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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65화 (201/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65화

당가타를 나온 풍백 일행은 마차를 타고 성도 서쪽으로 향했다. 직계들이 사는 곳이 성도 내부가 아니라 외부 서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사람들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풍백은 창밖을 바라보며 성도의 경관을 즐기는 중이었고, 채설지는 원래 말이 없었다. 당한수는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고 자책 중이었고 말이다.

‘내가 멍청했어!’

당한수가 이렇게 자책하는 것은 당가타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니었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적가상방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는 중이었다.

풍백은 당가타를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줬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괜히 다른 곳을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진작 적가상방에 지원을 요청했으면 당가타가 금벽궁과 합병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것은 당한수가 잘 모르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적가상방이 외부의 변수에 의해 흔들리는 도중에 지원을 요청했다면 풍백이 도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사정을 모르는 당한수였기에 자책만 하고 있었다.

당세기는 풍백과 채설지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저기…… 원래 채 소저가 적 공자님의 호위무사였던 겁니까?”

고개를 돌려 당세기를 바라본 풍백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무한에서 출발하면서 보시지 않았나요? 채 소저는 적가상방의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렇기는 했다.

무한에서 출발하기 위해 마차를 가져오니, 마치 자기 자리라는 것처럼 먼저 타고 있던 채설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걸 보고 풍백이나 풍진개가 당황했던 것도 기억이 났고 말이다.

“그렇기는 합니다. 그때…… 채 소저 별호가 은하협녀라고 하셨었지요?”

“맞습니다.”

풍백이 대답을 하며 슬쩍 시선을 돌려 채설지를 바라봤다.

까딱까딱!

여지없이 다리를 꼬고 있다가 발을 까딱거리는 채설지였다. 이유는 몰라도 자신의 별호가 불리는 것이 꽤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하여튼 이상한 여자야.’

사파면서도 정파식 별호를 즐기는 사람은 아마 채설지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당세기는 풍백에게 이어서 물었다.

“그런데 왜 당가타에서는 채 소저가 호위무사인 것처럼 얘기하신 겁니까?”

“저는 그렇게 얘기했던 적이 없는데요.”

“네? 분명 아까는…….”

“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저는 제 입으로 채 소저가 제 호위무사라고 말했던 적이 없습니다.”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당세기가 곰곰이 당가타에서 풍백이 했던 말은 떠올려봤다.

‘확…… 실히 그렇게 말한 적은 없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풍백과 채설지가 보여 준 모습은 누가 봐도 호위무사처럼 보였었다. 비록 풍백이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 부탁을 하는 형식이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당황한 표정의 당세기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적 공자님의 뒤를 맡아 주신다는 분은 누구를 말씀하신 건지…….”

“고 무사님이요. 공식적으로 고 무사님이 제 호위무사니까요.”

당세기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사천성까지 오면서 고우길과 꽤 친해진 당세기였다. 그렇기에 아직 고우길이 이류무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하신 겁니까?‘

“원래 세상일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고. 그러니 틀린 말은 아니죠.”

환히 웃으며 말하는 풍백의 모습에 당세기는 뭐라 대답도 못했다. 그건 은근히 듣고 있던 당한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상인들이 눈 뜨고 코 베어간다고 하는 말이 이거였구나.’

풍백은 당한수와 당세기의 시선을 받으면서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성도를 빠져나온 마차가 한 식경쯤 더 이동하자, 겨우 오십여 호 정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 하나가 나왔다.

이곳이 바로 당가의 직계 후예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사실 이 마을은 단순히 당가의 후예가 사는 마을로 치부하기는 힘들었다. 원래 이곳은 과거 사천당가를 세웠던 초대 가주가 태어났던 마을이기 때문이었다.

이백여 년 전에 사천당가라 불릴 때만 하더라도 이 마을은 성지처럼 받들렸던 곳이었다. 적어도 원로원에 들어갈 수준이 아니라면 감히 발도 들이밀지 못하는 그런 곳 말이다.

하지만 사천당가가 몰락하고 당가타로 명칭이 변하면서, 당가타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긴 직계가 이곳으로 쫓겨나듯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마을에 있는 집과 땅은 모두 직계의 사유 재산이었다는 점이다.

방계는 이곳을 빼앗기 위해 무던하게도 직계를 압박해 왔었다. 그러나 직계가 거의 목숨을 걸고 반발했던 덕에 간신히 지켜 낼 수 있었다.

아마 이곳이 당가타에 귀속되어 있었다면, 예전에 방계가 팔아 치웠을 것이 분명했었다.

마을로 들어선 마차는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향했다. 그래 봐야 다른 집과 비교해서 아주 조금 컸을 뿐이긴 했지만.

마차가 마을로 들어서는 일이 많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마차가 지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하고 마차에서 당한수를 비롯한 풍백 일행이 모두 내렸다. 그러자 집에서 이제 열서너 살 정도 되었음직한 어린 소년이 달려 나왔다.

“숙부님? 벌써 협의가 끝난 건가요?”

소년이 당한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러면서도 소년의 시선은 풍백 일행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들어가서 차차 하도록 하고, 인사부터 드리도록 하거라. 절강성에서 오신 적가상방의 적풍백 공자시니라.”

소년이 정중히 인사를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당유민이라고 합니다.”

당한수가 그 말에 덧붙여 말했다.

“이 아이가 저희 당가 직계 중에서도 유일한 적통(嫡統)입니다.”

풍백의 눈이 반짝였다. 당한수의 말은 당유민이야말로 사천당가 가주부터 내려오는 진정한 직계라는 말이었다.

“적가상방의 적풍백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대단히 영광이군요.”

명문세가 자제를 만나서 인사하는 것처럼 풍백의 인사는 매우 정중했다. 평소에 이런 정중한 대접을 거의 받아 보지 못했던 당유민은 살짝 당황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이런 정중한 인사는 어색했는지 당유민이 시선을 피했다.

풍백은 우연인 것처럼 당유민의 목을 슬쩍 살폈다.

당유민의 목에는 노끈 하나가 걸려 있었고, 노끈에는 고풍스러운 반지 하나가 묶여 있었다.

풍백은 과거 군부에 있으면서 유물이나 예술품을 보는 안목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랬기에 이전에 장물을 사면서도 온갖 수법을 쓸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 풍백의 안목에 당유민의 목에 걸려 있는 반지는 분명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오래된 물건인 것은 확실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예술품이나 유물로서 가지는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풍백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일단 함께 들어가시지요.”

당한수는 풍백과 함께 당유민이 나왔던 방으로 들어갔다. 채설지에게도 들어오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거절하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다녔다.

당유민의 방은 상당히 담백했다. 흔한 족자도 하나 없었고, 나이에 걸맞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물건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삭막하게 보일 정도였다.

자리에 앉자 당유민이 풍백을 곁눈질로 살폈다.

‘숙부님은 왜 이 사람과 함께 들어온 거지?’

이제부터 대단히 중요한 얘기를 나눠야 하는 자리였다. 향후 당가타가 어떻게 되는지, 그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눠야 하니까.

그런데 이런 자리에 왜 외부 사람인 풍백이 함께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당한수는 이런 당유민의 의문을 알았는지 설명을 했다.

“적 공자님은 우리 당가타를 지원해 주기 위해 무려 절강성에서 찾아온 손님이시다.”

“지, 지원을 해 주신다고요?”

그토록 바라 왔던 지원이라는 말에 당유민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런 당유민의 모습에 당한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결론적으로 적 공자님의 지원은 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네? 아니, 대체 왜…….”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해라.”

당한수는 차근차근 금벽궁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는 풍백은 고개를 주억였다.

‘대충 들었던 얘기와 비슷하네.’

이미 전일비와 암벽대원들을 고문하며 모두 들었던 이야기였다. 차이점이라면 전일비가 금벽궁의 입장에서 얘기했다면, 당한수는 당가타의 입장에서 얘기를 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방금 전 당가타에서 위덕천이 벌였던 이야기가 나오자 당유민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분노했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위덕천의 행동은 단순히 돈을 빼앗는 수준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다. 이건 지금까지 사천당가라 불릴 때부터 쌓아 왔던 정파의 가치관 자체를 버리는 아주 중대한 문제였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그 누구도 이제 당가타를 정파의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당유민이 진정할 때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당유민이 어느 정도 진정한 것을 확인한 당한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숙부님이 선봉을 서시겠다면 그 뒤는 바로 제가 서 있겠습니다.”

서늘하게 말하며 당유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장이라도 당가타에 있는 위덕천과 방계의 인사들을 때려죽이러 달려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실제로 이들이 몰려간다면 아마 도리어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건 당유민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고 행동에 옮기려는 이유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다.

당한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결정은 다른 것이었다.”

“그러면 어떤 결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당가의 직계가 당가타에서 완전히 나가는 것이 어떠냐는 말이었다.”

직계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방계는 직계의 말을 들어 주지도 않았고, 손톱만큼의 의사 반영도 하지 않았다.

당가타에서 직계는 그냥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대로 있어 봤자 직계는 그저 당가타가 무너져 가는 것을, 금벽궁과 합병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오늘만 하더라도 사천당가부터 내려온 정파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부정하는 짓까지 벌였다.

어쩌면 이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앞으로 이보다 더 더러운 꼴을 두 눈으로 목격할 가능성이 컸다.

이렇게 무너지고 더럽혀지는 당가타의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당가타를 떠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유민은 당한수의 설명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가타를 나온다면…… 이제 당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구나. 나는 그저 더 이상 당가타가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 꺼낸 말이었다. 이대로 지켜보다가…… 당가타의 현판을 우리 손으로 내리느니 차라리…… 떠나고 싶었을 뿐이다.”

“…….”

“너도 알다시피 이건 내 의견이다. 선택은 네가 내리는 것이다.”

직계의 대소사는 모두 당한수가 처리하고 있지만,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는 모두 당유민이 결정을 내렸다.

당한수의 역할은 그런 당유민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거나, 당유민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채워 주기만 할 뿐이었다.

당가의 적통은 바로 당유민이었다. 그러니 당가타를 위한 어떤 결정도 모두 당유민이 내려야 했다.

고민하는 당유민에게 당한수가 다시 말했다.

“당가타를 나와서 다시 작은 문파나 무관을 만들어도 괜찮겠구나. 과거 사천당가를 처음 세웠던 조사(祖師)님처럼. 그게 아니면…… 이제 우리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고.”

당유민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먹먹한 눈으로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당유민이 결국 입술을 열어 무언가를 얘기하려고 했다.

“저는…….”

그런데 당유민의 말이 끝나기 전에 풍백이 불쑥 튀어나와 말을 가로챘다.

“당유민 소가주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제 얘기를 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당유민은 풍백의 소가주라는 명칭에 당황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소가주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풍백의 말에 당한수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은 직계들의 미래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자리였다. 부외자인 풍백이 끼어들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가타를 나가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눈을 반짝이고 있었던 풍백이었다.

‘이거야말로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구만.’

그렇지 않아도 당가타에서 일이 잘 풀렸다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풍백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풍백이 충동질을 하기도 전에 알아서 당가타를 빠져나올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당한수가 풍백에게 물었다.

“어떤 얘기를 하려는 것입니까?”

아마 다른 사람이 이렇게 끼어들었다면 아무리 당한수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좋게 되묻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서문세가부터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이번에는 당가타를 지원하겠다고 먼 사천성까지 찾아온 풍백이기에 차분히 되묻는 것이다.

풍백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만약 소가주님께서 새롭게 당가를 세우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저희 적가상방은 적극적으로 도와줄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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