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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53화 (17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53화

구자욱은 방금 전 비무를 시작했을 때처럼 회륜십팔검식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에 비하여 상초진은 기수식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게 중단세(中段勢)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상초진의 기수식을 보고 피식 비웃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 경우가 있다.

흔히 쉽게 만날 수 없는 고수를 지목하여 그 자체만으로 입소문을 타기를 바라는 경우 말이다.

사람들은 상초진이 그런 부류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구자욱은 상초진의 기수식을 보고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은 더욱 진지해졌으며, 눈빛은 예리하게 빛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중단세로 보이는 것과 달리, 상초진에게서 빈틈을 발견하기 힘들었으며 알 수 없는 위압감까지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이 서로 먼저 출수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사람들이 귓속말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근데 고산장이 어딘지 알아?”

“나도 모르지.”

“혹시 거긴가? 귀주(貴州)에 고산장이라는 곳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진짜? 어떤 곳인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근데 고산장은 십여 년 전에 망해서 없어졌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하며 구자욱의 무난한 승리를 예측했다. 아무래도 나부파라는 이름과 방금 전 비무에서 보여 줬던 무공을 생각하면 구자욱이 패하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구자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부파의 보법으로 시작한 구자욱이 상초진의 주위를 도는 것처럼 움직이다가 순식간에 접근하여 회륜십팔검식의 첫 초식을 펼쳤다.

구자욱의 검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상초진의 상체를 쓸어 갔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구자욱의 검은 느리고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십여 개의 변화가 담겨 있었다.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함부로 대응을 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는 함정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걸 알아챘는지 상초진은 몸을 뒤로 빼며 구자욱의 검을 피하려고 했다.

간신히 두어 걸음 물러서는 걸로 피할 수는 있었으나 하마터면 옷이 베일 뻔한 수준으로 간신히 피한 것처럼 보였다.

상초진이 자신의 검을 피하자 구자욱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 초식으로 연계하며 상초진을 압박해 들어갔다.

회륜십팔검식은 연환검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초식과 초식 사이에 연계가 강하고, 초식 하나를 피하면 더욱 강하고 빠른 초식이 펼쳐지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들은 위협적으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며 점점 빨라지고 있는 구자욱의 검을 보고 점차 열광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곧 승부가 가려질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구자욱의 검에서 연계된 초식이 줄기줄기 풀려나와 상초진을 노렸지만, 상초진은 위태롭게 움직이면서도 한 번도 구자욱의 검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고, 아깝다!”

“와아! 저걸 피하네!”

“진짜 운 하나는 끝내준다. 저걸 깜짝 놀라 뒷걸음질 한 번 했다고 피해지는 게 말이 되냐?”

“이번에는 진짜 끝이…… 어우! 또 피했다!”

사람들은 위태롭게 움직이는 상초진이 구자욱의 검을 피할 때마다 온갖 추임새를 넣어 가며 아까워했다.

몇몇 사람들은 위태로워 보이는 상초진이 안쓰러웠는지 그를 응원하기도 했다.

처음 구자욱은 상초진이 자신의 검을 위태롭게 피하는 모습에 자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승부를 길게 가져갈 생각을 버리고 연이어 초식을 풀어내며 빨리 승부를 결정 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우연인지 우연이 아닌지, 위태로우면서도 회륜십팔검식을 모두 피해 내는 상초진의 모습에 점차 얼굴이 굳어 가고 있었다.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위화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위태롭다고? 아직까지 옷자락 하나도 자르지 못했어!’

정말로 상초진이 위태로운 상황이 맞다면 옷자락 정도는 잘라 냈어야 했다.

그런데 옷자락도 잘라 내지 못했다는 말은 오히려 자신마저도 상초진에게 현혹당하고 있다는 것이 맞았다.

이를 악문 구자욱이 대라심공(大羅心功)를 운용하여 내공을 십분 끌어냈다.

비록 나부파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천신대력공(天神大力功)은 아니었지만, 동정공을 익히지 않는 속가제자가 익힐 수 있는 최고의 내공심법이었다.

구자욱의 모든 내공을 담은 검이 이전과 결이 다를 정도로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상초진을 향해 쏟아졌다.

퀘퀘퀘퀙!

사람들은 살벌하게 상초진의 상체를 폭풍처럼 뒤덮는 구자욱의 검영에 비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풍백의 눈에는 정반대 상황으로 보였다.

‘그게 아니야. 구자욱은 절대로 상초진이라는 놈을 이길 수 없어.’

비무를 지켜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풍백의 눈에는 상초진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대략적으로 가늠이 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휘청거리며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멈춰 선 상초진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검영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내 검을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상초진의 검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구자욱의 검영을 조금씩 밀어내며 궤적을 바꿔 냈다.

그 모습을 본 사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풍백도 생각했다.

‘이화접목(移花接木)?’

상대의 공세를 흘리는 것을 화경(化勁)이라 말한다.

그리고 화경의 공부가 더 깊어지면 상대의 공세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고, 그보다 더 깊은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흔히 상대의 공격을 되돌려 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화접목, 또는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이라 불리는 상승의 수법이었다.

사대세가의 후기지수가 놀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화접목은 누구나 쉽게 펼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단지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상초진은 구자욱보다 떨어지는 무공을 가진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구자욱은 상초진이 펼친 이화접목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역시…….’

비무의 시작부터 뭔가 불안함이 느껴졌었다. 그렇기에 곧바로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회륜십팔검식을 펼쳤던 것이다.

상초진은 이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앞으로 나서며 상초진이 검을 찔러 왔다.

아주 단순한 찌르기였다. 흔히 강호에서 삼류무사도 펼치는 독사출동(毒蛇出洞)과 거의 똑같은 초식이었다.

얼마나 단순한 움직임인지 구자욱은 이것을 눈을 감은 상태로도 쳐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렇다고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고, 현란한 변화를 선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구자욱이 상초진의 검을 쳐 내고 곧바로 반격을 쏟아내려 했다.

그러나 구자욱의 검이 움직이기 무섭게, 상초진의 검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구자욱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구자욱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마치 검이 천변만화(千變萬化)를 하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이건 막을 수 없다…….’

구자욱이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이, 상초진의 검은 구자욱의 천돌혈(天突穴)에 닿아 있었다.

바로 검을 회수한 상초진이 먼저 포권을 해 보였다.

“좋은 비무였습니다.”

멍하니 상초진을 바라보던 구자욱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잔뜩 굳은 얼굴로 포권을 했다.

“좋은…… 비무였습니다.”

말을 마친 구자욱이 등을 돌리고 바로 비무대를 떠났다.

그제야 사람들이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비무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최고다! 엄청난 반전이야!”

“나부파의 후기지수가 듣도 보도 못한 가문의 후기지수한테 패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왜 가만히 있었던 거야?”

“우리는 볼 수 없었던 변화가 담겨 있었던 거겠지.”

사람들 중에 일부가 결과에 대해 의문을 표했으나 그런 목소리는 소수에 불과했다. 구자욱이 비무에 패했음을 인정했는데 이런 목소리가 무슨 의미겠는가?

그러나 풍백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비무대 위에 있는 상초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초승유초(無招勝宥招)였어.’

말 그대로 초식이 없이 초식을 이긴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것은 곧 상초진이 절정고수라는 의미였다.

일류고수까지는 초식에 연연하게 된다.

그러나 절정고수에 오르게 되면서 초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게 된다. 초식의 일부를 마치 숨 쉬듯이 가져다가 쓸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닌 듯한 움직임에 초식이 묻어나게 되는 것이다.

방금 전 상초진의 일검이 바로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풍백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건 단순히 상초진이 절정고수였다는 점이 아니었다.

‘또 바뀌었어!’

분명히 원래라면 구자욱이 이곳에서 일곱 번의 비무를 통해 명성을 얻고 강호에서도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구자욱이 갑자기 나타난 상초진에 의해 패하고 사라졌다. 아마도 구자욱의 삶은 풍백이 알던 것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다시 강호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마지막에 비무대를 내려와 떠날 때, 구자욱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던 것이 떠올랐다.

충격이 대단한 것 같았다.

이것만이 아니다.

‘상초진이라는 저놈은 대체 누구지?’

과거 풍백은 한 번도 상초진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무려 절정고수인데도 말이다.

이것을 보고 유추할 수 있는 건 몇 가지가 있었다.

어쩌면 과거에 상초진이라는 사람이 있었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든지, 아니면 강호에서 사라질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풍백이 적가상방을 살리기 위해 벌였던 일 때문에 많은 일들이 뒤바뀌며 상초진이 강호를 떠나거나 목숨을 잃지 않고 이곳에 나타난 거라는 예측이다.

물론 풍백이 한 예측이 정말 맞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풍백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상초진을 바라봤다.

상초진은 사람들의 환호에 연신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 * *

해가 지고, 무한에서 열리던 비무대회도 하루를 마감했다.

비무가 끝나자 녹수장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나와 순식간에 식탁과 의자를 마련하더니, 곧이어 사람들이 음식들을 가지고 몰려나왔다.

얼마나 준비를 했던 건지, 식탁과 음식 등을 준비하는 일꾼이 대충 봐도 수십 명은 족히 넘어갈 것 같았다.

빠르게 연회 준비가 끝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가장 큰 주제는 당연하게도 오늘 비무에서 의외의 승리를 거둔 상초진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늘따라 외부에 볼일을 보러 나가거나, 약속이 있어서 녹수장을 나갔던 사람들은 큰 구경거리를 놓쳤다는 듯이 안타까움을 성토했다.

풍백은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으며 고개를 돌려 남궁진을 찾아봤다.

남궁진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같은 사대세가에 들어가 사람들을 비롯하여 몇몇 사람과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풍백은 머리를 긁적였다.

‘자리도 없는데 찾아가기가 좀 그러네.’

남은 자리가 없으니 대충 인사만 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너무 컸다. 겨우 그 정도만 하고 돌아올 거라면 차라리 찾아가지 않는 것이 나았다.

결국 풍백은 잠시 기다리면서 남궁진의 식탁에 자리가 나는 것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 곳이나 빈자리가 있으면 앉을 생각이었다.

그런 풍백을 향해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적 공자님! 여깁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소흥에 있는 세황조방의 소방주인 양가정이었다.

어차피 앉을 자리를 찾고 있던 풍백은 마주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빈자리에 앉으며 농담을 담아 말했다.

“제 자리를 미리 준비해 두셨군요. 감사합니다.”

“하하! 제가 이렇게 준비성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비무는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저는 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뭔가 번쩍번쩍하는데, 고개를 돌리면 반대쪽에 가 있고 그래서…….”

비무를 처음 보는 사람은 무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전혀 따라가지 못하곤 한다.

특히나 녹수장 비무대에서는 무한 밖에 준비된 비무대에서보다 수준 높은 비무가 이어졌으니 더더욱 그럴 법했다.

“저런…… 그러면 비무도 잘 보지 못했겠군요.”

“그래도 며칠 동안 계속 보다 보니 조금 익숙해져서 이제는 조금 따라가고는 합니다.”

“그러면 그냥 무한 외곽에 있는 비무대로 가 보시지요. 그쪽은 보기 편하실 텐데요.”

“하하…… 그래도 여기에 있어야…….”

양가정은 말을 길게 늘였다. 뒷말은 듣지 못했지만, 대충 어딘가와 계약을 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그런 얘기일 것이다.

풍백이 그런 양가정에게 물었다.

“아직 쓸 만한 계약을 못하신 겁니까?”

“운이 없나 보더라고요. 적 공자님은 어떻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통 성과가 안나오네요.”

여기서 말하는 성과는 서로 달랐다. 풍백은 쓸 만한 무인을 포섭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저희 모두 더 분발해야겠군요.”

“그래야죠.”

두 사람은 조용히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 갔다.

그러나 이런 담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것은 비단 두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녹수장에 있는 모든 인원이 의외의 사태에 모두 하던 일을 멈추게 된 것이다.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먼지로 범벅이 된 사람 하나가 들어오더니 지친 걸음으로 사대세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더니 소리쳤다.

“부탁이니, 제발 당가타를 좀 도와주시오!”

과거 풍백의 동료이기도 했던 당가타의 당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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