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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66화 (194/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66화

풍백의 말에 방안의 모든 것이 마치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설마 이 상황에서 풍백이 도와주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정신을 차린 당한수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가타에서 분명 지원하지 않겠다고…….”

“그건 무력으로 돈을 빼앗으려고 했던 위덕천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당가타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지, 소가주님과 당 대협이 만드실 문파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아…….”

“물론 아무런 조건도 없이 지원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상인이거든요. 그러니 명칭부터 수정하도록 하지요. 지원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당한수와 당유민은 지원이든지 투자이든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풍백이, 적가상방이 도와준다는 사실이었다.

당한수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당유민이 얼른 물었다.

“적 공자님이 말씀하신 조건은 어떤 것이죠?”

“일단 가장 첫 번째 조건은 만드시는 문파를 저희 적가상방이 있는 절강성 상산현에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유민은 풍백의 말에 크게 당황했다.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 본 적이 없었던 당유민이기도 하지만, 당가에게 사천성은 대단히 중요한 곳이었다. 당가의 역사에서 사천성을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당한수가 풍백에게 물었다.

“꼭 사천성을 떠나야 하는 겁니까?”

“무조건입니다.”

“그, 그렇지만 당가에게 사천성이 갖는 의미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풍백이 말을 가로채며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당가에게 사천성이 어떤 의미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가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목적보다 중요한 걸까요?”

당한수와 당유민은 풍백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천성이 고향이라고 하지만, 당가의 존립과 비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풍백은 말을 이어 갔다.

“무엇보다 새로 만드는 당가를 사천성에 만들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명백합니다.”

“그게 뭡니까?”

“위덕천과 그 일당들, 설마 그들이 당가를 새로 만드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예상치 못한 풍백의 말을 들으면서 너무 경황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설마 방계를 생각하지 못했다니 말이다.

“그들은 절대로 당가를 새로 만드는 걸 지켜보지 않을 겁니다. 방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짓밟고 죽이려 할 거라 장담할 수 있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당한수가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의미로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무리 방계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었다. 비록 성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가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설마 그들이 자신들의 목숨까지 빼앗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풍백은 그 의미를 정확히 읽었다.

“설마 아직도 방계가 멀어도 가족이라고 믿는 겁니까?”

“그들이 욕심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깨를 으쓱한 풍백이 말했다.

“좋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백번 양보해서 당 대협의 말처럼 방계가 손을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금벽궁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그들이 왜…….”

“아직 금벽궁이 당가타와 합병하는 이유가 그들의 정체성을 바꾸기 위해서라는 걸 아직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네?”

풍백은 금벽궁이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정파로 탈바꿈을 하려는 것인지 간단하게 설명을 해 줬다.

“그들은 단순히 당가타를 합병해서 규모를 키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가타가 가지고 있는 정파의 역사를 사려는 겁니다. 그러니 굳이 합병이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며 흡수하는 것이고요.”

“아…….”

“이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미 힘으로 흡수했을 겁니다.”

상상치도 못했던 풍백의 말에 당한수와 당유민은 신음 소리만 냈다. 설마 당가타를 합병하려는 의도가 이런 것이었다니, 자신들이 너무나 멍청하게 느껴졌다.

“돈을 주고 당가타의 역사를 사려는 그들이 사천성에서 당가가 다시 부활하는 것을 두고 보겠습니까?”

“……그러지 않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당가를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저희와 가까운 곳에서 문파를 만드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당가를 운영하기에 원활할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풍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사천성을 떠난다면, 그 이후 어디에 정착을 하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었고 말이다.

풍백은 이어서 말했다.

“두 번째 조건은 저희 적가상방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면, 당연히 당가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당유민은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당한수는 얼굴이 조금 굳었다.

“당 대협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당한수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풍백은 당한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상방이 비록 강호의 문파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강호의 문파 못지않게 다양했다.

무엇보다 어떠한 문제에도 함께 대응을 한다고 약속을 한다면, 적가상방이 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함께 싸워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

막말로 상방의 칼받이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 현재 당가가 적가상방과 동일한 위치라고 한다면 노골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거의 일방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당가이기에 이런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풍백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부차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적가상방은 당가의 무인들을 동원하여 싸움을 벌이고 다닐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작성할 계약서에 명확하게 기입하셔도 됩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당유민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하더라도 이제 십대 초반인 당유민이 이면에 담긴 의미를 쉽게 깨닫는 것은 어려웠다.

당한수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앞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저희가 어떤 조건을 달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조건은 그저 누군가가 적가상방을 노리면 저희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기에 만약 적가상방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도와 달라는 의미로 넣는 조건입니다.”

“그렇군요.”

“제가 말하는 조건에 대해서 의문이 들거나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이 나온다면 지체하지 마시고 말씀을 해 주십시오. 절대로 저희는 현재 당가의 상황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할 생각이 없습니다. 적가상방은 언제나 상생을 염두에 두고 계약을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한수는 안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예 대놓고 이렇게 못을 박아 주니 당한수나 당유민은 풍백과 적가상방에 대해서 큰 신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세 번째 조건은 당가에서 수련을 마친 무인들은 일차적으로 저희 적가상방에서 고용하도록 해 달라는 겁니다.”

“그거야 당연히 그래야죠!”

당유민이 곧바로 대답했다.

당가를 다시 세울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겠다는데, 육성한 무인만이 아니라 직계가 직접 적가상방에 무인으로 파견을 나가도록 할 수도 있었다.

이런 당유민과 달리 당한수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당가의 힘은 아주 미약했다. 그러니 육성한 무인의 수준도 일반 낭인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조건이라기보다 오히려 당가를 도와주는 조건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풍백의 세 번째 조건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마 적가상방에 정식으로 배치되기 전에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저희와 돈독한 관계에 있는 청송표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주선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표사로 일하면서 실전 경험과 상방의 물품에 대해서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에 당한수는 물론이고, 아직 강호에 대해서 잘 모르는 당유민조차 입을 쩍 벌렸다.

표국의 표사는 아무나 고용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무공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당가의 직계는 물론이고, 방계조차도 표국에 고용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파격적인 조건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표국에 표사로 경험을 쌓도록 주선을 해 주겠다니,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 과하게 좋은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큰 고민에 빠졌다.

“저희가 그럴 자격이 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충분히 가능하도록 저희가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지원을 해 드릴 테니까요.”

풍백의 말에도 두 사람의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당가의 무공은 대부분이 실전된 상태였다. 특히 직계들의 무공은 입문 무공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단순히 지원을 해 주는 것으로 표사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수준의 무사를 육성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걸 거절할 수도 없었다.

지금 풍백이 말한 세 번째 조건은 압도적으로 당가에게 유리한 조건이었으니까.

‘어떻게든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해. 수준 낮은 무인을 육성하는 것만으로 당가가 다시 일어설 수는 없으니까.’

단순히 무인의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당가를 다시 일으킬 수는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이나 남들보다 더 뛰어난 무인을 육성해야 했다.

풍백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당한수에게 물었다.

“과거 사천당가는 무공도 일절이라 불렸었지만, 그와 함께 암기와 독도 빼놓을 수 없는 명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랬었지요. 그래서 저희 직계에서도 암기와 독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행이군요. 성과는 어떻습니까?”

“그게…….”

풍백의 질문에 당한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암기와 독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 양질의 금속과 독을 만들기 위한 재료는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당가타에서 지원해 주는 적은 금액과 몇몇 직계가 당가타에서 일하며 받아 오는 월봉을 모두 쏟아붓는다고 하더라도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다.

이렇게 적은 금액을 가지고 어떤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직계는 암기와 독을 연구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무공은 실전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사천당가의 위용을 찾아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암기와 독을 연구하는 것 밖에 없었다.

대답을 못하는 당한수의 모습에 대충 상황을 짐작한 풍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요. 일단 저희 적가상방 인근에 적당한 규모의 장원을 매입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지원해 드리는 금액은 금자 스무 냥으로 하지요.”

풍백의 말에 당한수는 나쁘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자 스무 냥은 절대로 적은 금액이 아니다.

평범한 일꾼의 한 달 월봉은 평균 은자 열다섯 냥 정도였다. 그러니 금자 스무 냥이면 은자 천 냥이고, 일꾼 육십 여명이 한 달 동안 벌어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암기와 독을 연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넉넉한 돈은 아니었다. 여기에 무인까지 육성하려면 조금 빠듯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 자금이면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넉넉하다고 말할 수 있지.’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을 하는 당한수에게 풍백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충분합니다. 너무 감사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당한수의 말에 풍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족하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면 당가가 지원을 받는 금액은 그 정도로 하고, 암기와 독을 연구해야 할 테니 여기에 연구비로 한 달에 금자로 오십 냥을 배정하도록 하지요.”

“헉! 그, 금자 오십 냥이요?”

당한수는 당황하여 소리쳤다.

처음 풍백이 말한 스무 냥에 당연히 암기와 독을 연구하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무려 금자 오십 냥이라니,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풍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부족하신가요? 부족하면 일단 연구를 하시다가 추가 지원을 요청하셔도…….”

“아, 아닙니다! 너무 많아서…… 그래서 놀라서…….”

“많다니요? 제가 상인이라서 대충 알고 있습니다만, 암기와 독을 연구하는 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들어가야죠.”

“허…….”

하지만 놀랄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여기에 무인들을 육성하기 위한 금액도 필요하실 테니, 한 달에 금자 서른 냥을 지원하도록 하지요. 그러면 한 달에 도합 금자 백 냥이 당가로 들어가겠군요.”

“헙!”

“그리고 외지에 정착을 하면서 어디에 어떻게 돈이 들어갈지 모르니, 만약을 위한 비상 예비금으로 금원보 열 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하실 때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한수와 당유민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당유민이 어리다고 하더라도 지금 풍백이 말하는 금액이 얼마나 막대한 돈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전까지 당가타에서 받아 오던 지원금과 월봉을 모두 합쳐도 금자 두 냥이 안 되는 돈이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한 달에 금자 백 냥을 꾸준히 지원하고 부족하면 더 지원을 해 주겠다니, 자신이 알고 있는 돈의 가치가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금자 백 냥이면 금원보로 무려 열 개나 되는 돈이지 않은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며 풍백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로 하고, 자세한 협의 내용은 나중에 절강성 상산현으로 오시면 다시 정하도록 하지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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