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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02화 (266/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02화

수풀이 펼쳐진 곳을 풍백이 거칠게 숨을 쉬며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삐이익!

삐이이익!

풍백의 뒤에서 피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천라지망에 들어온 풍백을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달리던 풍백이 갑자기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는 한쪽에 있는 수풀을 바라봤다.

그러자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켰다! 쳐라!”

순간,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허리 정도 되는 수풀에서 튀어나와 풍백을 포위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무사들이 곧장 풍백을 향해 몰려왔다.

합공에 대한 훈련이라도 전문적으로 받은 것인지 이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고 서로의 초식이 방해를 하지 않을 거리를 유지했으며, 연속해서 달려들 수 있도록 겹겹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풍백은 거친 숨을 길게 내뿜으며 화홍으로 발검술을 펼쳤다.

스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정면에서 달려들던 무사의 허리가 잘려 나갔다.

무사 하나의 허리를 두 동강으로 만들어 버린 화홍이 허공에서 유려하게 움직이며, 풍백을 노리는 무사들의 병장기를 막아 갔다.

따다다당!

화홍과 부딪친 병장기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잘려 나갔다.

내공을 잔뜩 밀어 넣었던 병장기가 강제로 잘리며 내상은 입은 무사들이 입에서 피를 뿜었다.

풍백은 잘려 나간 검날을 손가락으로 튕기고, 부러진 창은 몸을 회전시키며 발등으로 걷어찼다.

피피픽!

퀘에엑!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간 병장기는 하나의 암기가 되어 달려드는 무사들의 요혈에 정확히 박혔다.

발로 걷어찬 창은 앞에 있는 무사의 명치를 뚫고 뒤에 서 있던 사내의 어깨에 박히기도 했다.

“아으으악!”

창이 박힌 어깨를 부여잡은 사내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방금 풍백이 보여 준 수법에는 사천당가의 암기술의 묘용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차릴 만큼 안목이 뛰어난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순식간에 열 명의 동료 죽거나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무사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풍백에게는 이들이 당황하고 있는 것이 기회였다.

“가만히 서 있다가 그냥 죽으려고? 나야 고맙지.”

말을 마친 풍백이 난화보를 사용하여 엄청난 속도로 무사 하나에게 다가가 화홍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호흡을 빼앗긴 무사는 찢어질 듯이 커다랗게 변한 눈으로 자신을 향해 벼락처럼 휘둘러지는 화홍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서걱!

상체가 잘려 나가는 동료의 모습에 몇몇 무사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피리를 입에 물었다.

그러나 피리를 입에 문 무사들에게는 풍백이 허리춤에 매달고 있었던 단검이 빛살처럼 날아가 목에 틀어박혔다.

단검이 목에 박힌 무사들 중 누구 하나도 풍백이 날린 단검에 반응하지 못했다.

“도, 도망쳐라!”

“누구 마음대로.”

풍백의 신형이 양 떼를 덮치는 늑대처럼 무사들을 향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양 떼처럼 풍백의 손에 죽어 갔다.

몇몇 무사들은 동료를 미끼로 삼아 도망치려 했지만, 그때마다 암기처럼 날아온 동료들의 병장기가 그들의 등에 박혔다.

순식간에 이십여 명이나 되는 무사들을 모두 죽인 풍백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후욱, 후욱, 후욱.”

빠르게 숨을 고른 풍백이 다시 몸을 날렸다.

힘들었다.

벌써 사흘째 제대로 쉬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고 이렇게 천라지망에서 싸우고 있었다.

이미 내공은 거의 고갈된 상태였고, 체력도 부족해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풍백은 전혀 절망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할 만하지.’

과거 새외에서 작전을 수행했을 때는 지금보다 더욱 위험하고 힘든 상황이 많았다. 심지어 무공도 부족하여 싸우는 것보다 살아남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녔을 정도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힘들기는 하더라도 충분히 버틸 만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달려가던 풍백의 눈에 커다란 바위와 그 아래 몸을 숨길 만한 공간이 보였다.

풍백은 지체하지 않고 그 자리에 몸을 숨겼다. 그리곤 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주천금단이 들어 있는 약병이었다.

주천금단은 한 번 이상 복용해 봤자 내공이 증진되는 효과가 없는 영단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영단을 먹으면 내공을 보할 수 있는 효과가 있으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영단을 복용하면 고갈된 내공을 빠르게 채우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단지 운이 좋으면 일류고수 수준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엄청난 효과의 영단을, 단순히 고갈된 내공을 다시 채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깝지만…….’

풍백은 혀를 차며 주천금단 하나를 입에 넣고 서둘러 운기를 시작했다.

아깝기는 하지만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다. 아꼈다가 급박한 순간에 내공이 고갈되기라도 한다면 그게 더 문제니까.

‘어차피 이제 다 왔어.’

풍백은 운기를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서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숲이 보였다.

흐릿하게 미소를 지은 풍백이 생각했다.

‘생각보다 천라지망을 지휘하는 놈이 유능하네…….’

방금 전 풍백이 처리한 놈들은 사사천문이었지만, 사흘 동안 싸웠던 상대가 사사천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사사천문만이 천라지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사천문이 아닌 사파가 늘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풍백이 본대를 피해 다니며 그의 뒤를 쫓던 무사들을 계속해서 처리하고 다니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른 사파의 무인들까지 끌어들인 것 같았다.

현명한 처사였다.

그대로였다면 지금쯤 사사천문은 꽤 많은 무사를 잃게 되었을 테니까.

그렇게 천라지망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꽤 유능한 탓에 풍백은 예상보다 더 많은 습격을 받았고 더욱 지쳐 갈 수밖에 없었다.

정작 사사천문은 아직도 엄청난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과연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풍백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멀리서 다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풍백이 방금 처리했던 놈들을 발견한 것 같았다.

운기하던 내공을 갈무리한 풍백은 은신처에서 나와 숲으로 몸을 날렸다.

본래 가지고 있던 내공의 절반 정도밖에 채우지 못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괜히 조금 더 운공을 하려다가 포위망만 더 두터워질 수 있었으니까.

그나마 이것도 주천금단을 복용했기에 이 정도라도 내공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풍백은 전혀 아쉬운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표정은 슬슬 포식자의 표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 * *

십여 명의 사람들이 숲을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나무가 울창한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인데도 나뭇가지에 가려져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도 못하는 중이었다.

본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던 이곳은, 갑자기 몰려온 수없이 많은 사람들 탓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았는지, 어지간한 맹수들마저 모두 도망쳤을 정도였다.

지금 수풀을 헤집으며 돌아다니고 있는 십여 명의 사내들 역시 이번에 몰려온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이들은 적게는 수 명에서 많으면 이십여 명씩 무리를 지어 이곳 일대를 모두 뒤지고 다니는 중이었다.

이들이 찾는 것은 당연하게도 화홍을 가지고 있다는 암군, 풍백이었다.

혹시나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풀을 슬쩍슬쩍 뒤지고 다니던 사내들 중 하나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하고 다녀야 하는 건지…….”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사내가 대답했다.

“언제까지긴, 당연히 암군인지, 망군(亡君)인지를 잡아 죽일 때까지지.”

“킁! 죽일 수는 있고? 통천방주도 목이 따이는 줄 모르고 죽었다고 하잖아.”

“그건 그냥 하는 말이잖아. 솔직히 흑연 안에서 통천방주하고 암군이 죽어라 싸웠는지도 모르지.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면 다들 앞이 보이지 않아서 저희들끼리 싸우느라 엄청 소란스러웠다고 하던데.”

“그러면 너는 암군이 지금 나타나면 죽일 수 있다는 말이야?”

그 말에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암군을 죽인다는 말은 아니지.”

“솔직히 요 근래 암군의 손에 죽어 나간 사람들을 보면, 차라리 암군하고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기도하고 있다.”

“뭘 또 기도까지 하고 그러냐?”

“기도라도 해야지. 그 남인장(藍仁莊) 애들 얘기 못 들었어?”

남인장은 자신들과 같이 사사천문의 요청에 천라지망을 구성하게 된 문파였다.

중견 문파 수준의 남인장은 그들이 소속된 문파와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얘기? 나는 못 들었는데?”

“쯧쯧…… 이거 소식이 너무 늦구만.”

“그러니까 무슨 소식인지 얘기를 해 줘야 나도 가타부타 말을 할 것 아냐.”

“남인장 애들이…… 다 죽었다고 하더라.”

“다? 전부? 싹 죽었다는 말이야?”

사내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인장이 합류하는 시점에 그들은 수십 명이나 됐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죽었다니, 그 말은 군소 문파 하나에 해당하는 인원이 모두 죽었다는 말과 같았다.

“윗선에서는 사람들이 동요할까 봐 쉬쉬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지, 진짜?”

“그걸 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래. 죽인 남인장 무사들 머리를 잘라서 나무에 주렁주렁 묶어 놨다고 하더라고. 그걸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접 봤겠어?”

물론 이것은 그저 헛소문에 불과했다. 사람의 머리를 그렇게 나무에 매달고 다닐 정도로 풍백이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천라지망을 유지하다가 풍백에게 죽임을 당한 사파가 많았기에 이들은 그 소문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꿀꺽!

사내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 역시 사파지만,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의 머리가 나무에 주렁주렁 묶여 있었다니 소름이 돋았다. 괜히 자신이 머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목을 쓰다듬을 정도였다.

천라지망을 펼친 사사천문은 생각보다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풍백 탓에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피해가 심해진 사사천문은 주변에 있는 사파들을 거의 반강제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대신 풍백을 잡고 화홍을 손에 넣는 것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막대한 지원을 해 주겠다면서 말이다.

남인장 역시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고 참여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끔찍하게 모두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죽을 곳을 알아서 찾아 들어온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젠장…… 이러다가 진짜 암군하고 만난다면…… 바로 뒤돌아서 도망쳐야지.’

사내는 자신의 목에 걸린 피리를 손으로 꼭 쥐었다.

마치 이것만이 자신이 살길이라는 것처럼.

당연했다.

피리가 그들의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은 아니지만, 피리를 울리면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올 것이다.

그러니 살기 위해서라도 암군을 발견하면 무조건 피리부터 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사내가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무언가 발목에 걸렸다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는데, 옆에서 동료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 피해라!”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눈에 줄에 묶여 있는 사람만 한 바위가 자신을 향해 맹렬하게 휘둘리듯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런 씨발……!’

쾅!

욕설을 마지막으로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바위가 자신의 전신을 부숴 버리는 끔찍한 고통만이 남았을 뿐이다.

바위를 피했던 무사들의 눈에 동료 하나가 피떡이 되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바위를 피해 뒤로 몸을 던졌던 사내 하나는 지면이 푹 꺼지며 빠졌다. 그가 빠진 곳에는 거꾸로 박혀 있는 창이 있었다.

또 다른 사내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다가 무언가를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순간 수풀에 숨겨져 있던 나무가 튕겨지듯 올라왔다.

그 나무에는 뾰족하게 깎아진 팔뚝만 한 나무들이 묶여 있었다. 결국 사내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나며 절명하고 말았다.

이렇게 함정들이 연속적으로 터지며 십여 명이던 인원이 절반도 넘게 죽어 나갔다.

행여나 또 어디선가 함정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닌가 바삐 둘러봤다. 그리고 더 이상 함정이 없다는 걸 확인한 무사들이 죽은 동료를 망연한 얼굴로 바라봤다.

“대체 이런 함정은 언제 만들었던 거야…….”

한 사람이 짧은 시간에 만들었다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 특히 작동된 함정을 피하더라도 연이어서 함정이 발동되도록 치밀하게 만들어진 연환 함정은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 빨리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었다.

유령처럼 이들의 뒤에 나타난 풍백이 화홍으로 두 명의 머리를 한 번에 잘라 버렸다.

“저, 적이다!”

“아악!”

“끄르르륵…….”

순식간에 다섯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사파의 무인들은 황급히 사방으로 도주하며 피리를 불었다.

삐이익!

삐이이익!

하지만 피리를 불었다고 당장 지원하러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피리를 불었던 사람들의 몸에 모두 풍백의 손에서 날아간 단검이 박혔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사파는 대부분이 이류무인 수준이었다. 이들 수준으로는 급습한 절정고수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난화보를 펼치며 난파칠식을 뿌리는 풍백은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풍백이 이리저리 번쩍이듯 움직이며 동료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파의 무인들을 모두 처리한 풍백이 함정에 죽어 있는 시신을 보며 나쁘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백은 시신들 중 하나에서 목에 걸린 피리를 챙겼다.

그리곤 다시 함정이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달려가면서 챙겨온 피리를 불었다.

삐이이이익!

풍백이 피리를 부는 방향을 따라 천라지망을 구성하고 있던 인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풍백의 입가에 살기가 가득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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