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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95화 (261/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95화

형세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이 복잡하게 뒤엉켜서 싸우는 것을 난전(亂戰)이라고 한다.

지금 인적이 드문 호남성 중부에서 서로 화홍을 갖기 위해 벌어진 싸움은 난전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화홍을 노리고 시작된 싸움이니만큼 화홍을 지닌 풍백만을 공격하면 될 일이었지만, 세상일이란 게 본디 그렇게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분명 처음에는 모두 풍백만을 목표로 달려들었지만, 당장 풍백에게 검이라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가까이 접근한 대략 대여섯 명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뒤에서 앞에 있는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공중으로 날아가야 했다.

경공이 뛰어난 몇몇 고수들은 하늘에서 풍백을 노리며 달려들었지만, 대부분의 무인들은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뒤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화홍이 휘둘러지고 있는 상황에 사람들은 충분히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도 싸움이 일어날 수 있었다.

“비켜!”

“누구보고 비키라, 마라 명령질이냐!”

그리고 호남성은 물론이고, 중원 각지에서 온갖 사람들이 몰려왔기에 악연이 있는 사람이 만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너 이 새끼! 여기서 만나는구나!”

“흥! 살겠다고 네 발로 도망쳤던 놈이 주둥이는 열렸다고 말을 하는구나. 이전에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오늘은 끝내 주지.”

“오냐, 어디 한번 해 봐라!”

이렇게 소규모로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 것은 풍백이었다.

풍백의 손에 들린 화홍이 벼락같은 움직임으로 사방을 수놨다. 화홍이 움직일 때마다 누구 하나는 부상을 입었고, 다수는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결국 풍백에게 접근하는 것에 성공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뒈져라!”

풍백의 후방을 잡은 사내 하나가 큼직한 낭아봉(狼牙棒)을 휘둘렀다.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일단 적중시키기만 한다면 낭아봉에 박혀 있는 예리한 칼날이 풍백의 등짝을 난자할 것이다.

그러나 사내가 들어 올린 낭아봉을 내려치기도 전에 풍백의 신형이 빙글 돌더니, 그의 수장이 사내의 가슴을 때려 갔다.

사내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이걸 그냥 몸으로 받아 내?’

외문무공(外門武功)인 십삼태보횡련(十三太保橫練)을 익히고 있는 사내였다. 십삼태보횡련이 사람을 금강불괴(金剛不壞)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장을 몸으로 받아 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한 것이다.

딱 한 대만 막아 낸다면, 들어 올렸던 낭아봉이 풍백의 머리나 몸뚱이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화홍이 자신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다.

‘화홍만 있으면 막아서는 놈들을 모두 도륙할 수 있다!’

결국 유혹에 넘어간 사내는 몸으로 받아 내기로 결정했다.

이전에도 절정고수와 싸워 본 적이 있는 사내였다. 그때도 절정고수의 장법을 몸으로 받아 냈었기에 이번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그러나 이건 그의 크나큰 실수였다. 그리고 그 실수는 곧 목숨으로 보상을 해야만 했다.

사내를 때려 가는 풍백의 수장 소매에서 단검이 불쑥 튀어나와 손에 들어갔다. 단검에 미세하게 서린 검기가 사내의 눈에 들어왔다.

“헉!”

이제라도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푹!

검기가 실린 단검은 두부에 박히는 것처럼 사내의 가슴을 뚫고 심장마저 구멍을 내 버렸다.

풍백이 손을 다시 거두자 손에 쥐어졌던 단검은 다시 소매로 쏙 들어갔다. 마치 소매 속에 독사가 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이런 싸움은 정말 오랜만이네.’

풍백이 싸늘한 눈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무인들을 베어 가며 생각했다.

세상에서 이런 난전을 가장 거대한 규모로, 가장 치열하게 벌이는 곳이 어디일까?

몇몇 사람들은 강호나 뒷골목 흑도패의 싸움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싸움은 군부에서 가장 많이, 거장 거대한 규모로 벌어진다.

풍백은 비밀 부대에 차출되기 전, 군부에서 이런 난전을 수없이 벌였다. 그것도 대규모 난전부터 소규모 난전까지 거의 모든 난전을 겪어 봤을 정도로 말이다.

당시 그는 무공도 거의 몰랐던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 지옥과 같은 난전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

절정고수에 오른 지금은 그에게 이 정도 난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으아아!”

괴상한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지르며 우락부락한 얼굴의 사내 하나가 삼지창을 맹렬히 찔러 왔다.

풍백은 화홍을 세워 삼지창을 막았다.

카가각!

삼지창과 화홍이 마주치는 순간, 창두가 잘리며 봉마저 종잇장처럼 두 개로 잘려 나갔다. 창을 모두 잘라 버린 화홍은 그대로 사내의 상체까지 사선으로 갈랐다.

그 순간, 이때가 기회라는 듯이 두 명의 사내가 풍백의 좌측과 후방에서 검을 찔러 왔다.

주위에 온갖 사람들이 몰려 있기에 펼칠 수 있는 초식은 대단히 한정되어 있었다. 이것이 난전의 어려움이었다.

풍백의 입장에서는 온갖 초식을 펼칠 수 있는 네댓 명의 사람에게 당하는 합공보다, 차라리 이렇게 열 명의 가까운 사람에게 단순해진 초식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 막기 쉬웠다.

창을 들고 있던 사내를 베는 바람에 화홍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풍백에게는 다른 수단도 있었다.

좌측에서 달려드는 사내에게는 쇄옥장으로 벽공장을 날렸고, 후방에서 달려드는 사내에게는 철마각으로 단전을 가격했다.

쇄옥장이나 철마각이 대단한 무공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차라리 단순하고 간결하며 많은 힘을 담고 있는 무공이 더욱 위험했다.

좌측에서 달려들던 사내는 벽공장에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뒤에서 달려들던 사내는 그나마 변초를 넣겠다고 무리를 하다가 빠르게 다가오는 철마각에 그대로 단전을 내주고 말았다.

뻥!

“쿨럭……!”

기해혈(氣海穴)에 정확히 철마각이 박히자 사내는 그대로 지면을 얼굴을 처박았다. 단전이 부서졌으니 이제는 무인이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풍백을 노리는 무인들은 방금 전처럼 간결해 보이는 수법 하나에 목숨을 잃고 죽어 나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포위 속에서 중구난방으로 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곳에서 풍백이 가장 냉혹하고 살벌한 포식자였던 것이다.

만약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풍백의 움직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포위를 당해 정신없이 싸우는 사람은 대부분 방향 감각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당장 사람이 적은 부분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본능이었고, 그 덕분에 움직이는 방향은 계속 유동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풍백은 달랐다.

잠시 사람이 적은 방향으로 밀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가 향하는 방향은 결국 한 방향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걸 알아차린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풍백에게서 화홍을 빼앗겠다는 일념에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미친 듯이 달려들 뿐이었으니까.

이렇게 이동하던 풍백이 숲속으로 들어와 어떤 지점에 도착하자 마침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곤 자신에게 달려드는 무인들을 상대하며 순간적으로 어딘가를 힐끔거릴 뿐이었다.

‘이제 슬슬 나서야 할 텐데.’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모두 멈춰라!”

원래라면 이런 외침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하던 일이나 계속해야겠지만, 방금 전 목소리에는 이곳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싸움을 멈추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방금 전 목소리가 마치 고막을 찢을 것처럼 귀에 쩌렁쩌렁 울렸기 때문이었다.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사람들의 고막을 자극한 것이다.

현재 이곳에서 난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대략 백오십여 명 정도였다. 난전이 벌어지며 죽어 나간 사람들이 있기에 숫자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의 귀를 자극했다는 것은 목소리를 낸 사람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방증과 같았다.

사람들의 싸움이 멈추자 좌측에 있는 숲속에서 수십여 명의 통일된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난전을 벌이던 무인들 중 하나가 좌측에서 나타난 사람들을 보고 소리쳤다.

“의형문(意形門)이다!”

그 말에 장내에 있는 무인들의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의형문은 호남성에 있는 문파들 중에서 명성이 높은 곳 중 하나였다. 비록 전통의 강자인 형산파처럼 호남성의 패자를 자처할 수 있는 문파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호남성에서 의형문을 우습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형문 사람들 중 대략 오십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심상치 않은 기도를 보이는 중년 사내는 주위를 근엄한 얼굴로 한 번 둘러보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있는 강호 동도분들에게 전하겠소. 의형문은 호남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혈겁에 대해서 정파 된 도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소. 그래서 마검쟁탈의 원인인 화홍을 우리 의형문에서 수거하도록 하겠으니, 부디 강호의 안녕을 위하여 협조를 해 주기를 바라오.”

포권을 하며 말하는 중년 사내의 모습은 전혀 비굴하지 않았다. 먼저 포권을 하며 머리를 숙이기는 했지만, 그의 모습에서는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강행하겠다는 의지가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중년 사내의 말을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강호의 안녕? 네놈들 인생의 안녕을 위해서겠지.”

“빌어먹을 정파 놈들…….”

“누구 마음대로! 우리도 화홍을 손에 넣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고!”

“맞다! 화홍을 원한다고? 그러면 우리를 다 죽이고 나서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중년 사내가 냉소를 품고 말했다.

“그러면 반대하시는 분은 앞으로 나서시지요. 이 양중신이 직접 상대를 해 드리리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놀란 반응이 나왔다.

“야, 양중신?”

“번천장(飜天掌) 양중신이라고?”

“의…… 형문주잖아…….”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의형문주가 직접 나섰을 줄은 몰랐다.

호남성에서 방귀깨나 뀌는 의형문의 문주가 직접 등판하자 장내 상황이 차갑게 식었다.

의형문주가 직접 나타났다는 말은, 다시 말하자면 양중신과 함께 나타난 수십여 명의 사람이 의형문의 정예라는 말이 될 것이다.

비록 자신들의 숫자가 훨씬 많지만, 개개인의 무위를 놓고 말하자면 감히 의형문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무인들이 억울한 얼굴을 하면서도 감히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을 보고 양중신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이렇게 나와야지.’

의형문이 이들처럼 뜨내기 수준의 무인들도 아니고, 심지어 문주인 자신이 나섰는데 반항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정 이들이 반항을 한다면…… 진짜 모두 없애 버리고 화홍을 챙길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정파다 보니 이들을 모두 몰살한 뒤에 받게 될 비난이 신경 쓰여서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었다.

양중신이 화홍을 늘어뜨리고 서 있는 풍백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화홍은 넘겨주시지요. 더 이상 호남성에서 이런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문중에서 봉인하도록 할 테니.”

그러나 풍백은 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오른쪽을 슬쩍 바라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흐흐흐! 대가리를 확 부숴 버리기 전에 뒤로 물러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양중신.”

그리곤 일단의 사람들과 함께한 사람이 표홀한 신법을 자랑하며 내려섰다.

대략 사십대로 보이는 사내는 흉악한 얼굴만 보더라도 이자가 절대로 정파가 아니라는 걸 짐작하게 만들었다.

양중신은 나타난 사내를 보고 이를 갈며 말했다.

“통천방(通天幇) 따위가 여기까지 뭐 주워 먹을 것이 있다고 나타났을까?”

양중신의 말에 사람들이 놀라며 사내를 바라봤다.

“독심사검(毒心死劍) 두성원?”

“인간 백정이라 불리는…….”

“야, 입조심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

두성원의 악명은 호남성에서 자자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길거리에서도 주저 없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두성원이었다. 오죽하면 별호에 독심이라는 말이 들어갔겠는가?

또한 통천방은 호남성의 대표적인 사파 중 하나로, 의형문과 지속적으로 악관계를 쌓아 온 걸로 유명했다.

서로 관계가 좋지 못한 두 사람이 만나니, 두 사람이 마주치는 눈빛에서는 불꽃이 튈 것 같았다.

이때 한 사람의 유들유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서로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저쪽으로 가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오는 것이 어떤가?”

양중신과 두성원은 고개를 돌려 수하들을 이끌고 걸어오는 사람을 보며 동시에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망월도(望月刀) 여명회!”

“빌어먹을 무량파(无量派) 새끼가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어?”

무량파 역시 호남성에서 정사지간으로 유명한 문파였고, 여명회는 호남성에서 손꼽히는 도객 중 하나였다.

슬슬 심상치 않은 문파와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눈치채고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고수들이 수하까지 잔뜩 끌고 왔으니, 화홍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나도 좀 끼어 봅시다. 통성명이나 하자고요.”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일단의 사람을 이끌고 나타난 사람.

이번 창룡봉무지회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바로 웅풍철검이란 별호까지 받은 상초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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