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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83화 (228/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83화

며칠 후, 주천구는 주약란을 데리고 적가상방을 떠났다.

예상과 달리 적가상방을 떠나는 걸 주약란은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마음에 준비를 해 왔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풍백은 떠나기 전날 찾아온 주약란에게 말했다.

“지금 헤어진다고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건 아니니, 다시 만날 그때를 위해 열심히 살기를 바랍니다.”

그 말에 주약란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빨리 무공을 익혀서 당당하게 적 공자님을 만나러 올 거야.’

그녀가 무공을 익히기로 결정한 이유 중에는 풍백의 곁에 있기 위함도 있었다.

풍백에게 들어오는 온갖 혼약 관련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단순히 가문이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이 좋아서 뛰어난 재능을 뽐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풍백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물론 무공을 익히는 이유가 단지 풍백을 차지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끌려다니기만 했던 주약란이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무공을 익히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목적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백련문으로 가서 벌모세수를 받아야 했다.

주약란은 풍백을 또렷이 바라보며 말했다.

“꼭 다시 돌아올게요.”

그 말에 풍백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손을 내밀어 주약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마도 주천구 문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만…… 돌아올 수 있다면 반겨 줄 수는 있을 거야.’

자신이 주약란의 곁에 있는 것을 주천구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주약란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대신한 것이다.

주약란이 적가상방으로 떠나면서 함께 떠난 사람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주약란의 가장 친한 친구인 수월이었다.

적가상방에서도 주약란이 떠나면 수월이가 함께할 거라고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워낙 붙어 다니는 모습을 봤었으니, 그녀가 주약란을 따라 백련문으로 간다는 말에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의문을 갖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풍백은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도 따라가겠다고?”

왕삼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떠나면 도련님이 슬퍼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도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이니까요.”

이 말을 들으니 대단히 짜증이 났다.

“네가 떠난다고 내가 슬퍼할 이유가 있냐?”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도련님의 마음은 다 알고 있으니까요.”

“염병…… 야, 꺼져.”

“에이, 본심을 숨길 필요 없다니까요. 제가 떠난다니까 슬프죠? 아쉽죠? 막 잡고 싶고 그러죠?”

“지랄한다. 넌 그 주둥이 좀 제발 닥쳐 주면 안 되겠냐? 네 말대로 아쉽다가도, 네가 주둥이를 열면 그런 감정이 싹 사라지게 만들고 있거든.”

“헤헤헤! 그게 바로 제 매력이지요.”

풍백은 실실 웃고 있는 왕삼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전 삶에서 왕삼이 수월이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목숨을 던지며 지키려고 했던 수월이가 백련문으로 떠나니 왕삼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진작 목숨을 잃었을 왕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하게 살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간다고 한다.

뭔가 감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주 소저에게 따라가도 되냐고 물어봤냐?”

“당연하죠. 주 소저는 당연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잘됐네. 내가 다른 건 모르겠고, 내 곁을 떠날 결심까지 했으니 꼭 수월이를 네 사람으로 만들어 봐.”

“헤헤헤! 그럴 생각입니다.”

활짝 웃고 있는 왕삼을 보며 풍백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지만…….’

왕삼이 제법 신뢰할 만한 사람이기는 했다. 그러나 천성이 가볍고 철이 없는 왕삼이 수월이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당장 수월이는 미모가 뛰어나서 이곳 적가상방에서도 그녀를 그리는 사내들이 많았다. 그런 사내들도 모두 밀어낸 수월이가 왕삼에게 마음을 빼앗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풍백은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수월이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졌던 왕삼이었다.

그러니 혹시 아는가?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정말 이뤄질 수 있을지.

* * *

주약란이 떠나고 대략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기다리던 사람들이 상산현에 도착했다.

당가타 직계 혈손, 아니 당가 직계 혈손이 도착한 것이다.

미리 당가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인근에 있는 장원으로 이들을 안내하고, 당가의 적자인 당유진과 총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당한수는 곧장 적호경, 진덕양과 함께 협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풍백이 대부분 얘기를 끝냈었다. 그러나 사실 세세한 항목을 정하는 과정이야말로 시간을 잡아먹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당가와 적가상방의 협의는 거의 사흘을 넘어 나흘까지 이어지고 나서야 끝날 수 있었다.

계약 세부 사항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풍백이 이전에 얘기했던 것과 모두 동일했다.

그렇기에 당가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고, 적호경과 진덕양은 미심쩍어하면서도 풍백이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고 계약을 완료했다.

개망나니라 불리던 풍백이 이 정도로 신뢰를 받는 존재가 된 것이다.

협의가 끝나고 풍백은 새롭게 만들어진 당가로 향했다.

당가가 머물게 되는 장원의 대문에는 용사비등(龍蛇飛騰)한 글자가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었다.

당가(唐家)

재미있는 건, 현판에 새겨진 당가 앞에 적어도 두 글자를 더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앞으로 반드시 사천성으로 돌아가, 비워져 있던 사천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겠다는 의미가 반영되어 있었다.

가만히 현판을 바라보던 풍백이 당가의 대문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바쁘게 당가를 정리하던 당가의 직계들이 풍백을 알아보고 하던 일을 멈췄다.

“어? 적 공자님이다!”

“적 공자님! 소가주님을 뵈려고 오신 겁니까?”

“야! 누가 소가주님에게 연락하러 가 봐!”

당가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는 풍백이었기에 사람들은 호들갑스럽게 소란을 피웠다. 사람들의 환영은 당유진과 당한수를 만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당유진의 거처로 들어온 풍백이 땀을 닦는 척 이마를 훔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너무 환영을 해 주셔서 당혹스럽네요.”

“하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앞으로도 적 공자님은 저희 당가에게는 영원히 환영받는 손님일 겁니다.”

“맞아요. 원래 당가는 은혜는 두 배로 갚는 거라고 들었어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당유진과 당한수의 말에 풍백은 웃어 보이며 물었다.

“상산현은 어떻습니까? 혹시 부족하거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을 해 주세요.”

“아닙니다, 정말 완벽합니다. 장원도 저희 직계가 사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미리 준비해 주신 물품들도 있어서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맞아요. 상산현에 오면 준비할 것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이미 다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서 저희도 놀랐었어요.”

풍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다 정리하신 겁니까?”

“아무래도 가져온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아서 며칠은 더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술과 대장간을 위해 구입할 물품들도 제법 많아서, 안정적인 상황이 되려면 그보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상황이고 말입니다.”

“그러면 당분간은 무공 수련에 집중을 하셔야겠네요.”

“그래야겠지요…….”

대답을 하는 당한수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다.

지금 당가에서 무공에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공이라고 해 봤자 이전 직계가 익히던 무공의 기본공 수준이었으니, 이 정도 무공만 익혀서는 당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독과 암기에 대해 집중을 하고, 무공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무공서를 가지고 오랜 시간 연구를 할 생각이었다.

이건 사실 답이 없는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무공서라고 해 봤자 운이 좋아야 겨우 이류무인 수준이나 익히는 무공일 텐데, 그런 무공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고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미래에 어마어마한 천재가 나타나서 이런 무공을 가지고 무언가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것이 더 현실성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

풍백이 이런 당한수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가의 무공이 어디에 남아 있다는 말은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걸 자기 손으로 우리에게 돌려주겠습니까?”

당가의 무공은 강호에서도 대단한 절기였다. 당가의 무공만 깊이 수련한다고 하더라도 천하제일고수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이런 무공을 돌려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혹여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몰래 그 무공을 익히든지, 아니면 그 무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공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풍백이 물었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에 하나 어떤 사람이 당가의 무공을 손에 넣어서 익히고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 말에 당유진과 당한수가 크게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혹시 당가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다급하게 물어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입술마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당가의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던 일이었으니까.

머리를 긁적인 풍백이 품에서 몇 권의 책자를 꺼내서 탁자에 올려놨다.

탁자에 올려진 책자를 확인한 두 사람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다랗게 변했다.

“이, 이건 비서장?”

“숙부님, 이건 삼양수(三陽手)예요! 금룡편법(金龍鞭法)도 있고요!”

비서장은 방계가 익히고 있는 무공이었다. 당가타의 최고의 무공 중 하나가 바로 이 비서장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삼양수와 금룡편법이 주는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삼양수는 직계 제자들이 익히던 금나수법으로, 기본공을 익힌 직계 제자들이 다음으로 배우는 무공이었다. 금룡편법은 당가의 편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편법이었고 말이다.

비록 삼양수와 금룡편법이 당가의 가장 강력한 절공은 아니지만, 직계가 익히던 모든 무공의 기본 뼈대가 되는 무공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책자를 보는 순간 모두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심지어 두 사람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마, 마…… 마…….”

“만류귀원신공…….”

당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고, 당한수는 탄신을 하는 것처럼 당유진이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을 신음처럼 흘렸다.

직계들이 익히는 내공심법이었다.

비록 도반삼양귀원공에 비하면 부족한 심법이지만, 사실 만류귀원신공 그 자체만으로도 강호에서 손에 꼽히는 내공심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만이 아니라 책자 두 개가 더 있었다.

사천당가에서 만들었던 암기 중 기초적인 암기를 제작하는 도해(圖解)가 담긴 책자와 기초적인 독을 제조하는 방법이 적혀 있는 책자였다.

과거 사천당가에서는 시중에 풀려 있는 독이나 암기와 비슷한 물건들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과 사천당가의 물건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을 만드는 도해와 제조법이 적혀 있는 책자라는 말이었다.

사실 풍백은 만류귀원신공을 넘기면서 조금 고민을 했었다.

다른 것들은 모두 기초에 해당하는 무공과 지식들이었는데, 만류귀원신공은 아예 그 궤를 달리하는 내공심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빠른 성장을 위해선 훌륭한 내공심법이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이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책자를 살펴보던 두 사람이 풍백을 바라봤다.

당유진은 너무 놀라 입만 벙긋거리지 말은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당한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간신히 입을 열어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왜 당가의 비급을 적 공자께서…….”

풍백은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당가의 무공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확실히 맞습니다! 어떻게 적 공자가 당가의 비급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당한수의 질문에 풍백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운이 좋았습니다.”

“네? 그게 무슨…….”

“제가 도지휘사님과 제법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우연히 그분의 소개로 북경에서 오신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풍백의 말에 당유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북경에서 오신 분이 누구신데요?”

“……황궁의 어사님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소가주님.”

“아…….”

강호의 은어를 잘 모르는 당유진이라 당한수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풍백은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런데 제가 당가의 직계분들을 이곳 상산현으로 모셨다는 얘기를 전하니, 어사님이 조금 고민을 하면서 말씀을 해 주시더군요. 사실 당가의 실전되었던 무공들이 황궁무고(皇宮武庫)에 있다고 말입니다.”

두 사람의 입이 쩍 벌어졌다.

황궁무고가 어디인가?

황궁에서도 신뢰를 받고 뛰어난 공을 세운 사람들 중에서도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황궁무고와 황궁보고(皇宮寶庫)였다.

그중에서도 황궁무고는 수십만 권의 무공 비급과 수천 개의 신병이기가 잠자고 있다는 곳이 아니던가.

“황궁무고에 왜 당가의 무공이…….”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쩌면 과거 이백여 년 전에 사천당가에 커다란 분란이 일어나며 무공 비급이 소실된 것이 아니라 황궁으로 굴러 들어갔을지도 모르지요.”

천하에 임자가 없는 귀한 비급을 관부에서 얻으면 반드시 황궁으로 진상을 시키게 된다. 그러면 정밀한 감수에 의해서 황궁무고나 황궁보고로 들어가게 되고 말이다.

그러니 풍백의 말처럼 사천당가가 무너지면서 흘러나온 비급이 황궁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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