할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소. 호남성은 물론이고 강남에서는 모두 당신을 노릴 텐데, 내공 소모를 해 가며 경공을 펼쳐서 도망칠 리는 없지 않겠소?”

“그래서?”

“그러니 말을 타고 도망치거나 배를 타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배를 타고 도망치려면 좌측으로 도주를 했어야 했소. 그래야 강이 나올 테니까. 그런데 남쪽으로 도망가더란 말이지. 그 말은 말을 타고 도망친다는 것 아니겠소?”

풍백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흐음…… 계속 말해 봐.”

“말을 타고 향할 수 있는 곳은 오직 남쪽에 있는 소양현(邵陽縣)뿐이라고 생각했소.”

“왜지? 남동쪽으로 향하면 소동현(邵東縣)이 있고, 남서쪽으로 간다면 융회현(隆回縣)이 있는데.”

“융회현은 거리가 너무 멀지 않소? 그리고 듣자 하니 융회현에는 아직 이곳까지 오지 못한 귀주성에서 온 무인들이 모여 있다고 들었소. 흑연과 말까지 준비한 형장이 그 소식도 듣지 못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소. 그렇다고 소동현으로 가려면 산을 넘어가야 할 텐데, 말을 타고 이동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쪽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소양현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길이 여기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알고 있소. 그래서 그쪽에도 금정문의 무사들이 지키고 있소. 당신이 나타나면 폭죽으로 신호를 보내기로 되어 있었소.”

풍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에 기댄 부분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나름 합리적인 분석 아래 자신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굳이 물어본 이유는 혹시 누군가에게서 어떤 정보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꽤 많은 부분에서 계획을 바꿔야 할 테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풍백은 상초진에게서 과거 군부에서 온갖 작전을 수행하던 자신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대체 뭐하는 놈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풍백은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서른 명 정도의 금정문 무사들을 둘러보다가 상초진에게 물었다.

“그러면 너도 화홍을 빼앗으려는 거겠지?”

“이미 말했듯이 강호의 안녕을 위해…….”

“개소리는 혼자 있을 때만 하고, 시작하려면 빨리하자고.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진짜로 바빴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뒤에서 따라온 무량파와 여명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약이 바짝 올랐을 테니 눈을 까뒤집고 자신의 발목을 잡으려고 할 것이고, 그놈들까지 상대하다 보면 의형문이나 강호의 무인들까지 모두 몰려들 수 있었다.

그건 풍백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기왕이면 깔끔하게 상초진을 처리해 버리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상초진은 이런 풍백의 마음을 눈치챈 건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럽시다.”

풍백만큼은 아니지만, 사람이 몰려드는 것은 상초진 역시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괜한 경쟁자를 더 늘려서 좋을 것은 없지 않은가.

스르릉!

풍백이 화홍을 뽑았다.

화홍을 직접 보자 상초진의 눈빛이 빛났다. 하지만 그 눈빛이 다른 사람처럼 탐욕을 기반으로 한 욕망이 아니라는 걸 풍백은 느끼고 있었다.

‘문파로 가져가야 하는 물건이란 말인가?’

어차피 크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상초진 역시 검을 뽑아 기수식을 취했다. 언젠가 풍백이 무한의 창룡봉무지회의 연무장 위에서 봤었던 바로 그 기수식이었다.

풍백은 상초진의 검을 보며 눈을 빛냈다.

‘검기…….’

화홍의 예기는 감히 평범한 검이 받아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상초진은 검기를 숨기지 않고 처음부터 꺼낸 것이다.

흔히 강호에서 전설처럼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검이 있었다. 그렇게 알려진 신검은 절정고수의 검기마저 가르고 검을 잘라 버린다고 한다.

‘과연 이건 어떨까?’

정말 검기마저 가를 수 있다면, 풍백이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주 쉬울 것이다.

난화보를 펼친 풍백이 쾌속히 상초진에게 접근하며 난파칠식을 펼쳤다.

극쾌의 보법과 극쾌의 검법의 조화는 풍백이 과거 새외에서 대부분의 고수들이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목숨을 빼앗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줬다.

그러나 그건 상대가 일류고수 수준이었을 때 얘기였다.

상초진은 절정고수였다.

캉!

검기를 두른 상초진의 검이 풍백의 화홍을 검첨(劍尖, 검 끝부분)으로 쳐 냈다. 그 역시 자신의 검이 화홍에 베어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역시 신검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구나.’

그렇다고 화홍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화홍이 보여 준 예기만 하더라도 평생 한 번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상초진은 검기를 두르니 풍백의 검을 받아 낼 수 있다는 걸 알아내자 진한 미소를 지으며 현란하게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조심스럽게 검을 움직여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퀘퀘퀘퀙!

상초진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움직이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렸다.

콰가각!

풍백과 상초진의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상초진이 뻗어 낸 검에서 세 줄기의 검기가 풍백을 노리고 날아왔고, 풍백은 난화보와 난파칠식을 이용하여 받아 내거나 튕겨 냈다.

세 줄기의 검기를 튕겨 낸 풍백이 무섭도록 빠른 보법을 앞세워 상초진에게 접근해 화홍을 휘둘렀다. 화홍은 변초가 섞이지 않았으나 대단히 빠른 쾌검으로 상초진의 하체를 쓸어 가는 중이었다.

상초진이 검을 비스듬히 내려 화홍과 붙었다가 가볍게 밀어냈다.

지켜보던 금정문의 무사들은 행여나 상초진의 검이 화홍에 잘릴까 두려워 심장을 졸이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들은 아직 화홍이 상초진의 검을 잘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금정문의 무사들이 보이게는 풍백과 상초진이 호각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상황은 정반대였다.

실제로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지는 상초진의 검을 풍백은 감히 쉽게 받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계를 가지고 있는 난파칠식으로는 이 정도로 현란한 검식을 받아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풍백이 절정의 단계로 오르며 무초승유초의 무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아마도 난파칠식의 한계를 몸으로 받아 내며 배우고 있을지도 몰랐다.

상초진의 미소가 점점 진해졌다.

‘이 정도였군.’

혹시나 했다.

풍백이 지금까지 보여 준 것을 보면 확실히 뛰어난 무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검을 맞대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승리를 말이다.

상초진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보법은 더욱 빨라지고, 펼치는 초식은 더욱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화려하게 풍백의 눈을 현혹했다.

이미 난파칠식으로 상초진을 상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풍백이었다. 그런데 이전보다 더욱 무서운 변초를 쏟아 내기 시작하니 풍백은 연신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오오오!”

“당주님이 곧 이길 수 있겠는데?”

금정문 무사들도 이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는 오해를 하려고 하더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백이 압도적인 열세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여기까지네.’

풍백은 자신의 손목을 노려 오는 상초진의 검을 튕겨 내고 뒤로 훌쩍 몸을 뺐다.

이미 풍백이 포위되어 있기 때문인지 상초진은 굳이 뒤로 물러서는 풍백을 쫓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그대로 서서 뒤로 물러선 풍백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승패는 확실히 정해진 것 같은데, 이만 화홍을 넘겨주는 것이 어떻소?”

“그럴 수는 없지.”

화홍이 목숨만큼 중요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상초진이 아니라 이 자리에 누가 있든지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에게 화홍을 넘기는 장면을 확인시켜 주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냥 넘겨줄 수 없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화홍은 넘겨주고 추격해 오는 강호의 무인들까지 도맡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풍백은 화홍을 다시 검집에 납검했다. 그리고는 소매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상초진은 의문을 담은 눈으로 풍백을 바라봤다.

그런 상초진을 보며 풍백이 말했다.

“다시 시작해 보자고. 이번에는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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