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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57화 (185/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57화

무한에서 나온 마차는 사천성을 향해 바쁘게 움직였다.

사실 이렇게까지 바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물론 당가타 입장에서는 빨리 지원금이든 투자금이든 받고 싶겠지만, 조금 늦는다고 하더라도 당장 당가타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풍백이 서두르는 이유는 있었다.

호북성 무한에서 사천성 성도까지, 그리고 다시 절강성 상산현까지 돌아가는 건 과장을 조금 보태면 중원을 왕복하는 거리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아마 풍백이 절강성 상산현에서 항주까지 가던 것처럼 느긋하게 움직이면 아마 대충 잡아도 반년 이상 걸릴 것이다.

풍백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소모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움직이기 위해 맹렬히 마차를 달릴 수밖에 없었다.

미친 듯이 마차를 달리고, 말을 바꿀 수 있는 마방(馬房)이 나오면 다시 생생한 말로 교체한 다음에 또다시 달렸다.

창밖으로 땅거미가 지는 것을 바라보던 풍백의 귀에 마부석에 있는 고우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관제묘(關帝廟)가 있는데 오늘은 여기서 노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관제묘는 촉대의 명장인 관우(關羽)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었다.

과거에는 장무후(壯繆侯)나 관왕묘(關王廟) 등으로 불렸던 관제묘는 무묘(武廟)로 받드는 관부와 달리 일반 서민들은 재신(財神)으로 모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재신으로 받드는 만큼, 대부분의 상인들은 관제묘에서 숙식을 하면 돈이 붙는다고 믿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밤에 관제묘를 발견하면 거의 반드시 그곳에서 노숙을 하고는 했다.

물론 고우길이 관제묘에서 노숙을 하자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무한을 떠난 이후로 지금까지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적어도 지붕이 있는 관제묘에서 노숙을 하면 새벽에 차가운 이슬에 잠에서 깨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아직 조금 더 달리는 것이 맞지만, 마침 관제묘가 나오기도 했으니 여기서 여장(旅裝)을 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오늘은 빨리 쉬고, 내일 일찍 출발하는 거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관제묘에 마차가 멈추자 풍백과 당세기, 채설지가 마차에서 내렸다.

마부와 고우길은 이때부터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마부는 말과 마차를 점검하기 시작했고, 고우길은 바로 주변에 있는 울창한 숲으로 달려갔다. 그나마 남아 있는 땅거미가 사라지기 전에 불 피울 나뭇가지라도 주우러 가는 것이다.

당세기 역시 알아서 눈치껏 움직이며 노숙할 준비를 시작했다. 무한을 떠나 노숙을 하면서 두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알아서 일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던 당세기였다.

풍백은 관제묘로 들어가 봤다.

관제묘에는 관우의 위패(位牌)가 모셔져 있었고, 그 좌우로 관우의 아들은 관평과 심복 장수였던 주창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었다.

버려진 관제묘이기 때문인지 위패를 제외하고 거미줄과 수북한 먼지만 가득할 뿐이었다.

풍백이 이렇게 관제묘를 돌아보는 사이, 고우길이 나뭇가지를 가져와 불쏘시개로 불을 붙이고 능숙하게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마부는 고우길이 준비한 냄비에 쌀과 물을 집어넣고 육포를 찢어 넣으며 간단한 죽을 만들었다.

노숙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마부는 제법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숙수는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준비하는 것처럼 가지고 있는 재료를 대충 집어넣고 죽을 쑤는 것 정도의 식사 준비밖에 하지 못했다.

그나마 어제는 고우길이 나뭇가지를 주우러 들어갔다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와서 제법 실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런 행운이 없었기에 이 정도로 대충 만족을 해야 했다.

마부가 만든 죽이 완성되고 적당히 배를 채우자 마부는 설거지를 하러 나갔고, 고우길과 당세기는 잠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풍백은 나뭇가지로 불씨를 들척이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채설지를 바라봤다.

채설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화톳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채설지에게 풍백이 전음을 보냈다.

[뭐 좀 물어봅시다.]

채설지가 고개를 들어 풍백을 바라봤다.

[이전에 배에서 무혈채와 싸우면서 제가 무공을 가지고 있는 걸 보셨었지요?]

채설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제가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밝히지 않았던 겁니까?]

풍백의 물음에 채설지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마 풍백이 채설지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면 혹시 말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풍백은 그런 채설지를 바라보며 가만히 그녀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채설지는 대답을 하는 대신 다시 시선을 화톳불로 옮겼다. 마치 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찌푸린 풍백이 다시 물었다.

[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까?]

채설지는 화톳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감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자신의 무공을 숨겨 주는 것인지 말을 해 주지 않으니 오히려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 낸 풍백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이건 대답을 해 주시지요. 제가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실 겁니까?]

채설지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다.

솔직히 목적을 모르니 답답하기는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공을 익힌 걸 다른 사람들에게서 숨기는 것이다.

적어도 마겁에 대해서 조금 더 파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시 가만히 있던 풍백이 채설지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그러면 사천으로 가는 걸 따라오신 이유는 뭡니까?]

화톳불을 바라보던 채설지가 고개를 돌려 풍백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러나 역시 대답은 없었다.

풍백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미친 건가? 왜 대답이 없어?’

한참을 기다리던 풍백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대답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채설지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워낙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채설지였다. 그런 채설지가 화톳불에 비춰지며 보이는 미소는 가히 남자들의 심장에 해로울 수준이었다.

물론 풍백은 그런 채설지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기만 했고 말이다.

‘그냥 따라오지 말라고 할까?’

의중을 짐작할 수 없는 채설지가 따라오는 건 부담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화톳불만 들쑤시던 풍백에게 고우길이 다가와 말했다.

“잠자리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겠습니다.”

가볍게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난 풍백이 고우길이 마련한 잠자리로 걸어갔다.

채설지가 명백하게 대답은 해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보이는 모습을 보면 호의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되나?’

아무래도 채설지를 계속 면밀히 주시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풍백이 잠자리에 누우려고 할 때, 풍백에게 전음이 하나 들려왔다.

[잘 자요.]

채설지의 미모만큼 아름다운 옥음이었다.

풍백이 고개를 돌려 채설지를 바라봤다. 채설지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화톳불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 * *

사천성 성도에 있는 당가타.

당가타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대회의장에는 당가타의 중요한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원래도 이런 논의 시간에는 고성이 오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은 특히나 그 강도가 심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당한수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아무리 고성이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극렬하게 고함을 지르는 것은 꽤나 무례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당한수의 고함에 살짝 인상을 쓰기는 했어도 뭐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당한수가 아무리 고함을 질러 봤자 소용이 없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상석에 앉아 있는 지천명(知天命, 50세)은 넘었을 법한 사내 역시 무덤덤한 눈으로 당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내가 바로 당가타의 총리인 위덕천이었다.

이전까지는 방계에 당가의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가며 방계에 당씨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다.

당장 위덕천만 하더라도 그 계보를 따라가면, 과거 데릴사위로 들어왔던 사람의 후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위덕천은 당한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뭐가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얘기라는 건가?”

“지금 회피하시려는 겁니까? 당가타를 금벽궁에 팔아 버리려는 것 아닙니까!”

당한수의 말에 당가타 최고 무력단체인 청수대(淸水隊)의 대주 허지명이 소리쳤다.

“말이 심하다, 당한수! 지금 우리가 당가타를 팔아먹는 것이 아니라 금벽궁과 협력을 말하는 것 아닌가!”

“협력? 이게 협력이란 말이오? 당가타의 현판을 떼어 내는 것을 천하의 어떤 사람이 협력이라 부르겠소!”

“우리가 지금 현판을 내리겠다고 했던가? 향후 이 년 동안 교류를 이어 가자는 말이었다!”

“말이 교류지, 이번 협상이 통과되면 총리라는 직책을 없애고 지부장으로 명칭을 바꾼다고 하지 않았소! 당장 현판을 내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가타의 독립성 자체가 사라지는 거라는 사실을 모를 것 같소?”

“그건…….”

“당장은 총리가 아니라 지부장이라는 직책으로 바뀌는 것이지만,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과연 당가타라는 이름이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냐는 말이오!”

허지명은 대답을 못하고 당한수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러나 당한수는 허지명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이대로 물러선다는 말은 앞으로 당가의 맥이 끊기게 된다는 말이었으니까.

생각하면 어이가 없었다. 당가의 맥을 끊길 위기를 직계도 아닌 방계가 결정하고 있다니, 아마 과거 사천당가의 조상들이 이 사실을 알면 저승에서 통곡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허지명을 노려보고 있는 당한수을 보고 위덕천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네 생각은 금벽궁과 손을 잡지 말라는 말인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당가의 맥을 여기서 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한수가 당가의 맥을 운운하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당가타가 사천당가의 맥을 이어 오고는 있었지만, 이제 당가타는 당가의 것이 아니었다.

당가타는 방계의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당가의 맥을 운운하고 있는 당한수의 꼴이 우습기만 한 것이다.

위덕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소를 짓고 있던 위덕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당 대주가 직계로 이뤄진 녹수대(綠樹隊)의 대주라고 하지만, 당가타가 당가의 맥이라는 말은 선을 넘은 것 같군. 당가타는 당가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아직 모르는 건가?”

“…….”

“그리고 현재 당가타의 재정 상황을 모르는 건가? 이대로 있다가는 당장 두어 달 후에 살림살이를 가져다가 팔아야 할 판국이야. 그때는 현판을 우리 손으로 직접 내려야 할 것이네. 그걸 모르는 건가?”

당한수는 위덕천의 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모두 당신들이 돈을 착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방계가 당가타의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는 건 어지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당장 당가타가 망해 가는 것과 달리, 저들의 집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당장 녹수대에서 가져가는 활동비도 만만치 않은 판국이었으니, 그것부터 중단하도록 하지. 그러면 적어도 몇 달은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건……!”

“왜? 금벽궁과 손을 잡는 것도 싫고, 자신들이 가져가는 활동비를 내놓는 것도 싫다는 건가? 자네는 참 뻔뻔하군.”

대놓고 조롱하는 듯한 위덕천의 말에 당한수는 고개를 숙이며 이를 악물었다.

녹수대가 가져가는 돈은 정말 푼돈에 가까웠다.

그것으로 직계의 생활비는 물론이고, 아끼고 아껴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비밀리에 독을 연구하고 있었다.

아무리 푼돈이라고 하더라도 이것마저 중단되게 된다면 정말 당가는 아무런 희망도 없게 되는 것이다.

위덕천은 그런 당한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선언했다.

“현재 당가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있는 당 대주의 말은 무시하도록 하지. 얼마 후 금벽궁에서 손님들이 오게 될 것이니, 그들을 맞이하는 것에 신경을 쓰도록 합시다.”

“절대 소홀하지 않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위덕천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깊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당한수는 그런 사람들을 절망적인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위덕천과 허지명은 전각에 올라 어개를 축 쳐진 당한수가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망해 가는 문파를 붙잡고 과거에 대한 추억에 붙잡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군.”

“맞습니다. 당한수와 직계 놈들만 아니었어도 이미 작년에 금벽궁과 합병이 끝났을 겁니다.”

“그랬겠지. 그보다 당세기가 창룡봉무지회로 지원을 받기 위해 갔다고 하던데, 설마 지원을 받아 오는 건 아니겠지?”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마세가나 상관세가와 같은 신진세가들이 저희를 얼마나 쓰레기처럼 보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실상 당가타의 평가가 이렇게 떨어지게 된 원인이 되는 이들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웃기기만 했다.

“만에 하나를 조심해야 해. 혹시나 세상 물정 모르는 어떤 놈이 지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수가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혹시나 싶어 당세기가 오고 있다면 중간에 처리를 하도록 준비를 시켰습니다.”

“잘했군. 행여나 직계 놈들에게 쓸데없는 희망을 갖게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어차피 금벽궁과 합병이 끝나면 천천히 정리할 놈들이지만, 아직 주둥이를 열 수 있을 때는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 하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당한수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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