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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82화 (226/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82화

적가상방으로 돌아온 풍백은 자신이 없는 동안 상방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알아보느라 며칠을 소모했다.

그리고 겨우 석 달에 불과한 시간 동안 적가상방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알아채고는 꽤나 놀라게 되었다.

풍백이 떠나기 전까지 적가상방은 상산현을 비롯하여 개화, 강산, 구주, 용유현까지 진출을 하거나 진출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네 개의 현을 제외하고도 건덕, 란계(蘭溪), 금화(金華), 영강현(永康縣)까지 진출을 마친 상태였다.

비록 점포를 만들고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절강성 남서부에 있는 가장 큰 현에 모두 진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기존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상방에서는 당연히 적가상방이 자신들의 구역에 점포를 만드는 걸 그리 달갑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절강성에서 적가상방이 가지는 위치는 단순히 중견 상방이라 말할 수 없었다.

일단 적가상방이 취급하는 소금과 호초는 그 어떤 곳에서도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기였다.

또한 적가상방이 도지휘사사를 비롯하여 위지휘사사, 천호소 등에 들어가는 물품을 장악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적가상방이 도지휘사의 적극적인 비호를 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기존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상방이 관부의 힘을 빌어 적가상방을 압박할 수도 없었다.

상방에서는 이제 남은 방법은 무력뿐이라며 강호 문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파에서는 이들의 도움 요청을 애써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적가상방의 물품에 대한 표행과 대외 안전을 책임져 주는 청송표국은 이제 군소 문파에서는 감히 비벼 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성장해 있었다.

여기에다가 적가상방이 서문세가에 호초를 납품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그 어떤 문파도 적가상방을 적대시하려는 상방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강호는 원래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곳이니까.

결국 적가상방이 각각의 현에 진출하는 것은 거의 무혈입성(無血入城)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겨우 각 지역마다 점포 하나에서 두 개 정도 만든 것에 불과하지만, 발을 내딛는 것에 성공했으니 이제는 성장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강서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련문의 도움을 받아 옥산현에 진출했던 적가상방이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지금은 상요(上饒), 횡봉현(橫峰縣)에 빠르게 점포를 세웠고, 목표였던 응담현까지 진출해 있었다.

이곳 응담현에는 백련문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백련문은 적가상방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고, 적가상방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강서성에서 나오는 순이익 일부를 받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딱히 장사를 하거나 상행을 하지 않아 안정적인 수입원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던 백련문이었다.

백련문주 주천구는 어차피 잘 알지도 못하는 장사를 시작하고 골머리를 싸매느니, 차라리 자신들의 강점인 무력으로 적가상방을 지원하며 수익을 실현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이건 풍백이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각자 자신 있는 부분을 맡고, 부족한 부분을 상대에게 의지하는 방법은 서로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주천구는 적가상방에 머물면서 적호경과 진덕양이 흔히 볼 수 없는 상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반대로 적호경과 진덕양은 강서성에서 백련문이 얼마나 든든한 존재인지 직접 진출을 하면서 알 수 있었고 말이다.

덕분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며 이런 형식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먼저 손을 놓는 일은 없겠지.’

초절정고수가 문주로 있고, 수많은 고수도 거느리고 있는 백련문의 손을 함부로 놓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제법 많은 일을 벌인 적가상방이지만 여전히 앞날은 밝기만 했다.

소금과 호초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이 있기에 전혀 부담되지 않고 있었고, 적가상방이 다른 세력이나 상방에게 위협을 당하지 않도록 뒤를 봐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하나 호재를 말하자면, 천축에서 호초를 제외하고도 새로운 향신료를 구입하는 통로를 마련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호초 상인 심오경과 함께 천축을 오가며 고생을 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직은 달려갈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이 정도만 하더라도 이제는 충분히 중견 상방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 * *

아침에 일어나 수련을 마친 풍백에게 주약란이 차를 가지고 왔다.

석 달 전 무한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딱 정해진 시간에 주약란이 차를 가지고 온 것이다.

이제는 이전과 같이 시비가 아니었음에도 마치 풍백이 마시는 차를 준비하는 건 자기 일이라는 것처럼 차를 준비하는 주약란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확실히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이전에는 풍백에게 차를 준비하고 나가거나, 그의 뒤에 서서 차를 마시는 걸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었다. 주약란이 시비였으니까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는 풍백에게 차를 준비해 주고 그녀도 같이 앉아서 차를 마셨다.

그렇기에 이 시간은 주약란에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주약란은 차를 마시며 종달새처럼 재잘거렸다.

“그래서 반점에 사람들이 엄청 몰리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맛있기에 이렇게 사람이 몰리나 싶어서 수월이랑 같이 가 봤는데, 확실히 음식이 맛있기는 했어요.”

“음식이 맛있었구나.”

“네!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는 건 아닌데, 가격이 저렴해서 이 정도 가격과 맛이면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렇지. 음식은 가격이 싸고, 일정 수준 이상 맛있으면 사람이 몰리게 되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수월이는 음식을 먹고 나서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곳에서 만든 음식보다 조금 더 맛있는 것 같기는 한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줄을 서면서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어요.”

“수월이는 기다리를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군.”

“맞아요. 이전에도 새로 생겼다는 당과 가게에 갔었는데, 사람이 길게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었어요. 원래 이런 건 기다려서 먹는 재미도 있는 건데요.”

쉬지도 않고 재잘거리며 말하는 주약란의 모습은 그 나이대의 여자들이 보이는 모습과 같았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청해상방에서 오랜 시간 구박을 받아 왔던 일과 청해상방을 탈출한 이후에 납치된 일 등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치며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그 탓에 주약란은 말도 많이 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보였었고 말이다.

그러나 풍백에게 구해지면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기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아버지가 생겼고 말이다.

주약란의 성격은 보다시피 매우 밝았다. 아마도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청해상방에서 살아오면서 버티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주변이 안정되어 가니 주약란은 원래 그녀의 성격을 점점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풍백은 계속해서 재잘거리는 주약란의 얘기를 모두 들어 줘야 했고.

사실 풍백은 주약란이 하는 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풍백이 어떤 반점이 맛있고, 사람이 몰리는 중이라는 걸 알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개망나니였던 이전과 달리 적가상방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는 풍백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풍백은 새외에서의 다양한 경험으로 인하여 여자의 말에 맞장구쳐 주는 일에 대해 제법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다.

대단한 말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야기를 이끌어 갈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여자가 하는 말에 호응을 잘해 주고, 그녀가 했던 말에 핵심을 파악해 되물어 주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

그렇다고 마냥 지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풍백은 비록 주약란이 하는 이야기 소재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렇게 밝은 모습으로 재잘거리는 주약란의 모습을 제법 보기 좋았다.

‘원래 이렇게 밝은 사람이었구나. 평소에 별로 말이 없어서 과묵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주약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풍백은 작게 미소를 짓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를 마셨다.

주약란은 풍백이 돌아온 이후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차를 마시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풍백이 차를 모두 마시자 다구(茶具)를 정리해서 자리를 비켜 줬다.

아쉬운 표정으로 주약란이 나가고 난 이후, 다시 무공 수련을 준비하던 풍백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주약란의 아버지이자, 백련문의 문주인 주천구였다.

“잠시 얘기 좀 하지.”

따로 약속을 하고 찾아온 것도 아니지만, 주천구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적가상방을 지켜 오고 있던 주천구였다. 그가 은연중에 해 준 것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무례한 것도 아니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풍백의 거처로 들어온 두 사람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주천구는 의자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며칠 후에 딸아이와 함께 백련문으로 떠날 생각이네.”

딱히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어차피 주천구는 적가상방 사람이 아니었다. 일문의 문주가 다른 성의 상방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도 문주의 위치가 애매한 문파였다면 주천구가 몇 달이나 적가상방에 머물고 있다는 것 때문에 문주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다른 사람이 나왔을 것이다.

물론 백련문을 그럴 수 없었다.

백련문을 개파(開派)한 장본인이 주천구이기도 했고, 문파에서 유일무이한 초절정고수였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 있다면 문파 내부에서 알아서 정리를 당했을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겠군요.”

풍백의 말에 주천구는 그를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자신이 떠난다고 하면 풍백이 놀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풍백은 담담하게 말하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의외군. 놀랄 줄 알았는데.”

“당연히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서성에 백련문을 놔두고 저희 적가상방에 계속 머물 이유가 없지요.”

“그런가? 나는 자네가 나를 적가상방의 안위를 위해 이용하기에 놀랄 줄 알았지.”

풍백이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모르기를 바랐던 건가?”

딱히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하긴, 단순히 무공이 뛰어난 것만으로 백련문이라는 거대한 문파를 만들고 이끌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실제로 강호에서 무공만 뛰어났던 사람이 문파를 만들었다가 빠르게 현판을 내리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사파에서는 심지어 고수를 보고 사람이 모이면 부문주나 수하가 문주를 죽이고 자신이 문주가 되는 경우까지 있으니까 말이다.

“이용당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가만히 있으셨던 겁니까?”

“그래도 자네 덕분에 딸아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미 풍백이 어떻게 주약란을 구해 냈는지, 구하지 않았다면 주약란이 어떻게 됐을지 모두 알고 있는 주천구였다.

실제로 과거에는 풍백에게 구함을 받지 못한 주약란이 어떻게 됐는지 행방이 묘연해졌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주약란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천구는 풍백이 자신을 이용하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해도 했다.

불과 얼마 전에 적가상방만큼 규모가 큰 백건상방이 멸문을 당했다. 그러니 적가상방도 어떤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지 걱정하는 마음에 자신을 이용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용을 당하고 있을 수 없었다.

“딱히 이런 보상을 바라고 주 소저를 도와줬던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네. 나도 당시에는 내게 딸이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까. 어쨌건 이제는 나도 딸아이를 데리고 백련문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네. 그러니 자네도 딸아이가 백련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게.”

“제가…… 요?”

“딸아이는 아마도 이곳을 떠나기 싫어할 거야. 그러니 딸아이가 백련문으로 함께 떠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말이네.”

그 정도는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다.

물론 주천구가 적가상방에 오래 머물고 있으면 좋겠지만, 이건 불가능한 얘기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주 소저에게 잘 얘기를 하도록 하지요.”

“믿고 있겠네.”

말을 마친 주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갔다.

풍백은 잠시 거처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다.

‘소란이가 떠나면 조금 쓸쓸해지려나?’

주약란은 풍백이 과거로 돌아와서 처음 자기 손으로 구해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꾸준히 그의 옆에서 시중을 들어 왔었고 말이다.

그렇게 거의 일 년이 넘는 동안 함께했었는데, 이제 그녀가 떠나게 된다니 묘한 감상에 젖게 만들었다.

하지만 풍백은 이런 생각을 털어 버리고 거처를 나섰다.

지금은 이런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이제 적가상방을 보호해 주던 초절정고수가 떠나게 되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무공을 끌어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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