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가상방 개망나니-167화 (205/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67화

당한수와 당유민은 풍백의 물음에 잠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중이었다.

‘이건 꿈일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가 없지.’

‘대체 적 공자는…… 적가상방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막대한 금액을 매달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하는 거지?’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적가상방이 엄청난 곳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이 정도 금액을 매달 지원해 줄 수 있는 곳은 어지간한 대상방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소가주님? 당 대협? 왜 그러시는 거죠?”

대답이 없는 두 사람을 풍백이 부르고 나서야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당유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풍백에게 물었다.

“대체…… 적 공자님은 왜 이렇게 엄청난 돈을 들여 가며 저희를 도와주려 하시는 건가요?”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이미 다 몰락해 버린 자신들에게 이렇게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상인이 투자를 왜 하겠습니까? 당연히 투자하는 것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네? 그러면 적 공자님은 저희 당가가…….”

“훌륭히 다시 일어날 거라고 확신합니다.”

당유민과 당한수는 풍백의 확신에 찬 말에 다시 한번 넋이 나갔다.

정작 당가 사람인 당유민과 당한수도 풍백처럼 당가가 다시 일어설 거라는 확신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난이 따를 것인지를 계산하며 힘들어했다.

그런데 당가 사람도 아닌 풍백이 당가가 일어설 거라고 확신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뭔가 가슴을 뜨거워지며 알 수 없는 힘이 불쑥불쑥 생겨나고 있었다.

가만히 풍백을 바라보던 당유민이 돌연 목에 걸고 있던 노끈에서 반지를 풀어냈다. 그리고 그 반지를 풍백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 반지는 대단한 유물도 아니고,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물건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겁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주신 반지거든요.”

“아…… 그렇군요.”

대답을 하는 풍백의 시선이 반지에 꽂혔다. 그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이걸 적 공자님에게 맡겨 놓겠습니다.”

“저에게요? 이걸 왜 저에게…….”

“적 공자님이 저희 당가가 자립하고 다시 강호에 우뚝 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당가가 다시 사천으로 돌아가는 날, 그때 적 공자님께 다시 돌려받겠습니다.”

“굳이 이러실 필요는 없는데…….”

풍백이 말은 이렇게 하면서 손은 당유민의 반지를 받아 들고 있었다. 당한수는 그런 당유민을 보며 뿌듯한 눈으로 잘했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손에 들어온 반지를 보며 풍백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리네. 이걸 어떻게 받아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풍백은 반지를 챙기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잘 챙겨 놨다가, 소가주님이 가주님이 되면 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천으로 돌아가실 때에는 가주님이실 테니까요.”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풍백의 미소는 이들과 조금 의미가 달랐지만, 그걸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당가 직계가 살고 있는 마을도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조용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당유민의 집에서 검은 인영 하나가 움직였다.

발걸음 소리는커녕 기척조차 하나 없는 검은 인영이 당유민의 집을 빠져나오는 동안, 그 누구도 그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다.

당유민의 집에서 빠져나온 인영은 빠르게 마을을 빠져나와, 마을 뒤로 보이는 산으로 향했다.

마을 뒤에 있는 산은 딱히 정해진 이름도 없는 산이었다. 그러나 당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성산(聖山)으로 정하고 함부로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검은 인영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산에 도착한 이후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진입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산으로 들어와서도 한참을 더 오르고 나서야 검은 인영은 은밀하게 움직이던 것을 멈췄다.

‘이 정도면 알아차리는 사람도 없겠지.’

슬쩍 당가의 마을을 바라보는 사람은 풍백이었다.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풍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을 계속해서 올랐다.

산을 오르는 풍백은 다시 한번 과거에 자신이 봤었던 자료를 떠올렸다.

‘여기에 당가의 유산이 있다는 말이지?’

아마 확실할 것이다.

지도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정보에 따르면 산 중턱을 지나면 폭포가 나온다고 했었다. 바로 그곳이 당가의 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고 말이다.

다 망해 가는 문파를 다시 일으키려고 한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안정적인 수입과 돈은 물론 중요하다.

단순히 먹고 자는 것에만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무인이기에 병장기도 필요하고, 의복부터 모든 것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니까.

그러나 하나의 문파가 단순히 돈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호의 문파’라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무공이다.

현재 당가타는 무공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군웅회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일어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당가타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무공은 거의 방계가 독점하고 있었고, 그 몇 안 되는 무공의 수준마저도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채설지가 단 하나의 초식을 가지고 당가타 최고수인 허지명을 제압한 것으로 충분히 증명이 끝났다.

과거 사천당가는 문중의 무공과 암기, 독에 대한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는 걸 대단히 꺼려 하던 곳이었다. 오죽하면 사천당가의 여인들은 혼인을 하면 무조건 데릴사위로 만들어 문중으로 끌어들였겠는가.

그렇기에 방계에게 넘겨준 무공의 수준은 고작 낭인들이 익히는 수준의 무공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이었다.

직계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말했듯이 직계는 과거 무공을 처음 배우면서 익히던 입문 무공 수준만 남아 있을 뿐이니까.

이렇게 철저하게 망해 버린 당가타의 무공은 군웅회 대부분의 문파가 등을 돌리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더 이상 당가타가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풍백은 당가타가 살아날 방법을 알고 있었다.

과거 풍백의 이전 삶에서 당가타가 완전히 금벽궁에 흡수되면서 성도에 있는 당가타의 터는 금벽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직계가 살았던 작은 마을에 대한 권리는 다른 곳에 팔아 버렸다.

이곳은 당가의 조사(祖師)가 태어났던 마을이기도 했고, 사천당가라 불렸던 당가의 시작점이었던 곳이었는데도 팔아 버린 이유는 금벽궁과 방계가 직계를 모두 죽여서 없애버렸기 때문이었다. 괜히 가지고만 있으면 찜찜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곳을 익명으로 구입한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사파의 오독문(五毒門)이었다.

오독문은 사파에서 큰 명성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지만, 만독존이 독선장을 만들면서 그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들이 당가 직계가 살던 마을을 구매하고, 그때부터 그들의 세력이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오독문의 비약적인 성장을 의심스럽게 여긴 사람들이 자세한 조사를 시작하고, 결국 오독문이 이곳에서 사천당가라 불리던 당가의 유산을 통째로 집어삼켰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

이 사실은 강호에 아주 큰 충격을 주게 된다.

무려 정파의 기둥 중 하나로 불렸던 사천당가의 유산이었다.

이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천당가의 전설적인 무공과 암기, 독은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경외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오독문이 손에 넣었다니, 정파에서는 오독문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오독문이 당가의 무공만이 아니라 전설처럼 내려오는 칠대금용암기(七大禁用暗器)나 삼대지독(三大之毒)도 손에 넣었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오독문이 사천당가의 유산을 손에 넣은 걸 알게 된 금벽궁이 당가의 유산은 당가의 후계가 속해 있는 자신들의 것이라 외치며 달려든 것이다.

비록 직계가 아닌 방계였지만, 이미 직계가 모두 죽었기에 그나마 남아 있는 혈연 중 사천당가의 유산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오직 방계뿐이었다.

당연히 오독문은 이런 금벽궁의 외침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직계가 유산을 돌려 달라고 하더라도 무시할 판국에 고작 방계 정도로 오독문을 압박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강호는 힘으로 말하는 곳이다.

금벽궁은 오독문을 향해 먼저 칼을 뽑았다. 그리고 오독문과 당가의 유산을 두고 결착을 보게 된다.

아마도 금벽궁은 그런 계산을 했었던 것 같았다.

오독문이 사천당가의 유산을 손에 넣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들이 당가의 암기나 극독을 생산하기 전에 빠르게 무너뜨리자고 말이다.

그러나 이건 오산이었다.

오독문은 알려진 것보다 더 빨리 사천당가의 유산을 손에 넣었었다.

결국 그 싸움은 금벽궁의 패배로 끝나게 된다.

금벽궁의 무인들은 당가의 암기와 비전 독인 화혈참혼독(化血斬魂毒)에 의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금벽궁주를 비롯한 중요한 인물들 역시 과거 당가 삼대지독 중 하나라 불렸던 반구혈장(盤鳩血漿)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는다.

이 싸움으로 인하여 금벽궁은 완전히 몰락하며 강호에서 사라지게 된다.

당가를 완전히 멸문시킨 금벽궁이 당가의 독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온갖 얘기를 지어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오독문은 사천성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풍백은 바로 이 당가의 유산을 자신이 먼저 가로챌 생각이었다.

만약 풍백이 당가의 유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면, 미안하지만 당가를 지원할 생각을 갖진 않았을 것이다.

현재 당가의 가장 큰 문제인 돈은 풍백이 어떻게든 해결을 해 줄 수 있었다. 이제 적가상방이 벌어들이는 돈은 대상방과 비견해도 부족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무력은 그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당가의 유산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르던 풍백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경공을 펼쳐 반 식경 정도 소리가 들리던 곳으로 달려가자, 드디어 풍백이 찾던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기억 속 정보대로 작은 폭포가 그 아래 위치하고 있는 용소(龍沼)로 떨어지고 있었다.

대단히 그림처럼 아름다운 경치였다.

이곳은 당가의 조사가 깨달음을 얻었던 곳이라고 해서 당가에서도 대단히 신성시하는 곳이었다.

‘아마 내가 여기에 몰래 왔었다는 걸 들키게 된다면 난리가 나겠지.’

용소로 다가간 풍백은 지체하지 않고, 그대로 옷을 입은 상태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 때문에 위험하겠지만, 풍백은 능숙한 수공을 펼치며 폭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깊숙이 들어갔다.

물속으로 비치는 달빛에 의지하며 바닥까지 내려간 풍백이 무언가 찾는 것처럼 벽을 더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숨이 가빠 오면 수면으로 올라갔다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내려와 벽을 더듬었다.

이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풍백은 마침내 원하던 것을 찾았다.

‘여기다!’

풍백이 찾은 것은 우연인 것처럼 파여져 있는 작은 동그라미였다.

‘아마도 오독문은 여기에 당가의 유산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왔을 것 같아.’

이름도 모르는 산속에 연못으로 뛰어들어 이 문양을 찾아낸다는 것은 우연히 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입구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오독문은 사천당가의 유산을 얻는 과정에서 대단히 많은 제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천당가의 유산이 숨겨져 있는 비고의 존재에 대해선 알고 있었으나, 그 비고를 열 수 있는 열쇠가 없는 탓에 비고의 문을 강제로 연 탓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난 인명 피해로 귀결되었다.

사람들은 기관진식(機關陣式)을 논하면 제갈세가를 가장 먼저 말하지만, 사천당가가 진식은 몰라도 기관에 대해서는 제갈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열쇠가 없으니 무시한 것인지 몰라도 오독문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그나마 오독문이 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정도 피해로 그쳤다는 말도 있었다.

오독문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며 사천당가의 유산을 손에 넣고 난 이후, 우연히 열쇠를 손에 넣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당유민이 가지고 있던 반지였다.

후에 알려진 것에 따르면, 이 반지는 사천당가의 조사가 끼고 다니던 반지였다고 한다.

‘이 반지가 사천당가의 유산이 있는 기관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라는 사실이 전해지지 않았던 거겠지.’

당유민은 이렇게 중요한 열쇠를 그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반지라고만 알고 있었다.

언제 반지의 사용처가 실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백여 년 전에 사천당가가 무너지면서 실전되었을지도 몰랐다. 당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모두 죽었으니까.

풍백은 품에서 당유민이 건네줬던 반지를 꺼내 들고 파여져 있는 문양에 맞췄다.

그러자 물속인데도 무언가 쇠가 맞물리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긍!

쑤와아아악!

문이 열림과 동시에 막대한 양의 물이 동굴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풍백은 마치 격류에 휘말린 나뭇잎처럼 딸려 갈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