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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69화 (20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69화

동공의 천장은 울퉁불퉁한 모양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반원의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반원을 그리고 있는 천장에는 마치 별이 뿌려진 것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물론 이건 별자리가 아니었다. 그저 야광주의 불빛이 광물에 비춰지며 빛나는 것일 뿐이었다.

문득 풍백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천장을 바라보며 동공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다니던 풍백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이거군.’

풍백의 눈이 천장에서 수없이 반짝이는 것들 중 하나를 바라봤다.

천장을 보며 걸어 다니자 반짝이던 것들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야광주의 불빛이 반사되어 풍백의 눈을 자극하다가, 자리를 이동하니까 제대로 초점이 맞지 않아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딱 하나의 불빛은 어디로 움직여도 반짝이는 걸 멈추지 않고 있었다.

지면을 박찬 풍백이 목표로 한 불빛을 향해 뛰어올랐다.

거의 사 장이나 되는 높이였지만, 절정고수인 풍백에게 사 장 정도 높이는 오르지 못할 수준이 아니었다.

벽호공을 사용해 천장에 달라붙은 풍백은 자신이 목표로 했던 불빛을 보고 씨익 웃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네.’

아래에서 봤을 때는 단순히 야광주의 불빛이 광물에 비친 것으로 보였지만, 직접 천장에 올라와서 보니 그냥 광물이 아니었다.

볼록하게 만들어진 동경이었다.

동경에는 아래에 있는 독이 묻어 있는 서가와 똑같이 생긴 서가 하나와 작은 서가 하나가 비춰지고 있었다.

‘동경이 기울여져 있네?’

동경을 살펴본 풍백은 비춰지고 있는 서가가 어느 쪽인지 방향을 확인하고 그쪽을 바라봤다.

그곳은 풍백이 들어왔던 입구의 위쪽이었는데, 동경에 비춰지는 모습과 달리 벽면만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환상진을 펼쳐 놨나 보군.’

환상진은 사람의 눈을 속이는 진법이다. 그러나 동경은 환상진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원래 보여야 할 모습이 비춰지는 것이다.

풍백은 벽호공으로 천장을 기어 입구 위쪽으로 갔다. 그제야 확실히 환상진이 펼쳐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사천당가에서는 진짜 서가가 입구 위쪽에 있다는 걸 알리거나 천장에 동경이 있다는 걸 알려 주는 암호가 있었을 거라 생각되었다.

단지 그것을 알려 줄 사람이 미처 알려 주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을 테고 말이다.

단순한 환상진이었기에 풍백은 바로 환상진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역시 동경에 비춰지던 서가 두 개가 있었다.

만약을 대비하여 독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풍백은 서책이 꽂혀 있는 서가로 다가갔다. 서가에는 동공 중앙에 있던 서가와 똑같은 책자가 꽂혀 있었다.

도반삼양귀원공을 뽑아 들고 책을 펼쳤다. 빼곡하게 적혀진 글과 진기를 도인하는 방향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이 붙어 있는 진짜 내공심법이었다.

본래 대문파의 무공 비급은 분실하거나 누가 훔쳐 갈 것을 대비하여 비급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 거대한 뼈를 지나 약해진 어깨가 울리게 되면, 충만한 울림이 파르라니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이때, 팔꿈치와 어깨가 동시에 기도를 드릴 때까지 기다리면 영성을 얻은 아이가 햇볕을 쬐는 장사꾼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이 말을 알기 쉽게 말하자면 이렇게 된다.

- 거골혈에서 견우혈을 향해 진기를 도인하면 내공에 흔들림이 일어난다. 이때 주료혈을 향해 진기를 더 강하게 넣으면 상양혈로 빠르게 진기가 나아가게 된다.

이렇게 무공 비급을 도저히 알아보지 못하도록 암호처럼 적혀 있기에 이미 해당 무공을 익히고 있는 사부나 문파의 어른을 통해 무공의 해설을 들어야 무공을 익히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이렇게 누군가가 가르쳐 주는 체계가 없다면 무공 비급이 두 권으로 이뤄져 있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이것을 바로 해당 무공의 주해(註解)본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천당가의 비급은 이런 과정도 필요 없도록 아주 세세하게 주석을 달아 놔서 누구나 비급만 읽으면 무공을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풍백은 다시 도반삼양귀원공을 꽂아 놨다. 비급이 진짜라는 걸 알았으니, 더 중요한 물건을 확인해야 할 때였다.

비급이 꽂혀 있는 서가 옆에는 다른 서가 하나가 더 있었는데, 여기에는 오직 두 개의 주먹만 한 약병과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구슬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풍백은 약병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적혀 있는 글자를 읽었다.

“반구혈장.”

사천당가의 삼대지독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과거 금벽궁을 몰락하게 만들었던 반구혈장을 오독문이 다시 만들었던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사천당가에서 남겨 놨었던 모양이다.

반구혈장에 중독되면 무공을 익혔든지, 익히지 않았든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 특히 반구혈장은 무색무취무미였기에 알아차릴 수도 없었다.

이 독에 중독되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사천당가에 해독약을 구걸하거나, 전설에서나 등장하는 피독주(避毒珠)를 가지고 있는 경우뿐이다.

왜 삼대지독 중 유일하게 반구혈장만 남아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삼대지독은 그 위력만큼이나 제조법이 어렵고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고는 하나, 피수주와 야광주를 이 정도로 가지고 있던 사천당가가 돈이 부족해서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할 뿐이었다.

‘위험한 상황에 써먹으면 좋겠네.’

조심스럽게 반구혈장을 챙긴 풍백이 그 옆에 있던 약병을 집어 들었다. 그가 사천당가의 유산을 꼭 손에 넣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약병이었다.

풍백은 약병 안에 담겨 있는 손톱만 한 황금색 단환 스무 개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주천금단(株天金丹)이 내 손에 들어왔구나!’

과거 사천당가가 만들던 비전의 영약이 바로 주천금단이었다.

독은 물론이고, 의술도 일절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던 사천당가였다. 그런 사천당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약이 바로 이 주천금단이었다.

비록 강호 제일의 성약이라 불리는 소림사(少林寺)의 대환단(大還丹)보다는 효능이 떨어지지만, 적어도 소환단(小還丹)보다는 훨씬 뛰어난 영약이었다.

또한 대환단이 제조법을 잃어버린 것과 달리, 주천금단은 제조법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말이다.

주천금단을 복용하게 되면 이십 년에서 삼십 년 정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정도면 어지간한 일류고수의 내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이라면 중복으로 복용을 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정도였다.

‘가뜩이나 황금불상의 효용이 떨어진 이후로 내공이 늘어나는 속도가 지지부진했는데, 이걸 복용하면 적어도 내공이 부족할 일은 없어지겠어.’

주천금단도 챙긴 풍백이 마지막 남아 있는 구슬을 집어 들었다. 구슬에는 어떤 설명도 붙어 있지 않아서 용도를 알 수 없었다.

‘굳이 여기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걸 보면 중요한 물건이라는 건 확실하니까.’

풍백은 일단 구슬도 챙겼다.

이제 남은 건 사천당가의 무공 비급뿐이었다. 수십 권이나 되는 비급을 마차에 은밀히 숨기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풍백은 서둘러 무공 비급도 챙기기 시작했다.

* * *

“그래서? 암벽대주는 아직도 연락이 없는 건가?”

금벽궁주 고경천의 물음에 금벽궁 외부 무력 행사를 담당하는 단벽당주 양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어제는? 암벽대주에게 연락이 끊긴 것이 언제인가?”

“대략 칠 일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연락이 없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건가?”

“그게…….”

양진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고경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왜 대답을 못하고 있는 건가? 설마 이유도 모르는 건가?”

“그…… 원래도 전일비 대주가 연락을 그리 자주하는 편은 아니었던 데다가…….”

“나라고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 하지만 칠 일이나 연락이 없었다? 내가 알기로 암벽대주가 칠 일이나 연락이 없었던 적은 처음인 걸로 알고 있는데 양 당주의 생각은 어떤가?”

“그, 그건 그렇습니다.”

은밀히 임무를 수행하는 암벽대의 특성을 생각하면 며칠 정도 연락이 없는 것은 그리 우려할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려 칠 일이나 연락이 없었다는 건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어서 대답을 해 보게. 왜 칠 일이나 연락이 없었는데도 나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는지.”

거듭된 고경천의 물음에 양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전일비 대주가 이번에 당가타를 흡수하면서 자신에게 약속되었던 자리를 빼앗겼다며 많이 기분 나빠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임무가 당가타의 의뢰라는 걸 알고, 불만을 알리기 위해 연락을 중단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여…….”

“암벽대주가 직접 자네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그렇습니다.”

“거참…… 기분 나쁜 부분이 있으면 내게 직접 얘기를 할 일이지.”

고경천의 말에 양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얘기는 했었잖습니까. 그런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만 하셨으면서…….’

솔직히 양진도 불만이 있었다.

금벽궁을 처음 만들면서부터 온갖 고생을 하며 젊은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금벽궁을 위해 바쳤던 양진이었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몇 년 전에야 겨우 당주를 달게 되었다.

그런데 당가타를 금벽궁에 흡수하면서 갑자기 위덕천이라는 놈이 자신과 같은 당주라는 위치에 오른다고 한다.

이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무공부터 시작하여 명성까지 모든 부분에서 부족한 위덕천이 같은 직위라니, 만약 금벽궁이 향후 정파로 전향하려는 계획을 몰랐다면 고경천에게 큰 실망을 했을 것이다.

자신만 하더라도 이런데, 자리를 빼앗긴 전일비는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전일비에게 연락이 없어도 이해하며 넘어가려고 했었다. 워낙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완수를 했던 그였으니, 따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심하지 않았던 전일비가 무언가 일을 잘못 처리한 것 같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가타에서 부탁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자네도 당가타와 합병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지 않나.”

“설마 당가타의 총리가 항의를 해 온 겁니까?”

양진이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이전이라면 몰라도 이제 당가타는 금벽궁의 하위 문파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감히 금벽궁주인 고경천에게 항의를 한 것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제 바뀐 자신의 자리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 줘야겠지.’

하지만 위덕천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고경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닐세. 듣자 하니 우리가 당가타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세기가 손님을 모시고 당가타로 돌아왔다더군.”

“아…….”

“직접 우리에게 얘기는 못하겠지만, 위 지부장이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나? 그리고 겨우 당세기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에 대한 신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적어도 이 년 후에 당가타를 완전히 합병하기 전까지는 신뢰에 문제가 생길 일은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네.”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전일비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거라고 가정도 하지 않았다.

무려 절정고수인 전일비였다.

이 정도 고수에게 죽거나 문제가 생겼을 가정을 하기는 힘들었다. 차라리 임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소홀히 했거나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당세기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 당가타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하더군.”

크게 의문이 들 상황은 아니었다. 당가타가 가지고 있는 무력과 명성을 떠올려 보면 적당한 고수가 패악질을 부려도 막기가 힘들 테니까.

“그 과정에서 중역 세 명이 크게 내상을 입고, 허지명의 두 팔목이 부러졌다고 하더군.”

“꽤 다쳤군요. 제법 고수를 데리고 있었나 봅니다.”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들이 당가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쉽게 생각을 문제는 아닌 것 같네. 어쩌면 뛰어난 고수가 있을 수도 있어.”

전일비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그걸 확인할 시간이 부족했다.

고경천이 예리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제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그놈들이 오늘 당가 직계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더군. 중간에 적당한 곳에서 처리하지.”

“설마, 암벽대주가 그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직 확인된 일도 아닌데, 너무 서두르시는 건 아니신지…….”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암벽대주에게 불상사가 생겼다면 그 복수를 해 줘야 할 테고…… 그게 아니더라도 여기서 처리해 두어야 깔끔하지 않겠나?”

고경천의 말에 양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확실히 마음을 먹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또한 상대는 무려 절강성에 있는 상방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들을 여기서 때려죽인다고 하더라도 어떤 문제가 일어나기는 힘들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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