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91화
“대단…… 하네요.”
조유하는 난장판이 되어 버린 일 층을 내려다보며 신음을 흘리듯이 말했다.
그녀의 평가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풍백이 생각하기에도 대단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운광자에 대해서 조사했던 것을 이미 봤었지만, 역시 이렇게 직접 보는 것하고는 느낌이 다르네.’
사파에서 도살자 취급을 받는 운광에 대해서는 온갖 이야기가 많았다. 일각에서는 운광이 삼두육비를 가진 괴물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정파답지 않게 파격적으로 손을 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도 정파는 정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사천문의 무인들과 운광이 싸우기 시작하자 일 층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모두 기다시피 도망쳤었다. 만약 운광이 그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권력의 폭풍에 휘말려 날아갔을 것이다.
즉, 운광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힘 조절을 했다는 말이었다.
‘아무튼 벌써 운광자가 세상에 나오다니…… 이걸 어떻게 한다?’
딱히 운광이 풍백에게 적은 아니었다.
오히려 운광은 말만 잘하면 적가상방의 식객 정도로 만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원래는 별로 가까이 할 생각이 없던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과한 손속과 사파를 보면 눈이 돌아가는 저 성격 때문에 분란을 일으킬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무력이 부족한 적가상방을 생각하면 적어도 당가가 제대로 된 무력을 가질 때까지는 고양이 손이라고 하더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었다.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소란이 끝난 것을 알아챈 객잔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가 난장판이 된 일 층을 보고 저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망, 망했다…….”
일 층에 있는 식탁과 의자는 대부분 부서져 있었고, 십여 구의 시신이 굴러다니고 있으니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운광은 그런 객잔 주인을 보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음하하하!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도우(道友). 여기 개새끼들이 가지고 있는 전낭은 모두 도우가 챙기면 될 것이니,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오.”
그 말에 객잔 주인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사사천문 무인들의 시신을 뒤져 전낭을 살펴본 객잔 주인은 다시 한번 주저앉고 말았다.
“은자 열일곱 냥에…… 철전 칠십 개…….”
부서진 식탁과 의자만 다시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은자 스무 냥은 족히 들어갈 것이다. 거기에 시체를 치우는 비용과 당분간 식탁이 준비되기 전까지 손님을 받지 못한다는 것까지 계산하면 손해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객잔 주인은 멍하니 손에 들린 은자를 바라보다가 운광을 바라봤다.
운광이 그리 계산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지금 객잔 주인의 손에 들린 것 가지고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라는 정도는 계산할 수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많이…… 부족합니까?”
“네…….”
“어허험! 아니, 무슨 사파 새끼들이 돈도 이렇게 없지? 그러면서 무슨 음식을 그렇게 시키고 있어? 우리 객잔 주인 어른이 크게 손해 볼 수 있는데!”
운광이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전낭을 만져 봤다. 굳이 만져 보지 않아도 얼마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은자 한 냥에 철전 열다섯 개…… 이거라도 줄까?’
전 재산이 이것뿐이라 운광이 더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대충 운광에게 돈을 없다는 걸 알아챈 객잔 주인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차라리 그 음식을 가져다줬으면 은자 몇 냥 손해 보는 걸로 끝날 수 있었는데…….’
이런 말을 직접 입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정파라고 하더라도 방금 전 이곳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속마음을 모두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층에서 조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장.”
고개를 들자 조유하가 그를 향해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던지는 것이 보였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으니 누런 황금…… 아니, 금자가 아닌가!
금자 한 냥이면 은자 오십 냥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다. 객잔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조유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조유하는 그런 객잔 주인에게 아름답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요?”
“이, 이걸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정파의 협객이 사파의 악행을 보고 손을 쓰다가 일어난 피해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도와 드려야지요.”
객잔 주인은 금자를 꼭 쥐고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방금 전 사사천문의 시신에서 얻어 낸 은자까지 더하면 엄청난 수익이 될 것이다.
“오오오! 그대도 정파의 도우였소? 이거 무진장 반갑소이다! 하마터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뻔했는데, 덕분에 살았소이다. 음하하하!”
바람같이 달려온 운광이 조유하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조유하는 운광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사파의 버러지들을 징치하시면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대협이 나서지 않았다면 제가 나서서 저들을 징치했을 거예요.”
“그런 거였소? 그러면 저 잔혹검이라는 개새끼만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나머지는 도우에게 넘겨줄 걸 그랬나 보오.”
“저런 버러지들은 대협께서 혼자 얼마든지 징치하실 수 있으니 제가 끼어들 수는 없지요.”
“아무튼 반갑게 되었소. 이럴 것이 아니라,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는 것이 어떻소?”
“……술이요?”
조유하가 놀란 눈으로 운광을 바라봤다. 설마 도사가 대놓고 술을 마시자고 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좋은 날 어떻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러더니 운광이 객잔 주인에게 술을 시켰다.
이미 엄청난 돈을 받은 객잔 주인은 재빨리 주방에서 술을 가지고 왔다.
조유하의 술잔에 술을 따른 운광이 풍백에게 술을 따르려고 하자 손을 내밀어 거절했다.
“술은 사양하겠소.”
“그래도 이런 날에…….”
“일을 하는 중이라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양해를 해 주시오.”
“그렇소?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운광이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냉큼 비웠다. 아무래도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니 그냥 술이 마시고 싶어서 구실을 삼은 것 같았다.
조유하는 운광에게 물었다.
“대협께서도 이번 마검쟁탈이 일어나는 곳으로 가는 중인가요?”
“그렇소. 듣자 하니 천하의 개새끼들이 모두 그쪽으로 모이는 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쫓아가는 길이오. 첫날부터 사사천문의 개새끼들을 만난 것을 보니 이번 호남행은 아주 좋은 일이 많을 것 같구려.”
“아, 화홍이 아니라 사파를 찾아가시는 거라고요?”
“그깟 검 한 자루가 무슨 대수겠소? 어차피 검을 익힌 것도 아니고, 사문에서 배운 무공도 극의에 달하지 못했는데 말이오.”
“그렇군요. 저도 세상에 어떤 버러지들이 호남으로 모였나 확인하러 가는 중이에요.”
“음하하하! 그렇구려. 그런데…… 도우는 어디 사람인지 물어도 되겠소?”
그러자 조유하가 슬쩍 풍백을 한 번 보고는 말했다.
“저는 보타암의 조유하라고 해요.”
보타암이라는 말에 운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타암의 여협이었구려! 신비에 쌓인 보타암에서 나온 여협을 직접 만나다니, 빈도가 이번 강호행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구려.”
“대협께서는 청성파분이시죠? 복식을 보니 청성파 같은데.”
“음하하하! 맞습니다. 천하제일 청성파의 운광이라고 합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조유하는 운광의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운광은 풍백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쪽 도우는 어디에서 오신 분이신지?”
“그건…….”
조유하가 풍백의 눈치를 살폈다. 마치 자신이 얘기를 해도 되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풍백이 운광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청성파 일대제자 운광. 스물다섯 살. 도강언(都江堰) 출생.”
풍백의 말에 조유하가 화들짝 놀라 운광을 바라봤다.
‘헉! 저 얼굴로 스물다섯?’
풍백이 운광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보다 나이에 놀랐다. 솔직히 조유하는 운광이 사십은 넘은 줄 알았으니까.
오죽했으면 대협이라고 불렀겠는가.
풍백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다섯 살에 청성파에 입문. 술을 좋아하고, 어렸을 적부터 사부와 사숙의 곡차를 자주 훔쳐먹음. 검법을 익히지 않고 장법과 권법, 수법만 익혔으며, 스무 살에 일대제자가 되었음. 청성파에서…….”
드르륵!
운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이글거리는 눈으로 풍백을 노려봤다.
“너는 누구냐!”
그 말에 풍백은 찻잔으로 입술을 축이고는 말했다.
“북경에서 왔소.”
조유하에게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황궁에서 왔다는 누구나 다 아는 은어를 말했다.
하지만 운광은 강호 출도를 하기 전의 조유하보다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 씨벌! 누가 그걸 묻는 줄 알아? 어디에서 온 놈이냐고! 아니지…… 사문이 어디냐고, 사문이!”
풍백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운광을 바라봤다. 설마 이것도 알아듣지 못할 줄은 몰랐다.
조유하가 슬쩍 풍백의 눈치를 보고 말했다.
“저기…… 북경에서 왔다는 말은 황궁에서 오셨다는 말이에요.”
“황궁? 그러면…….”
“어사님이세요.”
“헉!”
화들짝 놀란 운광이 슬슬 눈치를 보며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런 운광을 보고 조유하가 다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저도 이전에 똑같은 일을 겪어 봐서 어떤 기분인지 알겠거든요.”
예전에 조유하도 풍백을 만나자마자 그가 자신이 금호상방 사람이라는 걸 알아봤던 기억이 있었다. 심지어 비밀로 하던 보타암 제자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었다.
조유하의 말을 듣고 운광은 풍백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르고 욕한 겁니다. 빈도가 아직 세상 물정에 밝지 않아서 엿 같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욕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는 운광의 모습에 풍백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황궁의 어사라니 어설프게나마 존대를 하는 모습이 특이하기도 했다.
“괜찮소. 어차피 그 정도 반응은 예상하였으니까. 그리고 말은 그냥 편하게 하시오. 익숙하지도 않은 존대를 하려고 하지 말고.”
“크흠! 그럽시다. 황궁에서 빈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요?”
“딱히 청성파만 주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강호 전체를 주시하고 있지.”
실제로 암향거에서 강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니 풍백이 새외에서도 강호의 온갖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말이다.
아무래도 초인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강호였으니, 행여나 황궁에 위협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것이 진짜인지는 풍백도 모르지만.
“그보다 왜 이렇게 빨리 하산지회를 열었던 것이오?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내년, 늦으면 내후년에야 하산지회(下山之會)를 열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부활시킨 하산지회까지 알고 있고, 원래 계획했던 날짜까지 알고 있는 풍백의 말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설마 황궁에서 자신들을 이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니.
어차피 하산지회에 대해서 숨길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강호에 청성파가 다시 하산지회를 부활시켰다는 걸 알리는 중이었다. 사파들에게 청성파의 힘을 두려워하라는 의미로.
“원래 계획은 그랬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서 시간을 조금 땡겨지게 되었소.”
“예상치 못한 일이라면?”
“아는지 모르겠지만, 사천에서 금벽궁이라고 방귀깨나 뀌는 개새끼들이 있었는데, 그놈들이 하룻밤 만에 싸그리 몰살당하는 일이 있었소.”
모를 수가 없었다.
금벽궁의 멸문이 정해지는 자리에 풍백이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혈수마괴가 금벽궁을 지워 버린다고 했었지.’
그리고 사천에서 금벽궁이 의문의 세력에 의해 씨몰살을 당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범인이 누군지 파악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며 혈수마괴의 유명암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세력임을 깨달을 수 있었고 말이다.
풍백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운광이 말했다.
“모르고 있었나 보군. 하긴 청성파처럼 대단한 문파가 아니면 황궁에서도 허접한 개새끼들 문파까지 주시하지는 않겠지.”
살짝 비꼬는 듯한, 그리고 알 수 없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한 운광의 말에 풍백이 피식 웃었다.
“금벽궁이 유명암에 의해 몰살을 당한 일은 알고 있었지.”
“어? 알고 있었던 거요? 그러면 얘기가 쉽겠구만. 그러니까 금벽궁이 알 수 없는 세력 유명암에 의해 몰살을 당한 일로…… 어라?”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이야기를 이어 가려던 운광은 말을 멈추고 풍백을 바라봤다. 그의 퉁방울 같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운광이 말하기 전에 조유하가 끼어들었다.
“금벽궁이 유명암에게 멸문을 당했던 거였어요?”
“그래.”
“아니, 대체 왜요? 금벽궁도 정사지간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사파에 가깝다고 들었는데…….”
“유명암주의 손녀를 공격했었거든.”
“헉! 지, 진짜요? 멸문을 당할 만했네요.”
유명암주이자 사파십대고수 중 하나인 혈수마괴에게 손녀가 있었다는 것보다 감히 그런 사람을 공격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유명암의 지독한 손속은 강호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단순히 유명암의 고수를 건드렸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꼴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감히 주제도 모르고 단순히 유명암의 고수도 아닌, 혈수마괴의 손녀를 건드렸다니. 그 정도면 멸문을 당하는 것이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