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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68화 (20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68화

쏴아아아아!

동굴 속으로 물길이 빨려 들어가는 힘은 어마어마했다. 절정고수이자 수공에 능숙한 풍백마저도 제대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끌려가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린 풍백이 어떻게든 신형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고 노력했다.

워낙 압도적인 물살이 휘말린 상태라서 몸을 가누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게 거친 물살 속에서 몸을 가누기 위해 노력하던 풍백의 귀에 섬뜩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철컹!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봤을 때는 이미 지나쳐 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소리는 이번 한 번만 나는 것이 아니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철컹!

그제야 풍백은 알아챌 수 있었다.

불규칙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히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원래라면 침입자를 조준하고 있다가 무언가를 발사하여 목숨을 빼앗는 기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풍백이 사천당가의 후예가 가지고 있어야 할 반지를 이용해서 들어왔기에 기관이 발동하지 않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풍백은 과거 새외에서 기관진을 상당히 많이 겪어 봤었다. 누군가를 암살하기 위해 기관진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만들어진 기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들려오는 기관 소리는 풍백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물살에 휩쓸려 끌려 들어가는 와중에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기관이 발동한다?

아무리 풍백이 절정고수라고 하더라도 피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어떤 기관인지에 따라 피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겠지만, 절대로 아무런 부상도 없이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이러니 작정하고 들어온 오독문도 막대한 인명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겠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던 풍백의 눈에 멀리서 수면(水面)처럼 생긴 것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럴 리가…….’

어떤 수면이 수직으로 서 있겠는가?

그런데…… 수면이 맞았다.

푸학!

튕겨지듯 물 밖으로 나온 풍백은 지면에 내려서며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너비가 대략 일 장이 넘을 것 같은 동굴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주변에 횃불 하나 없는데도 어둡지가 않다는 사실이었다.

동굴을 둘러보던 풍백의 시선이 벽면에 규칙적으로 붙어 있는 손가락만 한 광석에 닿았다. 광석에서는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설마…… 이것들이 모두 야광주(夜光珠)라고?’

어두운 곳에서 은은한 빛을 내는 야광주는 극히 희귀한 보석이다. 지금 보이는 손가락만 한 야광주 하나를 팔아도 금자 천 냥은 우습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나게 비싼 야광주가 동굴을 따라 일정 거리를 두고 끝없이 박혀 있는 것이었다. 지금 보이는 것만 해도 수십 개는 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귀하다는 야광주조차도 지금 풍백이 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풍백은 자신의 뒤에서 찰랑거리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수면에서 일렁이는 작은 파동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커다란 동경이라 착각을 했을 정도로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풍백의 시선이 수면과 닿아 있는 벽면을 향했다. 그곳에는 주먹만 한 푸른색 돌 열 개가 동굴의 모양을 따라 박혀 있었다.

이것을 보고 그는 망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진짜 피수주(避水珠)라고? 이런 게 진짜 있는 거였어?”

새외에서 활동하면서 오만가지 신기하고 희한한 것들을 목격했었던 풍백이다.

그러나 이런 그마저도 피수주를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죽하면 그냥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물건이지 않냐는 생각을 했겠는가?

피수주는 말 그대로 물을 밀어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극도로 희귀한 물건이었다.

이전까지는 그냥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환상 속의 물건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이걸 가지고 나갈 수는 없겠지?’

아마도 피수주 하나만 가지고 나갈 수 있다면 거대한 현 하나를 통째로 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감히 피수주를 벽에서 뜯어낼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피수주만이 아니다. 야광주도 손가락 하나 건들지 못했다.

이곳은 독과 암기, 기관으로 유명한 사천당가가 만든 곳이다. 이런 곳에서 함부로 물건을 뜯어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미 피수주라는 환상의 물건까지 직접 목격한 풍백이었다.

이런 피수주를 무려 열 개나 사용한 걸 보면, 사천당가가 기관진을 만들면서 지옥의 염화(炎火)를 끌고 왔다고 하더라도 믿어야 할 것 같았다.

풍백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일단 동굴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곳에 온 목적은 피수주나 야광주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 동굴에도 온통 기관이 깔려 있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과거 오독문이 이 동굴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제자들을 잃었으니까.

그런 죽음의 동굴을 단지 반지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 편히 걸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렇게 거의 반 시진을 걸어갔다.

사실 경공을 펼치면 순식간에 지나갔겠지만, 행여나 기관진이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이곳의 기관진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수백 년이 지났을 수도 있고,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있었다. 적어도 기관진을 관리하지 않은 지 이백 년은 넘게 지났다는 사실이다.

사천당가가 무너지며 이곳에 사천당가의 유산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사람이 없어졌을 테니까.

기관진의 특성을 생각하면 꾸준히 관리를 해 줘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거나 오작동하는 경우가 생겨날 수도 있었다.

무려 이백 년이 넘도록 관리하지 않았는데 기관진이 움직이는 것도 대단하지만, 반대로 오작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했다.

경공을 사용하여 빠르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기관진이 오작동을 하면서 암기와 독이 쏟아진다면 절대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러니 경공보다는 최대한 조심하며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반 시진이 지나서야 드디어 동굴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동굴의 끝에 다다르자 커다란 동공(洞空)이 나타났다.

대략 삼십 장은 될 것 같은 너비의 원형 공간이었다.

천장도 매우 높았다. 삼 장은 넘었고, 거의 사 장은 될 것 같은 높이였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동공의 크기나 모양새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동공의 가운데에 서가(書架)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서가에는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는데, 유독 한 권이 유난히 눈에 쏙 들어오고 있었다.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책에는 선명한 글씨로 글자가 적혀 있었다.

도반삼양귀원공(導反三陽歸元功).

이것을 읽은 사람이 무인이라면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사천당가를 상징하는 무공의 정점에 서 있는 내공심법이 바로 도반삼양귀원공이었다.

사천당가의 조사가 만든 내공심법으로, 사천당가에 있는 그 어떤 내공심법도 감히 도반삼양귀원공과 비견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도반삼양귀원공은 오직 가주와 소가주만이 익히는 내공심법이 되었다.

이후 조사와 비슷한 무재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칠대가주가 만류귀원신공(萬流歸元神功)이라는 심법을 만들기는 했지만, 감히 도반삼양귀원공과 비견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만류귀원신공은 직계들이 익히는 내공심법이 되었다.

이런 도반삼양귀원공이 눈앞에 있으면 과연 강호의 그 누가 참을 수 있을까?

하지만 무공은 이것 말고도 온갖 사천당가의 무공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도반삼양귀원공 말고도 만류귀원신공도 보였고, 당가의 직계들이 펼쳤던 삼양신장(三陽神掌)과 고위인사들이 펼쳤다던 적련신장(赤練神掌)도 보였다.

사천당가의 편법(鞭法)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편법 무공 중 하나였다.

이런 명성을 얻도록 만들어 준 것이 바로 회타연편십삼식(廻打軟鞭十三式)과 황사만리편법(黃砂萬里鞭法)이었다.

말 그대로 사천당가를 상징하던 모든 무공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무공 책자가 꽂혀 있는 선반 아래에는 암기 수법들도 책자 형태로 있었다.

사천당가 사람이라는 걸 상징했던 구환살(九幻殺)이라는 암기수법은 물론이고, 당가가 암기를 던지면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제비와 같다고 하여 붙은 추혼연미표(追魂燕尾)란 암기수법, 그리고 당가의 절정무인이 펼쳤다는 천녀산화(天女散花)까지.

암기를 만드는 제작법도 있었다.

칠보절혼망(七寶絶魂芒)이나 절독구음침(絶毒九陰針), 추혼전(追魂箭)과 같이 손으로 직접 던져야 하는 형식의 암기는 물론이고, 폭우이화정(暴雨梨花釘), 칠독탈명침통(七毒奪命針筒)과 같이 작은 기관장치를 이용해 발사하는 형식의 암기도 있었다.

사천당가하면 떠올리는 독도 빼놓을 수 없었다.

미인루(美人淚), 탈백미망산(奪魄迷忘散), 칠보단혼독(七步斷魂毒)과 같은 독의 제조법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이렇게 한 서가에 모아 놓으니 사천당가가 얼마나 다방면에 다재다능(多才多能)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언급하지는 않았어도 기관진식에 관련된 책자와 독만큼 유명했던 약과 치료법에 대한 책자도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누군가 이것을 직접 목격했다면 당장 눈이 벌게져서 달려갔을 것이다. 이 모든 무공들과 온갖 보물 같은 책자를 보며 평정심을 유지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풍백은 그런 사람들에 들어가지 않았다.

과거 풍백이 군부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교관은 평정심을 잃고 함부로 행동하는 순간, 그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상대의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었다.

풍백은 새외에서 활동하면서 이 말처럼 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기관진에 관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천당가의 유산이 있는 곳이다. 어디에 어떤 장치가 있을지 모른다고 가정하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서가를 놔뒀다는 것이 말이다.

그렇기에 무작정 달려드는 것보다 차분히 주변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했다.

풍백은 동공을 따라 세밀히 살펴보며 둘러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으면 품에서 미리 준비한 도구를 이용해 확실히 안전하다는 확인을 마치고 나서야 다른 곳을 조사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동공을 모두 살펴보며 이곳에 다른 기관장치는 없다는 걸 확인한 풍백은 천천히 서가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서가를 삼 장 정도 앞에 두고 걸음을 멈췄다.

풍백은 가죽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냈다. 그리곤 병에 손바닥에 톡톡 두르려 안에 들어 있던 하얀 가루를 꺼내고는 입으로 훅 불었다.

화아악!

하얀 가루가 마치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언젠가 백건상방에서 추적시약을 사용하던 방법과 비슷한 수법이었다.

안개처럼 변한 하얀가루가 동공으로 퍼져 나가며 점차 흐릿하게 변하고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사천당가의 온갖 비전이 꽂혀 있던 서가가 점차 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서가만이 아니라 책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풍백은 그걸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이네.’

이렇게 바로 반응을 보여 주니 다행이었다. 그 말은 서가와 책자에 뿌려진 독은 적어도 사천당가의 삼대지독은 아니라는 말이 되니까 말이다.

만약 서가에 뿌려진 독이 삼대지독이었다면, 풍백이 뿌린 가루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삼대지독은 이런 평범한 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풍백은 독에 중독되지 않도록 최대한 방비를 하고서 서가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어떤 기관장치가 있는 건 아닌지 찾는 것이다.

독이 뿌려진 비급 등은 아마 제대로 된 비급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진짜 비급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이다.

분명히 이곳에 사천당가의 유산이 있다는 건 오독문이 사천당가의 독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확인을 해 줬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기관장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풍백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설마 서가를 어떻게든 만져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인가? 사천당가의 후손이 이곳을 찾아왔다면 당연히 해독약이 있을 테니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숨겨둔 비급을 찾으러 올 경우라면, 실제 지금의 당가처럼 많은 것이 실전되었을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비급을 얻을 수 있도록 안배해 두었을 것이 분명했다.

‘저건…….’

고민에 잠긴 채 사방을 둘러보던 그때, 풍백의 시야가 문득 천장에서 멈춰 섰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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