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90화
대략 사십 대로 보이는 사내는 육 척이 넘는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었고, 콧등을 가로지르고 있는 흉측한 상처는 얼굴이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렸다.
터질 듯한 근육이 인상적인 이 사내가 입고 있는 것이 도복이 아니었다면, 산적이라고 오해를 했을 정도로 위압감이 넘치게 생겼다.
사내를 본 조유하가 물었다.
“저건…… 청성파(靑城派)의 도복 아닌가요?”
맞았다.
사내가 입고 있는 건 구파일방 중 하나인 청성파의 도복이었다.
청성파는 이백여 년 전, 사천당가가 무너졌던 것처럼 문파가 불타올랐던 곳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천당가처럼 무공마저 실전되는 건 피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제법 오랜 시간 힘들게 보내기는 했어도, 결국 지금은 당당하게 구파일방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같은 구파일방에서 얼마나 많은 지원을 해 줬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다시 자립하게 된 청성파는 문파가 불타올랐던 일을 치욕이라 여겼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했다.
그 방법은 예전에 없애 버렸던 전통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 청성파는 제자를 하산시키면서 열 권의 빈 책자를 들려 줬다. 그리고 강호에 나가면 악인을 잡아 죽이고 책자에 이름과 얼굴을 그려 넣도록 했다.
열 권의 책자를 모두 채우지 못하면 청성파로 돌아오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 조건을 채우기 위해 너무 오랜 시간 강호를 떠돌아다녀야 했고, 무리하게 사파와 싸우다가 죽어 나가는 제자가 많아지자 폐지를 했었다.
그러나 덕분에 청성파에서 일대제자가 하산을 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사파는 벌벌 떨었고, 당시의 청성파는 수없이 많은 실전을 겪은 제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악인을 처단하며 얻게 된 사람들의 지지는 덤이었다.
청성파는 이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는 본산이 불타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때부터 사파에서 청성파의 악명은 다시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사파는 멀리서 청성파의 도복이 보이면 일단 도주하는 것을 선택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아직 시행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풍백이 겪었던 과거에서는 앞으로 일 년 정도 지나서 벌어져야 했던 일이다.
그리고 전통이 부활하며 하산한 청성파 일대제자 중에서 사파에게 가장 큰 악명을 떨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눈앞에 있는 도사였다.
염라판관(閻羅判官) 운광자(雲光子).
사파에서는 운광자(雲狂子)라 불렀던 그는 사파에게는 거의 도살자 수준의 취급을 받았었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그의 성격에 많은 사파가 죽어 나갔고, 그에게 악이라 찍힌 사람은 어디로 도망치건 끝까지 쫓아가 때려죽였던 사람이 바로 운광이었다.
운광은 위협적으로 목을 움직였다.
우드득! 뿌드득!
보통 사람들과 달리 뭔가 묵직한 소리가 났다. 그의 살벌하게 생긴 근육과 함께 들리니, 그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설마 대뜸 욕부터 지껄였던 자가 이렇게 괴물처럼 생긴 놈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사파 무인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입에서는 본능적으로 욕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 이 새끼가 지금 우리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근육 자랑하지 말라고! 씨발, 근육이 짱짱하면 뭐 배때기에 칼 안 박히는 줄 알아?”
“알아서 구석에 처박혀 있으라고! 확 죽여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위협을 하면서도 감히 덤벼들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운광의 살벌한 모습에 살짝 기가 죽은 것 같았다.
운광은 사파 무인들의 이런 반응에 히죽 웃었다.
“운이 좋군, 운이 좋아. 제법 뼈대가 단단한 것 같구나. 이런 놈들이 참 찰지게 손맛이 좋지.”
그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북리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사사천문 사람이요. 괜히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만들지 말고 적당히 합시다.”
풍백은 마북리가 말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 차라리 머리를 박고 살려 달라고 했어야지.’
멸사록(滅邪錄)이라 불리기도 하는 청성파의 책자에 이름이 들어가려면 그만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니 머리를 박고 살려 달라고 하면 피라미라 생각해서 간단하게 사지를 부러뜨리는 정도로 봐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마북리처럼 나간다면…….
운광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어디 사사천문의 개새끼 따위가 사람 말을 하고 있어! 헷갈리게! 사람이 개새끼하고 말을 섞고 있었다니 치욕이구나! 모가지를 비틀어 주마!”
‘이렇게 되겠지.’
버럭 고함을 지른 운광이 옆에 있는 식탁 다리를 잡더니 그대로 집어던졌다. 그러자 식탁이 포탄처럼 마북리를 향해 쏘아져 갔다.
혹시라도 이런 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대비하고 있던 마북리가 쌍장에 내공을 모아 식탁을 후려쳤다.
당연히 식탁이 박살날 거라 생각했다. 모든 내공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칠성 정도의 내공을 담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마북리의 착각이었다.
퍽!
지지지직!
운광이 던진 식탁은 마북리의 쌍장에 부서지지 않았고, 오히려 식탁에 담긴 여력이 그를 밀어 댔다. 마북리의 발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제기랄…….’
마북리는 운광이 식탁에 담은 내공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소리쳤다.
“감히 기습을 해? 모두 쳐라!”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하들은 자신이 손해를 봤다는 걸 알아차리면 언제든 자신을 버리고 도망칠 놈들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기습 때문인 것처럼 속이고 운광을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이 나았다. 그러면 운광이 싸우면서 빈틈을 드러낼 기회가 생길 테니까.
마북리의 말에 사사천문 무인들은 일제히 병장기를 꺼내 들고 운광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십여 명의 무인들이 달려드는 것을 보고 운광은 강렬하게 진각을 굴렀다.
콰앙!
진각을 구르며 일어난 돌풍은 달려들던 사사천문 무인들이 뭔가 잘못 되었다는 걸 인식하게 만들어 줬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연이어 튀어나온 청성파의 천풍무형신권(天風無形神拳)은 이미 운광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아아악!
폭풍처럼 일어난 권력이 객잔 내부를 휩쓸었다.
달려들던 무인들은 하나의 가랑잎이 된 것처럼 날아다녔고, 천풍무형신권을 직접 얻어맞은 무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해 버리고 말았다.
마북리는 수하들이 운광에게 덤비는 사이에 은밀히 뒤로 돌아가는 중이었지만, 그 역시 엄청난 권풍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사사천문의 무인들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무지막지한 권력을 보여 준 운광을 찢어질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운광은 가만히 이들의 시선만 받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흐흐흐흐! 모조리 죽여 주마!”
운광이 도저히 도사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살기를 줄줄 흘리며 쓰러진 사사천문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서 펼쳐진 청성파 독문무공인 풍뢰장(風雷掌)은 이들이 감히 막을 수 없는 절학이었다.
쩌저적!
“컥!”
“크아악!”
풍뢰장을 맞은 두 명은 그나마 비명이라도 질렀지만, 얼굴로 풍뢰장을 받아 낸 무인 하나는 입도 벌리지 못하고 머리가 박살 나며 죽어 나갔다.
운광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쾌속한 움직임으로 사사천문 무인들을 덮쳐 갔다. 누구 하나 감히 운광의 풍뢰장을 막아 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운이 좋은 무인 하나가 간신히 운광의 풍뢰장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운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이 새끼가 피해? 어디 이것도 피해 봐라.”
멱살을 덥석 잡은 운광이 무인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뻑!
“억…….”
“피해 보라고!”
빠각!
“이것도 피해 보라고 했잖아!”
쾅!
세 번의 주먹질에 거의 얼굴이 없어진 무인을 내던져 버린 운광이 다른 먹잇감을 향해 달려갔다. 죽은 무인은 차라리 한 방에 죽은 다른 동료가 부러웠을 것이다.
‘제기랄! 완전 미친놈이다!’
아니, 미친놈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감히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는 괴물이었다. 절대로 자신이 비벼 볼 상대가 아니었다.
마북리는 황급히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여기서 운광을 상대하다가 죽느니, 차라리 도주하는 걸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겨우 한 걸음 내딛었을 때, 운광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가 감히 도망을 치려고 해?”
후욱!
맹렬한 바람을 동반하고 달려온 운광이 마북리를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상제(上帝)가 내려 주시는 천벌(天伐)을 받으라!”
“으아악!”
마북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운광의 어른 머리통만 한 크기의 주먹은 그런 마북리의 가슴으로 쑤셔 박히고 있었다.
꾸앙!
텅! 텅! 텅!
주먹을 맞은 마북리가 지면에 몇 번 튕기고는 쓰러졌다. 눈이 돌아가서 허연 흰자를 보이고 입에서 거품을 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운광이 고개만 돌려 어깨 너머로 아직 남아 있는 두세 명의 사사천문 무인들을 보고 살벌한 미소를 보였다.
“히이익…….”
“하, 항복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더 이상 싸울 생각도 못한 무인들이 그대로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운광은 그들에게 천천히 걸어오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살려 달라고 무릎을 꿇은 것을 보니, 개새끼가 아니라 사람 새끼였구나.”
“마, 맞습니다! 사람입니다!”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지 않겠습니다!”
간절한 이들의 목소리에 운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지 말아야지. 그래도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짓을 다시 벌일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맹세합니다!”
쿵! 쿵! 쿵!
머리까지 바닥에 박아 가며 용서를 구하는 사사천문의 무인들이었다.
사실 사파만큼 가볍게 굽혀지는 허리와 무릎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기 위해 온갖 비열한 수를 모두 동원하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은 이렇게 빌고 있으면서도 속마음을 조금씩 달랐다.
‘일단 사는 것이 중요해!’
‘여기서 벗어나면 당장 사사천문으로 달려가서 알려야 한다.’
‘곧 복수하러 돌아와 주마. 그때는 네가 내 앞에서 머리를 박는 꼴을 반드시 보고 말 거야!’
이런 이들의 마음을 모르는지 운광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이렇게 간절하게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너무 기쁘구나.”
사사천문 무인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쩌면 이 괴물 같은 놈이 이대로 물러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광의 말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앞으로 그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내가 도와주마.”
“……네?”
“그게 무슨…….”
운광은 더 이상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 줬다.
순식간에 사사천문 무인들의 혈도를 점한 운광이 그들 중 하나를 붙잡아 그의 팔을 꺾이면 안 되는 방향으로 부러뜨려 버렸다.
우드득!
“끄아아악!”
“원래 개과천선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야.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어라.”
“자, 잠깐만……!”
우드드득!
“까아으흑…….”
운광은 무인이 주로 사용하는 한쪽 팔을 완전히 박살을 내 버렸다. 그리고도 부족했는지 다라 한쪽도 똑같이 박살을 내 버렸다.
아마도 이 무인의 부러졌던 팔이 원래대로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리도 이렇게 부서졌으니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이고 말이다.
“이제 너희는 번뇌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 그러지 않아도 어차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테니.”
“저, 저기 대협? 잠시만…….”
“그러지 않아도 저는 마음이 굳건하여…….”
사색이 된 무인들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말했지만, 운광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사양할 필요는 없다. 모두 너희들이 앞으로 옳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자, 잠깐! 이 미친놈아, 잠깐 기다…… 아아악!”
욕을 하던 무인은 곧 이어지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으로 남은 무인은 이를 부딪치면서 오줌까지 지리고 있었다. 그러나 운광의 도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사천문 무인들을 처리한 운광이 마북리에게 다가오더니 품에서 책자 하나와 붓을 꺼냈다. 그리곤 무인들이 바닥에 뿌린 핏방울을 붓으로 찍어서 책자에 적었다.
“아까 잔혹검이라고 했었지? 잔…… 혹…… 검…….”
이름을 적은 운광이 붓으로 마북리의 얼굴을 봐 가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솜씨는 아주 형편없었다. 도저히 사람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제기랄……. 이걸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던 운광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뼉을 한 번 치고는 마북리의 뒤통수를 잡고 들어 올리더니 얼굴을 바닥에 고여 있는 피 웅덩이에 처박았다.
그리곤 책자에 잔혹검이라 하단에 적은 쪽을 펴서 빈자리에 마북리의 얼굴을 짓이기듯 눌렀다.
책자에 찍힌 마북리의 얼굴을 본 운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역시 호남성으로 오기를 잘했군. 첫날부터 사사천문 사파 새끼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말을 마친 운광은 가볍게 마북리의 머리를 한 바퀴 돌려서 부러뜨려 버렸다. 마북리는 그렇게 혀를 길게 빼물고 허망하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