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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201화 (264/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201화

강호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굳이 중원 전체에서 사건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호남성으로 한정해서 보더라도 장강수로십팔채와 녹림십팔채의 싸움의 여파로 이곳 역시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남부에서는 사파와 정파의 알력 다툼이 커져 몇 개의 문파가 연합하여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호남성에서 가장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 무엇일까?

당연히 마검쟁탈이라 불리는 사건이었다.

아무래도 보는 사람조차 답답하게 느껴지는 서로 간의 알력 다툼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기연이라는 명칭이 관심을 끌 수밖에 없으니까.

아니, 호남성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다.

적게는 중원 남부 전체가 마검쟁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심지어 북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흑룡강(黑龍江)이나 감숙성 너머에서도 호남으로 고수가 찾아오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화홍은 예상치 못한 고수의 손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 고수는 자신을 찾아오는 강호의 무인과 고수들을 상대로 가차 없는 손속을 보여 줬고, 그 덕분에 강호에서는 그를 적발마도라 부르며 새로운 고수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홍의 마력에 끝없이 몰려드는 고수들을 상대로 적발마도는 점차 지쳐 갔다.

사람들은 곧 적발마도가 목숨을 잃을 것이고, 화홍은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 손을 전전하며 온갖 피를 뿌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 화홍의 주인이 바뀌었다!

기다리던 소문이었다.

어차피 적발마도는 화홍을 지킬 힘이 없었다. 얼마 전부터 들려오던 지쳐 쓰러질 것 같다던 적발마도에 대한 소문만 들어도 누구나 예상했으리라.

결국 화홍의 주인은 바뀌게 되었고, 사람들은 화홍을 얻어 낸 사람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이 되자 새로운 소문이 호남성을 뒤흔들었다.

- 화홍을 손에 넣기 위해 의형문, 통천방, 무량파, 금정문이 나섰다!

네 개의 문파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꽤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특히 금정문은 호남성에서 패자를 자처하는 몇 개의 문파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소문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 화홍을 노리던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정작 화홍은 가지고 있던 사람을 놓쳤다!

- 통천방주 독심사검 두성원이 목이 잘려 죽었다!

- 무량파 문주 여명회가 뒤를 쫓았는데도 유유히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 금정문의 웅풍철검 상초진은 그를 잡으려고 하다가 내상까지 입고 철수했다!

단 하루 만에 쏟아진 소문들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군가?

적발마도에게서 화홍을 빼앗고, 한 문파의 수장을 죽였으며, 명문정파의 절정고수를 패퇴시킨 사람.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름도, 출신도, 무공 수위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화홍을 손에 넣은 사람에게 별호를 만들어 줬다.

암군(暗君).

혹자는 너무 과분한 별호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흑연 속에서 소리도 없이 두성원을 죽이고 사라진 그를 표현하는 데 이것보다 더 어울리는 별호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마검쟁탈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문파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고, 그중에서는 강호에서 손꼽히는 대문파도 있다는 소문이었다.

마검쟁탈은 점점 과열된 열기 속에서 더욱 큰 소란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건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금정문과 암군이 부딪친 상황에서 한 여자가 나타나 그를 도왔다.

그녀는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었고, 금정문의 무사 수십 명을 상대하면서도 상처 하나 없이 그들을 상대하다가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몇몇 사람들은 새로운 여고수가 등장한 것은 아닌가 싶어 그 여자를 주목하였고, 그 결과 별호도 만들어 줬다.

그 별호는 바로 장한마녀(長恨魔女)였다.

……그냥 그랬다고 한다.

* * *

상초진과 한바탕 싸움을 끝낸 풍백은 빠르게 이동했다.

풍백이 소양현에 잠시 들렀다가 남서쪽으로 향하고 거의 이틀 정도는 아주 조용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부터 슬슬 풍백의 주위로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풍백은 현재 강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된 상태였다. 그러니 당연히 그에게 추적이 붙을 거라는 사실도 예상하고 있었다.

‘언제쯤 덤벼들라나?’

이런 생각을 하며 풍백은 계속 이동했다.

그러나 이렇게 느껴지던 기척이 어느 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다시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풍백은 새롭게 기척을 느끼면서부터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느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접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느껴지는 기척을 통해 이들이 포진해 있는 위치는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풍백의 얼굴이 살짝 굳어갔다.

‘이것 봐라?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도 짜는 건가?’

끔찍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하늘과 땅에 그물을 폈다고 느낄 정도로 만드는 천라지망.

천라지망을 펼친 사람 모두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수가 아닌 이상, 천라지망을 상대하면서 살아남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끝없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하여 결국 지쳐 쓰러지거나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대단한 천라지망을 겨우 한 사람을 대상으로 펼치는 경우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풍백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주변에 있는 가장 큰 나무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곤 빠르게 주변 산세와 지형, 숲을 살피고는 다시 지면에 내려섰다.

‘이 정도 지형에서 나를 잡으려면 몇 명을 동원해서 천라지망을 구축했을까?’

정확하게 맞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만약 자신이라면, 절정고수를 죽이기 위해서 적어도 천오백 명 정도의 무인들을 동원했을 것 같았다. 이것도 최소로 잡아서 말이다.

천라지망이라는 것이 대충 사람들을 왕창 집어넣어서 포위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운용한다면 수천 명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천라지망은 진법과 군부에서 병력을 포진하는 방식을 혼용하여 인원을 배치는 것이 보통이다.

강호에서 이 정도로 엄청난 인원을 동원할 수 있는 문파는 오직 두 군데뿐이었다.

바로 사도련과 사사천문이었다.

다른 문파는 온전히 자신들만으로는 이 정도 인원을 동원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천라지망의 특성상, 포위망을 조성하고 본대가 다가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동안 일반 무사의 목숨이 수없이 죽어 나가게 되어 있었다.

인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파에서는 어지간한 명분이 있지 않은 이상, 천라지망을 구성하는 일이 거의 없다.

즉, 정파가 화홍을 얻기 위해 천라지망까지 펼치지는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이런 계산을 하며 달려가던 풍백이 눈빛을 빛내더니 갑자기 방향을 급격하게 꺾어 왼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풍백의 눈앞에 대여섯 명의 무사들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사들은 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듯이 바로 뒤로 돌아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몇 걸음 내딛기도 전에 풍백이 그들의 뒤를 덮쳤다.

“아악!”

동료의 비명을 듣자마자 도망치는 것은 이미 틀렸다는 걸 알아차린 무사들이 황급히 병장기를 꺼내 들고 달려드는 풍백에게 휘둘렀다.

굳이 화홍을 꺼내 들지도 않았다.

풍백의 수장에서 펼쳐진 교룡금나수, 요심수, 쇄옥장이 무사들의 병장기를 밀어내고 그들의 허점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퍼퍼퍼펑!

무사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거나 날아갔다. 유일하게 날아가지 않은 사람은 풍백의 교룡금나수에 제압당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사내뿐이었다.

풍백은 사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두 번 안 묻는다. 어디서 나온 놈이냐?”

사내가 떨리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자 풍백의 손이 더욱 우악스럽게 사내의 완맥을 비틀었고, 사내는 앓는 듯한 신음성을 내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아으으으…… 사, 사사천문입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호남성에 들어오자마자 사사천문의 무사들을 만났던 풍백이기에 아마도 상대는 사사천문일 가능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결국 사사천문이 끼어들었네.’

사사천문이 개입하는 것은 조금 더 이후로 알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기억을 제대로 못한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또 어떤 이유로 상황이 조금 바뀌었거나.

“사사천문에서 몇 명이나 나왔지?”

“저도 정확히는 잘…….”

사내의 어설픈 대답에 풍백이 그의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렸다.

또각!

작은 소리였지만, 사내에게는 천둥보다도 더 크게 들린 소리였을 것이다.

“아악!”

“내가 지금 정확한 숫자를 물어봤나? 몇 명이나 나왔냐고.”

“크흡…… 아마도 천 명은 넘는 것 같았습니다!”

사내의 발작적인 대답에 풍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최대 이천 명 정도라 생각해야겠군.’

풍백은 사내의 머리를 잡아서 한 바퀴 돌렸다.

으드득!

목이 부러지며 사내가 혀를 길게 빼고 숨을 거뒀다.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건 있었지만,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쯤 사사천문에서 동료가 붙잡혔다는 걸 눈치챘을 테니까.

풍백은 다시 경공을 펼쳐서 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중이떠중이들은 사사천문이 나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겠지.’

풍백은 이전에 느껴지던 기척이 사라진 점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한 지역에서 알아주는 사파와 사사천문 사이에는 하늘과 땅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사천문이 가볍게 기침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파 몇 개가 갈려 나가는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사사천문이 나섰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도망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사천문 정도 되는 문파에서 진심으로 화홍을 노리지는 않을 것이고.’

당장 사사천문의 세 문주인 삼귀는 사파십대고수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그 정도 되는 이들이 과거의 유산을 손에 넣고자 움직였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아마도 사사천문의 고위직이나 당주, 대주급 되는 이가 무공이나 화홍 자체에 욕심을 내고 끼어들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사사천문만이 아니라 더 많은 문파들이 화홍을 손에 넣기 위해 호남성으로 달려올 것이다. 각 지역에서 손에 꼽는 사파부터 사파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사도련까지 말이다.

이렇게 사파가 준동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정파도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마검쟁탈에 끼어들고 말이다.

‘그러려면 이전과 같은 사건이 벌어져야 하는데…….’

과거와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풍백은 그것을 이용하여 마검쟁탈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감출 생각이었다. 아마도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화홍마저 풍백이 손에 넣은 상태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사천문의 천라지망에 갇히게 됐다는 것은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가볍게 혀를 찬 풍백이 생각했다.

‘그냥 화홍을 넘겨?’

풍백의 목표는 유금성을 구해 내는 것이었고, 그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그러니 화홍을 자연스럽게 넘기고 모습을 감추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홍이 손에 들어왔으니 슬슬 욕심이 생기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이미 혈수마괴를 만나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뼈저리게 느꼈던 풍백이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무공 수련에 전념했던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무려 전대 천하제일고수의 무공이 있다는 화홍이 손에 들어왔다.

정말로 화홍에 그런 비밀이 있는지는 미래를 경험해 봤던 풍백도 모르는 일이었다. 화홍이 사라진 이후로 화홍에서 나온 무공을 익혔다는 사람이나, 화홍이 강호에 등장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있다면?

풍백은 결국 못 봤지만, 화홍을 얻은 어떤 운 좋은 사람이 어딘가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던 거라면?

이런 생각이 화홍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불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처럼 죽어도 화홍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싶으면 언제든지 던져 버릴 마음이 있었다. 기왕이면 가져갈 생각이지, 목숨까지 걸 생각은 없는 것이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겠지?’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멀리서 길게 피리 소리가 울려 왔다.

삐이이이익!

그러자 풍백을 향해 살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라지망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한번 가져가 봐.’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수십 명의 사사천문 무사들이 전후좌우는 물론이고, 하늘에서도 풍백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살기 어린 미소를 지은 풍백이 화홍을 뽑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장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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