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54화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남궁 소협?”
“그렇군요. 녹수장이 이번에 많이 신경 쓴 것 같습니다.”
남궁진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의 옆에 앉아서 환히 웃으며 말하는 여인은 남궁세가와 같이 안휘성에 위치하고 있는 신무문(神武門)의 금지옥엽인 오부용이었다.
남궁진은 안휘성에서 출발하면서부터 오부용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창룡봉무지회가 다가오면서 신무문에서 함께 참석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 왔었다.
신무문과 남궁세가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남궁진은 신무문의 소문주와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에 남궁진은 대수롭지 않게 승낙했었다. 친한 친우와 함께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정작 출발하는 날에 남궁세가를 찾아온 사람은 그의 친구가 아니라, 친구의 여동생인 오부용이었다.
이때부터 오부용은 남궁진의 옆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고 함께하고 있었다.
남궁진은 오부용이 많이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옆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오로지 서문세령에게 모두 빼앗긴 이후였다. 그러니 오부용의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오부용의 미모가 서문세령보다 부족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비록 서문세령처럼 안휘제일미(安徽第一美)라 불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미모는 안휘성에서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도 했다.
또한 남궁진이 서문세령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단지 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주위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부드러운 분위기가 남궁진을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아, 설마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지 않을 줄은 몰랐어.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서문세가에 직접 연락을 해 보는 건데…….’
자책하는 남궁진에게 황보세가주의 셋째 아들인 황보무평이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남궁 형님은 음식이 별로 입맛에 맞지 않는가 봐요.”
황보무평을 직접 본 사람들은 그가 내년이 되어야 약관(弱冠)이라는 나이가 된다는 것을 쉽게 믿지 못했다.
무려 칠 척에 가까운 무지막지한 키에 건장한 체구를 가진 황보무평이 그렇게 나이가 어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황보세가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거인이라 불릴 정도로 건장한 체격을 타고 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황보세가의 직계 혈손 중에서 평범한 체격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황보세가주는 진짜로 칠 척이 넘는 키를 가지고 있어 거인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남궁진은 황보무평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별로 식욕이 없구나.”
“그래요? 나는 맛있는데…….”
그러면서 황보무평이 커다란 체구에 걸맞게 엄청난 양의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다.
오부용이 남궁진의 말에 깜짝 놀란 듯이 말했다.
“어머! 식욕이 없으세요? 제가 얘기해서 안휘성 음식으로 달라고 얘기할게요.”
“아닙니다. 음식이 입에 맞는 것이 아니니,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뭐라도 드셔야 나중에 배고프지 않으실 텐데…….”
걱정스러운 오부용의 말에 남궁진은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곧 남궁진의 귓속에 전음이 들려왔다.
[부럽다. 오 소저처럼 아름다운 여자한테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니…….]
슬쩍 눈을 돌려 보니 하북팽가의 소가주인 팽자천이 그를 보고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것 아니야. 괜한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오해는 무슨 오해? 내 눈에는 오 소저가 너한테 충분히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어때?]
말을 하는 팽자천의 목소리에는 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팽자천과 남궁진은 동갑내기 친구였다. 어렸을 때부터 가문과의 교류 등으로 자주 만나며 친하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남궁진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친구 사이였기에 팽자천은 남궁진이 서문세령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괜히 오 소저 마음 아프게 하지 말라고. 이대로 안휘성으로 돌아가면 이제 만나는 자리를 피하려고 하니까.]
[멍청한 소리 하네. 싫으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 오 소저에게도 좋은 거야. 나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말하라고. 괜히 시간 끌지 말고.]
팽자천의 말에 남궁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팽자천이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우유부단하게 시간을 끌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천성이 이런 남궁진은 쉽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서 애써 외면하는 중이었다.
[그냥 모르는 척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아서 하기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그 성격 때문에 누구 하나는 크게 상처받는 날이 올 거다.]
남궁진은 팽자천의 전음을 무시하고 술잔을 들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조금 취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남궁진이 술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소리치고 있었다.
“부탁이니, 제발 당가타를 좀 도와주시오!”
뜻밖의 사태에 장내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당세기를 바라봤다.
먼지투성이의 추레한 당세기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감정 중 긍정적인 감정을 찾기는 힘들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담긴 시선을 받으면서도 당세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온전히 사대세가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얻어 내야 한다는 절박함만을 눈빛에 담고 있을 뿐이었다.
사대세가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으로 무언가 의견을 교환하더니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겉으로 보면 문사처럼 보이는 이십대 초반의 사내.
제갈세가의 둘째 아들인 제갈승지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승지는 사람들을 향해 포권을 해 보이며 말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여 여러 손님들께 양해의 말씀을 구하겠습니다. 군웅회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계신 세가 분들을 제외하고 자리를 잠시 비켜 주십시오. 오늘 중단하게 된 연회는 빠른 시일 안에 다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정중한 제갈승지의 말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당세기를 바라보는 눈총이 매우 따가웠다. 강제로 연회가 파행되자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세기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풍백도 있었다.
‘당세기가 여기에 찾아왔다는 건…… 당가타 상황이 그만큼 힘들다는 말이겠지?’
당가타가 아직 무너질 때는 아니었다. 풍백이 기억하기로는 아마 앞으로 적어도 일 년 이상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버틸 수 있다는 것뿐이지, 당가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일단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 볼까?’
풍백은 슬그머니 걸음을 늦춰 뒤로 빠지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어두운 곳으로 빠르게 몸을 숨겼다.
그와 함께 걸어가던 양가정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사람이 몰리며 풍백과 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나가고 남은 것은 사대세가 사람들과 군웅회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신진세가 사람들뿐이었다.
조금은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대부분의 사대세가 사람들과 달리, 신진세가 사람들 대부분은 짜증스러운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고 있었다.
대충 자리에 앉자 가장 먼저 제갈승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얘기를 해 보도록 합시다. 당…… 소협이시지요?”
당세기의 이름도 모르기에 제갈승지가 물었다.
“당세기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당 소협. 당가타를 도와 달라니, 무슨 일인지 설명을 좀 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당세기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눈썹 끝이 하늘로 향하고 있는 부리부리한 인상의 사내가 소리치듯 말했다.
“어차피 뻔한 얘기인 것을 굳이 이렇게 들어야 하는 겁니까?”
“상관 소협, 그래도 상황을 정확히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관세가(上官世家)는 신진세가 중 하나로, 아마 모든 세가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자금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상방으로 시작하여 세가로 자리를 잡은 만큼, 상관세가의 막대한 자금력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상관세가의 소가주인 상관수는 당세기가 상당히 못마땅했다.
처음 당가타에 대한 오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을 발의한 대표적인 세가가 바로 사마세가와 상관세가였었다.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차피 당가타에 지원해 주던 지원금을 다시 재개해 달라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은가, 당세기?”
“그건 맞…… 습니다.”
당세기는 상관수와 달리 존대를 했다.
같은 항렬이었고, 나이마저 같았기에 말을 높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든 지원을 받아야 했으니까.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면 존대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세기의 존대에도 상관수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비웃음을 얼굴 가득 지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군. 절박하게 도와 달라고 하기에 사파에게 괴롭힘이라도 당하는 줄 알았지.”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당세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체 당가타에서는 지원금을 모두 어떻게 탕진을 했기에 이렇게 지원을 받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지원해 준 지원금을 가지고 장사를 했어도 백 번은 했을 돈이건만.”
“상관 소협,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제갈승지가 상관수의 말을 막으려고 했다. 아무리 당세기가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왔다지만, 그렇다고 그를 모욕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관수는 전혀 그만둘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이 정도 가지고 뭐가 지나치다는 말입니까? 솔직해집시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당가타에 지원을 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상관수의 말에 누구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신진세가 쪽에서는 당세기를 비웃는 시선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사대세가는 신진세가처럼 적대적인 시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원을 하겠다고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당세기는 이 모습을 절망적인 시선을 바라보고는 서둘러 말했다.
“이전과 같은 규모의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조금만이라도 지원을 해 주신다면…….”
이런 당세기의 모습에 상관수는 코웃음을 치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냉정하게 말했다.
“강호에는 많은 문파가 있다. 그 문파들 중에 자금 압박으로 인하여 무너지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나? 우리 군웅회가 그 모든 문파를 지원해 줄 수는 없는 일이지. 설마 당가타는 다른 문파와 다르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 그건…….”
“왜? 과거에 사천당가를 떠올려 보라는 말을 하려고? 웃기는 얘기지. 수많은 문파들이 과거에 대단한 명성을 날렸지만,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곳들이 많다. 그리고 정작 너도 과거의 사천당가가 어떤 위세를 보이던 곳인지 경험해 본 적도 없잖아.”
상관수의 말을 듣는 당세기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갔다.
“그리고 무작정 지원을 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내부 단속은 끝내고 도와 달라고 해야 되는 것 아닌가? 방계에 밀려 지원해 주는 지원금 대부분을 착복당…….”
“거기까지만 하지요.”
상관수의 말을 남궁진이 끊었다. 상관수의 말이 점점 비난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세기는 상관수의 폭언에 가까운 말을 들으면서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러나 미세하게 떨고 있는 당세기의 주먹에서 그가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팽자천이 입을 연 것은 이때였다.
“일단 이것부터 얘기를 하겠소.”
“……네, 말씀하시지요.”
“당연히 알겠지만, 오늘은 우리 군웅회에서 마련한 아주 중요한 날 중 하나였소. 이런 때에 들이닥쳐 무작정 도와 달라고 말한 행동은 크게 잘못된 것이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사정이…….”
“아무리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형식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차라리 나중에 따로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렇지만…….”
“덕분에 창룡봉무지회가 열리고 처음으로 연회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소.”
“……죄송합니다.”
팽자천의 말은 다른 사람과 무게감이 달랐다. 아무래도 오대세가 중 하나인 하북팽가를 이어 갈 소가주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상관 소협의 말이 틀린 것도 없소. 군웅회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지원을 해 줬던 문파는 없었소. 그리고 당가타는 거의 특혜와 같은 지원을 받았면서도 전혀 바뀐 것이 없었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당세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 소협도 알겠지만, 우리가 군웅회에서 통과된 내용을 바꿀 위치가 아니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적어도 말을 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세기가 절규하듯이 말을 쏟아냈다.
“지금까지 오대세가와 명문세가들을 모두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도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
“부디…… 부디 가주님들께 당가타를 지원하는 것을 다시 한번 고려해 달라고 말씀을 전해 주시기를 바라고 쫓아온 겁니다. 연회를 중단시킨 죄를 물으신다면, 지금 당장 그 어떤 죄라도 받겠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당세기가 이마를 땅에 닿도록 깊게 숙였다.
사대세가 사람들은 이런 당세기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과거 사천당가라 불리던 당가타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실질적으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당세기가 이러고 있어도 신진세가 사람들의 시선은 그저 싸늘할 뿐이었다.
팽자천이 말했다.
“이야기는 잘 들었소. 여기에 계신 분들은 오늘 당세기 소협의 얘기를 각자 판단하여 본가에 얘기를 하도록 하지요.”
사람들은 팽자천의 말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팽자천이 당세기에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짓을 벌이지 않도록 하시오. 두 번은 받아 주지 않을 것이오.”
팽자천이 먼저 자리를 떠나고 다른 사대세가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남궁진이 당세기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당 소협의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당가타에 대한 얘기를 아버지에게 전해 드리는 것뿐이겠군요.”
“감사…… 합니다.”
남궁진은 자리를 떠나며 신진세가 사람들을 바라봤다.
‘안타깝지만 당가타를 지원하는 것은 무리겠지. 저들이 반대표를 던질 테니까.’
어쩔 수 없었다. 남궁세가에서 당가타를 전면적으로 지원할 것이 아닌 이상, 남궁진이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사대세가 사람이 모두 떠나자 상관수가 앞으로 나서며 대놓고 비웃음을 던졌다.
“다 소용없는 짓이야. 어차피 우리 세가들이 거부하면 지원을 할 수 없으니까. 염치도 없지. 그렇게 지원을 받아 놓고 계속 지원을 해 달라고 이런 짓까지 벌여?”
직접적인 모욕을 받으면서도 당세기는 계속 이마를 땅에 대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 당세기를 보고는 상관수가 신진세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들었겠지만, 당가타가 아주 힘들다네. 다음 연회에도 나타나서 깽판을 놓을 수 있으니, 적선한다 생각하고 돈이나 조금 던져 주자고.”
상관수의 말에 엎드려 있는 당세기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진세가 사람들은 그런 당세기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상관수의 말에 동조했다.
“그럴까요?”
“또 연회에 이렇게 나타나면 곤란하지.”
“이거나 받고 좀 영원히 꺼져 줬으면 좋겠어.”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신진세가 사람들이 던진 은자가 당세기의 주위로 떨어지며 울렸다. 거지에게 적선할 때도 이렇게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상관수는 당세기의 뒤통수를 보며 말했다.
“구걸을 하려면 장소 선정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못 들어 봤어? 다시 한번 이런 짓을 벌이면 말로 끝내지 않을 거야.”
말을 마친 상관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한참이 지나서야 당세기가 엎드리고 있던 상체를 들었다.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던 당세기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너무 비참했고 분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들을 쫓아가서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당세기에게는 그런 힘이 없었다. 이류무인에 불과한 그가 저들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세기는 자신의 주위에 떨어져 있는 은자를 보더니 참담한 얼굴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은자를 집어 갔다.
거지에게 적선하는 것보다 더 큰 모욕을 받았지만, 이런 더러운 돈이라고 하더라도 긁어모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가 은자에 손이 닿기 전에 풍백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거 줍지 마시지요. 괜히 손이 더러워집니다.”
우뚝 멈춘 당세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풍백이 그를 향해 슬쩍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이군요,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