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52화
지금까지 풍백은 초대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한 밖에 있는 비무대로만 나갔었다.
이유는 있었다.
사마진걸이 수작을 부렸던 것을 계기로 확실히 적가상방에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비록 청운무관과 표국이 적가상방의 부족한 무력을 채워 주고 있지만, 그들이 적가상방에 상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언제까지 외부 무력에 의존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최소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무한 밖에 있는 비무대로 나가 비무를 벌이는 무인들 중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을 포섭하려고 한 것이다.
녹수장 내부에 있는 비무대에서는 모두 강호 문파의 후계자이거나 혈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그들을 포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포섭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자신의 가문이나 문파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
그에 비하여 무한 외부에 있는 비무대에서는 군소 문파 출신이거나 연고가 없는 무인, 낭인 등이 자신의 무력을 뽐내거나 확인받고 있었다.
그러니 확실히 포섭이 가능한 대상이라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그래야하겠지요.”
풍백의 대답에 풍진개가 물었다.
“적제도 매일 바쁘구먼. 그래서 사흘 동안 얼마나 사람을 구했나?”
별것 아닌 질문이었지만, 풍백은 대답을 못하고 난처한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풍진개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물었다.
“그 표정은 뭐야? 설마…… 한 명도 구하지 못한 건가?”
“하하하……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풍백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분명 이곳에서 생각보다 대단한 무공을 지닌 무인과 미래가 기대되는 기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을 적가상방으로 데리고 갈 수만 있다면, 향후 미래를 충분히 설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비무에서 두각을 보인 무인을 원하는 건 적가상방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강호의 문호를 열고 있는 문파들 중에서 고수를 원하지 않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당장 일류고수 수십 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수를 원하는 것이 바로 강호의 문파였다.
이런 것은 표국도 마찬가지였고, 적가상방과 같은 상방에서도 고수를 원했다.
고수이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돈에 구애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강호의 무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오대세가나 명문정파에서는 이런 경쟁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거나, 강호에서 제법 명성을 키운 무인들은 비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세가나 문파를 찾아간다.
그리고 세가의 식객(食客)이나 문파의 빈객(賓客)이 되어 매달 제법 많은 돈을 받으며 머물게 된다.
때문에 오대세가나 명문정파에서는 굳이 이런 자리까지 쫓아와 고수를 찾지는 않는 것이다.
풍백의 마음에 들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보여 주거나 가능성을 보여 준 무인들은,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경쟁이었다.
군소 방파에서 자신의 문파로 끌어들이기 위해 접근하고, 표국에서는 표사를 시켜 주겠다며 접근했으며, 상방에서는 후한 보수를 무기로 접근했다.
이런 경쟁은 흔히 볼 수 없는 젊은 일류고수가 나타났을 때 극에 달하게 됐다.
결국 미래가 기대되는 이 젊은 일류고수는, 중견 문파에서 제시한 거금을 받기로 하며 넘어갔다.
사실 비무대까지 올라온 무인은 꿈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무인을 상방에서 포섭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인이라면 당연히 커다란 명성을 얻고 강호를 주유하고 싶은 것이 당연했으니까.
그에 비하여 무인이 상방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명성보다 돈을 택했다는 시선이 강했다. 그래서 강호를 주유하는 무인들은 상방에 소속된 무인을 경원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풍백이 고수를 포섭 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건가? 자네 돈이 많잖아.”
풍진개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에 풍백이 다시 한번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적당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수 위주로 포섭할 생각을 하고 있어서요.”
앞으로 어떤 상대가 적가상방을 적대하며 나타날지 몰랐다. 어쩌면 마겁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단지 머릿수를 늘리기 위해 적당한 무인들을 포섭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적당한 무인들은 얼마든지 낭인무사로 채울 수 있으니까.
이러다보니 결국 한 명도 포섭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풍진개는 풍백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눈이 너무 높구만. 그래도 너무 무한 외부만 나가지 말고, 녹수장 비무대에도 가 보도록 해 봐. 초대장까지 있는데 어떻게 녹수장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가 볼 생각이었습니다.”
“잘 생각했네. 나도 이따가 채 소저가 녹수장으로 가면…… 헉! 이런 제길! 벌써 내려와?”
풍진개가 서둘러 입에 음식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걸 본 풍백이 고개를 돌리니 채설지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채설지는 풍백을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그걸 본 풍진개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도 끝까지 입에 음식을 집어넣고 풍백에게 손을 흔들더니 후다닥 밖으로 튀어 나갔다. 입에 음식이 가득 차서 말도 못하고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풍백은 먹던 식사를 계속 이어 갔다.
이후 식사를 마친 풍백은 고우길과 함께 객잔을 나와 녹수장으로 향했다.
무한의 거리는 기이한 열기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매일 눈 호강을 시켜 줄 수 있는 비무가 이어지고 있으니 분위기가 고양될 수밖에 없었다.
풍백은 이런 분위기의 거리를 지나 녹수장에 도착했다.
녹수장은 무한에서 손꼽히는 문파라는 말이 어울리도록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서문세가 수준은 아니지만, 확실히 적가상방보다는 훨씬 컸다.
초대장을 보여 주고 안으로 들어가 비무대를 찾아갔다.
녹수장의 비무대에서도 무인 두 명이 땀을 흘려 가며 서로에게 지금까지 배워 왔던 무공을 펼치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활발하게 비무를 하고 있네.’
풍백은 자신이 약간의 편견이 있었다는 걸 인정했다.
사실 풍백은 녹수장에서 비무가 활발하게 열리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녹수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문파의 후기지수였다. 그러니 각자 문파의 명예와 서로 이익 관계를 떠올리며 무리하게 비무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녹수장의 비무대에서도 비무는 바쁘게 열리고 있었다. 단지 이곳에 있는 젊은 무인들은 각각 한 문파의 후기지수라 불리는 이들인 만큼, 무한 외곽에 있는 무인들보다는 더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열기가 대단하군요,.”
고우길은 꽤나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비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역시 무인이었으니, 비무대 위로 올라가 자신의 무공을 시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비무대에 올라가고 싶은 겁니까?”
풍백의 물음에 고우길은 아쉬움이 담긴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도련님을 보필해야지요.”
“비무를 하고 싶으면 올라가셔도 괜찮습니다. 여기서 저를 보필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마음을 정리한 고우길이 담담히 말했다.
풍백은 그런 고우길의 모습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비무대에 올라 더 강해진 자신을 확인하고, 그 모습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욕망을 제어하는 모습이 풍백의 마음에 들었다.
‘이제 슬슬 마지막 초식을 가르쳐 줘도 괜찮겠네.’
고우길은 아직 난화칠식 중 여섯 번째 초식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초식 이해가 끝나게 되면 마지막 초식을 가르쳐 줘도 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풍백이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봤다.
풍백이 바라보는 곳에는 여섯 명의 남녀가 따로 모여 있었는데, 사람들이 마치 배려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조금 떨어져 있었다.
‘저들이 오대세가 사람들이겠군.’
군웅회를 이끌어 간다고 말할 수 있는 오대세가는 정파의 거목들이었다.
안휘성의 남궁세가.
하북성(河北省)의 하북팽가(河北彭家).
산동성(山東省)의 황보세가(皇甫世家).
호북성의 제갈세가.
마지막으로 절강성의 서문세가.
이렇게 다섯 세가를 합쳐서 오대세가라 부르고 있었다.
사실 서문세가는 분명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가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대세가에 비하여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을 받고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굳이 이들을 합쳐서 오대세가라 부르는 이유는 서문세가가 사대세가에 비하면 조금 떨어진다고 하나, 그렇다고 사마세가와 같은 신진세가에 비하면 월등한 전력과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풍백은 저들 중 한 사람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역시 남궁진이 왔구나.’
남궁세가의 남궁진이었다.
남궁진은 다른 세가의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면서도 간간이 아쉬운 표정을 보이는 중이었다.
‘서문세령이 올 줄 알고 있었나 보네.’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한 것처럼 서문세령을 쫓아다니던 남궁진이었으니, 저렇게 아쉬워하는 것이 대충 이해가 되는 풍백이었다.
남궁진이 왔으니 오늘은 인사를 하고 친분을 좀 다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까지는 서문세령에게 찰싹 달라붙어 도저히 친분을 쌓을 수 없었던 풍백이었다. 어차피 절반 정도는 풍백이 알아서 두 사람의 시간을 지켜 주려고 자리를 피해 준 것도 있지만.
남궁진을 통해 남궁세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적가상방이 안휘성으로 진출하는 부분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저녁에 대연회가 있었지?’
이전처럼 황학루를 빌리는 것이 아니다.
대연회는 이곳 녹수장에서 저녁에 준비하는 행사로, 이전과 같이 황학루 오층에 저들을 위한 장소를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회를 즐기는 행사였다.
풍백의 입장에서는 남궁진과 얘기를 나누기 좋은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기에 오늘 굳이 무한 외곽에 마련된 비무대를 가는 것이 아니라 녹수장으로 찾아온 것이고 말이다.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비무대에서는 비무를 하던 두 사람이 내려가고 다시 한 사람이 비무대로 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경공을 뽐내는 것처럼 표홀한 신법을 자랑하며 비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은 그 경공에 감탄하며 시선을 고정했다.
“나부파(羅浮派)의 속가제자인 구자욱이 녹수장에 계신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구자욱이 사방으로 포권을 취하자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나부파는 광동성에 있는 문파로 역사가 아주 유구한 곳이었다.
오래전 과거에는 구파일방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었는데, 지금까지 차츰 그 명성을 잃어 가며 구대문파에서도 빠지게 되었다.
심지어 이제는 일반 사람들에게 강호의 문파라기보다는 도관(道觀)으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나부파의 명성은 강호에서 제법 유명했다. 특히 나부파의 기명제자들은 강호에 나서면 한 번씩 그들의 순양한 내공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 순양한 내공이 동정공(童貞功)이라는 걸로 유명하기도 하고…….’
풍백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구자욱을 바라봤다.
‘이 사람이 오늘부터 유명해졌었구나.’
과거 구자욱은 창룡봉무지회 비무대에서 무려 일곱 명 연속으로 비무를 하여 승리를 쟁취하며 커다란 명성을 얻은 걸로 유명했다.
그 명성을 바탕으로 구자욱은 강호에서 승승장구를 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나부파가 얼마나 대단한 문파였는지 다시 한번 강호에 각인을 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고 말이다.
‘저런 사람을 적가상방에서 고용해야 되는데…….’
아쉬움에 풍백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는 사이, 구자욱이 호기롭게 외치고 있었다.
“저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실 분은 비무대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곧 한 사람이 제법 멋진 경공을 선보이며 비무대로 올라갔고, 통성명을 한 이후 바로 비무에 들어갔다.
나중에 올라온 사내는 창을 사용하며 훌륭한 무공을 선보였다. 창에 대한 이해도도 대단했고, 구자욱과 간극을 유지하는 기술도 뛰어났다.
그러나 구자욱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나부파의 대표적인 무공이자 구자욱의 성명절기 중 하나인 회륜십팔검식(廻輪十八劍式)을 펼치며 자신이 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화려한 회륜십팔검식은 사람들의 안목을 개안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구자욱이 승리를 했을 때는 아낌없이 박수를 칠 수 있었다.
“멋지다!”
“보통 고수가 아닌데?”
“저 정도면…… 명문세가의 후기지수라고 하더라도 쉽게 상대하지 못하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부파가 아무리 명성이 떨어졌어도 충분히 대문파라 할 수 있는 곳이거든!”
“그러면 너는 구자욱 소협이 오대세가 후기지수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모르지. 근데 확실한 건 절대 뒤떨어지진 않을 거라는 거야.”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며 구자욱이 오연히 비무대 위에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조금 흥분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 계속 비무를 이어 갈 생각인가?”
“오랜만에 연속으로 비무를 하는 사람이 나왔네.”
“이전에 누가 다섯 번까지 비무를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기대 어린 시선이 비무대 위로 집중되었다. 그 시선들 중에는 사대세가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사내가 비무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대략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허리에 검을 패용하고 있다는 걸 제외하고 특별한 구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비무대로 올라온 사내가 구자욱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고산장(孤山莊)의 상초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풍백은 상초진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무언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을 목격한 듯한 표정이었다.
‘이건 또 뭐야…….’