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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86화 (234/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86화

유설화는 풍백을 보자마자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달려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적 공자님! 오라버니를 살려 주세요!”

어린 유설화가 피를 토할 것처럼 외치더니 품에서 옥반지를 꺼내서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것은 유금성과 유설화가 적가상방을 떠날 때, 풍백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맡겼던 증표였다.

“이것 다시 돌려 드릴게요! 오라버니를 구해 주세요!”

유설화가 듣지 못하도록 한숨을 내쉰 풍백은 그녀에게 다가가 직접 팔을 잡아 일으켜 줬다.

“일단 이쪽으로 오시지요, 유 소저.”

이전부터 그랬지만, 여전히 아직 어린 유설화에게도 정중하게 말하는 풍백이었다.

“저는 괜찮아요. 그러니 제발 오라버니를, 오라버니를…… 으아앙!”

결국 통곡하듯이 눈물을 흘리는 유설화였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유설화를 번쩍 안아 든 풍백은 그녀를 거처에 있는 의자로 데려가 앉혔다.

“일단 진정하시고 무슨 일인지 얘기를 좀 해 주는 게 어떻습니까? 갑자기 유금성 대협을 살려 달라니, 무슨 일인지 모르는 저는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풍백이 곱게 접힌 비단 손수건을 건네줬다. 손수건을 받아 든 유설화는 풍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또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마음을 졸이고 있다가, 풍백이 다정하게 대해 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며 지금까지 서러웠던 감정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손수건이 흠뻑 젖을 때까지 울고 나서야 간신히 울음을 멈춘 유설화였다.

풍백이 새로운 손수건 하나를 더 건네주며 물었다.

“이제 좀 진정이 됩니까?”

“네…….”

“그러면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유금성 대협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유설화가 훌쩍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 * *

적가상방을 떠난 유금성과 유설화는 풍백에게 말했던 것처럼 호남성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호남성 남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신녕현(新寧縣) 인근에 있는 이 마을은 대묘구(大庙口)라 불리는 마을이었는데, 유금성과 유설화가 어렸을 적에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마을이었다.

대묘구까지 가는 길에 문제는 없었다. 도리어 너무 평이하다 싶을 정도로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대묘구에는 아직까지도 유금성 남매의 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이 살았던 집은 대묘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묘구 서쪽에 있는 산 아래에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굳이 사람이 찾아올 일이 없어서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던 것이다.

유금성 남매의 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사냥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래서인지 유금성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산에서 나무나 사냥을 하기로 정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얘기 들었어? 화홍인지 마검인지 모를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기양현(祁陽縣) 인근에 있다는구만.”

“하여간 미친놈들이 너무 많아. 무슨 칼 한 자루 손에 넣겠다고 사람을 죽이고 다닌데? 대체 사람의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이 사람이 아직도 유생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네. 돈이 되잖아, 돈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 물건이라고. 그러니 얼마나 비싸겠어?”

“진짜 그렇게 비싸대?”

“돈으로 환산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돈을 주고 살 수 없으니, 저들이 서로 갖겠다고 이렇게 싸우는 거라고 하더라고.”

집으로 돌아가던 유금성은 마을 어른 두 명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생각보다 정확한 얘기였다.

정확하게는 검에 천하제일고수의 무공이 있다는 소문이었지만, 그런 검을 돈으로 구할 수 없다는 말도 사실이었으니까.

유금성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이곳으로 오지는 않겠지?’

이렇게 생각했던 유금성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기양현이면 이곳까지 오는데 적어도 사흘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또한 여기는 정말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심지어 관도도 지나지 않는 곳이라 산길밖에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간혹 소규모 상단이 들러서 필수품을 판매하는 걸 제외하고는 외부인 자체가 거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들이 이곳으로 온다고 하더라도 마을로 들어오지, 굳이 혼자 동떨어져 있는 유금성의 집으로 찾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쓸데없는 걱정이라 생각한 유금성이 머릿속을 비웠다. 그리곤 혹시나 눈먼 짐승이 알아서 나무하는 곳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도끼를 들고 산으로 향했다.

평범하게 살기로 한 유금성이기에 하루라도 쉴 수는 없었다.

“후욱…… 후욱…… 후욱.”

궁사담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바쁘게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지? 아무도 없을 거야.’

주변에 누구도 없다는 걸 확인한 궁사담의 얼굴에는 탐욕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이건 내 거다!’

궁사담의 손이 허리에 있는 평범하고 낡아 보이는 검집을 쓰다듬었다.

마검이라 불리는 화홍이었다.

사파의 무인인 궁사담은 숭무장의 담을 넘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무력으로는 절대로 화홍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궁사담은 계획을 짰다. 다행히 그에게는 꽤나 대단한 재주가 있었다. 그 재주로 별호까지 얻을 정도로.

삼수투도(三手偸盜) 궁사담.

이것이 바로 궁사담의 별호였다.

그의 무공은 고작 이류에 불과했지만, 그의 소매치기 솜씨와 양상군자(梁上君子, 도둑) 솜씨는 대단했다. 천하를 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성 하나를 기준으로 하면 첫 번째로 손꼽힐 자신은 있었다.

오죽 그의 솜씨가 대단하면 손이 세 개처럼 보인다고 삼수라는 말이 별호에 들어가 있겠는가.

궁사담은 그 솜씨를 아끼면서 최대한 기회를 엿봤다.

바로 옆 사람이 화홍을 가져가더라도, 눈앞에서 화홍을 가지고 싸우다가 양패구상(兩敗俱傷)을 당하는 광경을 보더라도 꼼짝하지 않고 기회만 엿봤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마침내 궁사담의 눈앞에 나타나고 말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궁사담은 화홍을 챙긴 후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궁사담이 화홍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불과 반나절도 지나기 전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누구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때부터 궁사담은 모습을 숨겨 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라던 딱 한 번의 기회가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걸 넘겨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기양현에 있는 줄 알 거야.’

아직은 안심할 때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아주 유리한 상황이라 생각했다.

이제 곧 남쪽으로 내려가 광서성으로 도주할 것이다. 광서성으로 도주하는 것에만 성공한다면, 아마도 화홍은 자신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궁사담의 눈에 산 밑에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작은 초가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서…… 물 좀 먹고 갈 수 있겠지?’

어제부터 지금까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있던 궁사담이었다.

궁사담은 서둘러 초가집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초가집에 도착하자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유설화였다.

빗자루질을 하고 있던 유설화는 궁사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누구세요?”

“저기, 물 좀 먹을 수 있겠니?”

유설화는 땀에 절어 있는 궁사담의 모습이 몹시 수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 좀 달라고 하는 말을 거절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잠시만요.”

부엌으로 들어간 유설화가 바가지에 물을 떠서 가져왔다.

궁사담은 환한 얼굴로 유설화가 내민 바가지를 냉큼 받아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하아…….”

해갈(解渴)의 기쁨에 크게 만족하며 궁사담이 유설화를 바라봤다.

“고맙구나. 여기 혼자 사는 건 아니겠고, 다른 가족은 없니?”

유설화는 자신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연신 눈알을 굴리며 초가집과 주위를 살펴보는 궁사담이 점점 더 수상해졌다.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집에 계시고요, 오라버니는 산에 나무하러 가셨어요.”

유설화의 거짓말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연스러웠다. 누구나 그녀의 말을 들으면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궁사담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턱!

“꺼윽…… 끄윽…….”

궁사담의 손이 유설화를 숨통을 쥐었다. 유설화는 궁사담의 손에 목이 잡혀 들어 올려졌다.

“어린 것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어른이 얘기하면 사실대로 말할 것이지, 감히 거짓말을 해?”

궁사담이 이류무인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있는 집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유설화는 마구 발버둥을 치고 궁사담의 손을 손톱으로 긁었다.

하지만 수갑 같은 궁사담의 손아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공을 익힌 궁사담이기에 유설화의 손톱으로는 상처도 나지 않았다.

발버둥 치는 유설화를 보며 궁사담이 살기 어린 미소가 짙어졌다.

유설화를 보는 순간부터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던 궁사담이었다.

단순히 살인에 재미를 붙였기에 죽이려는 것은 아니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네가 살아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나를 봤다고 말하겠지? 영악한 녀석이니 분명히 그럴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헛소리를 하지 않도록 지금 죽여 줄게.”

숨을 쉬지 못한 유설화가 점차 눈알이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삼수투도야.”

“사파 새끼들은 이게 문제야. 뭐만 하면 싹 다 죽여서 해결하려고 한다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저런 사파 새끼들을 보는 족족 죽이는 거잖아.”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궁사담이 황급히 유설화를 방패 삼으며 돌아봤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그를 집요하게 쫓아오던 놈들이 있었다.

군산삼웅(君山三雄)이라는 고수였다.

별호처럼 군산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정파의 무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류무인에 불과한 궁사담이 감히 단 한 명도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고수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가, 가까이 오지 마! 다가오면 이년을 당장 죽여 버리겠다!”

궁사담이 화홍을 뽑아 간신히 숨을 내쉬며 기침을 하는 유설화의 목에 대고 그녀를 앞으로 내밀며 소리 질렀다.

유설화의 목에 닿아 있는 화홍은,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베어 버릴 것 같았다.

이들이 자신처럼 화홍을 손에 넣기 위해 쫓아온 것이지만, 정파의 고수들인 이상 유설화의 목숨을 희생시키며 자신을 노리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군산삼웅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하! 이 새끼 머리 굴리는 것 봐라?”

“하여간 사파 새끼들은 하는 짓이 항상 똑같다니까. 지들이 살려고 다른 사람 목숨을 붙잡고 장난질 치는 걸 너무 좋아해.”

“화홍이 맞는 것 같아. 들었던 것처럼 검배에 붉은 혈조가 있어.”

군산삼웅의 눈이 화홍에 닿자 탐욕으로 벌겋게 물들어 갔다.

그것을 본 궁사담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진짜 죽인다! 가까이 오면 진짜 죽인다고!”

그런 궁사담을 군산삼웅은 품(品)자 형태로 천천히 포위하며 말했다.

“이 미련한 놈아. 네가 죽이지 않으면 어차피 우리가 죽여야 한다고.”

“그러니까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말고 지금 죽여.”

“증인은 남겨 놓지 않는 것이 좋지.”

화홍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욕망에 빠진 군산삼웅이 대놓고 증인을 죽이라 말하는 모습에서는 절대로 정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군산삼웅의 모습에 궁사담이 얼이 빠진 얼굴로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너, 너희들은 정파잖아! 어떻게 인질의 목숨을…….”

“지랄하고 자빠졌네.”

“애초에 이쪽으로 네가 오지 말았어야지. 괜히 상관도 없는 여자애가 어린 나이에 죽게 생겼잖아.”

“쯧쯧…… 나중에 지전(紙錢)이라도 태워 줄 테니, 너무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너도 봤겠지만 네가 죽는 것은 우리 탓이 아니니까 말이야.”

궁사담에 잡혀 있는 유설화는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마치 물건처럼 자신을 두고 죽이네, 살리네 말하는 사람들을 보니 뭔가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좋은 사람들만 만나 왔기에 몰랐을 뿐, 어쩌면 이것이 원래 세상의 모습일지 몰랐다.

‘오라버니가 또…… 혼자가 되시겠네.’

유금성은 고수였다. 유설화도 그걸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을 찾아오면서 일신의 무공을 가감 없이 보여 줬었으니까.

그런 유금성이 왜 옆에 없는지 원망하지 않았다. 그냥 이럴 수도 있는 일일 뿐이다.

군산삼웅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자신의 목에 닿아 있는 화홍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화홍이 그녀의 목을 파고들 것 같았다.

하지만 작은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어깨를 쥐고 있던 궁사담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서걱!

유설화가 고개를 돌리자 목이 잘린 궁사담의 시신이 뒤로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시신의 앞에는 누군가가 도를 쥔 모습으로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유금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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