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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94화 (25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94화

정적이 흘렀다.

이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나고 난 이후였기에 사람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대략 반 시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유금성이 살짝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을 정도로 미약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는 것처럼 다시 한번 크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후우…….”

길게 숨을 토해 내며 유금성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의 눈동자는 사내에게 일장을 맞고 쓰러졌을 때보다 훨씬 맑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힘겹게 상체를 일으킨 유금성이 입안에 고여 있는 피와 침을 뱉어 냈다.

“다행히…… 계획대로 되었군.”

유금성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도박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사내를 보는 순간, 유금성은 죽음을 떠올렸다.

지쳐서 화홍을 제대로 휘두를 힘이 남아 있을지 걱정할 정도였지만, 사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도 비참하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화홍의 검파를 힘껏 잡을 뿐이었다.

사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그러니 욕심을 내지 말았어야지. 왜 스스로 감당하지도 못할 물건을 손에 넣어서 명줄을 재촉했나?”

그리고 동시에 전음도 보냈다.

[당신의 동생인 유설화의 부탁으로 찾아왔소.]

생각지도 못한 유설화의 이름을 듣고 유금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전음을 보낼 내공도 없었던 유금성이 어색하지 않게 현 상황에 맞춰 에둘러 말했다.

“너는…… 누구냐.”

[유 소저가 적가상방에 도움을 청했소. 나는 적풍백 소상방주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고.]

전음이 끝나자마자 사내가 말했다.

“그건 알 거 없고, 손에 들고 있는 물건에 볼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전음이 다시 이어졌다.

[지금 통성명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기회가 생길 것이오.]

사내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계획을 설명했다.

계획 자체는 간단했다.

사내가 그의 손에 들린 화홍을 자연스럽게 빼앗고, 유금성을 죽이는 것처럼 위장한 다음에 빠져나가는 것이다.

유금성은 계획을 들으며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전음을 보낼 수 없기에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의 감정을 담아 말했다.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멀쩡하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무공을 가진 사내였지만, 끝없이 쏟아지는 강호 무인의 추적과 포위망을 쉽게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감당할 수 있겠냐고,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강호의 무인들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냐고 물은 것이다.

그런 유금성에게 사내가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어차피 화홍은 내가 가져갈 거니까.”

[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소. 지금은 당신 스스로 목숨만 부지할 생각을 하시면 되니. 어떻게, 방금 제시한 방법을 시행하겠소?]

솔직히 도박과 같은 상황이었다.

사내는 오늘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방법이 없잖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해 봐, 한번.”

유금성의 말에 사내가 한 번 웃더니 가공할 속도로 다가왔다.

그리고 유금성은 미리 사내가 얘기했던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이 현재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수법을 사용했다.

지금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자들 중에는 고수도 많았다. 그러니 어설프게 대응을 해서는 이들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그러나 사내는 물 흐르듯이 손쉽게 자신의 손에서 화홍과 검집을 챙기더니 가슴에 일장을 날렸다.

쩌억!

마지막 말을 마쳤을 때부터 혀를 깨물어 입속에 피를 잔뜩 머금고 있던 유금성이 입에서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밖에서 봤을 때는 내가중수법에 당해, 엄청난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 사내가 유금성의 가슴을 후려친 일장은 어떠한 타격도 주지 않았다. 그저 온전히 밀어내는 힘만 담겨 있을 뿐이었다.

쿠당탕!

지면에 내동댕이쳐진 유금성은 사내를 실눈을 뜨고 바라봤다.

‘크게 다치지 않게 혀를 깨물어, 피를 잔뜩 내는 방법이라니…….’

별 이상한 것까지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는 유금성에게, 화홍을 살펴본 사내가 다가와 살펴보는 척 하며 말했다.

“죽었네.”

[빨리 다음 계획인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치지 않고 뭐하고 있는 것이오?]

유금성은 눈을 감고 귀식대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귀식대법은 호흡을 멈추고 심장 박동을 느리게 만드는 수법이었다. 대신 귀식대법을 펼치면 움직일 수 없고, 미리 정했던 시간 동안은 꼼짝도 못하기에 특별한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수법이었다.

그렇게 유금성이 귀식대법을 펼친 것을 확인한 사내가 몸을 날렸다. 그러자 화홍을 노리고 주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자들은 일제히 사내를 쫓아가기 시작했고 말이다.

‘대체 누구였을까?’

유금성은 자신을 구해줬던 사내를 떠올렸다.

딱히 특징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누군지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그 정도로 대단한 무공을 가진 사람이 아무런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이제…… 설화에게 돌아갈 수 있겠구나…….”

유설화가 적가상방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으니, 아마도 적가상방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거라 생각하고 도움을 요청할 곳이 그곳밖에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유설화의 판단이 옳았다. 그 덕분에 유금성이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빚을 지고 말았다.

쓴웃음을 지은 유금성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일단 어딘가 몸을 숨기고 운공조식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의원이라도 찾아가 치료도 좀 받아야 할 것 같고…….

‘적가상방으로 돌아가 봐야겠지.’

* * *

풍백이 경공을 펼치기 시작하자 짧은 시간 동안은 누구도 그의 앞을 막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가 누군지, 얼마나 강력한 무공을 가진 고수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함부로 손을 쓰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짧은 시간 동안만이었다.

풍백이 유금성에게서 화홍을 빼앗고 그를 쓰러뜨리기는 했지만, 모두가 봤듯이 유금성은 이미 한계에 봉착한 상태였다. 그가 화홍으로 펼치는 도법은 대단했었지만, 아무런 경력도 실려 있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지켜봤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어지간한 삼류무사라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만한 상태였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풍백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풍백은 세 걸음도 채 내딛기 전에 온갖 놈들에게 둘러싸였을 테니까.

당장 풍백이 펼치는 경공만 하더라도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대박을 노리고 찾아온 대부분의 이류무인들은 이미 멀찍이 떨어뜨려 버리지 않았는가.

이런 몇 가지를 봤기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풍백을 살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참을성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성급하게 풍백의 앞을 가로막기 위해 나섰다.

십여 명의 사내들이 풍백의 앞을 막아섰다. 통일된 복장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같은 문파 사람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멈춰라!”

“화홍을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미리 말을 맞춰 놓은 건지 딱 두 명만 외쳤다.

그러나 풍백은 그들을 보면서도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신형이 더욱 빨라지더니 그들을 향해 폭사하듯 달려들었다.

“머, 멈추라고!”

“강행돌파할 생각이다!”

“막아라!”

풍백의 왼손이 검집을 잡더니 엄지손가락으로 고동(古銅, 방패막이)을 슬쩍 밀어 올리며 오른손으로 화홍의 검파를 잡았다.

“비켜.”

나지막한 목소리가 뚜렷하게 그들의 귀로 들어왔다. 내공을 담아서 말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한 마디에 물러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풍백의 손에 잡힌 화홍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쉬칵!

검집에서 튀어나온 화홍이 풍백의 앞을 가로막은 무인들을 향해 아름다운 호선을 그렸다.

스아아악!

직후, 마치 종이를 베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인들의 몸은 간단히 잘려 나갔다.

푸하학!

풍백은 쏟아지는 피분수를 뒤로한 채 무인들의 시신을 지나쳤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그 광경에 놀랄 법도 하건만, 풍백을 뒤쫓던 무인들에겐 그러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풍백의 손에 들린 화홍을 향해 더욱더 끈쩍한 욕망을 쏟아 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유금성은 화홍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굳이 그것을 뽑지 않았다. 도법을 익혔기 때문에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도를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화홍이 전대 천하제일고수의 무공이 있다는 소문을 떠나서, 얼마나 대단한 명검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화홍이구나!’

‘엄청난…… 보검이군…….’

‘숨겨진 비밀이 없다고 하더라도, 화홍을 손에 쥐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겠어!’

이 광경을 본 거의 모든 무인들의 눈에서 탐욕이 줄기줄기 뿜어졌다. 엄청난 예기를 자랑하는 화홍을 보고 슬슬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분위기가 과열되는 것을 경계하며 화홍을 숨길 것이다. 그러나 풍백은 굳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놈들 중에서 화홍의 성능을 보지 못했다고 돌아갈 놈이 있을 리가 없잖아.’

자신의 앞을 막아서거나 공격하는 놈들을 위해 손에 사정을 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럴 생각을 할 시간에 차라리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거나 목숨을 거둬 가는 것이 더 유익한 방향이라 생각했다.

“잡아라!”

동료를 죽이고 지나간 풍백을 잡기 위해 무인들이 뒤를 쫓았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이미 수십 명의 무인들이 풍백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화홍의 위력을 직접 보았기에 더 이상 참지 못한 것 같았다.

누군가가 먼저 손을 썼기 때문일까?

사방에서 무인들이 튀어나와 경공을 펼치고 있는 풍백에게 달려들었다. 뒤에서 풍백을 쫓고 있는 무인들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화홍을 내놔라!”

“죽어 버려라!”

“살고 싶다면 검을 내놔!”

고함을 치며 풍백에게 달려드는 무인의 숫자는 대충 살펴봐도 수십여 명이 넘어갔다.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무인들까지 합치면 일백 명은 우습게 넘어가고, 어쩌면 이백 명이 넘어갈 것 같았다.

보통 이 정도로 사람이 달려들면 어지간한 담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한순간 덜컹하고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터였다. 다수에게 노려진다는 공포는 예상보다 큰 것이다.

하지만 풍백은 차갑고 냉철한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전방에서 두 명, 우측에서 세 명, 좌측에서 한 명, 후방에서 네 명.’

빨리 상황을 파악한 풍백은 머릿속으로 움직여야 할 궤적을 순간적으로 계산하고는 곧장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당연히 혼자 공격하고 있는 좌측을 먼저 방어하거나 상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겠지만, 풍백이 우측으로 몸을 날린 것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포위 공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실상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여덟 명 내외였다.

그나마 이것도 최대한 동료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을 단병기나 창과 같이 멀리서 공격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좌측이나 전방은 자신의 초식을 모두 펼칠 수 있지만, 우측의 세 명은 아마도 서로의 공격이 방해가 되어 제대로 된 무공을 펼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후방에서는 네 명이니 그쪽이 더 양호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후방에는 달려드는 네 명을 제외하고도 그 뒤에 십여 명이 더 달려들고 있었다. 그에 비하여 우측은 세 명이 유독 빨리 달려오고 있는 중이고 말이다.

카득!

“비켜! 이 병신아!”

“윽…… 나를 베면 어떡해, 이 새끼야!”

예상대로 저들의 병장기가 서로 얽히며 본래 발휘해야 했던 위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했고, 오히려 빈틈만 수두룩하게 만들어 냈다.

그러지 기다렸다는 듯이 풍백의 손에 들린 화홍에서 난파칠식이 뿜어져 나왔다.

본래 난파칠식은 좋은 무공이기는 하지만 그 단점도 확실했다. 쾌검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변초가 너무 빈약하여 절정에 오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난파칠식이라도 무시무시한 예기를 자랑하는 화홍으로 통해 펼쳐진 순간, 어지간한 절정무공보다 훨씬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다.

카캉!

서거걱!

화홍을 본 무인 중 하나가 도를 들어 막았지만, 그의 도는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그리고 화홍은 도를 들고 있던 무인과 함께 서로 동선이 얽힌 다른 두 명을 가르고 지나갔다.

“크억……!”

“아아악! 내, 내 팔이!”

한 명은 바로 목이 잘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고, 다른 하나는 가슴이 갈라지며 신음을 토했으며, 남은 한 명은 팔꿈치부터 팔이 잘려 비명을 질러 댔다.

풍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밟으며 몸을 날렸다.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 풍백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무인들을 향해 비조처럼 날아들며 화홍을 휘둘렀다.

그의 모습은 마치 탐욕에 물든 무인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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