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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89화 (249/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89화

고우길과 헤어진 이후로 풍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마방을 이용하며 계속 말을 바꿔 타다가 지쳐서 말이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경공을 사용해서 빠르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열흘도 채 되기 전에 강서성을 횡단할 수 있었다.

이전에 사천에서 돌아오면서 강서성을 횡단했던 시간보다 거의 두 배는 빠른 것이었다.

아무래도 마차를 타고 달리는 것과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큰 차이가 났고, 최소한의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경공까지 펼치며 달린 것이 시간을 이렇게 줄일 수 있는 큰 이유가 됐다.

미친 듯이 관도를 달리기만 하던 풍백의 눈에 노상객잔 하나가 들어왔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인근에 예릉현(醴陵縣)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조금 늦을지 몰라도 계속해서 달리면 예릉현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풍백은 노상객잔에 걸려 있는 허름한 현판을 보고 이곳에 멈추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이 노상객잔에서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노상객잔에서 말을 세운 풍백이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객잔 내부는 꽤나 한산했다. 거의 절반 이상은 자리가 비워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풍백이 객잔 내부를 모두 돌아보기도 전에 점소이가 달려와 물었다.

“어섭쇼! 혼자 오셨나요?”

“그래, 혼자다.”

“이 층에 좋은 자리가 있으니,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점소이가 풍백을 데리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풍백이 이 층에 올라가자마자 누군가가 그를 보고 소리쳤다.

“아! 아아아!”

얼마나 놀랐는지 경악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소리를 내고 있는 중이었다.

풍백은 자신을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는 여자였는데, 면사가 가리지 못하는 눈과 이마만 확인하더라도 이 여자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미래에 검후라 불릴 조유하였다.

강호에 출도한 이후로 온갖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정도로 뛰어남을 인정받았던 조유하의 미모다. 그렇기에 그녀의 미모는 쓸데없이 많은 이목을 끌었다.

그에 조유하는 자신의 미모로 인하여 괜한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면사를 쓰고 있던 것이다.

점소이가 풍백과 조유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가 물었다.

“일행분이신가요?”

“모르는 사람이다. 따로 앉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마라.”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점소이가 풍백을 데리고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조유하는 풍백의 말을 들었는지 눈썹을 상큼하게 올리고 입술을 삐죽였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두하고 여기서 잘하는 음식으로 하나.”

“감사합니다!”

철전 몇 개를 주며 말하자 점소이가 얼른 그것을 받고 희희낙락하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점소이가 내려가고 풍백은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딱히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유하와 아는 척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옆머리가 따끔거릴 정도로 조유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유하는 풍백과 거리를 둘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망할…… 저 여자는 왜 지금 강호로 나온 건데?’

원래 조유하가 강호에 출도하려면 앞으로 적어도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이유인지 조유하가 벌써 강호로 나와 있었고, 심지어 우연찮게 이 노상객잔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풍백은 점점 자신이 아는 과거가 틀어지는 것을 느끼며 불안함을 느꼈다.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고, 과거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사람이 나타났으며, 아직 강호에 출도하지 않았어야 사람이 강호에 나오고 있었다.

이제는 미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맹신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괜히 미래를 알고 있다고 맹신을 하다가 예상치 못한 일들을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풍백의 귀에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자리에서 일어난 조유하가 풍백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한숨을 내쉬는 풍백의 맞은편에 조유하가 앉아서 말했다.

“저기요, 왜 모르는 척해요?”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합석할 생각이 없으니 돌아가시지요.”

“이봐요, 설마 면사를 했다고 알아보지 못하는 거예요? 자! 한번 봐요. 이래도 몰라요?”

조유하가 면사를 벗고는 풍백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심장에 해로운 미녀가 얼굴을 들이미는 상황에 헤실거렸겠지만, 안타깝게도 풍백은 그런 부류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린 풍백이 무심한 눈으로 조유하를 바라봤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조유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눈치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것인가?”

“어머! 제가 어디서 눈치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 사람 같은가요?”

“충분히 그럴 것 같군. 이전에도 한 번 겪어 봤었으니까.”

이전 백건상방 사건 때 강호 경험이 부족한 조유하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많이 벌였었는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는 풍백이었다.

‘비전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을 때는 가관이었지.’

그러자 풍백의 말을 들은 조유하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어렸다.

“그때는…… 제가 잘 몰라서 그랬어요. 덕분에 경험이 부족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충분히 배워서 이젠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당시 풍백에게 거의 면박을 받았던 조유하였다.

그 이후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사부인 범혜사태에게 강호에 대해서 엄청나게 배웠다. 이걸로도 부족했는지, 강호 경험이 많은 무사들이나 고수들에게도 온갖 이야기들을 들었고 말이다.

당시 기억이 그녀에게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그래서일까?

원래 강호 출도는 조금 더 후에 하려고 했었지만, 마침 마검쟁탈이라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직접 강호를 몸으로 느껴 보겠다며 금호상방을 떠나온 조유하였다.

금호상방에서는 서신 하나만 남기고 나왔기 때문에 난리가 났겠지만, 적어도 범혜사태에게는 허락을 맡은 상황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충분히 배웠다면 이렇게 다가오지 말았어야지.”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해 두죠. 차라리 그쪽이 더 마음에 드니까. 그리고 당신이 곤란하게 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는 조유하의 모습에 풍백은 혀를 찼다.

‘내가 알던 검후는 진중하고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성품이었다고 들었는데…… 일찍 강호를 출도했다고 성격까지 바뀌는 건가?’

과거에 직접 조유하를 만났던 것은 아니었으니 확실하지는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제가 같이 있으면 곤란한 이유가 뭔가요? 누구를 만나기로 한 건가요?”

“당신이 곤란한 거야. 지금처럼 사람을 귀찮게 하니까.”

“그러니까 누가 모르는 척하라고 했어요? 적어도 눈인사만 했어도 그러려니 했을 거라고요.”

“퍽이나 그랬겠군.”

이러는 사이 점소이가 조유하의 음식을 가지고 왔다.

“이쪽으로 가져와요.”

“아! 역시 서로 아는 사이…….”

점소이는 음식을 가져오다가 면사를 벗은 조유하의 미모에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쏟을 뻔했다.

다행히 조유하가 그릇을 받아 내서 요리가 엉망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점소이가 돌아가고, 조유하가 풍백에게 말했다.

“같이 드실래요? 어차피 저 혼자 먹기는 좀 많은데.”

“내가 시킨 음식도 충분히 많아. 그러니까 음식을 가지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 혼자 먹도록 하지?”

“어차피 이거 다 먹으면 바로 갈 거예요. 그러니까 식사만 같이하자고요. 우리 오랜만에 만난 거잖아요.”

뻔뻔하게 말하며 조유하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풍백의 음식도 나왔다.

풍백이 음식을 먹는 걸 보면서 조유하가 물었다.

“그쪽도 마검쟁탈 때문에 온 건가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화홍이요, 화홍. 설마 모른다고 하는 건 아니겠죠? 요즘 호남성은 물론이고, 전 강호를 들썩이고 있는 일인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래도 어사님이 이렇게 직접 행차를 하신 걸 보면 황궁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풍백은 만두를 집어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러는 그쪽은 마검쟁탈에 직접 뛰어들 건가?”

“상황을 보고요. 솔직히 화홍이라는 검이나 전대 천하제일고수의 무공은 별로 관심이 없어요. 검은 사부님이 주신 걸 계속 쓸 거고, 아직 배운 무공도 완전히 익히지 못했는데 다른 무공에 한눈을 팔 일은 없으니까요.”

“그러면 왜 호남성으로 온 거지?”

“경험을 사려고 왔지요. 누구 때문에 강호에 대해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말을 하면서 그게 바로 당신 때문이라는 듯이 조유하가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풍백은 그녀의 눈빛에 반응도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훌륭한 사람이군. 강호에서 산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유용한 건지 알려 주다니.”

“흥! 훌륭한 사람인지는 모르겠고, 짜증 나는 사람이라는 건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가?”

“그보다 그쪽도 화홍을 원하는 건가요?”

“글쎄…….”

“원한다면 말해요. 그쪽이 화홍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요.”

풍백이 음식을 입을 가져가다가 우뚝 멈추고 조유하를 바라봤다.

“왜?”

“말했듯이 어차피 필요 없는 물건이니까요. 하지만 그쪽한테는 빚이 있으니까 도와줄 수 있다는 거예요.”

조유하는 마겁과 있었던 일로 마음에 빚이 생긴 것 같았다. 아니면 그저 구실로 삼는 걸지도 모르고.

풍백은 가만히 조유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설마 내게 관심이라도 있는 건가?”

“당연하죠. 그쪽에게 받았던 그 구박을 생각하면…….”

“그 관심은 사양하도록 하지.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여자가 아니라서 말이야. 미안하게 됐군.”

이 말에 조유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말이 아니잖아요! 그, 그런 관심이 아니라 나는…….”

“그러니까 시끄럽게 굴지 말고 식사나 하지.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바람같이 떠나 줬으면 좋겠고.”

풍백의 말에 조유하가 입술을 깨물며 뭐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침 객잔의 문을 열고 요란하게 들어오는 십여 명의 사람들 소리에 하려던 말을 하지 못했다.

“으하하하! 드디어 호남성이구만! 이제 며칠 후에는 이 마북리의 손에 마검이 들려 있을 거야!”

“그럼요, 그럼요! 대장님이 아니면 누가 마검의 주인이 되겠습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대장님만 믿고 따를 뿐입니다! 나중에 마검을 손에 넣고 천하제일인이 되면 우리를 잊지 않으셔야 됩니다.”

“크하하하! 당연하지! 내가 우리 동생들을 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 있겠나?”

풍백은 들어온 건장한 십여 명의 사람들을 훑어봤다.

아마도 사파로 보이는 저들은 마검쟁탈에 대한 소문에 홀려 호남성까지 찾아온 것 같았다.

‘쯧…… 그래 봐야 일류고수 수준이군.’

풍백은 마북리라는 사람을 보고 생각했다.

원래라면 일류고수이기만 하더라도 강호에서 제법 알아주지만, 이번 마검쟁탈에는 절정고수도 심심찮게 나타나는 중이었다.

겨우 일류고수면서 저런 자신감을 보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소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든, 아니면 자기가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긴, 소란이 극심한 때에 슬쩍 검을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강호에 보물이 나왔을 때에 언제나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사람이 차지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보물을 얻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불나방처럼 보물 주위로 모이는 것이다. 그러다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상대가 사파 고수라는 걸 알아본 점소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물었다.

“주, 주문을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잘하는 음식으로 몽땅 가져와라! 그리고 술도 가지고 잔뜩 가져오고.”

점소이가 얼른 뒤돌아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객잔 주인이 그를 보며 뭐라고 눈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돈을 받아 오라는 말이었다.

사파의 고수들 중에는 은근히 돈을 내지 않고 음식을 먹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 지금처럼 선불로 음식값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점소이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모두 은자 두 냥 정도는 주셔야…….”

점소이의 말에 마북리 주위에 있는 사내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감히 지금 우리에게 돈을 받겠다고!”

“이 새끼가 우리 잔혹검(殘酷劍) 대장님을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혓바닥을 확 뽑아 주랴?”

“뭘 묻고 그래? 일단 혀를 뽑고 보자. 어차피 이놈이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히익!”

점소이가 기겁하며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십여 명이나 되는 무인이 쏟아 내는 살기에 다리가 풀린 것이다.

이 층에서 이 모습을 본 조유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사파가 일반인을 괴롭히는 모습을 미래의 검후가 그냥 지나갈 리가 없는 것이다.

또 쓸데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생겼다는 생각을 하는 풍백의 눈에 의외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여간 사파 새끼들은 모기 새끼들 같아. 어떻게 보이는 대로 쳐 죽이는데도 어디선가 계속해서 튀어나온단 말이야. 어디 나만 모르는 사파 새끼들이 튀어나오는 좆같은 공간이라도 있는 거야?”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사파 무인들이 일제히 한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도복(道服)을 입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어떤 새끼냐!”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구나!”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드르륵!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씨벌, 오늘 처음 본 새끼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아는 건 너희 같은 개잡종 같은 놈들은 하나하나 잡아다가 모가지를 분질러서 죽여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지.”

풍백은 도복을 입고 있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설마…… 아니지? 아닐 거야.’

하지만 곧 사내가 몸을 돌리자 풍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니, 네가 여기서 또 왜 튀어나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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