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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62화 (186/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62화

당한수는 당가타 회의실 밖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회의실 내부에서는 얼마나 좋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인지, 연신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당한수는 절망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끝났구나……. 당가의 역사는 이제 끝이 났어.’

당한수는 필사적으로 금벽궁과 협력을 반대해 왔었다. 말이 협력이지, 실질적으로는 협력이 아니라 금벽궁과 당가타의 합병이었으니까.

그러나 당한수에게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 말고는 이 협상을 막기 위한 아무런 권한도 힘도 없었다.

웃긴 것은 당가타에서 이 협의를 반대하는 사람은 오직 직계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직계를 제외하고 방계를 비롯한 당가타 소속 무인들은 모두 금벽궁과 협력을 반기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이기는 했다.

강호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없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당가타 소속 무인보다, 사천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금벽궁의 무인이라는 호칭이 더 탐날 테니까.

금벽궁이 정사지간 문파라는 것에 반감을 갖는 사람은 오직 직계뿐이었다.

‘돌아가신 아버님 얼굴은 뵐 면목이 없구나…….’

어쩌다가 사천당가라 불리던 그들이 이런 꼴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마 선조들은 이미 저승에서 통곡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회의실로 뛰어들어서 책상을 뒤집어엎어 버리고 협의 자체를 박살 내고 싶었다.

총리인 위덕천도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당한수가 협의하는 장소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리라.

당한수는 회의실 앞을 지키고 있는 당가타와 금벽궁 무인들을 바라봤다. 그나마 당가타 무인은 낯짝이라도 있는지, 당한수가 바라보는 시선을 피했다.

이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회의실 문이 열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걸어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가타의 중역들이었고, 소수의 사람들이 금벽궁의 이들이었다.

당한수의 시선은 금벽궁 사람들 중에서 가운데 있는 백발이 성성한 사내에게 향했다.

이 사내가 바로 추혼검(追魂劍)이란 별호를 가지고 있는 금벽궁주 고경천이었다.

“하하하하! 궁주님 덕분에 오늘 협의가 아주 원활하게 끝날 수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통 크게 양보를 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위덕천과 청수대주인 허지명이 고경천을 찬양하는 말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당가타의 중역들이 모두 한 마디씩 꺼내며 고경천을 칭송하기 바빴다. 조금이라도 고경천에게 눈길을 받기 위해 열심히 아부하는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여기서 이들의 모습을 봤다면, 아마 이들이 당가타의 중역이 아니라 고경천의 수하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고경천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허허허! 아닙니다. 모두 당가타에서 대국적인 판단을 내려 주셔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 덕분에 금벽궁과 당가타가 한 식구가 될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 협의는 여기에 계신 분들의 덕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금벽궁이 사천 제일의 문파로 거듭나도록 손발이 다 닳을 때까지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보면 볼수록 가관이었다.

이런 어이가 없는 모습에 당한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이곳에는 이미 당가타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구나.’

당가타가 실질적으로 금벽궁에게 팔려 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정작 당가타 중역이라는 작자들은 한껏 기쁜 얼굴이었고, 조금이라도 금벽궁주 고경천의 눈에 들기 위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런 자들이 지금까지 당가타의 중역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참담했다.

겸양의 말을 하고 있던 고경천은 문득 한쪽에 서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당한수를 발견했다.

이미 당한수가 누군지, 이번 협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빤히 알고 있던 고경천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당한수를 바라보는 고경천의 입꼬리가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은 마치 비웃음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한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위덕천이 먼저 나서며 당한수를 고경천의 시야에서 가려 버리며 물었다.

“협의도 끝났으니, 저녁 식사라도 함께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제가 미리 연회 준비를 해 놨습니다만…….”

고경천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저녁에 다른 선약이 되어 있어서 연회 참석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요! 당연히 바쁘시겠지요. 저희도 준비만 해 놨을 뿐입니다. 너무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이제 말을 낮추시는 것이…… 제가 부담이 돼서 말입니다.”

“허허허! 오늘까지는 존대를 하는 것으로 하지요. 다음부터는 지부장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당가타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위덕천이 간이라도 빼 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고경천은 위덕천과 당가타 중역들의 배웅을 받으며 당가타를 떠났다.

그때까지도 가만히 서 있던 당한수가 돌아오는 위덕천을 보고 물었다.

“협의는…… 모두 끝난 것입니까?”

위덕천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당한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끝났다.”

“그러면 이제 당가타는 금벽궁의 성도 지부가 되는 것입니까?”

“알면서 왜 묻는 것인가?”

당한수는 손이 덜덜 떨려 왔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물었다.

“이전에 알고 있던 사실과 달라진 건 있는 겁니까?”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궁주님께서 당가타를 좋게 보고 호의를 베풀기로 하셨다.”

“어떤 호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가타에 지원해 주는 금액을 더 늘려 주겠다고 하시더군. 그리고 금벽궁에서 파견 나온 무사들이 지낼 거처를 마련해 주면 무사들의 월봉과 활동비를 앞으로 일 년 동안 금벽궁에서 챙겨 주겠다고…….”

“제가 묻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몰라서 그렇게 대답을 하시는 겁니까!”

당한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 모습에 위덕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허지명이 앞으로 나서며 꾸짖듯이 외쳤다.

“당 대주! 지금 어디서 고함을 치는 건가? 감히 총리님을 앞에 두고 고함을 치는 건가?”

“총리? 오늘 당가타는 스스로 현판을 떼겠다는 협의를 끝내지 않았소? 그런데도 총리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오? 지부장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고?”

대놓고 비꼬는 듯한 당한수의 말에 위덕천을 비롯한 당가타 중역들의 얼굴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지금 말을 너무 함부로 하고 있소, 당 대주!”

“아무리 직계라고 하지만 너무 말을 함부로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흥! 대접을 해 주니까 꼴에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군!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야! 알아?”

중역들이 당한수를 향해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당한수는 이 모든 욕설을 들으면서도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당한수의 눈동자에서는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위덕천은 그런 당한수를 보며 생각했다.

‘역시 직계 놈들을 처리하기로 약속한 것은 잘한 짓이었어.’

이 제안을 먼저 얘기한 곳은 금벽궁이었다. 금벽궁에서는 직계를 계속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당가타의 본 주인은 직계고, 이런 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합병을 했다.

그러니 직계가 계속 살아남아 있으면 당가타를 금벽궁에서 분리하려 할 테고, 그럴 때마다 강제로 합병을 했다는 뒷말이 계속해서 시중에 떠돌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건 위덕천을 비롯한 방계들에게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직계는 방계에게 눈엣가시와 같았다.

당가타의 권력을 방계가 손에 넣은 것도 벌써 백 년하고도 수십 년이 되어 가는 중이다. 그런데도 당가타를 말하면 아직까지 사천당가의 직계를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는 군웅회의 지원을 계속해서 받기 위해 직계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지원도 끊긴 지금은 오로지 걸림돌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당장 직계를 한꺼번에 몰살시킬 생각은 아니다. 천천히 사람들이 잘 인지하지 못하도록 처리할 계획이었다.

‘늦어도 이 년이 지나기 전에 살아남은 직계는 한 명도 없도록 만들어야지.’

그리고 그때가 바로 당가타가 완전히 금벽궁에 합병되는 날이 될 것이고 말이다.

위덕천이 손을 들어 중역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당한수가 입을 열었다.

“……당가타는 그대들의 것이 아니었소. 이렇게 당가타의 맥을 끊어 놓고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그러면 누구 것인가? 그대와 같은 직계들의 것이라는 말인가?”

위덕천의 말에 당한수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이내 꾹 다물었다. 여기서 당가타가 직계의 것이라 외친다고 하더라도 비웃음만 당할 테니까.

“당가타는 직계, 방계 모두의 것이네. 그리고 금벽궁과 협의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그러면 협의된 기간인 이 년 안에 당가타를 원상복구 시켜 보게. 금전적으로 완전히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잃어버렸던 당가의 무공도 모두 되찾아 보시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내가 직접 당가타를 두 손으로 가져다가 바칠 테니까.”

“…….”

당한수는 뭐라 대답도 하지 못했다.

금전적으로 자립시킨다?

차라리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말은 아니었다. 어디서 지원을 받든지, 아니면 장사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가능하기는 하니까.

하지만 무공은 완전히 불가능한 말이었다. 실전된 무공을 어디서 되찾아 복구한다는 말인가?

당한수는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뭐라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당한수를 비웃는 얼굴로 바라보던 위덕천은 콧방귀를 뀌며 뒤돌아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당한수를 발견하더니 환히 웃으며 달려왔다.

“숙부님! 제가 돌아왔습니다!”

당세기였다.

참담한 마음에 뭐라 대답도 못하고 있던 당한수는 느닷없이 들려온 당세기의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자신을 향해 반갑게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는 당세기가 보였다.

자신을 와락 끌어안은 당세기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줬다.

“어떻게 벌써 돌아온 것이냐? 아직 더 있어야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지원해 주실 분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마차를 타고 밤낮없이 달렸고요.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지, 지원해 주실 분을 찾았다고?”

당한수가 크게 놀라 소리쳤다.

당세기를 보내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당한수였다. 어차피 창룡봉무지회는 각 세가나 문파의 후기지수나 모이는 자리였으니, 그런 자리에 있는 이들이 당가타를 지원할 수 있는 의결권은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군웅회를 비롯하여 어지간한 대문파에서도 외면한 당가타를 누가 지원할 것이라 믿기도 어려웠다. 당세기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고집을 피웠기에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해 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진짜 지원해 줄 사람을 모시고 왔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디에 계시냐? 내가 바로 인사를 드려야겠다!”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당연히 놀랍겠지!”

누구도 지원하지 않는다 외면하는 가운데 처음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선 사람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세기의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잠시 후에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곧 들어오실 겁니다. 제가 인사를 드리겠다고 먼저 달려오는 바람에…… 아! 저기 들어오시는군요.”

당세기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오는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무지막지하게 아름다운 미모의 여자가 일행 중에 있었기에 위덕천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역이 시선을 빼앗겼지만, 당한수는 그녀의 미모에 전혀 현혹당하지 않았다.

그녀의 앞에 있는 사내를 보는 순간, 여자의 미모는 그의 관심을 전혀 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 적 공자?”

풍백은 당세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 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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