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75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금벽궁주 고경천의 분노에 찬 일갈이 대전을 가득 메웠다.
“다시 말해 봐라! 뭐가 어떻게 됐다고?”
고경천의 고함에 수하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남충현 인근에서 단벽당주의 시신과 좌우 부당주, 단벽당원의 시신이 발견되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무려 세 명이야! 절정고수 세 명! 절정고수 세 명이 모두 죽었다고?”
“예, 옙! 확실하게 신원을 확인했다고 전갈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믿지 못하겠다! 그들의 시신은 어떻게 됐지?”
“이미 금벽궁으로 옮겨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오후에는 도착할 것 같습니다.”
“시신이 들어오면 부검하는 자리에 내가 직접 참석하겠다!”
“알겠습니다! 바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수하가 서둘러 대전을 나섰다.
혼자 남은 고경천은 분을 참지 못하고 팔걸이를 내리쳤다.
콰직!
그의 손길에는 내공이 담겨 있었던 것인지, 튼튼해 보이는 팔걸이가 산산이 조각나서 바닥에 흩뿌려졌다.
으드득!
맹렬하게 이를 갈며 고경천이 생각했다.
‘절정고수 세 명이 감당할 수 없었다고?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절정고수 세 명이나 감당할 수 있다는 건가!’
분명히 상대는 절강성에 있다는 듣도 보도 못했던 상방이었다.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받았으니, 진위 여부는 너무나 확실했다. 심지어 이제 막 중견 상방으로 성장 중이라는 말이 적혀 있기도 했었다.
그런데 겨우 중견 상방에 불과한 적가상방에 절정고수 세 명이나 감당할 수 있는 호위무사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혹시…… 누가 그들을 도와준 건가?’
하지만 이런 생각을 떠올렸던 고경천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풍백 일행이 탄 마차는 남충현에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계속 네 명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니 누군가 도와줬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다.
‘누가 도와줬든지 어쨌든지, 적가상방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적가상방이 양진을 비롯한 단벽당을 모두 처리한 것이라면, 아마도 그들이 절강성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고 벌인 일일 것이다. 설마 사천에서 절강까지 복수를 하려고 달려들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적당한 피해라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양진을 포함해서 절정고수 세 명, 아니 전일비까지 포함해서 네 명의 절정고수를 잃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전까지는 전일비가 죽었다는 가정까지는 안 했지만, 이미 양진을 비롯한 단벽당 무사들을 모두 쓸어버리며 자신들의 힘을 보여 줬다. 그러니 아마도 전일비는 이미 죽었다고 판단하는 게 맞을 것이다.
‘흥! 어디 금벽궁을 우습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러 보라지.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주마!’
고경천은 적가상방으로 금벽궁이 보유하고 있는 절정고수 열 명 이상을 보낼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함께 달려갈 것도 염두에 두었다.
이 기회에 전 강호에 금벽궁이 절대 우습게 볼 만한 그런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표할 생각이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적가상방을 어떻게 밟아 줘야 잘 밟아 줬다고 중원 방방곡곡에 소문이 날까 고민하던 고경천은 마침내 양진과 단벽당의 무사들 시신이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고경천은 한 걸음에 시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넓은 연무장에는 양진과 좌우 부당주, 단벽당원의 시신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눕혀져 있었다.
단벽당원의 시신을 살펴보는 고경천은 눈을 찌푸렸다.
‘절정고수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 있겠군.’
단벽당원의 시신은 잔상처가 거의 없었다. 거의 대부분은 일격필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급소를 정확히 맞고 절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류고수도 포함된 단벽당원이 이렇게 저항도 못하고 죽었다면, 상대는 절정고수라고 판단해야 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시신에 남은 상처를 봐서는 특정한 무공을 유추하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특징이 분명한 무공을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고경천의 시선이 좌우 부당주를 살피면서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처음에는 이들이 병장기로 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건 병장기로 만들어진 상처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양진에게 닿았을 때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찢어질 것처럼 커다랗게 변했다.
얼른 놀란 신색을 감춘 고경천이 물었다.
“시신을 본 사람들이 있나?”
“시신을 운반해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습니다.”
현재 연무장에는 시신을 운반해온 다섯 명의 무사들이 있을 뿐이었다.
단벽당이 거의 통째로 사라진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사기가 떨어질 것을 생각해서 아직까지는 단벽당의 사건을 알리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고경천이 나지막이 명령을 내렸다.
“시신들을 가지고 가서 처리해라.”
“은밀…… 하게 말씀입니까?”
“아무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처리하라고.”
왜 이런 명령을 내리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궁주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의문을 갖기 보다는 명령을 제대로 수행할 생각을 먼저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수하들이 시신들을 가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고경천이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거처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단천혈옥수다! 혈수마괴의 단천혈옥수라고!’
이건 의심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과거에 혈수마괴가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을 직접 봤었던 고경천이다. 그 시신의 모습이 지금 양진의 시신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왜 전일비가 암벽대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어떻게 세 명이나 되는 절정고수가 모두 죽임을 당했는지 말이다.
유명암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이해가 될 판국이다. 그런데 상대는 단순한 유명암의 고수도 아니었다. 무려 사파십대고수 중 하나인 혈수마괴와 연관된 고수였다.
‘혀, 혈수마괴의 제자일까? 아니면 혈육?’
고경천이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솔직히 혈수마괴의 제자인지 혈육인지 알 것 없었다. 신분을 숨기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유명암을 건드렸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금벽궁과 유명암은 비교의 대상도 아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과장 조금 보태서 대상방과 점포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금벽궁이 사천에서 유명한 문파라고 하지만, 그들의 규모만 클 뿐이지 초절정의 고수도 없었다. 그에 비하여 유명암에는 초절정고수는 물론이고, 수장인 혈수마괴는 사파십대고수에 들어가는 절대고수였다.
유명암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전에도 상대가 유명암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손을 썼다가 하룻밤 만에 멸문을 당한 문파가 있었다.
이번에는 금벽궁이 그런 꼴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의심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이전에는 암벽대를 해치우고 그 흔적을 없애 놨었는데, 이번에는 양진의 시신을 그대로 놔두고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경고일 거야!’
고경천은 부디 이것이 경고이기를 바랐다. 그의 생각대로 이것이 경고가 맞다면, 적어도 금벽궁을 쓸어버리겠다는 말은 아닐 테니까.
초조하게 집무실을 서성이던 고경천은 결단을 내렸다.
‘일단 당가타를 흡수하겠다는 협의는 모두 집어치워야겠다.’
적가상방은 당가타를 지원하려고 찾아왔다고 했었다. 그 말은 아마도 적가상방을 전면에 내세운 유명암이 당가타를 이용하여 무언가를 꾸미려고 했던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니 일단 당가타를 버리는 것으로 유명암에 행사를 방해할 생각이 없다는 걸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고경천의 집무실로 총관이 달려왔다.
“궁주님, 급보가 있습니다!”
“무슨 급보?”
“지금 당가의 직계가 세간살이를 정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떠나려는 것 같다는 당가타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고경천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유명암은 당가를 노리고 있었던 거구나!’
총관이 그런 고경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이번이 눈엣가시 같았던 당가 직계를 처리할 기회인 것 같은데, 저들이 진짜 마을을 떠나면 산적들의 짓으로 위장하고 모두 쓱싹 하는 것이…….”
“놔둬.”
“……네? 놔두라고요?”
당가타를 이용해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는 총관이었기에 고경천의 명령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총관에게 고경천이 말했다.
“지금부터 당가타와 합병하기로 했던 협의는 모두 취소한다.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갈 거야.”
“네?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면 당가타의 위덕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제 까짓 게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고경천이 유명암 때문에 불안해진 마음을 잔뜩 담아 버럭 소리쳤다. 그 모습에 총관은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당가타로 가서 위덕천의 면상에 협정서를 집어 던지고 와!”
“아, 알겠습니다!”
총관이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갔다.
고경천은 초조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제발 이 정도로 그냥 넘어가 주기를…….’
* * *
중경을 지나 호남성 서쪽을 지나고 있던 풍백의 마차는 원릉현(沅陵縣)으로 향하고 있었다.
“조금만 가만 이수촌이라고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는 것이 어떨까요?”
마부가 호남성은 제법 알고 있는지, 미리 마을이 나오는 것을 알려 왔다.
“그러도록 합시다.”
어차피 점심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굳이 마을을 지나쳐서 건량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채설지가 식도락을 좋아하기도 하고.
주천금단을 복용하고 내상을 치료한 채설지는 다음 날부터 바로 마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일어난 채설지가 호법을 서고 있던 풍백에게 보였던 표정이 떠올랐다.
내상을 치료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내공이 늘어난 걸 알아챈 채설지는 풍백에게 요상한 표정을 보여 줬었다.
이런 표정은 풍백도 처음 봐서 아직까지 그녀의 표정이 어떤 의미였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대충 고맙다는 의미로 알아들었을 뿐이다.
그날 이후로 호남으로 향하는 마차는 별다른 분란이 일어나는 일이 없었다.
관도를 달리다가 때맞춰 숙소가 나타나면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마땅한 곳이 나타나지 않으면 적당한 곳에서 노숙을 하는 일상이었다.
이렇게 마차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 날이 늘어나니, 풍백은 채설지에 대해서 이전보다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딱히 얘기를 나누는 일은 없었지만, 그녀의 무표정해 보이는 표정만 보고도 대충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마을에 들러서 식사를 하고 간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채설지는 눈부터 반짝이고 있었지 않은가.
이전이었다면 아마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변화였다.
마부의 제안을 승낙하고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미리 말했었던 이수촌이 나타났다.
이수촌은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관도가 관통하는 마을이었기에 객잔이나 주점과 같은 부대시설들이 제법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다. 아마도 대관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풍백이 타고 있는 마차는 이수촌으로 들어가, 이곳을 기준으로 가장 큰 반점의 앞에 멈춰 섰다.
마부가 마차를 정리하는 사이, 풍백과 채설지는 먼저 반점으로 들어갔다. 고우길은 아마도 마부와 같이 들어올 모양인 것 같았다.
반점 내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제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 상황이라서 슬슬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두 분이신가요?”
점소이가 다가와서 친절하게 웃으며 물었다.
“두 사람 더 들어올 거다.”
“네 분이시군요. 그러면 네 분 자리를…….”
“그냥 두 명씩 앉도록 해 줘.”
마부와 고우길은 아직까지도 채설지와 함께 앉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마부는 금벽궁의 습격이 있던 날, 마차에서 내려 양진의 시체를 보고서는 속에 있는 걸 모조리 게워 냈었다.
무혈채가 습격했을 때의 기억이 흐릿해져 가는 시점에서 양진의 끔찍한 시체를 목격한 이후에는 최대한 채설지를 피하고 있는 마부였다.
마차를 타고 가면서 가장 피곤할 사람이 마부였으니, 식사라도 편하게 하라는 의미에서 이런 경우에는 따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리가 떨어져 있는데 괜찮으신지…….”
“상관없다.”
“그러면 이쪽으로 오시지요.”
점소이는 풍백과 채설지를 이 층에 있는 자리로 안내를 했다. 바로 옆에 창문이 달려 있어서 제법 좋은 자리였다.
“어떤 걸로 드시겠습니까?”
풍백은 굳이 채설지에게 묻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테니까.
“량련심(粮蓮心)하고 동안자계(東安子鷄), 자룡탈포(子龍脫袍) 중에서 어떤 것이 되나?”
“세 가지 모두 됩니다.”
“그래? 그러면 세 가지 모두 가져다줘.”
풍백이 의외라는 얼굴을 하며 얘기했다.
량련심이나 동안자계, 자룡탈포는 모두 호남성에서 유명하고 역사가 유구한 음식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그 정도 요리를 만들 수 있다니, 이건 꽤 의외였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두 사람은 딱히 어떤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한 사람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니, 대화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고우길이 마부와 함께 들어와 따로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곧 점소이가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동안자계는 영계를 사용하여 만든 닭요리였고, 자룡탈포는 드렁허리의 껍질을 벗겨서 만든 음식이었다.
풍백은 채설지에게 말했다.
“동안자계와 자룡탈포는 조금 매울 겁니다. 두 가지 요리를 먹다가 매운 것 같으면, 량련심을 먹으면 됩니다. 량련심은 달콤한 맛이 나거든요.”
채설지는 달콤하다는 말에 량련심으로 먼저 숟가락을 가져갔다.
량련심은 맑은 국물에 연밥과 구기자를 띄운 음식인데, 원래는 식후에 먹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풍백은 굳이 량연심을 먼저 먹으려는 채설지를 향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부터 먹는 게 제일 좋지 않겠는가.
량련심을 맛본 채설지가 달콤한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풍백은 그런 채설지를 보며 저도 모르게 잠시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혀를 찬 풍백이 젓가락으로 동안자계를 집어먹었다.
풍백이 동안자계를 먹는 것을 본 채설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동안자계를 집었다. 그리곤 동안자계를 입에 넣고 몇 번 씹다가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악!”
채설지가 허겁지겁 량련심을 입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아예 그릇째로 들어 량련심을 마시듯이 먹는 것 아니겠는가.
풍백은 그걸 보며 실실 웃었다.
‘동안자계의 별칭이 최고로 매운 닭요리였지?’
이곳에서 만든 동안자계가 다른 곳보다 특히 맵기는 했지만, 사천음식도 잘 먹던 채설지였기에 이렇게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간신히 매운 입맛을 진정시킨 채설지가 풍백이 웃고 있는 걸 알아채고 곱게 눈을 흘겼다. 그 모습에 풍백이 더욱 진하게 웃음을 지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겁니까? 그러게 나는 미리 매울 거라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 채설지는 자룡탈포를 집어 갔다. 방금 전 매운맛에 호되게 당한 탓인지 아주 조심스럽게 맛을 보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맵긴 하더라도 견딜 만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젓가락을 놀렸다.
풍백은 음식을 먹는 채설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때 반점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풍백은 반점 입구를 등지고 있어서 굳이 돌아보지 않았지만, 채설지는 정면에서 보이기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사람을 슬쩍 바라봤다.
그 순간, 채설지의 젓가락에서 음식이 툭 떨어졌다.
풍백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크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채설지를 볼 수 있었다.
‘대체 뭔데?’
풍백은 채설지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