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92화
멍하니 풍백을 바라보던 운광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 아니, 그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요? 유명암? 진짜 유명암이 금벽궁의 개새끼들을 몰살시킨 거라고?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데?”
얼마나 당황했는지 갈수록 말이 짧아지는 운광이었다.
“그보다 하던 얘기를 끝까지 하는 것이 어떻소?”
뭔가 엄청나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풍백의 말에 운광은 잠시 끊겼던 이야기를 빠르게 이어 나갔다. 어차피 길게 할 이야기도 아니었다.
“금벽궁이 몰살을 당하니까 청성파에서는 강호에 어떤 개새끼가 암약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 하산지회를 조금 일찍 열기로 결정한 거요. 아무래도 강호에 어둠 속에 개새끼들이 숨어 있으면, 우리 청성파가 강호 정의를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그게 끝이오?”
“그럼 뭐를 바라는 거요? 당연히 이게 끝이지.”
결국 자신이 사천으로 갔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유명암주 혈수마괴의 손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과거에는 없었고, 채설지가 풍백과 사천으로 가는 것도 과거에는 없었으며, 금벽궁이 채설지를 공격하는 일도 과거에는 없었다.
‘금벽궁이 멸문하면서 뭔가 변하는 것이 많을 것 같았다만…….’
상권이 움직이는 정도만으로도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등장하는 판국이다. 그런데 금벽궁이 멸문하는 대사건을 일으키고도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진 않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운광이 강호에 나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원래 운광이 강호에 출도하는 것보다 일 년이나 빨리 나왔다. 그 덕분에 운광은 과거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염라판관이라 불리지 못하고 지금 이곳 마검쟁탈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풍백에게 조유하가 물었다.
“그래서 대체 유명암이 금벽궁을 멸문시킨 사실은 어떻게 아는 거예요? 황궁에서 다 알고 있는 건가요?”
옆에서 운광 역시 엄청 궁금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 강호 전체를 주시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된 것 같은데.”
“그러니까 어떻게요. 개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설마 이것도 알려 줄 수 없는 비밀인가요?”
가볍게 한숨을 내쉰 풍백이 입을 열었다.
“개방도 모른다고? 내가 봤을 때 하오문이라면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방은 아마 짐작하고 있을 거야.”
“개방이 알고 있다고요? 그런데 왜…….”
“유명암을 자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지. 아마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몇몇 곳에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전달이 됐을걸.”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개방의 저력을 생각하면 적어도 유추 정도는 가능했으리라.
대충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짐작은 되었다.
금벽궁이 멸문한 것으로 문제가 되는 곳은 없었다. 어차피 정사지간 문파에 불과했으니까.
개방은 그들의 멸문으로 정파가 영향을 받거나, 강호에 문제를 야기하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유명암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보를 통제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말이다.
“그렇게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는 걸 그쪽은 어떻게…….”
“황궁에는 황궁만의 정보를 취합하는 곳이 있지. 개방이나 하오문에 비해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곳이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걸 알고 있어야 할 위치고.”
굳이 암향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들이 암향거와 접점이 있을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테니까.
“그쪽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나 보군요.”
풍백은 조유하의 말에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해 준다면 풍백에게도 나쁠 것은 없으니까.
운광은 술병을 들어 한입에 모두 마셔 버리고는 말했다.
“아무튼 할 얘기는 모두 끝난 것 같으니, 나는 이만 가 보겠수.”
“마검쟁탈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러 가는 건가?”
“말은 똑바로 해야지. 마검쟁탈이 아니라 사파 새끼들 모가지 비틀러 가는 거라고 합시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운광이 일 층으로 내려갔다.
운광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풍백이 전음을 보냈다.
[사파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오?]
계단을 내려가던 운광이 걸음을 멈추더니 풍백을 돌아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듣자 하니 암중에 수작을 부리는 놈들이 있을 것 같아서 하산했다는 말을 했었잖소.]
[금벽궁을 멸문시킨 건 유명암이라고 말한 것은 당신이잖수. 그러니 사파를 조져야지.]
[하지만…… 진짜로 암중에 어떤 놈들이 있다면?]
운광의 눈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그의 눈빛에서는 대단한 관심이 엿보이고 있었다.
[진짜 그런 놈들이 있다는 말이요?]
[대답부터.]
운광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런 놈들이 있다면, 내 멸사록에 들어갈 아주 훌륭한 소재겠어.]
풍백도 슬쩍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관심이 있다는 걸로 알아듣겠소.]
[흐흐흐…… 그래서 그놈들이 어디에 있는 거요?]
[일단 마검쟁탈이 끝나거나 지루해지면 절강성 상산현에 있는 적가상방으로 가시오.]
[응? 거기가 암중의 세력이라는 거요?]
생각보다 운광은 너무 눈치가 없었다. 차라리 하나하나 모두 설명해 주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암중의 세력이 밖에 나와 있을 리가 있겠소?]
[없겠지. 그러면 암중의 세력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까.]
[적가상방의 소상방주인 적풍백은 나와 연락을 하면서 도움을 주는 관계요. 마검쟁탈이 끝나고 암중 세력에 대해 조사를 할 건데, 그들의 꼬리를 밟게 되면 연락을 해 줄 테니 적가상방으로 가서 의탁하고 있으라는 말이었소.]
[킁!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그렇게 길게 설명해야 할 일을 석둑 잘라 버리고 대뜸 적가상방으로 가라고 하니 오해를 했잖소.]
[……그래서 대답은?]
[흐흐흐! 나중에 적가상방에서 봅시다.]
말을 마친 운광이 손을 흔들며 객잔 밖으로 나갔다.
운광이 객잔에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조유하가 물었다.
“둘이서 무슨 얘기를 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만.”
“누구를 바보로 아는 거예요? 분명히 전음으로 무슨 대화를 했었잖아요! 다 알고 있다고요!”
“바보로 아는 건 아니지만, 그에 비슷한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건 인정하지.”
“이익…… 이봐요! 이전에는 그쪽한테 신세를 많이 졌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요. 오히려 언젠가는 내 도움을 받고 고마워할 날이 올지도 모르고요!”
“그러면 그때 가서 조금 상향시켜 주는 걸로 하자고.”
조유하는 분하다는 듯이 발을 굴렀다.
그런 조유하를 보며 풍백이 말했다.
“강호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면 마검쟁탈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아. 강호가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번 마검쟁탈이라 부르는 일은 다른 때보다 위험하다. 절정고수라고 하더라도 실수 한 번이면 죽을 수도 있어.”
말을 하면서도 미래에 검후라 불려야 할 조유하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한 번 생각해 봤다.
워낙 사소한 일에도 휙휙 바뀌는 일들이 많아서 정확하게 짐작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보타암이 조유하의 죽음을 계기로 일어설 가능성이 많다는 건 확실했다.
보타암이 어지간하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힘이 구파일방에 비하여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바뀌는 미래지만,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변수를 줄이는 것이 좋았다.
조유하는 풍백의 말에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설마 나를 걱정해 주는 건가요?”
그러자 조유하를 바라보는 풍백의 얼굴이 마치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떨떠름하게 변했다.
그 모습에 조유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뭐, 뭐예요! 그 표정은!”
“걱정과 배려를 착각하지 마라. 그나마 이전에 한 번 같이 일했던 인연이 있으니 배려하는 마음에서 해 준 말이다.”
“흥! 배려는 무슨……. 그러는 그쪽도 마검쟁탈에 뛰어들 생각이잖아요. 그 말은 그쪽도 위험하다는 것 아닌가요?”
풍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지.”
“그러면 그쪽부터 굳이 끼어들지 말고 돌아가는 게…….”
“위험한 만큼 철저히 준비해서 안전을 도모한다. 그리고 위험한 일인 만큼 그 보상도 훌륭하고. 너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가 준비한 것이라고는 한 자루의 검이 전부였다.
“나는 강호의 무인이 아니야. 임무가 있으면 그것을 수행한다. 그리고 임무가 어렵고 위험하면 그것을 최대한 감안해서 준비를 한다. 강호의 무인처럼 일신의 무공만 믿고 달려들지 않지. 그러니 단순히 강호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면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이다.”
조유하는 풍백의 말을 모두 듣고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서 피하고, 더럽다고 피하면 강호에서 무인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면 안 되는 일이죠. 그러니 배려해 주신 것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자기 목숨을 잘 챙기면서 다니길.”
조유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풍백에게 슬쩍 미소를 보이고는 면사를 착용했다.
“그쪽도 조심해요. 괜히 눈먼 칼에 맞고 쓰러지지 말고.”
“누가 누구에게 할 말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건가?”
“어디 두고 보자고요.”
말을 마친 조유하가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객잔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조유하마저 사라지고 나서야 풍백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행히 동행하자는 말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괜히 따라온다고 하면 기절이라도 시키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조유하가 따라오면 무력이 늘어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하나 왜 이런 준비를 하는지 설명을 하려면 쓸데없는 기력 낭비만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건 그렇고, 운광까지 하산한 걸 보니 걱정이 많이 되네. 사천에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잠시 생각을 해 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아마도 오독문이 이전과 같은 위세를 발휘하지 못할 거라는 것 정도?
그나마 오독문이 사천당가의 유산을 손에 넣었던 것은 적어도 앞으로 반년에서 일 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니 딱히 지금 당장 일어날 다른 사건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왕이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일이었으면 좋겠네.’
머릿속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풍백이 객잔 주인에게 방 하나를 빌려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슬슬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해시(亥時, 21~23시) 말경(末境).
똑!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왔다는 걸 알아챈 풍백이 말했다.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궁장을 입은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여인은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는 사뿐히 절을 했다.
“예릉현의 무화(茂花)가 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무화는 기녀였다.
하지만 그냥 기녀가 아니기도 했다. 바로 이 여인이 암향거 예릉현 지부를 담당하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미행은 없겠지?”
“천첩을 후미를 지켜 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미행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좋아. 그러면 물건은?”
무화는 품에서 곱게 접혀진 종이를 꺼냈다. 그것을 받아 든 풍백이 펼치고 확인한 풍백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무화가 가지고 온 것은 지도였다.
지도는 원래 관부에서 관리하는 물품이었다. 그래서 너무 자세한 지도를 만들거나 함부로 사람들에게 유통하면 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무화가 가져온 지도는 풍백이 과거에 새외에서 받았던 지도처럼 대단히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지도는 관부, 특히 군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풍백은 지도를 살펴보며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에 설치를 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것입니까?”
풍백은 무화에게 그가 필요한 것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무화는 그가 말하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며 암기했다.
“언제까지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다시 공손히 절을 한 무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무화가 떠난 이후로 시간이 지나고, 자시(子時, 23~01시) 초가 되자 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들어오시오.”
꽤나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들어와 풍백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의뢰인이 그쪽 맞소?”
“그렇소. 그러는 그쪽은 하오문이 맞고?”
히죽 웃은 사내가 말했다.
“하오문 예릉지부의 지부장이오.”
“그렇군. 그러면 시간이 없으니 의뢰부터 얘기합시다.”
풍백은 무화에게 받은 지도를 펼쳤다. 지부장은 지도를 보자마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허…… 이런 지도를……. 혹시 이건 팔 생각 없소? 값이 많이 나간다고 하더라도 구입할 의향이 있소만…….”
“쓸데없는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내가 하는 의뢰에만 집중하길 바라오.”
“쩝…… 아까워서 물어봤을 뿐이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요?”
풍백이 지도에 여러 군데를 지목하며 필요한 것들을 말했다.
“음…… 이 정도면 우리 지부만이 아니라 호남성 여러 곳에 있는 지부에 요청을 해야 하는데…… 의뢰비는 충분히 가지고 있는 거요?”
“이 정도면 충분한가?”
전낭에서 금원보를 꺼내서 던졌다. 그걸 받은 지부장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고, 충분해!”
“최대한 빨리 완료를 해 줬으면 좋겠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소. 우리 하오문이 의뢰비만 확실히 챙겨 주면 일 하나는 기갈나게 처리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지부장이 떠나갔다.
그리도 다시 시간이 지나며 누군가가 풍백의 방을 두드렸다.
풍백을 찾아오는 손님은 그 뒤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풍백은 그때마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준비시키거나 사람을 부탁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