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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70화 (211/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70화

풍백 일행은 당가 직계가 사는 마을에서 단 이틀만 머물렀다.

만약 투자 관련 협의를 완전히 끝마치고 떠날 생각이었다면 더 오랜 시간 머물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당가가 절강성으로 오게 되면 자세한 협의를 하기로 정했기에 굳이 이곳에서 오래 머물 이유는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일찍 절강성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풍백 일행에게 당유민과 당한수, 당세기가 다가왔다. 그들을 제외하고도 주변에는 온통 당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세 사람을 비롯한 당가 사람들의 얼굴은 아주 밝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가타가 금벽궁과 잠정적으로 합병을 기준으로 한 협의를 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암담하기만 했었다. 이제 당가타는 물론이고, 당가도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풍백이 의외의 제안을 하면서 이제는 오히려 밝은 앞날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풍백과 적가상방은 당가의 은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에 당가 사람들의 얼굴에는 아쉬움마저 보이고 있었다.

풍백은 마부와 고우길이 떠날 준비를 하는 걸 지켜보고 있다가 세 사람이 다가오는 걸 보고 환히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반겼다.

“준비가 끝나면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굳이 나오셨군요.”

당한수 역시 웃는 얼굴로 풍백의 말에 대답했다.

“당연히 미리 나와야지요. 당가의 은공이 되실 적 공자님이 떠나는 길인데요.”

“하하하! 은공이라고까지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말했듯이 이건 모두 투자일 뿐인데요.”

그렇다.

만약 계획대로 된다면, 당가는 아주 강력한 무력을 빠른 시일 안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적가상방이 아주 강력한 우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언젠가 정말 과거 사천당가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수준일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 달에 단지 금자 백 냥을 지원하는 것으로 오대세가 중 하나의 전폭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니까.

풍백의 이런 생각을 이곳에 있는 당가 사람이 듣는다면 모두 실소를 짓거나, 오히려 풍백이 어디 아픈 것은 아닌가 의심할 것이다.

아직까지 앞으로 당가가 얼마나 거대하게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오직 풍백만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당유민이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가서 기다려 주세요. 저희도 곧 따라갈 테니까요.”

풍백은 그런 당유민을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틀 전만 하더라도 당유민은 그들이 다시 설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지 되물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각오가 보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면서 당가가 머물 곳을 미리 선별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시자마자 바로 열심히 달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지요.”

곧 마부와 고우길이 떠날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 왔다.

풍백은 당가 사라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마차 문을 열었다. 마차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채설지가 당연하다는 듯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먼저 올라타고 있었다.

풍백이 마차를 올라타자 곧 마차가 마을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당가 사람들을 바라보며 풍백은 생각했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사천당가의 유산은 모두 챙긴 풍백이었다.

강호의 대협이라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챙긴 사천당가의 유산을 원래 가져야 할 당가에 돌려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풍백은 자신이 대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풍백이 사천당가의 유산을 모두 집어삼키고 입을 닦겠다는 생각도 아니었다.

단지 아직 풍백은 당가를 믿을 수 없었다.

풍백은 과거에 많은 경험을 하며 사람이라는 건 아주 간사한 유혹에 현혹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온몸으로 겪어 왔었다.

만약 사천당가의 유산을 모두 돌려준다면, 과연 당가는 앞으로도 계속 변하지 않고 적가상방과 손을 잡고 함께할까?

그건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풍백은 사천당가의 유산은 그대로 당가에게 넘겨줄 수 없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적당히 자신이 조절해 가며 조금씩 건네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런 풍백을 보며 자신의 것도 아니면서 주인 행세를 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풍백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내 것이지.’

피식 웃은 풍백이 생각을 정리하고 점차 멀어지는 당가의 마을에서 시선을 돌렸다.

* * *

풍백이 탄 마차는 남충현(南充縣)을 향하고 있었다.

남충현을 지나면 그다음이 바로 사천성 끝에 위치하고 있는 대죽현이었다. 그리고 대죽현을 조금 더 지나면 전일비와 암벽대원들을 처리했던 곳이 나오고 말이다.

당가 직계 마을을 떠나고 벌써 닷새가 지났다.

며칠 전 성도에 있는 당가타로 향하면서는 매우 바쁘게 달렸었기에 닷새 만에 당가타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절강성으로 돌아가는 일정은 조금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 중이었다.

사천성 성도에서 절강성 상산현까지 가는 길은 대단히 멀었다. 사천성으로 올 때처럼 달리게 된다면 마부가 먼저 쓰러질 것이다.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쉴 때는 되도록 노숙이 아니라 확실히 객잔을 이용하며 쉬어 갈 생각이었다.

남충현으로 향하며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던 풍백이 문득 시선을 채설지에게 던졌다. 채설지는 마치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중이었다.

풍백은 채설지의 그녀가 잠을 자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슬슬 물어봐야 할 시간인 것 같았다.

“채 소저.”

풍백의 부름에 채설지가 조용히 눈을 뜨고 아름다운 봉목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지간한 사내라면 아름다운 그녀의 눈을 보고 숨을 급하게 들이켰겠지만, 풍백은 그녀의 시선을 담담히 마주하고 물었다.

“이제 이틀 정도 후면 사천성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채 소저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중경은 사천만이 아니라 섬서성(陝西省), 호북성, 호남성, 귀주성까지 마주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호남성으로 간다면 같이 동행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호북성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돌아가는 수준이니 가능했다. 지금까지 채설지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조금 돌아가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섬서성이나 귀주성으로 간다고 한다면 중경에서 서로 작별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채설지는 잠시 풍백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그걸 본 풍백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이 여자는 왜 대답을 안 해? 말도 할 줄 알면서.’

딱 한 번이었지만, 사천성으로 오면서 관제묘에서 노숙을 하던 날 채설지가 한 마디 했었다.

그리고 풍백이 기억하기에도 과거에 그녀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대답도 안 하고 있는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풍백은 다시 한번 물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중경에서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길이 많이 달라집니다. 혹시 무한으로 가시려는 거라면 호북으로 향하셔야 합니다. 저희는 호남이 좋지만, 혹시 호북으로 가신다면 그쪽으로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

혹시나 채설지가 기분 나빠할까 싶어서 자세히 풀어서 설명을 해 줬다. 굳이 동행하고 있는 미래의 은발마녀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나 채설지는 듣는 채도 하지 않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풍백이 입을 열었다.

“이대로 있으면 호남으로 갈 겁니다. 저희는 절강성으로 가는 길이라 그쪽이 편하니까요. 어떻게, 절강성까지 함께 가실 생각이십니까?”

풍백은 당연히 채설지가 고개를 저을 것이라 생각하며 물었다.

그런데 채설지가 풍백의 말에 다시 시선을 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설마…… 절강성까지 같이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끄덕끄덕!

“아니, 왜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풍백이 물었다.

사천성까지 따라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던 풍백이었다. 하다못해 관광을 가는 것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오히려 강행군을 펼치며 사천까지 향했던 풍백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채설지가 절강성까지 따라올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서둘러 그녀가 왔었던 유명암으로 돌아가야 정상이었다.

분명 풍백이 알기로 은발마녀 채설지는 원래 적어도 이삼 년 정도는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과거와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지금은 강호를 활보하다가 심지어 은하협녀라는 정파스러운 별호까지 얻은 상태였다.

이것만으로 부족한 것인지 무려 절강성까지 따라오겠단다.

채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풍백을 바라보며 뭐라 말할 것처럼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다시 입술을 앙다물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아니, 뭔데? 그냥 얘기를 해 달라고!’

허탈한 마음에 풍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쯤 되니까 이제 그 역시 이제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대로 끝까지 쫓아와서 적가상방에 머물러 준다면 우리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지. 그러면 월봉은 얼마로 책정해야 하나…….’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해 보는 풍백이었다.

푸드득!

하늘에서 내려온 전서구가 양진의 팔뚝에 내려앉아 날갯짓을 했다.

양진은 전서구 다리에 매달린 전통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고 전서구는 단벽당 소속 무사에게 건네줬다.

쪽지에 적힌 글자는 그리 길지 않았다.

- 갑종 목표 길목 통과. 한 식경 후 도착 예정.

“드디어 오고 있군.”

차갑게 미소를 보인 양진이 옆에 있는 무사에게 물었다.

“아직 암벽대주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말은 없는가?”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싸움의 흔적이라든지, 다른 의심한 것들도 없고?”

“네, 아무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

양진은 풍백이 싸움 흔적을 모두 치워 버렸다는 걸 몰랐다. 특히 부대 특성상 은밀함이 중요했기에 풍백의 흔적 지우는 솜씨는 일반적인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고 말이다.

‘어차피 곧 대답해 줄 사람들이 오고 있으니, 그놈을 붙잡고 물어보면 되겠지.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준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양진은 이미 그들이 자신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겁먹은 상인 정도는 적당히 만져 주기만 하더라도 술술 불어 댈 거라 생각하면서.

양진이 단벽당 무사들에게 물었다.

“준비는 다 끝났겠지?”

“네, 관도를 통째로 다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굳이 신호를 기다릴 필요는 없고, 마차가 적당히 다가오면 길부터 막아. 그리고 후방을 막기로 한 대원들에게도 준비하라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슬슬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풍백의 마차가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 정도 속도로 계속 이동하면 적어도 해가 지기 전에 남충현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충현은 대죽현과 더불어 교통의 요지 중 하나였다. 그러니 현의 크기도 거대했고, 무엇보다 객잔이나 주점과 같은 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었다. 아마 객실이 부족한 경우나 식사를 할 곳이 없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돌아가는 길이 힘드니까 식사와 잠자리를 충분히 보장해 줘야지.’

무엇보다 제대로 된 사천 음식을 먹을 기회가 흔치 않았다. 이 기회에 많이 먹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여자가 맛있는 음식을 꽤 좋아하기도 하고…….’

채설지를 제법 신경 써 주는 풍백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가는데, 작은 산을 지나는 와중에 갑자기 산에서 성인 장정 두 명 굵기의 나무들 대여섯 개가 굴러떨어졌다.

쿠당탕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관도는 완전히 나무들로 막히고 말았다.

와아아아!

그리고 이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대여섯 명 정도 되는 무인들이 튀어나와 마차 뒤를 막아섰다.

풍백은 그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산적인가?’

통나무를 이용해서 길을 막아서는 것은 오래전부터 녹림의 산적들이 애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보통 이렇게 통나무로 길을 막아선다는 건 반드시 상대의 모든 걸 털어먹겠다는 의사 표시 중 하나였고 말이다.

‘귀찮게 됐네.’

풍백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무가 굴러떨어진 곳에서 다시 십여 명 정도 되는 무인들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무인들 중 하나가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서더니 외쳤다.

“거기 적가 놈이 있으면 마차에서 좀 내려 보시지?”

단벽당주 양진의 외침에 풍백의 미간이 더욱 깊게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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