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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93화 (25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93화

“찾았습니다!”

급히 돌아온 수하의 말에 오독문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서 앞장서라!”

“이쪽입니다!”

수하를 따라 달리는 오독문주의 얼굴에서는 희열이 내비치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유산…… 이것만 손에 들어온다면, 독선장에 밀려 하루하루 메말라 가던 우리 오독문은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정파에서는 독이라면 사천당가를 떠올리듯이, 사파에서는 오독문이 그런 위치였다. 비록 오독문이 사천당가에 비하면 확실히 열세였기는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인식은 그랬었다.

그런데 갑자기 만독존이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사파에 나타나면서 오독문은 점차 몰락해 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독인(毒人)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만독존이 독선장을 만들면서 온갖 인재를 쓸어 담기 시작한 것이다.

독에 대해 뛰어난 실력을 가진 독술사들은 그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만독존에게 환호를 보내며 몰려갔고, 독을 배우려는 사람들까지도 독선문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오독문은 점차 그 세력이 줄어들며 사람들에게서 잊혀 가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조용한 몰락을 당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독선문보다 뛰어난 독을 제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독을 만들 인재는 모두 독선문에 빼앗기고 있기에 아무런 방법도 내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오독문에 서적 하나가 들어오게 되었다.

대부분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내용들이라 쓸모가 없었지만, 단 하나의 문구가 그들을 사로잡았다.

- 사천당가는 항상 자신들의 지식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사장되는 걸 대비하여 왔다.

- 비고(祕庫)에는 사천당가의 모든 지식과 무공이 담겨 있다.

- 비고는 당가의 시작과 함께했고, 마지막도 함께할 것이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다.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라 생각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적에 적힌 이름 하나는 이들이 절대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만박자(萬博子).

무려 이백 년하고도 다시 수십여 년 전의 사람이었다.

강호의 무인은 아니고 사가(史家)를 기록하는 사람이었는데, 들리는 말로는 세상에 모르는 물건이나 모르는 장소가 없고 대단히 박식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니 오독문주도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오독문은 사천당가에 대해서 심도 깊은 연구와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로 이 비고가 있다면, 사천당가의 삼대극독을 비롯하여 온갖 독을 제조하는 법도 있다는 게 될 것이다. 또한 사천당가의 자랑 중 하나였던 암기와 무공은 또 어떻겠는가?

이 모든 걸 흡수하게 된다면 오독문은 어쩌면 독선장에 비견하거나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

‘또한…… 내가 만독존처럼 될 수도 있지.’

이게 가장 구미가 당겼다.

이렇게 조사를 하다 보니 서적에서 본 비고가 실재한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고가 당가의 직계가 사는 마을에 있을 거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당가의 직계가 당가타에서 무시를 당하는 상태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직접 당가의 직계가 사는 마을을 헤집고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당가타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뒤에는 금벽궁이 버티고 있었다.

과거의 오독문이라면 금벽궁 정도는 코웃음을 치며 모조리 독살을 시켰겠지만, 지금의 오독문은 과거와 같은 위세는 없었다.

그리고 금벽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된다면, 간신히 얻어 낸 사천당가의 유산을 모조리 빼앗기게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의 오독문은 보물을 지킬 힘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바라볼까, 누가 관심을 가질까 걱정하며 아주 세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오독문에게 호재가 발생하고 말았다.

- 당가의 직계가 절강성으로 떠난다!

소문으로는 당가타에서 당하는 무시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천에서 떠나는 거라는 말이 많았다.

오독문의 입장에서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제대로 조사를 하지 못하게 만들던 당가의 직계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금벽궁이 있었다.

당가타와 합병한다는 소문이 크게 돌고 있었기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여기에 엄청난 호재가 오독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 금벽궁이 당가타와 합병을 취소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 금벽궁이 알 수 없는 세력에 의해 멸문을 당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오독문주는 체면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만세를 불렀다.

‘이제 완전히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되었구나!’

이렇게 된 이상 오독문은 더 이상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뒤지고 다닐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금벽궁을 걱정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심지어 호남성에서 마검쟁탈이 일어났다. 마치 하늘이 오독문을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한 것처럼 모든 것이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마검쟁탈은 사천은 물론이고, 전 강호의 이목을 호남성으로 집중시켰다. 이 말은 오독문이 적당히 소란을 피운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물론 오독문주도 화홍에 대해 관심이 가기는 했다.

그러나 오독문주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온갖 고수들이 몰려드는 곳에서 화홍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천당가의 유산을 얻는 것이 더 매력적이었다.

화홍은 손에 넣지 못할 수 있지만, 사천당가의 유산은 바로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던가.

또한 사천당가의 무공도 절대 부족하지 않다. 강호의 역사에서 사천당가의 무인이 천하제일고수가 되었던 적도 수없이 많으니까.

이렇게 당가의 직계가 살던 마을에서 오독문이 움직이고 있으면 당가타가 무언가 눈치를 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흥! 당가타? 금벽궁이 배경으로 있지 않으면 겨우 삼류 군소 문파에 지나지 않아. 그놈들이 뭐라고 지껄이든지 누가 신경 쓰겠어?’

만약에 오독문이 사천당가의 비고를 찾은 이후에 자신들의 물건을 돌려 달라고 나온다?

군소 문파에 불과한 당가타는 그 정도로 목소리를 낼 힘도 없었다.

당가타가 무언가라도 알아차린 것 같다고 느끼는 날, 그날이 바로 당가타가 멸문하게 된 날이 될 것이다.

“여깁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용소와 작은 폭포.

이곳이 서적에서만 읽었던 사천당가의 조사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었다.

“푸하!”

마침 용소에서 오독문도 하나가 머리를 내밀고 급하게 숨을 골랐다.

“어떻게 됐느냐, 입구는 찾았느냐?”

“네, 고생하기는 했지만 찾았습니다!”

“그러면 문은 열었고?”

“지금 기관진을 열기 위해 데려온 사람이 문을 여는 중입니다. 자세히 얘기는 못했지만, 입구를 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좋구나!”

드디어 일이 풀린다는 생각에 오독문주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이제 사천당가의 삼대극독을 다루며 온갖 암기를 뿌리며 강호를 주름 잡는 자신과 오독문도의 모습이 눈앞에 그림 그려졌다.

그런데 갑자기 용소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유리처럼 맑던 용소에 붉은 피로 물들어 갔다.

화들짝 놀란 오독문도가 서둘러 잠수를 해 봤다. 그리고 잠시 후 오독문주에게 보고를 했다.

“입구를 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기관진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데리고 온 기관술사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천당가의 비고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가서 기관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은 모조리 데리고 오도록 해라.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의 문을 열고 모든 것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오독문이 다시 강호를 날아다닐 수 있다.”

“존명!”

오독문도들이 서둘러 기관술사를 데리러 뛰어갔다.

혼자 남은 오독문주는 남아 있는 오독문도를 통솔하여 누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천당가의 유산은 모두 우리 오독문의 것이다!’

그의 눈에서는 광기에 가까운 욕심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미 사천당가의 유산은 풍백이 챙겼고, 이곳에 남은 것은 그들의 목숨을 거둬 갈 기관진뿐이라는 것을.

* * *

“후욱, 후욱, 후욱, 후욱…….”

숨이 가빠 오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무공을 익히고 강호에 나온 이후로 이렇게 지친 적은 처음이었다. 제대로 된 적수도 만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설마 이런 날이 올 줄도 몰랐다.

당장이라도 쓰러져서 눈을 감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눈을 감는 순간, 그의 목숨도 끝나는 것이니까.

“죽어라!”

“으랴앗!”

창을 든 사내와 대감도를 든 사내가 달려들고 있었다.

잠시 흐릿해졌던 유금성의 눈이 이들을 보자 이글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도가 그림같이 미려하게 이들을 향해 움직였다.

두 사내는 미리 약속을 한 것처럼 대감도를 든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유금성의 도를 받아 갔다. 그러는 동안 창을 든 사내는 뒤에서 장병의 이점을 살려 빠르게 찔러 왔다.

아무래도 중도(重刀)의 이점이라면 유금성의 도를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예측한 것 같았다.

하지만 유금성의 도에서 흐릿한 빛이 흘러나왔다.

서거걱!

“끄으윽…….”

사내가 들고 있던 대감도는 세 토막으로 잘렸고, 대감도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 역시 세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

감히 도기를 담은 도를 무기의 이점으로 받아 내려고 한 대가였다.

창을 찌르려던 사내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설마 이렇게 허무하게 동료가 죽을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크게 당황한 것 같았다.

유금성은 자리에 서서 물러서는 사내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는 사내를 난자할 것 같은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창을 든 사내는 그 눈빛에 움찔했다.

무려 거의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싸워 왔던 유금성이었다. 그래서 분명히 이제는 힘이 다 빠졌다고 생각하고 급습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 지쳤다고 생각했던 유금성이 방금 전 도기를 뿜어내며 동료를 죽였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만만치 않은 힘이 느껴지고 있었고 말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바라보던 사내는 창을 잡고 있는 손에 점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유금성이 달려들어 자신을 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금성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제기랄…… 왜 가만히 있지?’

이런 생각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이내 사내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눈빛을 번득였다.

하지만 짐작만으로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았다.

방금 전에도 짐작만으로 달려들었다가 동료가 한순간에 죽어 버리지 않았던가.

사내가 슬금슬금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아주 미세하게 유금성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유금성이 움직이면 곧장 뒤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금성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살벌하게 자신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감에 바짝 말라 오는 목을 축였다.

그리고 마침내 유금성이 살짝 자신의 간극에 들어왔다.

사내는 유금성을 향해 창을 찔렀다.

이것은 딱히 유금성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리고 죽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접근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확인을 하기 위함이었기에 딱 한 걸음만 걸어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창도 느렸다.

그런데…… 유금성은 움직이지 않았다.

칙!

창이 유금성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찢어진 옷 사이로 핏방울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온몸이 넝마처럼 변하고 옷도 피에 절어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니 작은 생채기가 생긴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은 상처가 의미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사내의 얼굴에 희열이 감돌았다.

‘역시 지친 것이 맞구나!’

아마도 동료를 죽이면서 뽑아 낸 도기가 유금성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위협적으로 바라보며 쫓아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신중했다.

어쩌면 이것도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일지 모르지 않은가.

‘한 번 더…….’

사내는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확실히 급소를 노렸다.

바로 심장이다.

유금성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건 사내를 쫓아오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간신히 상체만 슬쩍 움직인 것이다.

이 정도로는 사내의 창을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퍽!

사내의 창이 유금성의 어깨에 박혔다. 하마터면 이것도 피하지 못하고 심장에 창이 박힐 뻔했다.

그제야 사내는 확신했다.

‘진짜구나!’

득의양양한 얼굴로 변한 사내가 현란하게 창을 휘두르기 시작하더니 유금성의 머리를 후려쳐 갔다.

유금성이 사내의 창을 막기 위해 도를 들어 올렸다.

땅!

가벼운 소리와 함께 유금성의 도가 손아귀에서 튕겨 나갔다. 이제는 도를 잡고 있을 힘도 없었던 것이다.

‘잡았다!’

유금성이 도까지 놓치는 걸 본 사내는 맹렬히 달려들며 방금 전 노렸던 심장을 향해 다시금 창을 찔러 갔다.

사내의 행동은 빠르고 과감했다.

빨리 유금성을 죽이고 곧장 그의 허리에 있는 화홍을 챙긴 이후 바로 도주할 생각이었다. 주위에는 정사파의 무인들이 잔뜩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것이 실수였다.

유금성이 이렇게 하도록 지친 모습으로 유도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법을 펼쳤어야 했다.

창이 심장에 닿으려고 하는 순간, 유금성이 단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 한 걸음이 마치 이형환위(以形換位)처럼 느껴질 정도로 빨랐다.

“이, 이 괴물 같은 노옴!”

사내는 그 움직임을 보고 자신이 유금성에게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유금성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창을 피하고는 화홍을 뽑아 그의 머리를 잘라 버렸기 때문이었다.

서걱!

잘린 머리통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가 그림같이 떨어져 내렸다.

“후우…….”

그것을 바라보며 유금성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야 하는데…… 설화가 기다릴 텐데…….’

유금성이 주위를 돌아봤다.

좌측으로는 배가 없이는 절대 넘어갈 수 없는 강이 보였다. 그리고 우측에 있는 숲에서는 온갖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조금 전 유금성이 사내를 죽이는 순간, 저들이 일제히 기세를 내보였다. 아무래도 사내가 유금성을 죽이고 화홍을 낚아채면 바로 덮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금성이 사내를 죽이는 순간, 저들은 다시 관망세로 돌아섰다.

유금성은 서서 가볍게 운공을 하며 조금이라도 내공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또다시 어떤 불나방 같은 놈이 달려들지 모르니, 그 전에 어떻게든 내공을 모아 놔야 했다.

하지만 유금성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설화를 울리겠구나.’

너무 쉽게 생각했다.

강호의 무인들이 이렇게 집요하게 달려들 거라고 예상했었어야 했다.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더라도 화홍을 건네줘 버렸어야 했다. 그러면 적어도 그를 쫓아오는 사람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을 테니까.

‘지킬 사람이 있었으면…… 돌아갈 곳이 있었으면 자존심을 버렸어야 했다.’

괜한 무인의 자존심에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운 결과가 이 꼴이었다.

저벅! 저벅!

누군가가 또 다가오고 있었다.

이를 악문 유금성이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적어도 한 놈은 더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지쳐서 흐릿해진 안력을 돋우며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봤다.

날카로운 인상의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유금성은 손에 쥔 화홍에 더욱 힘줬다. 이제 도가 없으니 화홍으로 싸워야 했다.

비록 검이기는 하지만 쇳덩이도 두부 자르듯이 자르는 명검이니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유금성을 보며 사내가 혀를 찼다.

“쯧쯧…… 그러니 욕심을 내지 말았어야지. 왜 스스로 감당하지도 못할 물건을 손에 넣어서 명줄을 재촉했나?”

사내를 바라보는 유금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너는…… 누구냐.”

“그건 알 거 없고, 손에 들고 있는 물건에 볼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사내의 말에 유금성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 어차피 화홍은 내가 가져갈 거니까.”

“해 봐, 한번.”

사내가 피식 웃더니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유금성이 그런 사내를 향해 화홍을 휘둘렀다. 검으로 펼치는 도법이기는 하지만, 그가 펼치던 신묘한 도법의 묘는 확실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접근한 사내는 공수입백인을 펼쳤다. 그 결과, 유금성의 손에 들린 화홍과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허름한 검집이 마치 미리 손을 맞춰 봤던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내의 손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유금성의 가슴에 사내의 일장이 작렬했다.

쩌억!

끔찍한 소리와 함께 유금성이 입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날아갔다. 누가 보더라도 유금성은 죽은 목숨이라고 확신을 할 정도였다.

사내는 유금성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화홍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검집에 납검했다. 그리곤 쓰러져 있는 유금성에게 다가가 진짜 죽었는지 확인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살펴보고 피식 웃었다.

“죽었네.”

사내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가볍게 땅을 박차며 움직였다. 그의 신형은 가볍게 땅을 찼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빨랐다.

그러자 주변에 숨어 있던 백여 명의 무인들이 옆으로 몰아치는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오더니, 먼저 앞서간 사내를 따라 몸을 날려갔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는 유금성만이 선지피를 입에서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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