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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64화 (19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64화

당가타에 도착하기 전, 전일비와 암벽대원들을 고문하여 당가타와 금벽궁 사이에 대해서 꽤 중요한 정보를 미리 알아냈던 풍백이었다.

그리고 풍백이 내린 결론은 당가타에 정상적으로 지원을 해 주는 것이 어렵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당가타에 도착해서 지원을 해 준다면 금벽궁과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향후 금벽궁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알고 있는 풍백이었기에, 거의 손아귀에 들어온 당가타가 빠져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으리란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금벽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 당가타를 손에 쥐고 있는 방계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을 테고 말이다.

그렇기에 풍백은 당가타를 지원하는 걸 포기했다.

이것은 당가타를 지원하는 걸 포기했다는 말이지, 당가 전부를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방계는 신뢰하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직계를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방계와 어떻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겠는가? 언젠가 적가상방이 힘들어지면 가장 먼저 등을 돌릴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러니 깔끔하게 방계가 장악하고 있는 당가타는 버려 버리고, 직계만 챙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계획의 일환 중 하나가 방계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과거 당가타가 현판을 내린 일은 강호에 큰 사건 중 하나였다.

비록 지금은 몰락한 당가타지만, 한때는 사천에서 부동의 패자 중 하나였던 사천당가였다. 그런 사천당가가 완전히 없어지게 된 것이니 강호에서는 큰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당가타를 금벽궁에 팔아먹은 위덕천과 그 일당들에 대해서는 꽤 많은 정보를 읽은 기억이 있었다. 그때 정보에 따르면 위덕천과 그 일당들의 욕심은 도를 지나쳤다고 했었다.

금벽궁이 정파로 탈바꿈을 하고 정사지간의 모습을 털어 내려던 것과 달리, 금벽궁의 당주가 된 위덕천과 그 일당들은 금벽궁의 위세를 이용해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봤었기에 풍백은 그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직접 보여 줬다. 그러면 당연히 얼토당토않은 수작을 부릴 것이고, 그것을 본 당한수는 당가타에 대한 희망을 버리게 될 것이다.

얄팍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 계획만으로도 충분했다.

만약 계획이 보란 듯이 실패하더라도 위덕천의 욕심을 자극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게 있으니까.

하지만 우습게도 금원보 궤짝을 보자마자 바로 자신의 속을 내보이는 위덕천과 당가타 중역들이었다. 오히려 효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지나치게 잘 들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차라리 잘됐다고 해야겠지? 이 정도면 당한수도 더 이상 당가타에 미련이 없어질 테니까.’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 위덕천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모두 소용없는 짓이다. 여기는 당가타 내부다. 외부에서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풍백은 위덕천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정말 저에게 무력을 사용하실 생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아! 그 말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하는 풍백의 모습에 위덕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나치게 태연해 보이는 풍백의 모습이 그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위덕천은 이런 경고 신호를 무시하기로 했다. 경고를 받아들이기에는 눈앞에 금원보가 주는 유혹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봐야 상방 호위무사 수준일 텐데 상관없지.’

아무리 당가타가 몰락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방 호위무사와 비빌 수준은 아니었다.

위덕천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면 궤짝을 이쪽으로 넘겨주실까?”

당가타 중역 중 하나가 궤짝을 받기 위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고우길에게 다가갔다. 당연히 순순히 궤짝을 넘길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건 안 되겠습니다만.”

위덕천이 슬쩍 인상을 썼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었군.”

“어쩔 수 없지요. 상인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벌어 놓은 돈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해야지요.”

“흥! 말은 청산유수군.”

위덕천은 당가타 중역들을 향해 슬쩍 눈짓을 했다. 그러자 중역들 몇 명이 흉흉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그걸 본 풍백은 뒤에 서 있던 채설지를 바라봤다. 채설지는 뭔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사실 지금 나서는 중역들 수준이라면 고우길이 나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만큼 당가타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한 문파의 중역이라는 사람들이 고작 이류무인 수준이었으니까.

고우길도 이류무인이지만, 초식의 이해도만큼은 일류고수 수준이었으니 충분하고 넘쳤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깔끔하게 끝내려면 아무래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어설프게 처리하다가 잘못하면 금벽궁까지 나설 빌미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

풍백의 말에 채설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천천히 나섰다.

채설지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본 사람들이 조금 당황했다. 그녀의 미모가 워낙 출중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채설지가 풍백의 연인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싸우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적가상방이라는 곳의 호위무사가 아닌가 싶었다.

“괜히 험한 싸움에 휘말려서 후회하지 말고 물러서도록 하시오.”

“그렇지. 예쁜 얼굴에 상처라도 입으면 슬퍼할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중역들은 채설지의 미모를 보며 방심했다. 왜인지 몰라도, 당연히 채설지의 무공이 낮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쥐가 고양이 생각을 해 주는 격이었다.

오히려 중역들은 딱 봐도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것 같았고, 실제로 무공도 겨우 이류무인 수준이었으며, 심지어 상대가 상방 무사라 생각하고 방심까지 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승산이 없다는 걸 그들만 모르고 있었다.

채설지가 손을 쓰기 전, 풍백이 전음을 보냈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되, 손을 너무 과하게 쓰지 않아야 합니다. 너무 힘을 과하게 쓰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풍백의 전음에 채설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짓고 있는 중역들을 향해 보법을 펼쳤다. 그녀가 몇 번이고 보여 줬던 지면을 미끄러지는 듯한 환상적인 보법이었다.

“어?”

“으헉!”

“조, 조심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유려한 움직임을 본 중역들이 헛바람을 들이켜거나 서로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이런 경고는 채설지가 움직이기 전에 했어야 했다.

채설지의 하얀 손이 몇 개로 분열되며 중역들의 가슴을 노리고 들어갔다.

중역들은 황급히 채설지의 손을 받아치거나 걷어 내려고 했지만, 채설지의 손은 그들의 움직임을 가볍게 무력화시키며 그들의 가슴을 살며시 두드렸다.

퍼퍼펑!

폭음과 함께 날아간 중역들이 지면에 처박혔다.

“쿨럭…….”

“우웩!”

창백해진 얼굴로 기침을 하거나 입으로 어린아이 주먹만 한 핏덩이를 쏟아 내는 중역들의 모습을 보니 심상치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위덕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일류고수인가? 아니면 혹시…… 절정고수?’

위덕천도 일류고수를 바라보고는 있지만 아직 이류무인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채설지의 고절한 수법을 목격했으면서도 그녀의 무위를 예측하지 못했다.

일단 위덕천은 고함부터 내질렀다.

“이놈! 감히 당가타에서 함부로 손을 쓰다니!”

웃기지도 않은 수작이었다. 정작 손을 누가 먼저 썼는데 말이다.

채설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지면을 박차며 허지명에게 달려들었다.

허지명은 방금 전 중역 세 명이 포탄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당한수를 압박하던 것을 멈춘 상태였다.

자신을 향해 미끄러지듯이 다가오는 채설지의 모습에 버럭 소리쳤다.

“네년이 겁이 없구나! 나는 당가타 청수대의 대주 허지명이다!”

그러나 채설지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손은 허지명의 쇄골을, 다른 한 손은 옆구리를 긁어 갈 뿐이었다.

허지명은 중역들처럼 채설지를 경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곧바로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공이자, 방계의 비전 무공인 비서장(飛絮掌)을 펼쳐서 대응해 갔다.

두 사람의 손이 부딪치려고 할 때, 채설지의 손이 스르륵 움직이며 허지명의 비서장을 슬쩍 밀어냈다.

“어엇…….”

막대한 장력이 담긴 비서장을 너무나 쉽게 밀어내는 모습에 허지명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채설지의 가냘파 보이는 두 손이 그의 손목을 가볍게 쥐고 있었다.

그리고…….

우드드득!

“끄아…… 흐윽……!”

기묘한 소리를 내며 허지명이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두 손목은 여전히 채설지가 쥐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의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허지명이 연신 괴상한 신음을 냈다.

“아흑. 그만…… 아악! 제발, 으그극…… 부탁…….”

채설지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허지명의 손목을 움직이고 쥐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풍백이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채 소저. 그만 이쪽으로 오시지요.”

채설지가 풍백을 돌아봤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풍백은 그녀가 뭔가 아쉬워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채설지는 허지명의 손목을 놓아줬다.

미리 약속을 했었던 것이지만, 자신의 말을 순순히 따라 주는 채설지가 꽤나 고마운 풍백이었다.

허지명은 벌벌 떨며 일어서려고 하다가 이내 털썩 쓰러졌다.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고통이 너무 심해 기절한 것 같았다.

위덕천은 풍백에게 걸어가는 채설지를 보며 찢어질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절정고수다! 분명히 절정고수야!’

허지명이 비록 일류고수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당가타에서는 가장 뛰어난 무공을 가진 고수였다.

그런 허지명을 채설지는 고작 하나의 초식으로 제압해 버렸다. 이 정도의 무공은 같은 일류고수가 보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채설지가 풍백의 뒤에 서 있는 걸 보니, 풍백의 모습이 방금 전과 전혀 다르게 보였다.

단순히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상인으로 보였던 풍백이 지금은 어떤 거대한 세력의 중요한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무려 절정고수를 호위무사로 두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지금 그가 떠올린 생각이 전혀 허무맹랑한 생각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런 생각은 위덕천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한수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다랗게 눈을 뜨고 풍백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당세기는 같이 마차를 타고 왔던 채설지가 무려 절정고수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오직 고우길만이 놀라지도 않고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무혈채를 상대로 피바람을 일으켰던 모습을 봤었으니 이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풍백은 위덕천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총리님, 방금 전 일어났던 일은 대단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저희 적가상방은 당가타에 호의를 가지고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뭔가요?”

위덕천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현재 당가타에는 아직 무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절정고수의 손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 자신의 목숨이 풍백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극도로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떨리는 입술을 달싹거리던 위덕천이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내,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소. 나는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적가상방의 재물을 탐했다?”

“그, 그런 의미가 아니고…….”

위덕천은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위덕천에게 풍백이 말했다.

“당가타를 지원하겠다는 적가상방의 제안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도저히 총리님을 신뢰할 수 없으니까요.”

“아, 알겠소.”

어차피 지원을 받을 생각도 없었기에 위덕천은 곧바로 대답했다.

풍백은 당가타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겠습니다만, 오늘 일어났던 일 때문에 앞으로 저희를 귀찮게 하시지는 않겠지요?”

“절대!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도대체 풍백이 말한 적가상방이 어떤 곳이기에 무려 절정고수를 호위무사로 대동하고 다니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감히 어떤 수작도 부릴 수 없었다.

이건 금벽궁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들었다.

만약 적가상방에 절정고수가 다수 포진해 있다면, 금벽궁도 함부로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하다가 큰 피해를 입으면 사천성에서 금벽궁의 영향력이 그만큼 떨어질 테니까.

오히려 위덕천을 제물로 바치며 화친을 하자고 말할 가능성이 더 컸다. 금벽궁이 바라는 건 위덕천이 아니라 당가타였으니까.

풍백은 그런 위덕천의 흔들리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부디 거짓말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계신 채 소저 말고도 제 뒤를 맡아 줄 분이 또 계시거든요. 잘못하면 당가타에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어서 하는 얘깁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면구를 쓴 풍백이 밤에 당가타의 담을 넘어 방문할지도 몰랐다. 그때는 아마 위덕천은 다음 날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위덕천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풍백이 당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 대협, 듣자 하니 직계들은 당가타가 아니라 성도 바깥에서 따로 모여서 사신다면서요?”

“그,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루나 이틀 정도만 신세를 질 수 있을까요? 당가타까지 너무 서둘러서 달려와서, 다시 먼 거리를 돌아가려면 조금 쉬었다가 떠나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괜찮고말고요! 오히려 적 공자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권했어야 하는데…….”

“하하하! 아닙니다. 그러면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를 따라오시지요.”

당한수는 풍백을 안내하며 당가타를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 위덕천을 바라봤다.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는 당한수는 뭐라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당가타를 떠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직계가 당가타를 떠나는 건 그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어차피 당가타는 이제 끝났다.’

방금 전 방계가 보였던 사파와 같은 모습은,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당가타에 대한 애증을 모두 털어 버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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