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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61화 (184/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61화

전일비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암벽대원들의 판단은 빨랐다.

“튀어!”

암벽대원들이 사방으로 일제히 도주하려고 했다. 하지만 풍백 역시 그들이 도망갈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도망쳐? 허락도 없이 어딜 가려고.”

풍백은 쓰러진 전일비의 단도를 빼앗아 던지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돌멩이 두 개를 걷어찼다.

피리릭!

쉐에엑!

단도와 돌멩이가 대단히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날아가더니 도주하려던 암벽대원 네 명의 뒤통수에 정확히 박혔다.

단도를 맞은 암벽대원은 그대로 절명했고, 돌멩이에 맞은 암벽대원은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지면에 풀썩 쓰러졌다.

마지막 암벽대원도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숲으로 도망을 치기는 했지만, 직접 경공을 펼쳐 쫓아간 풍백에게 발목이 잡혀 질질 끌려왔다.

풍백은 전일비와 아직 살아있는 암벽대원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전일비가 정신을 차렸는지, 입으로 선지피를 울컥울컥 쏟아 내며 말했다.

“끄르륵…… 죽여라…….”

처참한 전일비의 모습에도 풍백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풍백의 말에 암벽대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풍백은 그런 암벽대원을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너희는 금벽궁과 당가타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토해 내야 할 거야. 조언을 하나 하자면 최대한 빨리 말하는 것이 좋다는 거고.”

말을 마친 풍백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죽어 있는 암벽대원 시체로 다가가더니, 뒤통수 박혀 있는 단도를 뽑아서 살펴보고 제법 쓸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벽대원 중 하나가 물었다.

“아…… 아는 걸 모두 얘기하면 살려 주는 겁니까?”

피식 웃은 풍백이 싸늘하게 말했다.

“너희는 심문을 끝낸 상대를 살려 주기도 했나?”

그럴 리가 없었다.

말했듯이 이들은 암중에서 금벽궁의 더러운 일을 처리해 주는 부대였다. 그런 암벽대가 심문을 끝낸 사람을 살려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풍백이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내가 경험을 해 보니, 꼭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놈들이 자비를 베풀라고 말하고, 용서를 하지 않았던 놈들이 용서를 해 달라고 빌더라. 웃기지도 않은 놈들이지.”

“…….”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너희는 누구를 심문하고 살려 준 적도 없으면서 살려 달라는 말이 나오나?”

어차피 풍백이 자신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암벽대원들 중 하나가 독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보며 소리쳤다.

“그러면 나는 아무런 말도 해 줄 것이 없다! 어디 마음대로 해 봐!”

풍백은 피식 웃으며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각오가 대단하신데?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어차피 죽인다며! 어차피 죽을 텐데 네 의도대로 놀아나지 않겠어!”

“좋네, 그 각오. 어디 끝까지 그 각오를 유지하라고.”

풍백은 전일비와 암벽대원의 혈도를 모두 짚었다. 행여나 자결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암벽대원의 옷 하나를 벗겨 피가 튀지 않게 위에 걸치고는 소리를 쳤던 암벽대원에게 다가갔다.

“나한테 할 말이 생각하면 내가 너를 바라볼 때 눈을 깜빡여. 알았지?”

말을 마친 풍백이 단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암벽대원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그리고 곧 미친 듯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풍백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전일비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잠시 후 지금 목격하고 있는 저 끔찍한 광경이 자신에게 펼쳐질 거라는 사실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차라리 그냥 죽여!’

이렇게 외치고 싶었으나 아혈을 짚여서 아무런 소리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이런 꼴이 될 거라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인이 싸움에서 패하면 목숨을 잃을 뿐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의 생각과 달리 그냥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라 도축되는 짐승 꼴이 될 것 같았다.

* * *

피범벅이 된 암벽대원의 옷을 벗어 던진 풍백은 가까운 냇가로 가서 피를 씻어 내기 시작했다.

피를 씻어 내면서 풍백은 전일비를 떠올려 봤다.

‘이 정도면 전일비는 절정고수 초입 수준이었던 거겠지?’

지금까지 풍백이 싸워 본 가장 강력한 무인은 일류고수 정도였다. 그것도 풍백이 일류고수 수준이었을 때 싸워 봤었다.

그렇기에 절정고수가 된 자신이, 역시 절정고수인 전일비와 싸웠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었다.

과거의 삶과 지금의 삶을 통틀어서 가장 강한 무공을 지닌 사람과 손을 섞은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확실히 절정고수인 전일비는 일류고수와 수준이 달랐다.

풍백은 절정고수로 올라서며 군부에서 배운 무공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일류고수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절정고수인 전일비에게는 거의 소용이 없었다.

하나 군부의 무공으로는 거의 위협을 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황룡사 삼대무공 앞에서는 절정고수인 전일비마저 하나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강호에서는 삼 푼의 힘을 숨기라는 말이 있다.

언제 어디서 자신을 노리는 암수가 있을지 모르기에 힘을 모두 보이지 말라는 격언이었다.

그렇기에 전일비와 싸우면서도 되도록 황룡사의 무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었다.

물론 이러면 삼 푼의 힘이 아니라 절반 이상 힘을 숨기는 것이 되지만, 숨기는 것이 많을수록 나쁠 것은 없었다.

씻는 걸 마친 풍백이 냇가로 올라와 벗어 놓은 옷을 다시 걸쳤다. 그리곤 객잔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경공을 사용해 달려가도 되지만, 그 전에 머리를 조금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며칠 후 금벽궁에서 당가타로 가서 흡수하는 형식으로 합치는 것에 실질적인 합의를 한다는 말이지?’

풍백의 기억에 당가타의 현판이 완전히 내려가는 것은 일 년에서 이 년 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합병에 동의한다는 실질적인 협의는 훨씬 이전에 체결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며칠 후가 된다는 말이고.’

이건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풍백이 당가타에 대한 소식을 제법 알고 있어서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았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풍백의 계획은 간단했다.

가장 먼저 금전적인 부담을 적가상방에서 모두 짊어지고, 생활에 안정감이 생긴 당가타는 그들의 무력을 상승시키는 것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금벽궁과 며칠 후에 협의를 한다는 말이 들려오는 걸 보면, 아마도 풍백이 중간에 치고 들어갈 틈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좋았다.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금벽궁과 마찰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무리 적가상방과 금벽궁이 엄청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 굳이 한 지역의 패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과 얼굴을 붉힐 이유는 없었다.

일이 쉽게 풀리지 않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한다? 아무래도 두 번째 계획부터 먼저 시행하는 것이 좋겠지?’

원래는 돈 문제부터 해결하고 두 번째 계획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일단 그러려면 그림을 잘 그려 봐야 하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객잔에 도착한 풍백은 창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객잔 뒤로 돌아갔다.

그런데 문득 채설지의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응?’

채설지가 창문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처럼 그녀는 침의도 눈부시도록 하얀 백색이었다.

‘부끄럽지도 않나?’

침의 밖으로 살결이 노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여자들은 얇은 침의를 입고 남자들의 앞에 나서지를 않는다는 걸 떠올린다면 채설지는 꽤나 과감하다 할 수 있었다.

채설지는 그를 보고 흐릿한 미소를 보이더니 이내 창문을 닫았다.

‘설마 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린 건가?’

아마도 암벽대가 암습을 하려고 했을 때, 채설지 역시 그들의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을 것이다. 그리고 풍백이 정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직접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풍백이 알기로 채설지는 강호초출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채설지의 행동을 보면 절대로 강호초출이라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누구하고 엄청 비교되기는 하네.’

풍백은 금호상방에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다가 얼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 *

호남성 상덕현(常德縣)에는 여러 가지 자랑거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금정문(金頂門)이었다.

호남성의 대표적인 정파 중 하나인 금정문은 그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호남성에서 패자를 자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금정문이 근래에는 조금 힘에 부치는 면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중원오악(中原五岳) 중 남악(南岳)에 해당하는 형산(衡山)에 위치한 형산파(衡山派) 때문이었다.

호남성 전통의 명문인 형산파는 과거 구파일방에 들어갔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와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형산파는 점차 과거의 명성을 잃어 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단지 호남성에서만 전통의 강자란 칭호를 받고 있을 뿐이었다.

이랬던 형산파가 근래에는 조금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과거의 형세를 다시 되찾겠다는 듯이 꽤나 공격적으로 세를 늘려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형산파의 움직임은 금정문에게는 위협이 되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 역시 세를 늘리는 것에 적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창룡봉무지회에서 두각을 나타난 상초진에게 접근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었다.

“여기가 바로 상 대협이 사용할 거처입니다. 어떻습니까? 하하하!”

금정문의 소문주인 유소흥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가 보여 주고 있는 전각은 금정문에 몸을 담고 있는 고수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곳이었다. 이런 전각을 통째로 사용하게 해 준다는 것은 금정문이 그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상초진은 크게 놀란 것처럼 멍하니 전각을 바라봤다.

“저, 정말 여기를 제가 다 사용하는 겁니까?”

“당연하지요! 상 대협 정도 되는 분에게 어설픈 거처를 제공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이상하군요.”

“대단하신 것 맞지요. 웅풍철검이라는 별호도 생기셨고, 사람들에게 절정고수라는 걸 확실히 인지시켜 주시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상 대협을 금정문으로 모실 수 있어서 아주 기쁘기만 합니다.”

유소흥은 벙긋벙긋 웃으며 말했다.

상초진을 금정문으로 모시기 위해 유소흥은 창룡봉무지회에서 다른 사람을 포섭하는 걸 포기했었다.

상초진은 고산장 사람이라고 했지만, 확인을 해 보니 고산장은 벌써 이십여 년 전에 망해서 없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상초진은 그런 고산장의 마지막 혈육이었고 말이다.

그 말은 상초진이 현재 어디 갈 곳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이건 엄청난 기회였다. 무려 절정고수를 끌어안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상초진을 자신의 문파나 세가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들러붙었다. 그리고 그 말은 저들끼리 경합이 붙었다는 말이었다.

유소흥은 상초진을 금정문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다른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매달렸다. 그리고 그 결과, 꽤 비싼 월봉을 보장해야 했지만 결국 상초진을 금정문의 품으로 끌어안을 수 있었다.

‘아주 눈을 떼질 못하는군.’

유소흥은 전각을 바라보고 있는 상초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단지 금정문의 빈객(賓客)으로 모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친분을 계속 맺어 간다면 빈객이 아니라 같은 금정문의 식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훌륭한 거처를 제공한 것이고 말이다.

유소흥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쉬고 계십시오. 제가 문주님께 저녁을 함께 드실 수 있도록 미리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유소흥의 말에 넋을 놓고 있던 상초진이 어눌하게 대답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강호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완전 대어를 낚았어!’

유소흥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유소흥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졌을 때, 약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상초진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눌해 보이던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완전히 냉철한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상초진은 사방을 확인하고 담벼락 너머를 확인해 봤다. 그의 거처 담벼락 너머는 바로 상덕현 길거리였다.

거처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본 상초진이 밖으로 나와 가만히 무언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략 반 시진 정도 지났을 무렵, 하늘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리더니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와 상초진이 내민 팔에 앉았다.

전서구 발목에 달린 작은 대롱에서 쪽지를 꺼낸 상초진이 빠르게 읽고는 거처로 들어가 쪽지에 글을 적었다.

- 입문 완료. 추후 방향 제시 요망.

짧게 글을 적은 상초진이 전서구 대롱에 쪽지를 다시 집어넣고 전서구를 날렸다.

전서구는 하늘에서 한 바퀴 돌더니 이내 방향을 잡고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며 기묘한 미소를 지은 상초진은 어느새 다시 어눌했던 표정으로 돌아갔다. 마치 방금 전 냉철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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