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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58화 (178/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58화

양자강(揚子江), 민강(岷江), 타강(沱江), 가릉강(嘉陵江)이 성내로 흐르기에 사천(四川)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천성은, 겨울에는 따뜻하지만 여름만 되면 엄청난 무더위가 쏟아지며 안개도 잦은 걸로 유명했다.

두두두두두!

풍백이 타고 있는 마차가 맹렬한 속도로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중경(重慶)을 지나 사천성으로 진입했다.

관도를 따라 사천성 경계를 지나면 나오는 대죽현(大竹縣)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해가 지는 속도를 보니 대죽현까지 도착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관도 옆에 노상객잔이 보였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오늘은 노상객잔에서 숙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도련님, 노상객잔이 있습니다!”

풍백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오늘은 객잔에서 편히 쉬고 내일 일찍 출발하는 걸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고우길의 목소리에 미약하게 기쁨이 묻어났다.

아무리 무인이라 몸이 건강하다고 하지만, 길바닥에서 노숙하는 것보다 객잔에서 머무는 것이 압도적으로 편한 건 당연했다. 무엇보다 객잔에서는 숙수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말이다.

마차가 객잔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의 문을 열고 당세기가 먼저 내렸다.

마차에서 내리는 당세기의 눈 주위가 핼쑥하게 보였다. 그것은 마부석에서 내리는 고우길과 마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거의 대부분 노숙을 하며 강행군을 이어 왔다. 노숙에 이골이 난 마부나 무공을 익힌 고우길, 당세기마저 연이은 노숙에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차에서 당세기에 뒤를 이어 내리는 풍백과 채설지의 모습은 처음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생기가 넘치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은 다른 세 사람과 비교하면 이상해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고우길은 풍백과 채설지가 대단한 고수라는 걸 알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당세기는 두 사람을 보며 자신이 요즘 몸 관리를 소홀히 대한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마부가 마차를 정리하는 사이, 네 사람은 먼저 객잔으로 들어갔다.

대관도에 있는 객잔이기 때문인지, 객잔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노상객잔의 위치를 보면 아마도 사천성으로 들어가는 사람이거나 중경으로 향하는 사람일 것이라 추정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 우와!”

아직 어려 보이는 점소이가 얼른 달려오며 인사를 하다가 채설지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뱉었다.

풍백은 점소이를 보며 말했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헙! 죄, 죄송합니다…….”

자신의 무례한 행동을 눈치챈 점소이가 얼른 입을 닫았다.

“객실은 있지?”

“네! 몇 개나 필요하신가요?”

“다섯 개 있나?”

“마침 딱 다섯 개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객실 다섯 개를 주고, 바로 식사도 하려고 하니까 준비해 줘.”

평소라면 별채를 빌리겠지만, 노상객잔에는 따로 별채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식사를 하고 계시면 바로 객실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점소이는 풍백 일행을 안내했고, 두 개의 식탁을 준비했다.

풍백은 채설지와 함께 앉았고, 당세기와 고우길은 마부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당세기는 고우길과 꽤 친해진 상태였다.

아무래도 자신보다 고수이기도 했고, 서문세가에서 자신을 대신해 사마장위과 대련도 했었으며, 노숙을 같이 준비하면서 친분을 쌓았던 것이다.

점소이가 다가와 음식 주문을 받으려고 했다.

“이쪽은 낙산봉봉계(樂山棒棒鷄)하고 개수백채(開水白菜), 간편우육사(干編牛肉絲)로 준비해 줘.”

사실 이것은 두 사람이 먹기에는 대단히 많은 양이었다.

풍백이 채설지를 지켜본 결과, 그녀는 은근히 미식가였다. 음식을 많이 먹지는 않지만, 새로운 음식을 만나면 꽤나 즐거운 모습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렇기에 비싸기는 하더라도 채설지가 식도락(食道樂)을 즐기도록 세 개의 요리를 시킨 것이다.

“당소협도 주문을 하시지요.”

풍백의 말에 당세기가 고우길과 잠시 얘기를 하더니 결국 간단하고 빨리 나오는 간편한 음식으로 주문을 했다. 세 사람은 아무래도 얼른 밥을 먹고 푹 쉬는 걸 선택한 것 같았다.

하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더라도 세 사람은 음식보다 휴식이 더 필요해 보였다.

풍백은 주문을 받고 돌아가려는 점소이에게, 숙소가 준비되면 모두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달라고 말했다. 따뜻한 물에 피로를 씻고 자라는 의미였다.

점소이가 돌아간 이후 고우길이 당세기에게 물었다.

“이제 사천성에 들어왔는데, 성도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이 무지막지한 강행군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목소리에 배어 나왔다.

“제가 혼자 움직이던 것보다 거의 몇 배는 빨리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아마 오 일은 더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사천성의 성도가 조금 동쪽에 있기는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사천성 거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그러니 오 일이 걸린다는 것도 그나마 최대한 짧게 말한 것이다.

다행히 고우길은 오 일이라는 말에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이렇게 달리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군요.”

고우길의 말에 마부가 대답했다.

“그래도 날씨가 좋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리면 길이 진창으로 변해서 시간이 더 걸릴 테니까요.”

길만 진창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오면 나뭇가지를 구해도 불을 붙이기가 힘들어지고, 재수가 없으면 비를 맞으며 밤을 지새워야 할 수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에 고우길은 제발 가는 길에 비는 오지 말아 달라고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기도를 드렸다.

이들이 이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음식이 하나씩 나왔고, 후다닥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얼른 객실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저들은 오늘 거의 기절한 것처럼 잠들 것 같았다.

단둘이 남은 풍백은 채설지가 정갈하게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것을 보며 물었다.

“입맛에는 맞습니까?”

사천 음식은 다른 지역 음식에 비하여 매운 음식이 많았다. 당장 식탁에 올라온 낙산봉봉계만 하더라도 마(麻)가 들어가 있어서 입안을 얼얼하게 만든다.

그러나 채설지는 그 맛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계속 움직였다.

풍백 역시 음식을 집어먹으며 다시 물었다.

“이제 며칠 후에 당가타에 도착할 겁니다. 채 소저는 어디로 가실 생각이신지…….”

그러자 채설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더니 가볍게 눈웃음을 지으며 젓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나를 따라오겠다는 말입니까?”

채설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미 짐작을 하고 있던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무한에서 출발할 때부터 그녀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아마도 채설지의 목적은 자신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풍백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면 약속 하나만 해 줄 수 있겠소?”

채설지가 자신을 바라보자 풍백이 말을 이었다.

“당가타에서 나에게는 중요한 대화와 계약을 하게 될 겁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당가타에 도착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만약 내가 무언가를 부탁하면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행여나 채설지가 문제를 일으키면 모든 협의가 박살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잠시 풍백을 바라보던 채설지는 이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한시름 놓은 풍백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무공이 강하니, 만약의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면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일단 자신의 무공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채설지는 비장의 한 수가 될 수 있었다.

풍백은 긍정적인 부분만 생각하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잠시 후 식사를 끝마친 풍백과 채설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객실로 향했다.

채설지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고 있어서 일까?

풍백은 객잔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그들이 들어가는 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객잔을 나가는 걸 보지 못했다.

객실로 들어온 풍백을 점소이가 준비해 놓은 따뜻한 물이 담긴 큼직한 욕조가 반겼다.

옷을 벗은 풍백이 탄탄한 몸을 자랑하며 목욕물에 몸을 담갔다.

딱히 피곤한 것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쌓여 있던 피로조차 모두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호사(豪奢)구만, 호사야.’

과거 새외에서는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드는 지원에 점소이에게 따로 돈을 쥐여 줘야 하는 목욕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풍백은 피식 웃었다.

‘확실히 돈이 좋기는 좋네.’

따뜻한 물에 목욕을 마친 풍백은 잠시 후 침상에 몸을 뉘였다.

내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당가타로 출발해야 했다. 그러니 조금 이른 시간이기는 했지만 빨리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풍백이 잠들고 시간이 흘러갔다.

중천까지 떠올랐던 달이 다시 넘어가는 시각.

한창 잠을 자고 있던 풍백이 스르륵 눈을 떴다.

‘……이건 또 뭐야?’

야행의를 입고 있는 다섯 개의 검은 인영이 신속한 움직임으로 객잔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서로 손짓으로 몇 가지 얘기를 나누더니 이내 객잔의 벽을 타고 지붕으로 소리 없이 올라갔다.

지붕에 오른 이들은 지붕에 배를 대고 기어가듯이 움직였다. 그리고 이들이 멈춘 곳은 풍백 일행들이 잠을 자고 있는 객실 지붕이었다.

다시 손가락으로 대화를 나눈 이들은 각각 객실 하나씩 정하고 슬그머니 창문을 향해 움직여 갔다.

풍백의 방을 지정받은 흑의인이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거꾸로 매달렸다. 거꾸로 매달린 흑의인의 눈앞에는 창문이 있었다.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뽑은 흑의인이 창문 사이로 단검을 집어넣고 위로 움직였다.

딸칵!

창문이 열리지 않게 고정시켜 놨던 걸쇠가 빠지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흑의인은 신중하게 창문을 살짝 열고는 품에서 손가락 두 개 정도 길이의 향을 꺼내 들었다.

뒷골목의 흑도패나 자객들이 즐겨 사용하는 몽혼향(夢魂香)이었다.

몽혼향을 밀폐된 공간에 피우면 상대는 그대로 정신을 잃게 되어 심장에 칼을 박아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무색무취기에 냄새를 맡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이다.

흔히 강호에 처음 나온 초출이 가장 많이 당하는 수법이기도 하고, 제법 경험이 많은 강호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자객에게 몽혼향에 당하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기도 했다.

흑의인이 몽혼향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그런 그의 귀에 누군가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걸로 뭐하려고?]

소스라치게 놀란 흑의인이 손에 들고 있던 몽혼향까지 놓쳤다.

그 순간, 누군가가 그의 발목을 잡더니 밭에서 무를 뽑듯이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발목이 잡혀 거꾸로 들어 올려진 흑의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서 있는 풍백이었다.

가볍게 발끝으로 점혈시킨 흑의인을 지붕 위에 올려놨다.

그때 풍백이 지붕에 올라온 것을 본 흑의인 하나가 소리를 지르려고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어떤 소리도 튀어나오기 전에 풍백이 두 사람 간의 거리를 없애 버리더니, 그의 입과 턱을 함께 손바닥으로 덥석 잡아 버렸다.

[시끄러워. 사람들이 깨어나면 어쩌려고?]

두 번째 흑의인까지 제압하고 난 이후에야 풍백이 지붕에 있는 걸 확인한 나머지 세 명의 흑의인이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뽑았다. 그들의 단검은 빛에 반사되지 않게 하나같이 옻칠을 해 놓은 상태였다.

동료들이 제압당하는 과정을 보지 못한 흑의인들은 풍백 하나는 충분히 죽이거나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풍백은 그런 흑의인들의 생각을 바로 수정해 줬다.

난화보는 빠른 속도가 장점이었다. 그렇기에 아직 이류무인인 고우길이 난화보를 펼치면 일류고수마저도 그 속도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렇게 속도가 빠른 난화보를 절정고수가 펼치면 어떨까?

풍백이 난화보를 펼치자 흑의인의 눈에는 마치 그의 모습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사라졌던 풍백은 곧 흑의인 중 하나의 앞에 번개처럼 나타났다.

순식간에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풍백의 모습은 흡사 이형환위(以形換位)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허……!”

흑의인은 입에서 놀란 소리도 모두 흘려 내기도 전에 풍백의 점혈에 몸이 굳어 버렸다.

굳이 고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풍백이 난화보를 펼친 모습만 본다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절대로 항거할 수 있는 수준의 무인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두 흑의인은 화들짝 놀라 도망치기 위해 황급히 지붕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풍백이 지붕에 나타났던 그 순간부터 이미 도망칠 방법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흑의인들은 지붕에서 뛰어내리기도 전에 허리춤이 뜨끔해지며 그대로 혈도가 제압당해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풍백은 잠시 조용한 지붕 위에 서서 방금 전 소란에 깨어난 사람은 없는지 확인을 했다.

그리고 누구도 나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조용히 흑의인을 두 명씩 데리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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